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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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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시간
    5:55
    등록일
    2025-08-11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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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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