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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우리의 문자, 한글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 내레이션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서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딱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내레이션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말은 할 수 있어도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우리의 고유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되었다. 내레이션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 사대부들은 한글이라는 문자의 출현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젖어 있어, 한자에 비해 한글을 낮잡아 보는 태도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레이션 세종대왕은 한글이 점차 보급되면 서민들이 생각과 뜻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한글이 활용되어, 서민들의 생활 개선과 의식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인터뷰 정희원 /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한글의 창제정신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창제 시에 쓰셨던 어제 서문에 나타나 있는데요,우리가 보통 자주, 실용, 애민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겠습니다.자주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이 중국말하고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만의 독자적인글자가 필요하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자주정신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고요.실용정신은 쉬운 글을 만들어서 사람마다 널리 편안하게 쓰게 하겠다고 하신 데서우리가 실용정신을 엿볼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애민정신인데,어리석은 백성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혹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글을 몰라서 나타내지 못하니까 이것을 매우 안타깝고 가엾게 여겨서 새 글을 만들겠다고 하셨죠.그래서 자주정신, 실용정신, 그리고 애민정신 이렇게 3가지가 한글창제의 동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우주의 원리를 담고 세상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 하늘과 땅, 사람의 모습을 담은 현대의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자를 조합하여 무려 11,172자의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내레이션 한글의 글자형태는 발음하는 소리에 근거하여 사람의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 예를 들어 미음은 ‘ㅁ’, ‘ㅁ’, 미음에서 발음이 더 세어지면 비읍으로 ‘ㅂ’,‘ㅂ’, 다시 비읍에서 발음이 좀 더 세어지면 피읖으로, ‘ㅍ’, ‘ㅍ’, 이처럼 글자의 형태와 소리 나는 구조가 일치하면 기억하기 쉬워져 처음 접하는 외국인도 한 시간 정도 배우면 문자 시스템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은 배우기 쉽게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오, 어리석은 자는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내레이션 한글 사용을 확대하는 데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는 여성도 한문 교육을 받는 일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여성들끼리, 또는 여성과 남성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에는 주로 한글을 많이 사용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다. 내레이션 우리 민족의 글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서 사용한 사람은 주시경이다. 주시경은 개화기에 우리말과 글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교육과 연구에 힘쓴 사람인데, 그 후로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내레이션 백성들이 쉽고 편리하게 문자 생활을 도모하도록 만든 한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창제시기, 창제 원리까지 알고 있는 신비한 문자 한글은 교육을 통해 세계 속에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 제품을 통해서도 세계적으로 그 모습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이건만 / 이건만 CEO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유산이 뭘까 하다가 우리의 자연 발생적인 문화의 대표성을제가 고민해 보고 연구를 해본 결과 한글이라는 주제가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주제 같아요. 내국인들도 좋아하지만 특히 외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다른 데 가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이고, 특히 한글이 디자인적인 요소로 완벽하거든요. 굉장히 모던한 스타일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적 요소로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한글이 들어간 제품들을 보면 훨씬 더 선호하고, 굉장히 좋아들 하는 거 같습니다. 내레이션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겨 있으며, 고유 언어를 잃은 민족은 더 이상 민족이라 말하기 어렵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우리말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역경을 헤치고 ‘한글’을 지켜내어 민족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한글을 잘 보존하고 발전 시켜 나감으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리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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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한반도의 중심 산줄기, 백두대간

NA : 이곳은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 나는 이번학기 백두대간에 관해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알아보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 백두대간은 어떤 것일까? 막연하게 다가오는 궁금증을 안고 백두대간의 협곡을 지나는 V-train을 따라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감상했다. ? (자막)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 강원 태백 철암역 ↔ 경북 봉화 분천역 구간을 운행하는 KORAIL 관광 열차. ? (자막)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 좁은 협곡 사이 절벽과 바위산이 보이는 창밖의 풍경을 자연 그대로 오감으로 느끼며, 힐링으로 이어지는게 특징. ? NA : 도시를 떠나 좁디좁은 산골짜기 협곡을 달리는 기차 속에서 백두대간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속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한반도를 이루는 뼈대! 백두대간은 무엇인지 이번 여행을 통해 알아보려 한다. ? 먼저 찾아간 곳은 국민들이 백두대간에 대해 올바로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다. ? int 유경희 숲해설가 / 조령산자연휴양림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로 여겨졌고, 한반도의 모든 물줄기를 잉태한 생명력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입니다.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 10개의 강이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영동지방, 서쪽은 영서지방, 지방마다 독특한 언어와 음식, 주거환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 NA : 생태교육장을 둘러보며 백두대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 (자막)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우리나라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역사, 문화, 생태 정보를 다양한 전시 체험매체로 구성하여 보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 ? NA : 백두대간은 언제부터 이 땅을 이해하는 지리인식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성호사설 등을 통해 길게는 천여 년, 짧게는 수백 년간 백두대간으로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우리 선조들은 산맥을 표기할 때 땅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과 강을 그려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도록 하였고,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지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선을 표현했다. ? 반면, 일제의 침략을 받은 일제 강점기 때는 땅속의 지질 구조를 기준으로 산맥을 표기했고, 그리하여 산맥은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인 선으로 표현되었다. ? 현재까지 우리들에게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현실의 안타깝게 느껴졌다. ? 현재 백두대간은 어떻게 보전되고 있는지 이를 위해 힘쓰고 있는 보전회를 찾아갔다. ? int 김경한 사무국장 / 백두대간보전회 (백두대간 보전회는)크게 5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야생동물 보호활동, 생태 숲 조성운동, 백두대간 생태 체험 학습, 산불 조심 홍보 활동, 백두대간 산림 정화운동, 5가지를 우선 크게 볼 수 있어요. 백두대간을 말하면, 즐길 수도 있어야 하고, 보전도 해야 하고, 양면성이 있어요. 건설 쪽 활용방안 말고,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등산도 하고, 체험도 하고, 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찾아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 NA : 보전회 에서는 백두대간의 보전을 위해 국가 그 이상의 활동을 하고 계셨다. 과거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활동했던 독립 운동가들만이 애국자가 아니라 보전회 회원들에게도 한반도의 산줄기를 지키고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20년이상 해발 1,000m의 산을 꾸준히 올랐다는 보전회 사무국장님께 백두대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 오는지 여쭤봤다. ? int 김경한 사무국장 / 백두대간보전회 처음 제가 백두대간 보전회에 들어왔을 때 저는 사실 백두대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보전회에) 들어와서 백두대간에 대해 뭘까 고민을 하고 찾아보고 하다 보니까 저 역시도 백두대간 하면 지금도 울컥하는 마음이 있어요.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있는데, 백두대간 하면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먹는 물의 근원이 백두대간에서 떨어져서 각 강으로 지리로 다 흘러가거든요. 물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이 없으면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백두대간 하면 물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 NA : 나는 백두대간을 몸소 느끼기 위해 산을 걷기로 했다. 산줄기를 경계로 고개를 넘어가며, 동쪽 서쪽 마을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고, 지역과 문화가 구분되어 교류를 이룬 백두대간! 세계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강을 통해 발전 했듯 우리의 문화는 이 백두대간을 따라 발전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자막) 백두대간(白頭大幹)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백두대간은 1의 대간과 1개의 정간 및 13개 정맥 체계로 되어 있다. ? NA : 산 정상에 올라 백두대간을 바라보니 처음 기차를 타며 느꼈던 마음 속 벅차오름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 (자막) 함백산(咸白山)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해발 1,572,9m의 산으로 우리나라에서 6번째 높은 백두대간의 고봉 가운데 하나. ? NA : 한반도 중심산줄기 백두대간 우리민족에게 백두대간은 문화의 울타리였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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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한국문화100]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본 고구려인의 삶

당시 고구려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의미에 대해 나타낸 영상(대본)내레이션 고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림은 문자 이상의 많은 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림은 기호보다 쉽게 눈에 들어오고 마음속으로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삶과 생각을 담았던 고구려 고분벽화,찬란한 고구려의 역사가 담긴 고분벽화를 만나보자 내레이션 고구려 사람들이 언제부터 무덤 속에 벽화를 그렸는지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안악 삼호분 고분 벽화가 고구려 초기벽화의 모습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고분벽화는 고구려가 도읍으로 삼았던 평양과 지안 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기 시작해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약 천삼백 년 뒤인 이십세기 초,고구려 멸망 후 소문으로만 떠돌던 벽화에 대한 이야기가평안남도 강서군수를 지내던 이우영이라는 사람에 의해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레이션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분벽화,벽화 속에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인터뷰 고구려 고분벽화는 주로 고구려 사람들이 죽은 뒤의 세계에 대해서그들의 생각이 나 소망을 펼쳐놓은 그런 작품입니다.그래서 초기의 작품에는 현세에 살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고구려인들이 그 당시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사진 찍듯이 그대로 옮겨 놓아서우리가 그 시대로 여행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그래서 기본적으로 고분벽화라고 하는 것이 내세관의 표현이다.죽은 뒤 세계관에 대해 소망과 꿈을 담은 표현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국내외의 역사가, 문화예술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상상력,문화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현재 백이십여개의 벽화가 발견되어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생기를 전해주고 있다.한국 문화의 원형을 담은 고구려 고분벽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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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예와 의를 지킨 조선시대 순고한 정신, 선비

조선시대 선비정신을 배우고 느껴보자 ---대본---나레이션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유교적 인격체를 뜻하는 말입니다. 선비는 관직이나 신분의 의미보다는 지성과 실천을 겸비한 인격체로서의 추상적인 의미를 지니는 사람을 뜻합니다.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양반 계층에서만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문용어로는 사대부라고 하는데요, 유교의 도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교의 가장 높은 가르침인 ‘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아야 합니다. ‘살신성인’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비들은 열심히 학문을 닦았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한 학문을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백성들과 나누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이 것이 바로 선비 정신입니다. - 인터뷰오늘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선비정신은 남을 배려하는 배려의 정신이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아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우리 세상을 평화롭고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선비정신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레이션선비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합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지가 선비들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인터뷰선비정신은 인의예지 그대로 마음을 다스리고 인정이 있고 또 예의가 바르고 가정을 다스리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이게 바로 선비정신입니다.글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선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선비들의 생활은 첫째,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이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위한 공부를 한 것입니다.그 다음에 일상생활을 절제 있게 했습니다.선비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분들이었습니다.예를 들어 나라에 위급이 닥친 임진왜란 때나 일제 치하에서 나라를 빼앗길 위기 때는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싸운 거죠, 그러니깐 이해가 먼저가 아니고 옳고 그른 것이 먼저고 옳은 것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친다는 것이 선비정신인 거죠. 나레이션오늘처럼 혼탁한 사회에서 나라와 정의를 위해 의리와 신념을 지키는 선비의 모습!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선비에게 꼭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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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신성한 경계 금줄

한국인의 일생과 함께 했던 금줄. 부정을 막거나 신성한 대상의 경계를 나타내는 금줄의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제목 : 신성한 경계 금줄 내레이션 부정한 것을 금기한다는 뜻으로 걸쳐 놓은 새끼줄. 대문이나 길어귀, 신성한 대상물에 우리민족은 새끼줄을 매달아 경계를 표시하고 금줄이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그 형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왼 방향 새끼를 꼬아 용도에 따라 상징적인 물건을 꽂았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금줄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금줄을 친다고 이야기 하지요. 금줄을 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우리가 사는 보편적인 공간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생겼을 때 그 공간을 보편적인 공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악운이나 음습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을 가진 금줄은 마을의 기원을 비는 서낭당이나 신성한 대상물에 주로 설치한다. 신성한 경계라는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금줄을 친 당산나무를 범접하면 몸이 상한다거나 금줄을 함부로 제거하면 악귀를 만난다는 등의 금기가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줄은 그 자체로 신성한 대상물이기 때문에 소원을 기원하거나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특히,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매달던 새끼줄의 형태가 금줄의 대표적인 사용 모습이다. 인터뷰 강호식 / 짚풀생활사박물관 아기를 낳으면 금줄이라고 해서 대문위에다 사람 머리 안 걸릴 정도로 매달아요. 아들을 낳게 되면 고추가 들어가고 종이 백지, 숯, 솔가지를 넣고. 딸을 낳게 되면 고추를 안 넣고 솔가지하고 숯하고 이렇게 세 가지(종이)만 꼈다고 해요. 인터뷰 인병선 / 짚풀생활사박물관장 아이한테 만일 부정한 것이 들어오면 아이에게 해로우니까 그것을 막는다는 개념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손자, 손녀가 태어났다는 것을 마을에 알리고 그럼으로써 마을사람들이 축하도 해주지만 근신하는 것이지요. 함부로 들락거리지 않게 하는 경계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내레이션 금줄은 사회적 규약이며 약속이다. 우리민족 스스로가 창출해 냈던 자율적 공공질서였다. 지켜야 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약속.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금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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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김정호의 노력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와 그 비화 ---대본---나레이션대동여지도는 조선후기 김정호가 제작하였다. 고지도 중에서 유일하게 풍수사상에 기초를 둔 산줄기 표현방식과 산악투영도법으로 국토 전체를 그린 대동여지도는 한국의 고지도 중에서 가장 문화상징성이 강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대동여지도는 조선후기 지도학의 여러 장점들, 성과들을 종합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지도중에서 가장 큰 지도이고요, 축척이 약 1:165,000 정도의 축척을 가진 지도입니다.남북으로는 약 6.6m 동서로 약 4.2m 정도의 크기를 가지는 지도입니다.아주 큰 축척의 지도이기 때문에 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정확하고 자세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으로 제작 되었다는 점입니다.목판으로 제작한 것은 여러벌을 제작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지도의 보급, 대중화, 공유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나레이션김정호는 조선후기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도그리기가 취미였는데, 그의 영민함은 마을 사람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이 정확한 길을 알지 못해서 사고가 나는 것을 많이 보고 정확한 지도 만들기에 인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 그리기에 열중한다. 산과 바다, 겨울과 여름을 가리지 않고 떠난 그의 여정은 엄청난 고난의 길이였다. 굶주림과 병마로 쓰러지기가 부지기수였으며,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가 백두산을 여 덟 차례나 올랐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 1861년, 마침내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대동여지도가 완성됐다. 일설에 의하면 대동여지도를 본 대원군이 군가기밀 유출을 우려해 김정호를 옥에 가두었다고하는데 그 후에 그의 업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터뷰그런데 최근에 많은 연구에 의하면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옥사를 하지도 않았고, 대원군이 옥에 가두지 않았다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그리고 김정호가 딸과 함께 둘이서 굉장히 어렵게 핍박을 받아가면서 만들었다라고 일제강점기(자료)에 나와있었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근에 판명이 되고 있습니다.이게 대동여지도 복제본입니다. 여기 보시면 당저십이년신유 라고해서 철종12년 신유년 1861년에 간행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지도표’라고 하는 대동여지도에서 사용한 범례를 수록해 놓았습니다. 대동여지도의 가장 큰 특징중에 하나는 기호를 많이 사용해서 매우 명확하고 지도학적으로 훌륭한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에 있습니다.역을 기호로 표시하고 ‘역’이라는 글자는 쓰지 않은거죠. 그래서 ‘양재’라고만 표시를 했습니다. ‘부산진’이라고 한다면 ‘부산’만쓰고 사각형으로 표시를 한거죠. 나레이션김정호는 공적인 도움 없이 개인의 의지와 재능으로 혼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가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지 않았다는 설들이 많으나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뛰어난 제도기술과 과학적 제도방법을 통해 가장 사실적인 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실측에 의한 현대지도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정밀한 지도였다. 이 훌륭한 문화유산이 나오기까지 한 개인이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우리는 알아야한다.그의 위대함과 노고를 한번 더 되새겨 보는 일이어야 말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시작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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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IT, 정보통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이다. 한국의 IT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월등한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한국의 IT를 알아본다. IT대본 내레이션 대한민국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K씨의 생활 안에서 전통과 현대를 넘어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미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K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버스의 예정 도착 시간을 확인합니다. 필요한 문서들 역시 어디서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거리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커피 주문도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네트워크 등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기술. 우리는 이것을 IT,? 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자막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내레이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개발, 저장, 처리,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정보통신기술, IT입니다. IT산업은 대한민국 미래 가능성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의 변화와 융합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있는 IT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원석 /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IT활용강국의 입지는 계속 살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단편적 요소, 데이터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문화차원으로 승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활용강국으로 계속 남게 되면 전 세계에서 새로 나오는 기술들은 다 우리나라에 먼저 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먼저 적용이 되고 제일 먼저 접하게 되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레이션 반도체, 소프트웨어, 이동통신기술, 복합전자기기 등 대한민국의 IT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고 높은 기술력과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IT는 보다 쉽고 밀접하게 우리의 생활 속으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스마트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혁신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반도체 시장 점유율 등 많은 IT관련 지표에서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IT기술력은 이미 세계 정상 수준이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기업의 IT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IT기술이 가진 가능성은 무한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가상현실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세계의 트렌드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의 IT산업. 더욱 성장시키고 발전을 이뤄야 하는 우리의 중요한 미래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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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15-10-19

[한국문화100]신과 인간의 만남 굿

신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자 제의인 굿의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제목 : 신과 인간의 만남 굿 자막 판소리, 살풀이춤과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뿌리는 남도 시나위 굿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 뿌리를 캐다보면, 무교로 연결되는 것이 적지 않다.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통의 원형을 탁월하게 유지하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의 강릉단오굿을 통해 굿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자막 강원도 강릉시 강릉단오제 인터뷰 양종승 / 샤머니즘박물관장 q. 신과 무당 대해 알려주세요. 신은 영의 존재입니다. 영은 무형적 존재입니다. 우리가 침범할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 속에 늘 함께하고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 영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만신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무당입니다. q. 굿의 의미를 알려주세요. 굿은 영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영을 다루는 무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악과 무의 총체적인 행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굿을 통해서 무엇을 얻느냐 했을 때에는 우리의 슬픔, 아픔을 기쁨과 한으로 전환해주는 것이 굿이고 꼬였던 것을 풀어주는 것이 굿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우리 삶 속에서 아주 속성적인 측면을 성성적인 측면으로 바꾸려는 것이 바로 굿이고 이것을 주도하는 것이 만신이고 또 이것을 우리문화가 우리역사가 지금까지 함께 해왔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우리 한민족의 정서, 사상, 철학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굿이수자 신희라 q. 무당에게 굿이란? 굿은 저 같은 경우도 굿을 잘 모를 때는 무서운 것 그리고 가까이가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일제강점기나 70년대에 미신타파정책으로 (민속신앙을)소멸시키려고 했던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해서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이어가야 된다는 것도 많이 알고 있고 우리 뼛속부터 옛날부터 내려왔던 신앙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어떤 신앙, 어떤 종교가 들어오든지 꿋꿋이 지켜오고 있었거든요. 굿은 없어지지 않을 우리의 우리민족의 기본, 근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굿에서 무당의 역할은? 굿에서 무당의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마음이 편해야 모든 것들이 다 편하다고 하잖아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신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그 신이 굿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굿을 보는 사람들도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서 만사형통을 바라는 의미로 그런 것들이 행하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굿이수자 임선미 q. 굿을 배오는 사람에게 굿이란? 아무래도 옛날 생각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무섭다거나 이상한 사람들이라거나 이런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처음에 굿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너 무당이야?’ 라고 물어봤었거든요. 저는 그때 무당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나는 무당이고 우리나라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계속 주변 분들에게 설명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주변 분들이 굿당에 찾아오시고 응원해 주시고 제가 하는 일을 좋게 바라봐 주시고 시선이 지금은 저로 인해서 제 주변 분들이 많이 변한 것 같아서 그런 점은 좋은 점인 것 같아요. q. 무당으로 굿을 할 때의 느낌은? 강릉 시민들이 오셔서 소지 한 장을 올리면서 가족들의 안녕과 기원을 하시는 것을 보면 이런 느낌이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말이 들어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들거든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정말 제 진심을 담아서 저도 신께 이 모든 분들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자막 다양한 민속 문화가 담겨있는 굿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보고입니다. 앞으로도 굿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예술적인 면을 더욱 살려서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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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떡,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다양한 이야기

한국의 전통음식인 떡에 대한 소개영상 한국문화 100 떡,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다양한 이야기 나레이션 한국의 거리에서는 떡집을 쉽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떡은 예로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즐겨먹던 친숙한 음식입니다. 요즘도 명절, 결혼식, 생일 등 다양한 행사에서 떡을 찾고 있는데요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떡을 찾는 것 일까요? 쌀 농사를 주로 짓던 옛 선조들은 남은 쌀 재료와 잡곡을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정확히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굴 된 떡시루 등을 놓고 볼 때 청동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먹지 않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한국인들에게 떡은 오랜기간동안 많은 사랑을 받는 전통음식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인공 조미료가 가미된 자극적인 음식과는 달리 쌀, 콩, 팥 등의 천연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웰빙 음식인 떡은 지금까지도 건강식으로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부터 떡은 크고 작은 행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결혼과 같은 집안의 경사에 떡은 필수품이었는데요 행사별 떡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인터뷰 혼례 때는 찰떡(찹쌀떡)을 가지고 인절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떡을 만들어 이바지로 보내고 있어요. 그 우수한 떡의 세계화를 위해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하여 우수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 속에 꽃피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백일 때는 하얀색으로 떡을 만들죠. 그건 맵쌀가루로 물을 반죽한 후 시루에 안쳐서 만드는데, 아이가 순수하게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로 만들고... 또 나쁜 것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의미로 수수팥떡을 열 살까지 해서 먹습니다. 나레이션 과거에는 직접 집에서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화가 되면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웰빙 열풍을 타고 직접 떡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떡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인터뷰 이것은 단자라고 하는 떡이에요. 단자라는 것은 안에 소가 들어간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삶는 떡입니다. 경단은 소가 없는 것을 말하고 이렇게 소가 들어간 것을 단자라고 합니다. (단자는)어린아이 생일과 어르신들 생신 상에 많이 올려요. 이렇게 소를 넣고 바람을 빼줘야 해요, 바람이 안 빠지면 삶을 때 터집니다. 잘 안 터지게 꼭꼭 주물러서 동그랗게 돌려준 다음에 삶으면 됩니다. 자막 - 물이 펄펄 끓을 때 단지를 넣어준다. - 단지가 서로 달라붙지 않게 가끔 저어준다. - 물위에 단지가 뜨면 (약 6~7분 정도) 건져낸다. - 건져낸 단지는 완전히 식을 때까지 찬물에 헹구어낸다, - 찬물에 헹궈낸 단지는 자연 건조 시킨다. 이때 설탕을 조금 뿌려주면 수분이 빨리 제거된다. 인터뷰 이제는 삶은 단지에 고물을 묻히는 작업입니다. 자막 - 카스테라가루, 거피 팥, 녹차 가루 등 식성과 기호에 따라 다양한 고물을 만들어 묻히면 된다. -대추와 해바라기 씨 등으로 마무리해주면 끝. 나레이션 자 이제는 여러분도 집에서 맛있는 떡을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최근 한류열풍으로 인해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떡을 찾고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참 많아 졌는데요, 우리 전통음식인 떡에 대한 외국인들이 반응이 상당이 흥미롭습니다. 인터뷰 매우 흥미롭고, 전통적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게 돼서 즐겁습니다. 우리 떡,한과가 크고 푸짐한 것 보다는 한입에 쏙들어가는 것, 고물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그냥 먹을 수 있는 것, 이처럼 더 기능적인 식품이 들어 가야되고, 아름다워야 되고, 또 좀 두고 먹어도 굳지 않아야 되고, 이런 점들이 더 보완이 된다면 정말 훌륭한 떡, 한과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떡을 하면서 내가 먹는 떡이 아니라 나누어 먹는 떡으로,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동네사람이나 직장동료들과 나누어 먹는 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마 떡은 사랑이고 나눔이고 우리민족성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이처럼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떡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웰빙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우수한 떡의 세계화를 위해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하여 우수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 속에 꽃피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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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내레이션 나는 1882년에 태어났습니다. 중국 청나라에 의해 강제로 태어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 고종의 꿋꿋한 의지로 대한민국의 태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영원한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막 나는 태극기입니다. 최초의 태극기 (1882) 내레이션 나는 네 번의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막 1890: 고종황제가 조선정부 외교 고문이었던 미국인 데니(O.N.Denny)에게 하사한 태극기 데니태극기(1890) 독립신문 제호에 도안된 태극기(1896) 프랑스에서 열렸던 파리박람회장 내 한국관에 게양되었던 태극기 파리만국박람회에 걸린 태극기 내레이션 지금의 완성된 나의 모습은 1949년 정부에서 42인 국기 제정위원회를 구성, 제정된 것입니다. 나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밝고 순수한 민족을 사랑합니다. 따뜻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을 한데 모아 대자연의 진리를 형성합니다. 자막 따뜻한 양의 기운, 차가운 음의 기운, 하늘 건, 땅 곤, 물 감, 불 리 내레이션 건괘는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는 물을, 이괘는 불을 상징합니다. 태극을 중심을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지 130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나와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막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잊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유관순 3.1운동 당시 나는 각자 마음에 담겨져 있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남상락 태극기(1919)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3.1운동을 지위한 남상락이 만세시위 당시에 사용하고 죽을 때까지 간직한 태극기 태극기 목각판(1919)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만든 목각판 김세영 태극기(1919)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세영이 보관한 태극기 각자 모양이 다른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했지만 조국 광복과 민족독립의 염원만은 하나였습니다.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1945) 광복직후 안후이성 푸양에서 주둔하던 한국광복군 제 3지대 제 2지구대 대원들이 광복의 소감과 환국 이후 소망을 기록한 태극기 김구서명 태극기(1941)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 내소원은 오직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도 나는 당신과 함께 싸웠습니다. "아빠, 우리는 잘 몰라요. 엄마도 간혹 말씀해주셨지만 아직도 우리는 왜 아빠가 그때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아빠, 어린 우리들을 끝까지 보살펴주세요" 5.18 민주열사의 자녀 내레이션 하지만 울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조국의 해방의 순간에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열린 88서울 올림픽에도 대한민국을 외쳤던 붉은 악마의 응원에도 나는 대한민국과 함께 했습니다. 인터뷰 왜 태극기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나요? 김보람 / 독립기념관 해설사 우리나라 태극기는 현재 그 모양과 보관방법, 처리방법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 법은 1949년에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정해진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모양의 태극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하던 때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태극기가 사용되었습니다. 태극기를 보존하기 위한 마음가짐? 김보람 / 독립기념관 해설사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에게는 빼앗겼던 나라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태극기에) 자신의 소망을 적거나 꿈을 적고 태극기를 죽을 때 까지 보관하시는 분도 계셨을 거예요. 그랬던 것처럼 태극기는 어떤 그림이나 나라를 상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꿈과 희망을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해주시고 조금 더 친숙하고 가깝게 생각해 주시면 더욱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레이션 치열했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정부수립, 시민항쟁, 그리고 2002년 월드컵까지 국민들이 슬프고 기쁜 순간에 언제나 내가 함께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한과 기쁨이 서려있는, 나는 당신 안에 언제나 살고 있습니다. 나는 태극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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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한국문화100]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민중의 염원과 기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의가치를 재조명한다. 제목 :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내레이션 성황은 서낭당에 모신 신을 뜻하는 것으로 성황당과 서낭당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어귀나 산허리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돌무더기, 오래된 나무, 작은 당집 그리고 나무와 당집이 같이 있는 형태 등으로 서낭당은 존재했다. 서낭당에는 오방색을 뜻하는 오색띠가 매어져 있거나 금줄이 쳐져 있는데 이러한 것은 복을 부르고 사악함을 쫓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서낭당을 개인적 혹은 마을공동체 신앙의 수호신 삼아 섬겼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서낭당이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남아있는 서낭당들도 무형문화재라는 입장에서 보존되고 있는 차원인데요. 사실, 서낭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표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서낭제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음세대에 대한 마을의 전통을 교육하는 것도 일어납니다. 굉장히 순기능적인 여러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옛날 같지 않고 아파트와 같은 분할된 가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변해서 옛날에 한마을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가 되었던 모습은 찾기가 힘든데,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라는 입장 이외에도 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서낭당을 통해서 주어졌던 것인데요. 그런 부분들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고 없어졌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막 성황당 1937년 발표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 내레이션 우리의 문학과 노래에는 서낭당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만큼 우리 민중들과 가까웠던 것이 서낭당이다.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은 후미진 평안도 산골에서 숯을 구워먹고 사는 순이 부부와 그녀를 노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원초적이고 관능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특히, 성황당과 순이의 관계를 통해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했다. 자막 깊은 산중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는 모든 일을 성황님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현보를 도와 숯가마에 불을 때던 순이가 더위를 참지 못하여 옷을 벗고 개울에서 목을 할 때, 예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산림간수 긴상이 그녀의 옷을 감추고 협박을 한다. 순이는 이에 단호히 대항하고 앙심을 품은 긴상은 순이의 남편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다. 이때,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칠성이 찾아와 긴상과 칠성은 순이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벌인다. 며칠 뒤, 다시 칠성이 나타나 순이에게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같이 도망칠 것을 종용한다. 그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에 마음이 끌린 순이는 칠성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30리쯤 갔을 때 산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현보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성황님의 벌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순이는 칠성에게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순이가 “성황님 ! 성황님 !” 을 외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방안에서는 “에헴” 하는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밤 따라 접동새와 부엉새 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이 정다운 것이었다. 자막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 내레이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서낭당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하회마을 가장중앙에는 삼신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회마을이 조성될 때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나무의 수령은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신목을 서낭당 삼아 정월대보름에는 제를 올리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과 공동의 소망을 빌기도 한다. 인터뷰 손주호 / 대구광역시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 안 싸울 수는 없겠지만, 싸우더라도 서로 잘 잡으면서 이 운명 끝까지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김명숙 / 서울특별시 저를 비롯해서 제 가족과 친지, 주위의 분들,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김문배 / 서울특별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무사히 잘 태어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빌러 왔습니다. 내레이션 특히, 삼신당은 자식을 귀하게 여겨 후손이 잉태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들어주어 마을 전체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앞산의 중턱에는 또 다른 서낭당인 중당이 조성되어 있다. 서낭당과 같은 마을제당은 주민들의 종교심성을 공유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마을의 신을 중당에 모셔와 제사 지내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해설사 인터뷰 박순화 / 안동문화관광해설사 중당은 국신당을 모셨어요. 국신당은(공민왕의 모신 것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70여일을 몽진을 오셨어요.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그래서 안동에는 공민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조성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풍산류씨들이 하회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특히, 영의정 서애 유성룡 대감 같은 명재상이 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막 국신당은 신격화된 고려의 공민왕을 의미하며 특히 안동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자막 강원도 강릉시 내레이션 강원 강릉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 기간 동안 대관령산신을 모셔와 서낭제를 지낸다. 자막 학산서낭당 강릉단오제의 주신 대관령국사성황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의 서낭당으로 매년 음력 4월15일 머물러 굿과 제례를 올린다. 내레이션 강릉고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께 제사하고 험준한 대관령 산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풍작과 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한다. 제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는 만남의 공간이다. 서낭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기원의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 심적인 유대, 연대감을 강화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중이 가깝게 여기는 마을제당이자 개인제당이었던 서낭당.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야할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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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은 우리강산 중 가장 빼어나고 수려한 상징물이다. 특히 남북화해 및 교류의 물꼬를 튼 상징이기도 하다.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 금강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민족의식의 샘터 금강산에 대하여 알아보자. 금강산 대본 자막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 송나라 시인 소동파 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섬 진주알을 홑뿌렸는가신라 문인 최치원 금강산 관광 당시 인터뷰 김두진/관광객 금강산을 왔다 가는데감개가 무량합니다. 정선영/관광객 (금강산 방문에) 오늘 너무너무 기쁩니다. 자유롭게 만나고 서로 오며 가며 불편 없이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산 전체가 수정으로 만들어진 듯 빛나는 보석 그 자체이다.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의 동서 너비는 약 40KM, 남북길이는 약 60KM, 그 면적은 약 530㎢ 8개 연못, 선녀들이 찾았다던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아름다운 은빛 줄기를 가진 상팔담이다. 금강산관광 당시 인터뷰 김영덕/서양화가 대단합니다. 금강산 이쪽이 원래 물 맑고. 공기 맑고 단풍이 물들었는데, 완전히 순수한 붉은 색입니다. 붉은색으로 가기 전, 노란색, 주황색 (단풍의 경치가) 대단합니다. 자막 금강산에 담긴 수천가지의 색들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가을은 기암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져 한곡의 멋진 풍악을 울린다 하여 풍악산이라 불려 운다 자막 세존봉에서 본 장전항 내금강에서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금강산의 웅대한 면모. 이정수/사진작가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천하의 절경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금강산을 조명할 때 가장 감사하다고 할까,자연이 주는 보배라고 느껴질 때 또 현재도 금강산은 훼손이 안됐다는 것을 보면.. 가장 큰 매력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자막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엔 풍악, 겨울엔 개골산 여러 이름을 갖은 금강산의 천 가지의 얼굴, 만 가지의 표정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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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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