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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지 흥화문 천장(79634)
문양설명
경희궁지(慶熙宮址)는 원종(元宗)의 집터에 세워진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이궁(離宮)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로 후에 왕으로 추존되었다. 광해군 8년(1616)에 세워진 경희궁은 원래 경덕궁 이었으나 영조 36년(1760)에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의 규모는 약 7만여평 이었다. 경희궁은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 임금의 침전으로 융복전과 회상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이 있었으며 홍정당과 장락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이 지형에 맞게 어우러져 있었다. 정문인 흥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흥원문, 서쪽에는 숭의문, 남쪽에는 개양문, 북쪽에는 무덕문이 있었다. 그러나 1907년부터 1910년에 걸쳐 강제로 철거되어 궁궐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였고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 변형되어 결국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1988년부터 복원작업이 시작되었고 숭정전과 회랑, 흥화문 등이 복원되었다. 흥화문(興化門)은 광해군 8년(1616)에 세운 경희궁의 정문이다. 그러나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건립하고자 궁내의 많은 전각을 헐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흥화문은 1932년 남산 자락에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할 때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해방후 박문사는 폐사되고 흥화문은 영빈관(迎賓館) 및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계획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왔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을 갖춘 건물이다.
흥화문 천장에 붙어있는 연꽃무늬장식이다. 연꽃은 활짝 핀 모습이며 가운데 둥근 씨방을 중심으로 여러 겹의 꽃잎으로 구성하여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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