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문화포털

화면크기
100%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분청사기인화무늬군위인부수새김대접(7357) 크게보기 분청사기인화무늬군위인부수새김대접(7357) 크게보기
분청사기인화무늬군위인부수새김대접(7357)
문양설명
국화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연판문은 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을 도안화시켜 연속무늬를 구성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도자기의 어깨부분이나 굽 혹은 저부의 둘레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연꽃이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등 그릇의 둘레에 연판문양이 들어감으로써 그 물건의 비범성과 청정함을 나타내어 일반의 비속한 존재와 구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판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삼국 시대에 불교미술이 시작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문양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다. 범종을 비롯한 각종 불구류(佛具類)와 사리 장엄구, 향로, 동경 등에서 다양한 연판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와서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진다.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淨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또 연꽃은 환생을 상징한다. 우리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심청은 인당수에 빠졌다가 큰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자유연애와 아름다운 것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동양에서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에서 연유하여 남녀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화궁(花宮) 속으로 날아다니며 달콤한 꿀을 빨아먹으면서 즐거움을 만끽한 데서 나비는 즐거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꽃에 날아드는 나비의 모습은 부부간의 화합과 자손의 번성의 염원하는 여인의 마음을 나타낸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바르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사기이다. 분청사기가 번조된 시기는 대략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해당되며 조선전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리 도공들의 납치와 요지의 파괴로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청사기는 백토를 입히고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덤벙기법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분청 사기장들은 일일이 새기는 상감법 대신에 문양이 새겨진 도장을 꾹꾹 눌러 손쉽게 상감의 효과를 거두는 인화문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 대접에도 인화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이것은 분청사기 대접으로 인화기법을 사용하여 장식하였다. 내면와 외면의 구연부에 덩굴문대를 돌렸다. 내측면에는 빗방울무늬를 빈틈없이 인화하고 바닥에는 연판문과 국화문을 백상감하고 그 사이에 나비문을 인화하였다. 외면의 구연부에는 덩굴문대를 돌리고 아래부분에는 연판문을 백상감하였다. 그 사이에는 빗방울무늬를 인화하였다. 외면의 윗부분에는 각각 “군(軍), 위(威), 인(仁), 부(付), 수(壽)” 명문이 적혀있다. 덩굴은 한자 표기로 당초(唐草)라 표기하는데, 당초는 ‘당(唐)나라 풍의 덩굴무늬’를 가리킨다. 당초라고 하는 용어는 원래 겨우살이덩굴(인동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동초(忍冬草)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지의 산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우살이 덩굴식물이다. 이 덩굴은 겨울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덩굴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뻗어나가기 때문에 장수와 대(代)를 이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자기에는 청화(靑畵) 또는 철화(鐵畵), 진사(辰砂), 상감(象嵌) 등 시문기법으로 묘사한 회화풍의 덩굴문이 성행되어 소박한 민화적 장식 의장 문양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덩굴문은 그 상징성보다는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회화적인 구성으로서의 발전가능성으로 분청사기에서 가장 많이 시문되었다. 빗방울문(雨點文)은 마치 눈·비가 내리는 형상에 붙여진 명칭으로, 비스듬히 줄을 이어 짧은 점선이 연결 집합된 상태의 무늬를 말한다. 선사시대 토기에서 비롯되는 원시문양의 일종으로, 빗방울문이 시문된 토기는 서기전 300년대에 우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빗방울문은 고려 상감청자에서 나타나며, 분청사기 인화문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분청사기의 무수한 점에 깔린 사상은 주역의 「태극론」에서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다. “점은 찍어가다 보면 결국 그 점은 되돌아오게 되고, 태어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또 태어나는 그러한 것이 삼라만상이고, 점이 모이면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또 흩어지면 공기가 되기도 한다.” 분청사기의 빗방울문에는 우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