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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부부 가수

작품명
맹인 부부 가수
저자
정호승(鄭浩承)
구분
1970년대
저자
정호승(鄭浩承, 1950~)1950년 1월 3일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슬픔이 기쁨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두운 시대를 사는 슬픔과 의지를 노래한 <슬픔이 기쁨에게>(1979),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슬픔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담은 <서울의 예수>(1982),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 다스림의 내면적 고투를 드러낸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고독한 인간의 숙명과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등을 간행하였다. 정호승은 정제된 서정으로 비극적 현실 세계에 대한 자각 및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소설집으로 ‘나’의 존재의미와 가치 및 진실한 사랑에 대해 탐구한 <연인>(1998), <항아리>(1999) 등이 있다. 정호승의 시에서 ‘슬픔은 모든 시적 사색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슬픔의 내용을 확장하고 깊게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적 여정(旅程)은 이 세상의 어둡고 슬픈 곳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길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슬픔’은 흔히 말해지듯 비애나 한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정호승의 시에 나타난 ‘슬픔’은 개인적이고 시대적인 고통을 시인의 삶 속에 육화(肉化)시킨 언어이다. 그는 ‘슬픔’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 전쟁과 분단과 독재로 이어져 온 우리 현대사의 상처들을 끌어안는다. (……) 정호승은 다채로운 변화보다는 깊이 있는 내면 탐색을 선호하는 시인이다.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정호승의 시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상징과 이미지, 어조를 모두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슬픔으로 가는 길>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시인은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서 있다. 그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세상 속으로 길을 떠난다. ‘슬픔’과 ‘기다림’, ‘아름다움’은 정호승의 시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이다.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되는 때이다.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시인의 밝은 눈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슬픔’과 ‘기다림’, ‘아름다움’이 저녁 들길의 풍경과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고즈넉하고 쓸쓸한 울림은 정호승의 시가 지닌 독특한 매력이다.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1982)에서 정호승은 번영된 조국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슬픔’을 찾아 나서고 있다. 시인은 서대문구치소와 남대문직업안내소, 산동네, 용산역 앞, 영등포시장 뒷골목을 서성거리며 지게꾼, 걸인, 미혼모와 버려진 아이들, 껌팔이와 구두닦이 소년들의 고단한 삶을 만난다. 이들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의 중심에서 버림받고 밀려난 밑바닥 인생들이다. 이들이 체험하는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이 두 번째 시집의 주제이다. 여기서 ‘서울’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비정함과 인간상실로 치닫는 산업화된 도시의 삶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된다. <서울의 예수>에서 꿈과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린 서울의 밤거리를 방황하며, 슬퍼하고 절망하는 예수는 시인 자신의 모습이다. 서울에 살기 위하여 날마다 이 세상의 칼끝에 찔리고 ‘모래를 씹으며 잠이 드는’ 사람들 속에서 예수는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를 기억한다. 예수의 방황은 새벽을 기다리며 홀로 깨어 있는 사람, 자신과 함께 고통의 술잔을 나눌 사람을 찾아 나서는 순례의 길이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들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는 불행하다’는 예수의 탄식은 사랑과 연민을 잃어가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경고이다. 세 번째 시집 <새벽편지>(1987)에서 정호승은 당시의 시대적 현실에보다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반폭력의 시대였던 1980년대는 그의 시에서 어둡고 절망적인 죽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슬픔’은 침묵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로 칼날을 세운다. 또한 이 무렵의 시에는 ‘별’과 ‘꽃’, ‘새’와 ‘새벽’, ‘푸른 하늘’과 같은 상승적인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하여 현실의 어둠과 억압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을 보여준다. ‘자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나의 별에는/ 피가 묻어 있다’(<새벽편지>)는 구절에서 현실의 어둠에 대항하는 시인의 고통과 갈망을 읽을 수 있다. 현실의 억압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호소하면서도 정호승의 시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가 지닌 특유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쓸쓸한 여운으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는 ‘슬픔’의 순례자’, 신선옥,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6(……) 그는 스스로 자각하며, 우리들을 일깨우며, 또 일러준다. (……) 그는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유를 위해 울지도 피 흘리지도 않은 자들은 동족이 아니다’라고 일깨우며, ‘우리들의 삶을 위하여 너는 이제 너 홀로 통곡하지 말아라’라고 일러준다. 그의 이러한 자각, 일깨움, 일러줌은 그러나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그 머무름을 딛고 일어서서 우리 서로 속속들이 사랑하자는 열망으로 나타난다. (……) 그리하여 그는 이 사랑의 열망을 완성하기 위하여 과감히 ‘사랑할 수 없는 것’,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자까지 선언한다. (……) 그렇다. 정호승은 슬픔의 시인이자 기다림의 시인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사람이다. 그것도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다. 눈사람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의 행동에서 그의 슬픔의 원천이 있다. 그가 기다리는 눈사람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눈사람은 바로 우리들을 모든 길에서 해방시켜줄 자인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이제 사랑의 획득을 위하여 사랑의 포기를 강요하는 그 어떤 것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어느 한곳에 우리들의 삶을 묻어둘 수는 없다. 삶의 진정한 동반자인 눈사람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기다림은 한 개인의 기다림이 아니라 ‘세상 모든 기다림’의 것. 우리들은 기다림을 위하여 행동의 노래를 불러야 하며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으로 어디로든 떠나야만 한다. (……) ‘발문: 눈사람을 기다리는 시인’, 박해석,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이 어렵고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연히 나의 시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시대의 한 사람 시인으로서 얼마만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인지, 깊은 밤 홀로 추위에 떨며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후기’,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나는 스스로 시를 버린 적이 세 번이나 있다. 1982년에 시집 <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1987년 <새벽편지>가 나올 때까지 오 년 동안, 1990년에 <별들은 따뜻하다>가 나오고 19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올 때까지 칠 년 동안, 그리고 19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가 나오고 지금까지 삼 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시를 버리고 살아왔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등단한 지 삼십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도합 십오 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아왔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둔 아버지처럼,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이하고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제는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다. 이제 느린 것은 두렵지 않으나 멈추어 서는 것은 두렵다. (……) 어린 시절 나는 시를 내 현실적 삶의 한 방편이나 도구로 활용했다. 시의 본질적 가치를 중요시하기보다 시가 왜 나의 현실에 필요한가 하는 데에 먼저 시의 가치와 효용을 두었다. 고삼 때는 문예장학생을 모집하는 유일한 대학인 경희대학교에 무시험 합격하기 위하여 시를 썼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문단에 등단해야만 졸업 때까지 문예 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어서, 그 장학금을 받기 위해 또 열심히 시를 썼다. 이렇게 나는 시를 무기 삼아 현실적 난관을 타개해왔고, 그때마다 시는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는 나로 하여금 시대와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밝은 눈을 지니게 해주었다. 내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의 말석에 엉덩이를 디밀었을 때는 ‘시월 유신’이 선포된 지 불과 석 달 뒤였으며, 이후 1979년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나의 이십대는 줄곧 유신시대와 그 시기를 같이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그 겁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약한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을 죽였으며, 긴급조치가 선포될 때마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하는 그 거대한 테러 앞에 쥐새끼처럼 벌벌 떨었다. 그 때 나는 칠십 년대의 젊은 시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용기 있는 자는 행동하였으며, 나처럼 용기 없는 자는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스스로 비굴하게 느껴졌다. 한두 해도 아니고 칠십 년대를 온통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김지하 시인을 감옥 밖에서 지켜 보아야만 했던 나의 심정은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한 것이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칠십 년대의 모든 시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지금도 김지하 시인에게 감사와 부채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도 그때 시는 섬약하고 용기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그나마 시를 쓰게 해주었다. 비록 목소리는 작고 여리고 부드럽고 잔잔하나, 그래도 그러한 목소리로 한 시대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만일 시가 없었더라면 유신시대를 사는 동안, 나는 더욱 부끄럽고 비참했을 것이다. 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군사독재시대의 한 모퉁이에서 숨을 할딱거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시인들, 김창완 김명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반시>를 결성, 소위 현실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들 수 있었던 것도 시가 내게 베푼 은혜 중의 하나다. “민중의 차원 속에 동화되지 못한 오만한 언어에 대하여, 시의 본질인 정신보다는 수단일 뿐인 언어세공에 대하여,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해 버린 관념적인 세계성에 대하여 부정의 입장에 서고자 한다”고 천명하던 ‘반시’의 창간사의 한 구절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이제 탕아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인 시의 가슴에 안기니 평화롭다. 시가 배불리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순수한 내 피와 살이 되어 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만은 자명하다. (……) 무엇보다도 내 그릇에 물이 넘치게 물을 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그릇이, 나라는 한 인간의 그릇이 간장 종지만큼 작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그 그릇에 시라는 간장을 조금 담아 남들이 밥 먹을 때 조금씩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시로서 무엇을 이룰 생각은 버릴 것이다. 산다는 일이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듯, 시 또한 현실적으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흙탕물과 질퍽한 연못이 떠 있는 아름다운 수련과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수련은 더러운 오물들이 떠다니고 온갖 쓰레기들이 가라앉아 있는 진흙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자신을 멋진 꽃으로 만들어 줄 요소들만을 뽑아 올려 백색과 홍색의 꽃을 피운다. 주위의 열악한 환경에 아랑곳없는,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꽃으로 만들어 줄 요소들만 뽑아 올리는 수련의 뿌리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싶다. 그런 뿌리의 마음이 되어야만 현재의 악에서 미래의 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하되 사랑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시를 열심히 쓰되 시에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몇 차례나 시를 버리는 ‘탕아’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새는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든다. 나는 시를 쓰는 물새가 되어 물에 뛰어들다가 그만 물에 젖어버려도 좋다.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드는 물새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가. 그래도 물새는 물새가 아닌가. ‘시의 수련이 되고 싶다’, 정호승,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행복한 시인의 사회: 80년대 우리 시 읽기>, 이화현대시연구회, 소명출판, 2004 <새로 쓰는 한국 시인론: 한국시의 기억과 희망을 찾아서>, 상허학회, 백년글사랑, 2003 <문학체험과 감상>, 김영철, 이명희, 여지선, 건국대학교출판부, 2002 <정호승 연구>, 조용훈, 계명문화사, 1996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창작과비평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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