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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1

작품명
동두천 1
저자
김명인(金明仁)
구분
1970년대
저자
김명인(金明仁, 1946~) 1946년 9월 2일 경북 울진 출생. 후포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국 브리검영대 객원교수, 러시아 극동주립대 동방학부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초기 작품세계는 약소 민족의 설움이 기본 모티브가 되고 있으며 비애와 비극의 정서가 고도의 감수성으로 용해되어 현실극복 의지와 열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는 추억을 통해 현재 자기 속에 도사린 타자를 발견하고 그 타자를 통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간다. 따라서 체험의 추적이라는 시작 방법은 체험을 닫아두는 심정의 축소가 아니라 체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체험의 확대로 작용한다. 시집으로 <동두천>(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길의 침묵> 등이 있으며, 평론집 <문학이란 무엇인가>(1992)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종욱·김명수 등과 함께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1992년 김달진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리뷰
(……) 어린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확인한다고 하는 것은 이 시인의 일련의 작품인 <동두천>을 읽으면 분명해진다. 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 <동두천 1>에서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고 하는 것처럼 눈이 녹는 것을 눈물이 녹는 것으로, 그리하여 까만 저탄더미의 노출을 “캄캄한 어둠 속”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모든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되고 이 관계를 통해서 그 대상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차지하고 있는 무게를 잴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때문에 멎었다가 떠나는 기차를 보면서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 떠나 버린 아이들을 연상하게 된다. (……) ‘만남’과 ‘떠남’의 이러한 변주는 기차의 멎음과 떠남에서 그 동기를 찾게 된 <동두천>의 중요한 테마가 된다. 그것은 미군들이 왔다가 떠남으로써 새로운 만남과 떠남이 이루어지고, 이 만남과 떠남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가 탄생하고, 또 미군의 떠남과 함께 그 아이들의 떠남도 이루어지는 관계로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이러한 떠남들이 단순한 이별을 의미한다면 거기에서 연유하는 슬픔들이란 그처럼 괴로운 것일 수도 없을 것이고 그처럼 보편적인 의미를 띨 수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떠남은 말하자면 그들의 고통스런 삶의 연장으로서의 떠남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고통스런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태어나서 죄가 된 고아들과” “보산리 포주집 아들들이/ 의자를 던지며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학급의 담임이 직면한 현실인 것이다. 전쟁의 유물로서 자기네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태어난 고아들은 고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의 씨앗으로 취급당하고 있고, 포주집 아이들은 그들의 생활 대문에 포악해진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담임인 나는 언제나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들이 가르치던 여학생들은 더러 몸을 버려 학교를/ 그만두었고/ 소문이 나자 남학생들도 덩달아 퇴학을 맞아/ 지원병이 되어 군대에 갔지만”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은 현실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시인은 그때마다 “막막한 어둠”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막막한 어둠”의 의미는, 시인이 살고 있는 고아원이라는 세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절실하게 파악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동두천>이란 제목이 붙은 시들에서의 ‘아메리카’의 되풀이인 것이다. 가령 “함께 울음이 되어 넘기던 책장이여 꿈꾸던/ 아메리카여”(<동두천 2>)라든가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동두천 4>)라든가 “아버지, 밤이면 아메리카를 꿈꿔도 될까요?”(<동두천 9>)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가난과 전쟁이 휩쓸고 있는 한국 땅이면서도 이들의 의식의 한 쪽에는 ‘아메리카’가 끝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메리카와 한국의 동시적 체험은 그 체험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굴절된 비극성 때문에 이들로 하여금 어떠한 정확한 인식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돈 많고 힘이 센 나라라는 것 때문에 아메리카가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현재 그들의 태어남 자체를 죄로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은 아메리카인 것이다. (……) <동두천>에 나타난 아메리카는 말하자면 그 구질구질한 동두천을 떠났을 때 향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동두천에서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한 요소인 것이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동두천에서의 살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있고, 혼혈아들의 피부에서 자기의 정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두천의 선생으로 나오는 ‘나’는 고아원의 어린이들에 대해서 “누가 누구를 벌 줄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우리들이 더 미워해야 할 잘못과/ 스스로 뉘우침 없는 내 자신과/ 커다란 잘못에는 숫제 눈을 감으면서/ 처벌받지 않아도 될 작은 잘못에만/ 무섭도록 단호해지는 우리들”이라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부끄러움은 이 시인의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으로서 자신이 “가르치지 못한 남학생”과 “아무 것도 더 가르칠 것 없던 여학생”을 앞에 두고 깊은 침묵의 상태에 빠지거나 혹은 싸운 학생의 뺨을 때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것은 바로 그 학생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확인하는 자의 절망과 증오와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이처럼 한데 엉클어져 삶으로서 이루어진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주는, 아니 지탱해주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존의 한 양상이지 제도화된 관계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함께 울고 웃고 미워하고 벌 주고 증오하다가도 헤어질 때에는 “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시인이 이 “저주”의 땅과 삶을 사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시집 도처에서 그러한 고아들이나, 그 고아들을 데리고 왔던 누나들이나, 함께 그들을 가르치며 싸웠던 동료들의 떠남을 아쉬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떠남이 그들의 삶에 어떤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메리카가 그들의 새로운 삶의 낙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떠나온 뒤 몇 년 만에 광화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뵈는 그의 손을 얼결에 맞잡으면서/ 오히려 당황해져서 나는/ 황급히 돌아서 버렸지만”(<동두천 5>) 그러나 동두천이 아닌 광화문에서 본 ‘그’의 삶은 옛날의 그것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삶이다. 그리고 그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직업이 선생이라는 사실과 관련 아래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선생님, 그가 부르던 이 말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선생님, 이 말이 동두천 보산리/ 우리들이 함께 침을 뱉고 돌아섰던/ 그 개울을 번져 흐르던 더러운 물빛보다 더욱/ 부끄러웠다”고 하는 시인의 고백은 동두천과 서울의 삶이 하나로 겹쳐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며 동시에 동두천에서나 서울에서나 ‘선생’이라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자각인 것이다. (……) “이 황량하고 살기 힘겨운 시대에 시를 쓰면서, 삶과 사물에게 나는 얼마만큼의 절실한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움뿐이다”라고 하는 이 시인의 자서는 그러므로 김명인의 시에 있어서 가장 정확한 시의 탐구 자세인 것이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사랑이 현실의 여러 대상들을 부끄러움으로 묶을 수밖에 없는 자기 확인이면서 동시에 시의 확인인 것이다. 어떤 대상에 있어서나 두 가지 이상의 요소들의 구성을 찾고 있는 김명인의 시적 세계는 따라서 삶과 죽음이라는 영원한 보편적 주제를 탐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내보이는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어는 언어 자체의 진공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의미 축소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극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극대화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물들을 시인과의 관계로서 파악하게 된다. 바로 그 점에서 김명인의 시의 강렬한 힘이 솟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식과 탐구의 시학’, 김치수, <동두천>, 문학과지성사, 1979 <동두천1> - 시의 제목을 마련해주고 있는 동두천은 우리에게 일종의 상처와도 같은 도시이다.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에 간여(干與)했던 한 외국 군대가 거기 주둔해 있고, 그 군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는 한 약소민족의 슬픔을 제 운명으로 안 고 불행한 아이들이 태어난다. 시인은 그 도시에서, 떠나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운명이 갈라지는 곳인 기차역에서, 석탄더미에 떨어져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눈은 희고 깨끗하지만 떨어져 녹는 순간 그 석탄과 구분되지 않는 진창의 검은 물이 되어 흐른다. 미군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게 될 아이들의 운명이 또한 그와 같다. 그들이 낯선 나라 험한 세상에서 어린 날의 순결함을 그대로 간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첩첩 수렁 너머’로 떠나 보내야 하는 이 땅이 또한 불행한 진창이다. ‘더러운 그리움이여’- 여기서 ‘그리움’이란 좀더 깨끗하고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말할 터인데, 그것이 더럽다는 것은 그 희망이 우리를 늘 배반해 왔다는 뜻이다. ‘눈’이었던 우리는 이 그리움에 속아 진흙탕의 눈물이 된 다음에도 또 어떤 욕망에 밀려, 현실을 ‘신기루’처럼 여기며,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 ‘눈물’은 시인에게서 눈이 녹은 물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눈물이다. 젊은 시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가 순결하기 때문인데, 이 눈물도 눈 녹은 물처럼,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에서 이제 벗어날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의 순결한 시가 맞이하게 될 운명이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는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이 현실의 진창을 다 건너야 순결한 새벽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결한 시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끌어안는 그 어두움은 곧 새벽의 새벽이기도 하다. (……) ‘감정의 압축과 확산된 그리움의 시적 깊이’, 황현산,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6
작가의 말
문학이야말로 삶의 심연을 밝혀 주는 등불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때, 열정은 신비한 것이며, 시는 미명을 비추는 불빛처럼 환상을 현재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소박한 낭만주의자의 꿈길인 양 열병으로 시를 앓던 젊은 날은 안팎으로 삶의 남루를 견뎌야 했던 고단한 시절이었다. 시에 기대어 사는 일로 나는 남들과 함께 위무를 받고 싶었다. (……) 내 초년의 시들은 실존의 참담함과 그 조건들의 불가해성에 닿아 가려는 성찰의 한 방편으로 씌어졌었다. 첫 시집 <동두천>에는 내 고향 영동의 자연 속으로 부유(浮游)했던 성장기의 쓰라림과 내가 경험한 시대의 간난이 파편처럼 아프게 각인되어 있다. 상한 뿌리들을 어루만져 스스로 위로받으려 애쓴 내 초년의 시세계는 <동두천> 연작과 <영동행각>을 비롯한 여러 시편들로 구체화되었다. 이들 시편에는 갇힘과 탈출이라는, 어쩔 수 없이 내 성숙의 조건이 되었던 갈등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첫 시집 <동두천>을 묶고 난 뒤로 오랜 동안 시를 쓸 수 없었다. 첫 시집의 주제이기도 했던, 펼쳐야 할 사랑과 접히는 마음 사이의 간격이 너무 아득해서 차라리 시를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영영 시를 쓸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는 강박을 겨우 떨치고 십여 년 만에 급조한 두 번째 시집 <머나먼 스와니>를 상재하고서, 나는 쫓기듯 객원교수로 일 년간 미국생활을 체험했다. 서부 사막 지역에서의 그 칩거는 내 속을 덧나게 한 상처가 무엇인지, 그것들을 발견하고 다스리려 발버둥쳤던 또 다른 주제를 구체화시켰다. 상처들을 수락하고 받아들였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마음의 아득한 행로였다. 그 길은 수많은 갈등이나 그리움과 동고를 이루면서 내 속의 풍경으로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시쓰기는 길 찾기의 한 모습이었다. 첫 시집 <동두천>에서부터 작년에 출간된 일곱 번째 시집인 <바다의 아코디언>에 이르기까지 내 순례의 도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다만 나이가 더해질수록 삶의 표면으로부터 점차 마음속을 더듬는 내면화의 길을 따라왔을 뿐이다. 나의 시는 결국 실존의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의 목측(目測)으로 등고선을 긋고, 거기에 삶의 세목들을 새겨 넣은 신산스러운 자기 확인의 지형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지도는 지금도 그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삶 속으로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적막이나 쓸쓸함 따위가 무엇보다도 신의 큰 자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타고난 외로움에 기댄 채 격절을 자초함으로써 시를 내 고립 가까이 매어 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고립에 기대는 것은 형체뿐인 시에 닿는 일이어서 삶의 구체와 거칠게 접촉하는 과정에서 솟아오르는 생생한 감동을 기록하기에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의 흔적만을 전부라고 믿는 주관적인 인상에서는 벗어나고 싶었었다. 진정한 시의 힘이란 사물에 삼투하려는 심상의 강렬한 조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라 믿어졌다. 그리하여 어떤 신기를 추구하기보다 체험의 직접성과 구체성에 직접 가 닿는 정서들을 모색하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물의 세부를 읽어내려고 노력했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붙잡아 구체로 열어젖히려고 애썼다. 감동은 현실의 대지에서 자라고, 그것을 경작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 나는 아직도 사람 사는 일과 시를 분리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들 삶의 세계를 진정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시의 목표라면 시는 지금보다 더 확연하게 시대의 중심을 파고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스무 해나 가까이 근무하던 이전의 직장으로부터 육 년 전 현재의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정은 세속적인 일로 번거로움을 겪기보다는 시로써 나를 확인해야겠다는 의욕이 더 컸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 사는 갈등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나는 내가 아니어도 될 불편으로부터 내 게으름을 방해받고 싶지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서늘하고 막막한 감동에 이끌려 스스로 시를 써보려고 결심했던 시점에서 벌써 서른도 더 멀리 흘러 왔다. 우연히 시를 만나 필연처럼 그 파문에 마음을 적신 뒤, 나는 맹목으로 거기에 투신했었다. 필생을 던져서라도 돌파하고 싶은 감동의 자리라면 누군들 그것을 쉽사리 회피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못 받는 다짐은 멈추는 지점이 어디든 거기까지 시와 함께 흘러가자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세상에 던져졌고, 시대를 살아왔다. 정말이지 시의 운명에 내가 의탁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숙명인 까닭에 힘들게 지고 갈 수밖에 없다. 불멸의 의미가 없을 이 지상에서는 우리 인생 또한 유한한 것들에 함께 포섭되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던가. ‘우연과 필연’, 김명인,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현대시인선 50>, 중앙일보사, 2006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동두천>, 김명인, 문학과지성사, 1979
관련사이트
김명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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