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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농악(南原農樂)

작품/자료명
남원농악(南原農樂)
전승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
지정여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4호
구분
민속악
개요
<남원농악>은 <호남좌도농악>에 속하며 전라남도 남동부를 대표하는 농악이다. 가락이 다채로우며 놀이동작이 세련되고 섬세하여 예술성이 매우 높다. 농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지에 흰 새털이나 종이를 오려 꾸며 돌리는 상모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마을의 공동작업을 하기 위한 조직)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 징, 장구, 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내용
'농악' 혹은 '풍물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나타난 여러 유랑예능인 집단 속에는 풍물을 장기로 삼는 집단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정형이 확립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근원은 훨씬 오래 전으로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각 지역에는 특유의 '풍물굿'이 있는데, 전라도 지역은 크게 <좌도굿>과 <우도굿>으로 나뉜다. 전라도 동북지역에 전승되는 <호남좌도농악>은 영기, 농기, 나발, 쇠납, 상쇠, 부쇠, 끝쇠, 수징, 부징, 수장구, 부장구, 끝장구, 수북, 부북, 수법고, 부법고, 종법고, 칠법고, 끝법고, 대포수, 창부, 조리중, 양반, 할미광대, 농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꽹과리쟁이와 징잽이는 바지저고리에 홍동지기를 입고 부들 부포상모를 썼으나 요즘은 홍동지기를 걸치지 않고 색띠만 맨다. 장구잽이, 북잽이, 법구잽이는 상쇠와 같은 옷을 입고 채상모를 쓴다. 장단을 살펴보면 굿거리(풍류굿), 삼채굿(자진모리), 휘모리, 채굿(일채~칠채), 질굿, 짝두름, 호호굿 등이 있다. <호남우도농악>과 <경상도농악>의 중간적인 성격을 띠어 생동감 넘치는 가락이 많다. <호남좌도농악>의 <판굿>은 채굿, 쌍방울진, 미지기, 잡색놀이, 영산, 소리굿, 호호굿, 돌굿, 수박치기, 등지기, 도둑잽이, 탈머리 등으로 구성된다. <우도굿>과 <경상농악>, <경기농악>의 특색을 고루 지녀 음악, 춤, 사위놀이가 완벽한 짜임새를 가진다. 이러한 <호남좌도농악>은 다시 무주, 진안, 장수 등의 <북동부굿>과 남원, 구례, 순창, 임실, 광양 등의 <남동부굿>으로 나뉜다. 상쇠 이하 징, 장고잽이까지는 부포를 단 부들상모를 쓰고, 소고잽이는 창호지를 길게 오려 단 채상모를 쓴다. 이 점이 쇠잽이 외에는 고깔을 쓰는 <우도굿>과 다르고, 전립을 잘 쓰지 않으려는 <필봉굿>과도 다르다. 진안, 무주 등 <북동부굿>과는 가락과 복색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점이 같은 <좌도굿>에 속하면서도 진안, 무주 등의 <북동부굿>이나 <필봉굿>과 다른 <남원굿>의 특징이다.
전승자 정보
<남원농악>의 유래는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남원농악의 보유자인 류명철(1942.4.25)의 조부였다는 류선장까지 확실하게 소급된다. 그 후 류명철의 아버지 류한준을 거쳐 그의 부쇠였던 강태문에게 전승되었다가 다시 류명철에게 전승되고 있다. 류명철은 1942년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풍물굿을 전수해온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능을 수련했다.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6세인 1958년 남원농악 상쇠 강태문에게 사사받으면서부터이다. 이후 1960년에는 장구의 명인 최상근에게 장구까지 사사받아 농악판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후 1969년부터 1982년까지 14년 동안 구례농고와 전주농고, 서울 김병섭국악원 강사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는 순창국악원 강사를 역임하고 1997년에는 좌도 남원농악 판굿발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좌도남원굿전수관을 세워 전수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1959년 남원춘향제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1960년 최상근 일행과 전국순회공연을 떠나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62년 전국민속경연대회 1위 입상과 1975년 제2회 전북농악경연대회 개인상 수상, 1978년 제4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농악부문 우승이라는 화려한 수상경력도 갖고 있다. 류명철의 가락은 다양하고 잔가락과 수식이 많으며 매우 세련되고 여성적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그리고 윗놀음 예능이 상쇠놀음에 집중돼 고도로 발달되어 있고 각종 개인놀음에도 발달된 <좌도풍물굿>답게 다양한 놀이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앞치배들이 벌이는 ‘앞굿’과 뒷치배나 잡색들이 벌이는 ‘뒷굿’이 조화롭게 발달되어 있다. 류명철만이 갖고 있는 <좌도농악>의 특징은 먼저 쇠잽이만 상모를 쓰고 나머지 앞치배들은 고깔을 쓴다. 그리고 가락면에 있어서는 하나의 굿가락을 내면 반드시 빠른 두마치가락으로 맺으며, 그 굿 중에 한 가락을 다시 내어 반복해서 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굿가락을 내어 치고 맺을 때까지 배열이 <북동부굿>보다 더 길고 복잡하다. 류명철의 가락은 독보적이다. <좌도남서부풍물굿>으로 대변되는 그의 가락은 유한준, 기창수, 강태문 등의 명인에 의해 이어져왔으나 이들이 타계한 후에는 주로 남원의 류명철, 임실의 양순용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1996년 양순용이 사망함으로 현재에는 류명철풍물패와 양순용의 아들 양진성풍물패에 의해 그 명맥이 새롭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류명철의 가락은 그 계보와 전통이 뚜렷한 굿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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