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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SEOUL RAIL_동대문 운동장 편

[대본]지원PD: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한국문화정보원에서 제 20기 문화PD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원이라고 합니다.(화면_이번 영상은 어떤 영상인가요?) 지원PD: 아 이번 영상은 제 영상을 시작으로 저를 포함한 5명의 문화PD들이 서울의 숨겨진 곳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제작된 시리즈물 입니다.우리에게 친숙한 지하철 그리고 지하철 역 주변 장 소의 숨어있는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5명의 PD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제작을 해서 시리즈로 대중 분들께 보여드릴 생각입니다.(화면_지원PD님은 어떤 곳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계획인가요?) 지원PD: 제 주변을 보신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지 모르지만,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공간은 바로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입니다.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은 사실 여러분께 이미 패션과 디자인의 공간 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저는 오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속 여러분이 몰랐을 하나의 정보를 들고 왔습니 다.지원PD: 여러분이 정말 자주 지나치는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이곳에 원래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다는 것 을 알고 계셨나요?지금은 다양한 건물과 새롭게 건축된 조형물들에 의해 한 페이지가 돼버렸지만, 사실 이 곳은 1925년 경성 운동장으로 문을 열어무려 82년 동안 서울 운동장을 거쳐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이 름으로 2007년 철거가 되기 전 까지 자리를 지켜왔습니다.지원PD: 1925년 경성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탄생한 동대문 운동장은 최초의 근대식 종합 운동장으 로 개장했으며처음에는 체육 증진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 정책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동 대문 운동장이라는 이름이 강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동대문 운동장 또한 일제 강점기 시대 에 식민지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곳입니다.지원PD: 이후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 운동장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서울 운동장은 경성 운동장 시대와 달리 다양한 스포츠 경기, 기념식, 문화 행사 등이 개최됐던 하나의 문화 복합 공간이었습니다.지원PD: 특히 저희가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손기정, 서정권, 백옥자, 최동원 차범근과 같 은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 스타들도 이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다고 합니다.지원PD: 1984년 서울 올림픽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서울 운동장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다시 이름이 변경 됩니다.하지만 이후 주변에 다른 운동장들이 건축되고 그곳에서 스포츠 행사가 많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동대문 운동장을 향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어들게 됐죠.지원PD: 그럼에도 1960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1973년 6월 23일 개최됐던 한,일 축구 정기전 개최, 1970년대 고교 야구처럼다양한 행사와 스포츠를 마주할 수 있었던 동대문 운동장은 지금은 한 페이지가 됐지만,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린 그 흔적을 보관하고 공 유하며 보존하고 있습니다.지원PD: 잠실 운동장, 상암 월드컵 경기장과 같이 다양한 경기장들이 서울 곳곳에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줄어들었던 동대문 운동장은2007년 철거되면서 사람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화면_그럼 이제는 동대문 운동장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나요?)지원PD: (장소 이동_ 조명탑 앞) 그렇지 않습니다. 제 옆에 보이는 조명탑이 보이시나요? 사실 제 영상에 는 PD님께서 주신 작은 미션이 하나 있었는데,그 미션이 뭐나면 과거 동대문 운동장에는 5개의 조명탑 이 있었다. 그 중 3개는 철거되고 현재 2개만 남아있는데,김지원 문화PD는 건축된 지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역사공원의 주변 조형물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조명탑의 사진을 찍어 와 라! 라는 미션이었습니다.지원PD: (조명탑 사진) 그리고 바로 이 조명탑이 철거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 입니다.미션을 수행해야 제가 리워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명탑이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전히 자리를 잘 지키며 멋지게 서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지원PD: 운동장의 빛을 밝히던 조명탑만 남아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흔적은 어쩌면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 질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건축물이 지어지고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동대문 운동장은 이제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으로 또 다르게 사람들에게 매력을 뽐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3 마무리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 내부) (화면_낯선 동대문의 모습 어떠셨나요?) 지원PD: 저는 스포츠를 좋아해서 경기장도 많이 다니는 편인데,처음에 동대문 운동장의 이미지를 봤을 땐, 정말 거짓말처럼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을 방문하고 흔적이 남아있는조명탑도 보게 되고 여러 가지 기념관 속 정보를 읽어보니 그 당시에도 저처럼 스포츠를 좋아했던 많은 서울 시민들에게 동대문 운동장이 깊은 의미로 다가왔을 거라 생각했습니다.(1차 마무리) (화면_미션 종이 상단에 포스트 잇을 제거해주세요!) 지원PD: (포스트잇을 제거하며) 아 이게 미션 리워드인가요!사실 저희가 미션을 수행하면 5명의 PD가 각 각 알파벳을 하나씩 얻게 되는데, 제가 얻은 알파벳은 (잠시 쉬고) S입니다.이게 무슨 단어가 될 지는 시 리즈 마지막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영상들도 기대를 많이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4 아웃트로 (지하철 사물함) 지원PD: 저는 오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 속 지금은 철거되고 없어진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동대문 운동장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자주 스쳐지나갔던 동대문의 낯선 모습,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까지.여러분들에게 동대문의 또 다른 역사에 대해서 작은 호기심을 불어넣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저는 20기 문화PD 김지원이었고이제 카메라를 또 다른 공간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실 다음 PD님께 넘겨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작
김지원
등록일
2022-11-30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삼국시대(1), 서울 zoom-in : 한성백제를 찾아서

[대본]단비: 정현! 왜 이렇게 늦었어??정현: 글쎄? 솔직히 말하면 지하철이 오늘따라 느렸지 뭐야범준: 야! 지하철이 느려?정현: 응! 그리고 거꾸로 탔어! 그리고 내렸는데, 잘못 내려서 다시 또 거꾸로 타고 또 거꾸로 타버렸어!범준: 야! 서울의 지하철은 완벽한 속도로 딱딱 맞춰온다고! 서울은 대중교통의 보고이자 미래야!유빈: 너네 셋이 싸우는거 이거 마치 뭐랄까~? 삼국시대같다랄까?태훈: 뭐? 진짜 삼국시대를 보여줘!?다같이: 태훈~~~태훈: 삼국시대! 출격완료!서울은 삼국시대, 각국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그리고 그 역사의 시작을 알린 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의 나라, 백제였습니다.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는 혼란스러운 고구려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이때 온조왕은 최측근인 오간과 마려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부아악(지금의 북한산)에 올랐습니다.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지금의 서울인 위례성이 건국을 하기에 가장 알맞다 하여 이곳을 도읍으로 결정하였습니다.나라의 이름을 십제라고 지었습니다.한편 비류는 온조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는 바닷가 근처인 미추홀에 따로 터를 잡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토지가 습하고 물에 소금기가 많아 자신이 잘못 된 선택을 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이후 십제에 자신의 백성들을 데리고 돌아왔는데, 이에 온조왕은 기뻐하며 이제야 나라가 완벽해졌다는 의미로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습니다.온조왕은 곧이어 말갈, 마한, 낙랑 등을 격파하며 백제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이때로부터 약 500년간의 시기를 우리는 한성백제시기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백제의 이야기를 생생한 체험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한성백제박물관입니다.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서울에서 발굴된 귀중한 삼국시대의 문화유산들이 잘 전시되어 있어,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써의 서울의 면모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삼국시대의 시작을 알린 서울에 방문하여,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같이: 태훈~단비: 대단해!정현: 엄청나!유빈: 뉴진스!다영: 어텐션!범준: 하이퍼 보~이!태훈: 하하하! 야 삼국시대! 맡겨 달라구! 그럼 다음은 누구지?정현: 나잖아!?

제작
김태훈
등록일
2022-12-02
  • 관광
  • 전남

[문화PD] 전라보물성 탐방기 : 전남 순천 낙안읍성

[대본]노랗게 황금빛이 완연해진 청명한 가을날이번에 가볼 여행지는?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한순천 낙안읍성동피디가 방문했을대는 낙안읍성 민속문화 축제 기간으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관광객들로 북적였다.각종 공연과 행사들이 시간대별로 진행되고 있었다.취타대 행렬이 이어진다., 해물파전에 막걸리는 국룰이다.먹었으니 본격적으로 구경하러 가자마치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한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음력정월 대보름마다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가야금병창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도 보인다.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전망좋은 곳에 올라보자.어느덧 낙안읍성에도 노을이 졌다.많이 정겹다.어제올랐던 전망좋은곳을 다시 가보기로 한다.상쾌한 공기와 좋은 기운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낙안읍성에는과거와 현재의 추억이 있었다.

제작
김동현
등록일
2022-12-03
  • 관광
  • 전북

[문화PD] 전라보물성 탐방기 : 전북 고창 모양성

[대본]제가 방문한 곳은 전북 고창에 있는 모양성입니다.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고창읍성 高敞邑城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번지 둘레 1,684m, 면적 189,764㎡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모양성 내부에는 관아를 비롯해 22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전란에 모두 소실되어 현재는 일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고창동헌(高敞東軒)과 내아(內衙)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청사와 살림집. 고창동헌 청사에는 백성과 가까이 지내며 고을을 평안히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平近當)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작청(作廳)실무를 담당하던 중간 관리인 아전(衙前)이 집무하는 청사 아이들과 전통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요.모양성에 오면 꼭 해봐야하는 것이 있답니다.성 내부에는 투호던지기 같은 전통놀이나 자연재료로 기념품을 만들어보는 다양한 놀이거리가 마련돼있었습니다.모양성에는 머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이고 한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세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는데요.이 성밟기 놀이는 돌을 추가해 체중을 가중시킴으로써 성을 더욱 다지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고창군에서는 이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매년 모양성제라는 축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습니다.고창모양성제조상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향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1973년부터 열리고 있다.모양성은 읍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지역민이 애용하는 휴식과 여가의 공간인데요. 특히 어두워진 밤의 모양성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모양성 야간경관조명 가동시간 : 하절기 오후 8시~11시, 동절기 일몰~오후 10시 개방시간대에 가동매년 성을 쌓아올린 조상들의 애국심을 기억하고답성놀이라는 향토 문화를 계승하면서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모양성마침 제가 방문한 날은 고창세계문화 어울림축제 라는 행사와 판소리 버스킹이 펼쳐지고 있었는데요.판소리 버스킹은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 안에서 펼쳐져 마치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전라보물성, 모양성을 취재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바로 민속과 풍습을 글이 아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몸으로 체험함으로써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누구라도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어 더욱 빛을 발하는 어울림.그것이 바로 모양성의 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작
도희진
등록일
2022-12-03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삼국시대(2), 서울 zoom-in : 아차산을 찾아서

[대본]- 태훈: 훗! 삼국시대 맡겨달라구! 그럼 다음은 누구지? - 정현 : 나잖아! 나는 그 다음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 고구려를 소개해줄게- 유빈 : 고구려? - 정현 : 응. 나는 서울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다양한 유적을 확인하기위해 아차산에 다녀왔어 - 태훈 : (이마를 탁 치며) 아차차!- 다같이 : 다같이 삼국시대 고구려로 줌 인 ~ 475년, 백제를 물리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는바로 고구려입니다.중국 전선에 집중하고, 후방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한강 유역을 점령한 고구려는점령 이후에도 이곳에 백성들을 이주시키기보다는소규모 보루들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체제를 채택하였습니다.때문에 고구려 병사들은 이곳, 보루에서 자급자족하며 주둔하였는데요.현재 사적으로 등록된 아차산 일대의 총 17개의 보루에서는고구려군이 자급자족하며 사용한 토기, 기와를 비롯하여무기, 농기구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는 551년 백제와 신라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기까지76년간 이곳, 한강 유역을 지배하였습니다.고대 삼국은 한강 유역을 두고 늘 각축전을 벌였는데요. 그 중, 아차산은 삼국이 가장 탐내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인터뷰]Q. 아차산이 삼국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A. 아차산은 한강 유역에 차지하고 있잖아요. 삼국에겐 한강이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삼국에겐 한강이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한강이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 편리하다,사람과 물자를 수송하기 편리하다 그리고 뱃길을 통해서 중국과 교류하기 편하다.. 그런 것도 있지만 북쪽에 있던 고구려가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면, 또 남쪽에 있던 백제와 신라가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면, 반드시 차지해야하는 것이 한강 유역이었고 그 중에서도 광진구 아차산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광진구 아차산이었습니다. 아차산이 높지는 않지만, 거기 올라가보면 두말할 필요 없이 사방이 너무 잘 보이거든요. 거기 올라가보면 두말할 필요 없이 사방이 너무 잘 보이거든요. 이곳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이곳에 군사 시설로써 아차산 보루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삼국도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제가 이곳(아차산성)을 만들어서 수리해서 사용했고, 또 고구려가 사용했고, 그 다음 신라가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51년,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상류를 확보한 신라는 이후 553년, 백제가 차지하였던 한강 하류까지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553년, 백제가 차지하였던 한강 하류까지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553년, 백제가 차지하였던 한강 하류까지 확보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강 유역은 삼국이 가장 욕심내던 땅이었으며, 가장 힘이 센 나라가 차지하는 땅이었습니다. 덕분에 서울에서는 삼국의 문화유적을 모두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웃트로] - 단비 : 와.. 서울이 삼국의 문화유적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니, 몰랐어!- 정현 : 그치 그치- 다영 : 서울이 다시 보이는걸!- 범준 : 그러면 다음 시대는 누구지?

제작
이정현
등록일
2022-12-02
  • 문화예술
  • 경기

[문화PD] 캠핑장에 생긴 미술관? 남한강물의 가을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여주 금은모래 작은미술관

남한강물의 가을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여주 금은모래 작은미술관에서 반짝반짝 여강과함께 개관전시회가 열린다. 이에 개관의도와 현 전시의도 및 방문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 소개합니다

제작
이선명
등록일
2023-12-11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조선시대, 서울 zoom-in : 한양도성을 찾아서

[대본]- 자 이제 고려시대 끝났고, 조선시대 누구지?- 나야!- 여전히 서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수도의 성곽 한양도성에 대해서 다뤄보려구. - 한양도성?- 재밌겠다!- 그럼 시작해볼게!- 다같이 조선시대로 줌 인!- 줌 인~!서울의 한 가운데서 한양도성을 만나다. 종로에 위치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1396년 조선의 수도 서울(한양)에 축조된 한양도성은상설전시실 1600여 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수도의 성곽이다.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일부 훼철되기도 했지만,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도시와 공존하는 문화유산이다.상설 전시실 1에서는 한양도성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축소 모형과 영상을 통해오늘날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는한양도성의 의미와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도성이란 왕이 거처하는 성으로서 여러 성 중에서 으뜸가는 성, 곧 모든 국가 기능이 집중된 수도를 의미한다. 순우리말 서울은 수도라는 뜻이니, 도성이 곧 서울이었다. 서울은 도성 안의 국가 중추 기능을 보존한 채 성벽을 넘어 현대 도시로 팽창했다. 때문에 현재의 한양도성은 국제도시 서울의 역사를 증언하는 문화유산이다. 상설 전시실 2에서는 조선의 한양 천도와 수도건설, 도성의 축조까지 상설전시실 2한양도성의 탄생과 더불어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뿐만 아니라 도성 안팎에서 살아온 조선시대 서울사람들의 모습을전시 관람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1392년에 개장된 조선왕조가 새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고려의 남경이었으나 성벽조차 없던 곳이었다. 조선왕조는 이 땅의 자연 형상을 따라 성벽을 쌓고 유교적 이상도시론에 맞추어 내부 공간을 채웠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중엽,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도성이 함락되고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성벽이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성문이 퇴락하면 고쳐 지으면서도성의 기본 구조는 조선왕조 500여 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한양도성박물관 바로 앞에는 한양도성 중 하나인 흥인지문이 있다. 흥인지문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문으로 조선 1396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박물관에서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다시 한양도성에 방문해보니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우리 모두 한양도성박물관과 한양도성에서 조선시대의 위대함을 느껴보는게 어떨까. 이밖에도 한양도성박물관 홈페이지에 방문하여온라인전시관온라인전시관을 통해 박물관의 지난 전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한양도성박물관Seoul City Wall Museum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283 서울 디자인지원센터02-724-0243홈페이지http://www.museum.seoul.kr/scwm/NR_index.do한양도성박물관Seoul City Wall Museum화~일요일, 공휴일09:18:00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한양도성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지 몰랐어!- 와~ 진짜, 그러게!- 나도 앞으로 진짜 자주 한양도성 한번 가봐야 되긴 하겠다. - 좋아!- 그럼 다음 시대는 누구지?- 나야!

제작
박다영
등록일
2022-12-02
  • 관광
  • 전남

[문화PD] 전라보물성 탐방기 : 전남 담양 금성산성

[대본]지방의 중심지이자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 오늘날 역사적, 문화적, 관광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데요.문화피디가 엄선한 전라 지역의 보물같은 성들을 소개합니다.전라남도 담양에 비밀처럼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 전북 순창과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 3대 산성 가 운데 하나로 꼽힙니다.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고 조선태종 때 개축해 1500년이 넘는 시간을 간직한 곳입니다. 그 오랜 시간 만큼이나, 금선산성에는 감동적인 설화와 이야기 가 가득합니다금성산성의 설화 1.연동사 금성산성 아래 위치한 사찰.연동사는 절벽에 제비 둥우리처럼 자리하고 있어 원래는 제비 연자를 썼는데이곳에서 죽은 가 족, 친지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향불 의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나,그때부터 연기 연자를 쓴 연동사 (煙洞寺)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2. 전우치와 황금솥, 황금대들보 이야기 연동사를 지나, 본격적으로 탐방을 하기에 앞서 전우치의 흔적 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전우치가 어릴적 이곳 동굴 암자에 들 어가 공부를 하였는데, 스님이 만드시던 술독이 비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범인은 여우.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전 우치에게 비결서를 한 권 건네주었다고 합니다.이 비결서로 도술을 익힌 전우치는 제비로 변하여 중국의 황실로 날아가서 는 가난한 고향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황금솥과 대들보를 훔쳤습니다.이윽고 도인에게 쫓기다 솥을 떨어뜨린 곳이 현재 의 담양댐이며 대들보를 떨어트린 곳은 수북면 황금리 벌판이 라고 합니다.이후 담양에서는 전우치의 소원대로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농부들은 행여 황금대들보가 나올까 열심히 경작 을 하게되었다고 하네요.3.김덕령과 금성산성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제법 험했는데요.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김덕령 장군은 금성산성의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험한 바위를 가볍게 올라다니며 무술훈련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로는, 김덕령 장군 이 추월산 상봉에서 월산면의 신랑봉으로 뛰어내리는 등 자유 자재로 뛰어다녔다고 하네요4. 사랑바위와 연리지 이야기 보국사로 가는 입구에 사랑바위가 보입니다.금성산성에는 큰 바위들이 많은 것과 함께 연리목이 유난히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입니다. 유난히 큰 전투가 많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스 러진 청춘들의 소망과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의 그리움이 산성 안에 수많은 연리지와 연리목으로 생겨났으리라 전합니다.5. 두꺼비바위 형형색색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숲을 감상하며 길을 오르는 사 이, 마치 두꺼비가 머리를 들고 앉은 모습의 바위가 보이는데 요.실제로 여름 장마철에는 발에 밟힐 정도로 많은 두꺼비가 나온다고 합니다.6.보국문 첫 입구, 보국문으로 향하는 길. 마치 코끼리의 등을 발고 서 있는 듯 넓적한 바위가 펼쳐져 있는데요.코끼리등바위라고 불리기도 하고 다른 이름으로는 빗자루바위라고 불린다고 합 니다.옛날 외남문 초병들이 쌓인 눈을 쓸고 뒤돌아보니 바위 가 빗자루로 쓸어내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에도 그 자국이 선명하다고 합니다.여기까지 올라오는 데에도 숨이 차는데요. 해발 503m 절벽과 계곡을 넘어 수백만 개에 달하는 바위와 돌덩어리들을 나르며 각봉우리들을 잇는 장장 8km에 달하는 성이 구축되는 과정 에서 가슴 아픈 사연도 담겨 있습니다.성벽을 쌓는 일은 임란 에서 정유재란까지 오랜 전쟁기간에도 계속되었습니다.어느 날 나이 어린 두 형제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성을 쌓아 올리 는 데 동원되었는데 어린형제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노역이었 으나 온 힘을 다했다고 합니다.그렇게 마침내 성이 완성되던 날 기력이 쇠한 형제는 그만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고 이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 곳에는 형제암이 있다고 합니다.7.노적봉이야기 마지막 코스인 노적봉으로 가봅니다. 이 봉우리가 노적봉으로 불리는 것은1597년 정유재란 당시 금성산성을 수비하는 군 졸들이 노적봉에 있는 바위를 수백 장의 빈 가마니로 아래로부 터 위까지 돌려가며 쌓아 놓고 속임수를 써서 왜적을 물리친 데서 연유한다고 합니다.이렇게 수백 섬에 달하는 곡식을 산 중턱에 야적한 것으로 위장을 하자, 왜군은 성 안에는 더 많은 군량미가 있을것이라 믿고 철수했다고 합니다.8.금성산성과 녹두장군 전봉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녹두장군 전봉준의 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자 이곳, 금성산성으로 후퇴했다 고 합니다.격렬하게 저항하던 농민군과 관군의 혈전이 벌어져 수많은 인명손실이 있었고 산성의 각종 시설이 불타 지금은 동 서남북문의 터만 남게 되었습니다.9.호국 오늘 제가 전라보물성 금성산성에서 발견한 보물은 호국입니 다.험준한 산봉우리를 연결해 만든 이 천연요새는 나라가 위 기에 빠질 때마다 의병활동의 거점이 되었고 동학농민운동의 격전지로 이어졌습니다.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 내 가족과 이웃이 평화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10.과거와 현재 금성산성은 구불구불 7,6키로가 새끼를 벤 암룡의 모습으로 담양댐은 수룡의 형국이고, 금성산성은 육룡이라고 합니다.추 월산은 호랑이 형국으로 옛날에는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형국 이어서 이곳에서 전투가 많이 일어났는데,지금은 담양댐이 들 어서며 수룡과 함께 즐거이 노는 용호상조의 형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 근처에는 오토캠핑장이 다수 조성되어 있으 며가을힐링 여행지로 지역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제작
김양지
등록일
2022-12-03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SEOUL RAIL_노량진 편

[대본]어? 이게 뭐지?SEOUL RAIL: 노량진편6.25전쟁 초기 서울이 함락되자 시흥지구전투사령부와 혼성사단이 한강 방어선을 6일간이나 지탱했다. 당시 사령부를 지휘한 사령관을 찾고 전사자 추모비 앞에서 사진을 찍어라.이게 뭐예요?미션지에 나와 있는 대로 수행하시면 됩니다.잘 수행하시면 저희가 알파벳을 지급해드릴 거구요.그걸로 특정 단어를 완성해 주시면 미션 성공입니다.이거 한강 방어선 전투에 관한 내용 같은데, 맞죠?미션을 여러분, 수행을 받았고요 미션지를 이렇게 받아서 우선 지금 노량진역을 벗어나서 한 번 미션을 수행하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가시죠!저는 지금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노량진역에 와 있습니다.노량진역 곳곳을 둘러보면서 전사자 추모비를 찾아보도록 할게요.노량진역은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곳은 당시 교통의 요충지였다고도 합니다.그리고 바로 여기, 노량진 역사 내에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요.지금 저랑 같이 한 번 확인해보러 가 보시죠!눈에 보이시는 이것이 바로 철도 시발지 기념비입니다.보시는 것처럼 양옆으로 기찻길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 일반인 분들은 입장하실 수가 없고, 저 문화PD는 오늘 안전 요원 분의 동행을 통해서 여러분들께 궁금하신 점을 다 알려드리려고 합니다.우리나라의 철도 역사가 시작된 것은 1897년 3월 22일입니다.당시 정부는 철도 부설권을 미국인 사업가 모어스에게 부여하는데요. 이는 훗날 일본에게 양도되어 1899년 9월 18일, 경인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어쩌면 조금 서글프다고 할 수도 있는 철도 시발지 기념비의 역사. 저 문화PD와 함께 꼭 기억해 주세요. 그럼 이제 다음 장소로 넘어가 볼까요?저는 드디어 사육신 공원에 도착을 했습니다.여기 도로 한복판인데 여기에 있을 수 있나? 이랬는데 정말 이렇게 도로 한복판인데 여기에 바로 공원이 있네요.여기에 과연 전사자 추모비가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가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가시죠!이렇게 사육신 공원을 오르다 보니 사육신 공원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저희가 올라오면서 봤던 글이 있는데요. 한 번 읽어 드릴게요.수양대군이 불러온 피바람.그러나 세조의 피바람 뒤에 우리는 의를 알았다.사육신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이것도 고난의 뜻이지 않을까.고난 뒤에는 배울 것이 있다.이 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시나요?바로 입구 벽면에 새겨진 함석헌 선생님의 글입니다.함석헌 선생님은 196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분이셨어요.이 곳에 전사자 추모비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조금 더 살펴보기 위해 공원 안쪽으로 한 번 이동을 해 볼까요?사육신의 묘는 다양한 역사 사건을 통해 오늘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1452년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합니다.이 때문에 단종을 섬기던 충신들은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분노하죠.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곳에 모셔진, 사육신이라고 불리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입니다.이들은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세조를 암살하기로 결정합니다.그 후 사육신을 포함한 여러 집현전 학자들이 거사를 치를 날만을 기다려요.그러나 거사에 참여한 김질과 그의 장인이 세조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일러바치며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갑니다.결국 세조는 사육신에게 거열형을 명했고 이들의 가족과 이들을 도왔던 이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했습니다.충성을 다 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사육신들의 절개.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그럼 저희는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한 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문화PD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이 곳은 과거 조선시대 한양과 삼남지방을 이어준 노들나루공원입니다.지금은 이렇게 보시는 것처럼 오색 단풍이 물들어 너무너무 예쁜 풍경을 가지고 있어요. 더 안쪽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노량진 나루터가 있던 이 곳에는요, 1910년 일제에 의해 노량진 정수장이 설치되어 이렇게 보시는 것처럼 표석 또한 찾아 볼 수 있습니다.이렇게 설치된 노량진 정수장은 2001년까지 서울 시민과 인천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지금은 오색 단풍이 물들어 예쁜 공원이 된 이 곳이 원래는 정수장이었다다고 하니 정말 신기하지 않으신가요?그럼 저는 이제 정말 추모비를 찾으러 한 번 가 볼게요.이거 조형물 맞죠. 뭔가 맞는 것 같은데? 태극기 꽂혀 있고 하는 거 보니까 이거 맞는 것 같은데. 안쪽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겠죠?아 맞네. 여기 한강 방어선 전투!방어선 전투라고 써져 있는 거 보이시나요, 여러분?여기에 제가 받은 미션의 힌트가 아마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제가 한 번 읽어 볼게요.아~ 여기에 여러분 사령관 김홍일 소장님이라고 나와 있어요. 보이시나요?저희 아까 미션지에 사령관이 누군지를 밝히라고 했는데 지금 사령관이 누군지를 찾았습니다. 바로 김홍일 소장님이에요.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저 사진 찍은 거 보셨죠 PD님?그리고 저는 이제 사령관님의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김홍일 소장님입니다! 맞죠?네, 이제 미션지 주세요. 리워드 주세요.이제 이 포스트잇을 떼면 되는 건가요?보상을 받기 위해서 포스트잇을 한 번 떼 보도록 하겠습니다.두구두구두구두구, 짠! U? U? U가 뭐예요?저는 U를 받았어요 여러분.다음 문화PD님께 카메라를 전송하러 다시 역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작
고은성
등록일
2022-11-30
  • 문화예술
  • 경기

[문정원X문예위] 긴장 속에서 피어난 예술의 꽃, 보구곶미술관

삼엄한 철책과 민간인 대피시설, 벙커가 자리 잡고 있는 접경지역. 접경지역 내 마땅한 문화예술 공간이 적어서 많은 시민이 아쉬워했는데요. 접경지역 내 대피시설을 작은 미술관으로 다시 탈바꿈시켜서 작은 문화예술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어떤 매력적인 점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2-11-30
  • 관광
  • 서울

[문화PD] SEOUL RAIL_하늘공원 편

[대본]안녕하세요 저는 문화PD로 활동하고 있는 서영원입니다. 오늘 월드컵경기장역에 온 이유는 바로 하늘공원을 소개하기 위해서 나왔는데요 앞서 소개한 PD님으로부터 미션도 전달받았거든요. 그래서 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하늘공원을 제대로 한 번 탐방하도록 하겠습니다.네 지금 하늘공원 입구에 도착을 했는데요! 6호선 월드컵경기장 역에서는 약 5~10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하늘공원은 약 90m 높이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맹꽁이 열차를 타고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자 먼저, 하늘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옆으로 가면, 이렇게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는데요! 아까 펼쳐본 미션지에서 포토존 찍기가 있었거든요.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메타세쿼이아 길이어서 사진을 찍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자연으로 가득한 느낌이어서 힐링이 되는 거 같아요. 하늘공원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계단을 오르면 되는데 계단이 많다고 해서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중간에 서울의 풍경도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금방 갑니다.네 드디어 하늘공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대문짝만 하게 하늘공원이라는 비석이 놓여 있고요. 벌써부터 도심을 벗어난 자연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여기 보시면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이용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길도 이렇게 잘 포장되어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아요. 길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면 이렇게 갈대밭이 나오는데 하늘공원이 서울의 갈대 명소거든요.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면서 갈대도 더욱 예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 거 같습니다.자 여기서 슬슬 미션을 수행해야겠죠? 오늘의 두 번째 미션인 하늘공원 갈대밭 인증샷입니다. 확실히 햇빛을 받으니까 갈대가 더욱 아름답게 나오는 거 같아요. 하늘공원이 지금은 이렇게 멋지고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지만 사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이곳 하늘공원이 있는 난지도는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후 5년간 9,200만 톤의 쓰레기가 매립된 곳으로 한때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이곳으로 가져왔고,쓰레기가 쌓이고 또 쌓여서 약 90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만들어졌고 메탄가스와 쓰레기 침출수로 환경이 악화되어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 이곳을 자연 생태계로 복원하기 위해 1999년 10월부터 사업에 들어가 2002년 5월 1일에 개원했다고 합니다.쓰레기를 매립하면서 나오는 침출수는 매립지 주변 지하에 차수벽을 설치하고 집수정 31개소를 설치하여 안전하게 처리 후 한강으로 방류한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서 나오는 매립가스는 이송관에 연결하여 보일러 연료로 사용하고 난방열로 만들어 인근 지역의 아파트와 월드컵경기장 등의 건물에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말 그대로 친환경적인 방법과 아이디어를 통해 서울의 대표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인데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공원이 과거에 쓰레기 산이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 발아래에 쓰레기가 묻혀있다니,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쓰레기 배출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오늘의 미션과는 별개로 공원을 돌면서 쓰레기가 보이면 같이 주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길을 따라서 공원의 가장자리 지점에 다다르면 이렇게 전망대가 여러 곳이 있는데요, 해가 지는 서쪽 방향을 볼 수도 있고 성산대교와 함께 서울 여의도를 조망할 수도 있어서 노을과 야경 맛집으로 딱인 곳입니다.오늘의 마지막 미션은 바로 전망대에서 사진 찍기입니다. 네 이렇게 오늘 도심 속 자연 공간인 하늘공원을 탐방해 봤는데요, 과거에 쓰레기 매립지였던 공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의 자연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습니다.저 서영원 PD의 영상은 여기까지였고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작
서영원
등록일
2022-11-30
  • 관광
  • 경기

[문화PD] 걸어서 설화 속으로' 3편 - 궁예의 눈물이 담긴 포천 산정호수와 명성산

[대본]산정호수 山井湖水,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농업 용수를 사용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저수지다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인 918년 후고구려, 궁예의 눈물이 모여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산정호수를 멀리서 비호하듯 버티고 선 산줄기는 명성산이다 이곳에도 궁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명성산의 옛 이름은 울음산이다 왕건의 군사들에게 쫓기던 궁예가 산으로 도망쳤는데 당시 궁예의 울음소리가 산을 울릴 정도로 커서 울음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彌勒佛임금이 된 궁예는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자기를 버린 신라 왕실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광기를 부리곤 했다지난날의 겸손함과 명석함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해서 신하들을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궁예는 이미 예전의 궁예가 아니었다 우울증과 광기가 심해 사람을 의심하고 성격마저 포악해졌다거기다가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부처님이 내려와 백성을 잘 다스려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바로 미륵불이라고 하였다驕奢淫佚궁예는 점차 타락의 길로 빠져 들게 된다 밖으로는 왕건으로 하여금 후백제의 나주 등을 점령하는 전쟁을 계속하면서호화스러운 황궁을 짓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잃어 가게 된다그리고 누구든 뜻을 거스리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으며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말리는 왕후와 두 왕자를 처참하게 죽일 정도였다.궁예의 이런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심적 불안으로 인해 점차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弓裔逃隱궁예가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잃어가고 있을 때 신하들이 뜻을 모아 반역을 도모하여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처음에 망설였던 왕건은 불의를 치는 것은 반역이 아님을 깨닫고 의연히 이를 받아 들인다이 사실을 들은 궁예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명성산으로 도망치게 된다弓裔粉骨명성산으로 도망친 궁예는 이틀밤을 숨어지냈다그러나 배가 고파 더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마을로 내려와 보리이삭을 잘라 먹었다그러던 중 농부에게 신분이 드러나 병사들에게 붙잡히게 되고왕건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이때가 서기 918년 봄이었다궁예는 그가 세운 왕국과 함께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산정호수와 명성산, 그 뒤에는 슬픈 사연이 얽혀있는 궁예의 눈물길이 있었다궁예의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지도자는 자기자만에 빠지거나 독선적으로 변하면 결국 화를 당한다는 역사적인 큰 교훈을 남겼다

제작
한도언
등록일
2022-12-01
3,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