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전국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정보와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영상소개
시원해지고 싶다면, 쥘부채를 찾으라!
옛 담양읍 완동에서는 한 해에 10만 자루씩 팔렸다던데!
현재 유일무이한 접선장 김대석 명인을 만나보자~!
자막
그사람이야기 김대석편
푸른빛 대나무의 고장 전라도 담양
올곧은 선비의 정신과 강인한 생명력
한평생 대나무로 부채를 만든 사람
그의 또 다른 이름 접선장
전라도 무형문화재 제 48-1호 김대석입니다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윗대에서부터 (기술을) 지켜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하셨고
(지금은) 제가 기술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한지) 5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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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채로 바람 맞은(?) 장본인
예로부터 흔하게 사용했던 전통 부채
수많은 부채를 생산했던 마을 담양의 완동마을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부채가 고려 시대부터 있었기 때문에
담양군의 지명도 천 년이 됐고
부채도 천 년이 됐다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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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담양에서 연 10만 자루 이상의 전통 부채를 생산해왔으나
중국산 부채가 들어오면서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완동마을에서 사라진 우리나라 전통 부채
유일하게 부채를 만들고 있지만 이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중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이 부채는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 사용하는 부채입니다
이 부채는 남사당패가 줄을 탈 때 쓰는 거예요
(부채를)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펴지는데
바람을 막고 균형을 잡을 때 쓰기 때문에
부채가 휘어지잖아요
이것은 큰'대(大)', 바퀴 '륜(輪)'
햇볕을 가려주는 대륜선(大輪扇)입니다
자막
대륜선(大輪扇)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족이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던 대형 부채
대부분 명맥이 끊겨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부채
그렇지만 홀로 전통 기술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김대석 접선장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옛날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세 끼를 챙겨 먹기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채 만드는 일이) 생업이니까 자연스럽게 배운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도 일해야만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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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재료 선택부터 가공까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보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접선을 만드는 김대석 접선장
부채의 종류
부챗살에 종이나 헝겊을 발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합죽선(合竹扇)
납작한 부챗살에 종이 혹은 헝겊을 발라 둥글게 만든 단선(團扇)
손으로 접었다 폈다 하는 접선(摺扇). 합죽선과 다르게 손잡이가 따로 없는게 특징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접선은 (이처럼) 잘 펴지고 접히고 또 (부채의 접히는 소리가) 투박합니다
손에 쥐는 맛도 있고 오래 쓸 수 있고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해서
부채를 펼쳤을 때 앞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만약 앞에)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는 거죠
외국이나 특히 중국, 일본 (부채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막
얼굴을 가리려고 부채를 활짝 펴도 앞에서 다 보입니다(!)
인터뷰/자막
김대석 접선장
부채를 쥐는 맛도 없고 바람도 잘 안 나오고 잘 접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채는 그렇지 않죠
손에 쥐는 맛도 있고 바람도 잘 나오고
잘 접히고 그런 맛이 있습니다
자막
지문이 다 닳도록 만들어온 부채
잘 얽은 부챗살에 종이를 접어 붙이기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부채 한 자루
Q.김대석 접선장에게 부채란?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족 같은 부채...!
마치 자식을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 것과 같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계속 만들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세 끼 챙겨 먹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배운 겁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어느덧 천직이 됐어요.
[전라도 인물편]
바람에 담은 풍류, 접선장 김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