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디지털 영상한국문화정보원과 문화PD가 전달하는 문화 디지털 현장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기획의도]
문화정보화의 주제에 맞춰 6.25전쟁의 과정을 근현대사 아카이브와 전쟁기념관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나타내고자 한다.
또한 현직 중학교 사회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만큼 학생들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콘텐츠를 제작하여 역사 수업에 있어서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나레이션]
1950년 6월 25일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들어본 가슴아픈 이날, 바로 625전쟁의 서막입니다.
당시 적막을깨는 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위한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소련의 무기와 중국의 인력을 지원받은 북한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우리 군을 제압했고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이와함께 6.25전쟁이 발발한 것을 인지한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군의 남침을 강하게 규탄하며 미군을 시작으로 연합군의 참전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21개국이 유엔군으로 조직되었고
맥아더 장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권을 갖게됐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6일 째 되던 날인 – 7월 1일-
미국 최초의 참전부대인 스미스부대가 부산에 상륙해 경기도까지 올라갔고
오산에서 양 측의 군대가 첫 교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 참 패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우리 국군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작전명 크로마이트
인천상륙작전이라고도 불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전입니다.
인천의 정반대 방향인 동해안에 700여명의 군대를상륙시키는 장사상륙작전을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날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 계획인 것이죠
그렇게 국군과 유엔군은 2주 만에 수도 서울을 수복하는데 성공하고
10월에는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반도 전체를 파란 진영으로 물들이려는 시점에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수십만의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통해 빠르게 남하하였고
우리 국군은 동부와 서부 전선에서 모두 후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또 익숙한 작전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영화 국제시장의 한장면이던 흥남철수작전입니다.
당시 12월 24일까지 시행된 만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공군의 공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이북에서 철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1.4후퇴라고 합니다.
그 후 수도 서울을 두달여만에 재탈환하게 되지만 38도선 기준으로 양국의 싸움이 계속되어 전쟁이 길어졌습니다.
마침내 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한 후 길었던 휴전회담은 다시 재조명을 받게되고
끝내 7월27일 한국과 북한 양측간의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약 3년 1개월 가까이 이뤄진 한국전쟁은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엄청난 물적, 인적피해를 겪었고
사상자와 실종자는 물론 수십만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습니다.
숭고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