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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실학을 집대성하여 부국강병을 꿈꾼 다산 정약용은 한반도 실학사상의 대부이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하고 시대의 문제점을 파악한 후 개혁 방향을 제시했던 정약용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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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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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유일하게 원본이 아닌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1975년 이후 시작된 복원 공사의 결과물인 현재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수원화성의 축조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의 기술적 정밀함 때문이다. 수원화성은 <화성성역의궤>의해 정밀하게 복원되었고 ‘감히 이런 복제품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고 분노하던 유네스코 심사관들도 <화성성역의궤>를 살펴본 후 수긍하고 등재를 허락했다고 한다. 정조의 지시로 단 2년 만에 제작된 수원화성은 당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일인 것이 분명하다. 특히, <화성성역의궤>에 담긴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극한까지 이용한 것인데 중국의 것보다 무려 4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치밀하고 실용적인 계획과 기술이 적용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수원화성 축조와 거중기의 제작 그 모든 증축 계획의 중심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이 있다.
수원화성 축조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다산 정약용은 개혁과 개방, 실학적 가치를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했고,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하였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학으로 불리는 성리학을 유교적 전통으로 인식했다. 지나친 성리학 편향의 한계가 드러났을 때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실학사상을 자신의 저서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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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중 교수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주자의 성리학이 상당히 훌륭한 학문이기는 한데 학문의 가치관도 수명이 있는 것 같아요. 500~600년 되다보니까 본 정신이 사라지고 찌꺼기 혹은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부각되는 그런 상황이 되어서 그것을 대체 하려는 움직임, 사상 이것이 대부분 실학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다산 선생은 그 당시의 사회가 너무나 썩고 부패해서 일초일목, 사람뿐만 아니라 초목까지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고 살리려면 역시 학문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 다산 선생께서 60대에 들어 돌아가실 때 까지 15년 정도는 스스로 호를 사암이라고 하셨어요. 그 사가 뭐냐면 기다릴 사 자인데 이 시대에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후세의 누군가가 내 책을 보고 이것이 현실 타계의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는 것을 알고 또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원리라는 것을 알고 이것을 수용해서 잘 발전시켜줄 것이다 이런 기대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현실에서는 자신의 것이 응용이 되어 해결이 되리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자막 > 다산초당 / 전남 강진군 다산 유배기간 중 10여 년간 생활(1808~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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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긴 유배 생활의 시련이 시작되었지만 오히려 정약용은 학문에 몰두하여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그는 저서 <경세유표>를 통해 통치, 상업, 국방중심의 도시건설과 토지개혁을 바탕으로 한 세제, 신분 등 모든 제도를 고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 개발을 해야한다는 국가 개혁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자막 > 경세유표(經世遺表, 1817) 목민심서(牧民心書, 1818) 여유당집(與猶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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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목민심서>를 통해 목민관으로써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였다. 방대한 저작을 통해 최고의 실학자가 된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업적은 경집 232권 문집 267권 등 499권에 달하며 말년에 저작에 대한 정리에 온힘을 기울여 503권의 <여유당집>을 완성하였다.
인터뷰 >
김언중 교수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구상이라도 실제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고 아주 실제적으로 현실의 효과를 나타내는 현실적인 것에 착안을 해서 최선을 다 하자는 것이 다산선생의 구국방략이고 평소의 소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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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개혁의지를 집대성했고 개혁의 당위성을 명백히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의 사상에는 빈곤과 착취에 시달리던 민에 대한 애정이 늘 드러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했던 양심적인 지식인 정약용. 그의 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