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상문화포털의 크리에이터 문화PD의 영상을 소개합니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독립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그 투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선조들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서대문 독립공원과 그곳에 있는 독립문, 송재 서재필 선생 상,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소개한다.
--------------대본---------------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소.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독립문역에서 나와보면 서대문 독립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안에는 독립문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독립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립문은 1897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영은문을 헐고 지은 석조물입니다. 이맛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져있고, 문의 정면과 뒷면에 있는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습니다.
독립문을 통과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송재 서재필 선생 상이 있습니다.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했습니다. 또 독립협회를 열어 중국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앞서 본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송재 서재필 선생 상에서 독립신문을 손에 쥐고 대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립문 정면으로는 3.1 독립선언 기념탑이 보입니다.
1963년 8월 15일 3.1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여 탑골공원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탑골공원 정비 사업으로 철거되었다가 1992년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탑 뒤에는 3.1 독립선언문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탑 왼편에는 독립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의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 건물을 1894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의 주도로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개칭했습니다.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1995년부터 1996년에 서대문 독립공원 조성 사업으로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이곳에 복원되어 지상층은 순국선열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보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립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순국선열추념탑이 있습니다.
추념탑의 중앙에는 전국 14개도 전역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와 기상을 상징하고 있는 태극기를 음양각한 조각상이 보입니다. 그 좌우에는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형상화한 모습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좌측에는 항일의병무장상, 윤봉길ㆍ이봉창열사 상징상, 독립군의병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열사 운동상이, 우측에는 3.1독립만세상,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체포 처형상, 청산리 전투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순국선열추념탑기에는 일제의 침략부터 조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 의지와 끊임없이 계속된 항일투쟁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념탑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보입니다. 당시 수감자들이 감히 탈출하지 못하도록 높게 올린 붉은 벽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공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수많은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에 들러 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해봅시다.
--------------사용음원---------------
Song: Lvne - I Need
Music provided by Vlog No Copyright Music.
Video Link: https://youtu.be/BngCvmCg6bQ
--------------대본---------------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소.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독립문역에서 나와보면 서대문 독립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안에는 독립문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독립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립문은 1897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영은문을 헐고 지은 석조물입니다. 이맛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져있고, 문의 정면과 뒷면에 있는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습니다.
독립문을 통과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송재 서재필 선생 상이 있습니다.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했습니다. 또 독립협회를 열어 중국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앞서 본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송재 서재필 선생 상에서 독립신문을 손에 쥐고 대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립문 정면으로는 3.1 독립선언 기념탑이 보입니다.
1963년 8월 15일 3.1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여 탑골공원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탑골공원 정비 사업으로 철거되었다가 1992년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탑 뒤에는 3.1 독립선언문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탑 왼편에는 독립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의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 건물을 1894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의 주도로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개칭했습니다.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1995년부터 1996년에 서대문 독립공원 조성 사업으로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이곳에 복원되어 지상층은 순국선열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보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립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순국선열추념탑이 있습니다.
추념탑의 중앙에는 전국 14개도 전역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와 기상을 상징하고 있는 태극기를 음양각한 조각상이 보입니다. 그 좌우에는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형상화한 모습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좌측에는 항일의병무장상, 윤봉길ㆍ이봉창열사 상징상, 독립군의병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열사 운동상이, 우측에는 3.1독립만세상,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체포 처형상, 청산리 전투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순국선열추념탑기에는 일제의 침략부터 조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 의지와 끊임없이 계속된 항일투쟁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념탑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보입니다. 당시 수감자들이 감히 탈출하지 못하도록 높게 올린 붉은 벽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공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수많은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에 들러 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해봅시다.
--------------사용음원---------------
Song: Lvne - I Need
Music provided by Vlog No Copyright Music.
Video Link: https://youtu.be/BngCvmCg6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