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100
대한민국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가정교육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한석봉과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본---
나레이션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를 통해 참 된 교육의 가치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
떡 장사를 하며 아들 뒷바라지를 하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글 공부를 위해 아들을 전라남도 영암의 중림정사로 떠나보냅니다.
어머니는 10년 동안 학업에만 매진하라며 보고 싶어도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데요,
한석봉은 어머니의 큰 가르침을 받아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죠.
3년이 지나고 어머니가 그리웠던 한석봉은 한밤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석봉은 반가운 마음에 어머니께 달려 들어가지만 어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모습에 많이 놀랍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물었고 한석봉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 솜씨를 자만하며 글방을 나와도 된다고 어머니께 말합니다.
그의 말에 어머니는 참 된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불을 끈 상태로 한석봉은 종이에 글을 쓰고, 어머니는 내일 장에 내다 팔 떡을 썰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불을 끈 상태에서 누가 더 예쁘게 쓰고, 써느냐에 대한 대결이었던 것이죠.
어머니는 한석봉이 이기면 공부를 그만하고 지금 집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석봉이 진다면 지금 바로 다시 공부를 위해 죽림정사로 떠나야 된다고도 하셨죠.
칠흑같이 깜깜한 방안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석봉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어머니가 다시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어머니가 썬 떡은 하나같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반면 한석봉이 쓴 글씨는 삐뚤빼뚤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석봉의 글씨를 보고 다시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한석봉은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고 더욱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국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한석봉은 훗날 서도의 명인이자 한문의 본고장인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필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막
도산서원 전교당
석봉 한호 (1543~1605)
나레이션
조선의 명필가인 한석봉의 서체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퇴계선생이 세운 도산서원 전교당의 현판 역시 한석봉의 작품이지요.
우리가 주로 한석봉이라고 알고 있는 그의 정식 이름은 ‘한호’입니다.
‘석봉’은 그의 호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 쌍벽을 이룬 그의 서예실력은 조선중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주요 문화재들에서 그의 글씨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인터뷰
(한석봉의)글씨는 중국의 왕희지체(중국 최고의 서예가인 왕희지의 글씨체)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왕희지체의 서법을 계속 학습하고 이 것을 자기화 시켜서 조선시대의 많은 서예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석봉의 글씨체는)방정하고 단정한 서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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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를 통해 참 된 교육의 가치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