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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유산
  • 충남

[한국문화100]유관순, 자유와 평화를 외친 그 이름

제작
문화포털
재생시간
5:22
등록일
2015-10-21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인 유관순열사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영상입니다.
*소재선정사유 :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

*나레이션
- 자유의 상징, 민족의 상징, 평화의 상징 유관순 열사.
-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녀의 만세운동은 현재의 우리가 본받아야 될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 과연 그녀는 어떤 인물이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에게 귀감이 되는 것일까?     
- 1919년 일본의 통치는 계속되고 한국인을 향한 그들의 만행이 더욱 더 심해질 무렵.
- 드디어 3월1일 전국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진다.
- 1919년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는 유관순열사가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때였습니다. 이때 유관순열사도 학생운동에 참가를 했습니다.
- 어릴적부터 용맹하기로 유명했던 유관순은 이화학당에 재학중이던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 이후 고향인 천안 아우내로 돌아와 서울의 만세 상황을 알리며 한달 후인 4.1일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 수천 명의 군중이 모인 이 시위에서 유관순은 일본 헌병대의 총칼에 피살당하는 부모님을 보게된다.
- 그리고 그녀 또한 만세시위의 주동자로 헌병에 연행이 된다.
- 그녀는 이 시위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일본 헌병대에 연행이 된다.
-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온갖 고문을 받으며 투옥하던 중 1920년,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된다.
- 유관순은 공주에서 5년형을 받고 다시 항소해서 서대문형무소로 이감이 된후에는 3년형을 선고받게됩니다.
- 이 사진은 고문을 당해서 많이 부어 있는 상태입니다.
- 며칠전에 독립기념관에서 유관순열사얼굴에 대한 세미나를 하게 되었는데 고문으로 인해서 얼굴이 유관순의 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 같이 감옥에 있던 수감자의 아기가 감기에 걸리자 유관순이 젖은 기저기를 아기에게 채우면 감기가 심해질 거라고 하며 자신의 몸에 젖은 기저기를 감아 말려서 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그리고 자신에게 배식이 나오면 아기와 아기 엄마에게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유관순의 조카며느리인 김정애 회장은 수십년동안 유관순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해온 인물이다.
- 어렸을 적부터 성격이 강직했다는 얘기는 시아버지를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 한번 옳다고 생각을 하면 기필코 그뜻을 관철했다고 합니다.
- 또 남다른 재주도 있었다고 합니다.뜨개질을 잘해서 조카 유재경에게 선물로 모자를 떠준게 유품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나라가 없으니깐 모든 자유를 잃었습니다. 우리들의 교육받을 권리, 종교의자유, 생존권등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 않나 생각합니다.
- 유관순 열사는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뼈져리게 느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또 후손들이 그런 뜻을 알고 우리사회를 좀 더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자신의 목숨을 조국의 해방에 바친 진정한 영웅 유관순 열사.
- 그녀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높이 받들고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죽음을 뜻 깊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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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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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0
  • 2013-10-07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잘 되어있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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