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루
문화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해 보세요[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동양화 기획전 4부 ≪아아! 동양화: 영원한 파라디소≫
- 작성자
-
4454358079
- 작성일
- 2025-09-19 (금) 17:04
- 조회수
- 66
- 추천수
- 0
§
<전시개요>
- 전시명 : 동양화 4 부 ≪아아! 동양화: 영원한 파라디소≫
- 전시기간 : 2025. 9. 25(목) ~ 2025. 11. 30(일)/휴관일 없음
-관람시간: 오전 11 시 -오후 6 시 30 분
- 관람료 : 3,000원 (카페 이용 시 무료)
-전시장소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참여작가 : 김지평, 김현철, 이호억, 진희란, 한진만, 홍인숙, 황규민
-주최 및 주관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후원 : 경기도, 파주시
-홈페이지 : www.whiteblock.org
-오프닝 리셉션 : 2025 년 9 월 25 일 목요일 오후 4 시
§
<전시 서문>
아아! 동양화: 영원한 파라디소
아트센터 화이트블록은 ‘아아! 동양화’ 4부작 전시 중 4부 ≪영원한 파라디소≫를 개최한다.
지난 4년간 이어진 ‘아아! 동양화’ 4부작은 이번 전시로 막을 내린다. 4부 전시는 동양화의 전통을 다룬다. 한때 중심이었으나, 현대화 이후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탄받았던 동양화의 전통. ≪영원한 파라디소≫는 바로 이 전통 회화의 개념을 차용하는 작가들의 전시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전통은 무엇이고, 전통을 통해 지금의 세계와 나누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왜 산수화가 현재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하며, 왜 민화가 예술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가. 인물화의 전신(傳神)은 어떤 태도로 오늘에 구현되고 있으며, 전통과 현재의 관계는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는가. 이처럼 수많은 물음과 응답 속에서 이번 전시는 구성되었다.
≪영원한 파라디소≫는 전통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7인의 작가가 전통 속에서 현재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작업관과 함께,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필묵, 채색, 전통의 색감 등 전통 회화의 표면과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세대별 차이와 공통점 또한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아! 동양화’ 4부작은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졌던 기존의 동양화 전시들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기존의 전시들이 대체로 연도별로 작가를 배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방법은 한국 사회에서의 동양화의 흐름을 개괄하기에 적절했다. 그러나 지금은 동양화의 존립 위기와 동시대 미술로의 전환이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한 시기다. 따라서 개괄보다는 담론의 형성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아아! 동양화’는 동양화의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 이를 둘러싼 다각도의 입장이 필요했다. 이러한 현상 아래 기획된 4부작 전시는 한국 사회에서 동양화가 마주한 충돌 상황을 드러내며, 이 충돌로부터 예술적 질서를 갖기 위해 분주히 변화하는 동양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충돌의 쟁점들은 전통과 현대가 대립하고, 신구가 부딪힌 흔적이며, 동시에 동양화와 동시대 미술이 여전히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재의 현장이다. 이제 젊은 동양화가들은 ‘수묵의 정신성’보다는 각자의 삶과 밀접한 세계를 회화적 표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거 엄격했던 지필묵의 운용은 오늘날 다양한 스펙트럼의 회화적 재료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전통은 찬란한 문화유산이자 미술 문화의 다양성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예술이 본질적으로 차별의 미학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통 동양화는 미술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소중한 형식이다.
또한 동양화를 바라보는 외부 관람자의 시선 역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동양화의 변화를 어떠한 기준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동양화는 동시대 미술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과거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살아가는 동양화가들의 관점과 관심, 변화를 이해하는 데 더 넓은 시각과 포용이 필요하다. 이제 동양화는 ‘규정’보다는 ‘확장’을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동양화의 독창성을 몇 가지만 언급해 보겠다. 첫째, 재현 체계에서 서양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서양화가 대상과 나의 거리를 유지한다면, 동양화는 물아일체의 태도로 그 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둘째, 탈원근법적 시각에 기반한 다시점(多視點, multiple perspectives)이 있다. 셋째, 선묘라는 대상 인식 방식, 넷째 비워둠으로써 가능성을 열어둔 여백, 다섯째, 그림자를 그리지 않은 방식의 평면성, 여섯째, 그림과 글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방식 등이 있다. 이외에도 동양화는 다양한 형식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다른 미술 전통과 구별되는 고유한 미학을 형성한다.
이제 ‘진경’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경(眞景)’이라는 사건은 조선 후기 표암 강세황이 사용한 ‘동국진경(東國眞景)’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표암으로 하여금 동국진경이라는 용어를 탄생케 했는가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시 동양화에서는 이미 ‘실경(實景)’, 즉 실제 풍경을 그리는 방식은 동양의 산수화 문화에 흔히 존재해 왔다. 중국에서도 실재 자연에 기인한 산수화가 많았으며, 중국 문화권에서 동양화를 학습한 옛 대가들은 십죽제화보(十竹齋畵譜), 고씨화보(顧氏畵譜), 계자원화보(芥子園畵譜) 등 많은 명화와 화보를 통해 학습했다. 그러나 표암이 말한 진경은 단순한 실경과는 다르다.
진경은 내 앞의 산과 냇가, 변화하는 계절, 내 동네 풍경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내 조국의 정서로 화면을 담아낸 일이었다. 표암이 ‘眞(참 진)’을 꺼내어 쓴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진경은 단순한 풍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눈앞의 자연이 아름답다고 깨달은 ‘주체성의 회복’이었다. 이 주체의 시각 없이는 실경도 진경으로 이를 수 없다. 진경은 이렇게 탄생했다. 내 앞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내가 본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며, 곧 주체성의 회복이자 진경의 본질이다. 이것은 예술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아마도 표암의 직관은 이 사안을 관통했을 것이다.
고정된 실체도 의미도 없는 오늘의 예술계에서,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동양화가 가진 혼란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과연 해결책인가 의문일 수 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아! 동양화’는 4부작으로 기획되었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를 하지 않는 작가들의 이야기 1부 ≪열린문≫,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기존의 질서와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 2부 ≪이미·항상·변화≫, 동양화를 전공하지 않았으나, 동양화와 영향 관계에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 3부 ≪모두의 동양화≫, 그리고 전통 동양화를 이어가는 작가들의 이야기 4부 ≪영원한 파라디소≫, 이 네 개의 전시는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교차하며 동양화의 다양한 지형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혼란의 시기 이후에, 우리는 보다 성숙한 동시대 동양화와 변화된 미술 문화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지난 4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그 소회를 밝힌다.
글 이정배
?
댓글쓰기
(0/140)
신고하기
※ 허위신고일 경우 제재처리 됩니다. 신중하게 해주세요
※ 중복게시물 신고일 경우 먼저 게시된 주소를 기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