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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흥례문 납도리(61176)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흥례문(興禮門)은 광화문(光化門)과 근정문(勤政門) 사이에 있는 중문(中門)으로 2층 목조건물이다. 태조 4년(1395)에 제작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홍례문(弘禮門)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흥례문으로 고쳤다.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行閣)을 모두 파괴하였다. 1990년 정부가 경복궁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2001년 복원,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경복궁 흥례문 납도리의 마구리부분으로 연꽃을 나타내었다. 연꽃은 활짝 핀 모습이며 흑색 바탕에 백색으로 연꽃을 표현하였다. 연꽃의 꽃잎은 사방으로 펼쳐져 있으며 좌우대칭으로 똑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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