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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태원전 담장(115304) 크게보기 경복궁 태원전 담장(115304) 크게보기
경복궁 태원전 담장(115304)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태원전(泰元殿)은 경복궁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이다. 태원전은 고종 5년(18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 북서쪽 일대는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과 같은 제사와 관련된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태원전은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2006년 복원되었고 2009년 개방되었다. 숙문당(肅聞堂)은 위패를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하였으며 회안전(會安殿)은 국상을 대비한 전각으로 전각 남쪽행각으로부터 전각 앞까지 복도를 건립하였다. 남쪽 행각 중앙에 자리 잡은 출입문인 융소문(隆昭門)이나 장유문(章猶門)은 삼문이다. 남행각 동남쪽으로 뻗어나간 곳에 제실이 있었고 그 동쪽에 따로 건립된 숙설소(熟設所)가 마련되었다. 건숙문(建肅門)은 태원전의 외삼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 건물이다.경복궁 태원전 일원의 담장으로 벽돌과 회를 사용해 거북등무늬를 표현하고 그 가운데부분에는 꽃을 나타내었다. 꽃은 활짝 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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