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류
수원 화성행궁 무예24기 공연단에서 복원한 철릭을 기반으로 제작한 3D 디지털 에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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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무예24기 공연단에서 복원한 철릭을 기반으로 제작한 3D 디지털 에셋이다.
철릭은 상의와 하의를 따로 재단하여 허리 부근에서 연결시킨 형태의 옷이다.
철릭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합천 해인사에서 1326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선철릭이 발굴되었고 고려가사 『정석가』에도 싸움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철릭을 마름질한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고려 중기이후에 원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후대로 올수록 소매통이 넓어지고 상하의 비율이 변화한다.
조선시대에 철릭은 왕에서부터 사대부, 악공, 무당,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용도로 착용하였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철릭은 융복(군복의 일종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일 때의 복장)으로 정착하였고, 병자호란 등 전란에는 공복으로도 쓰였다. 이후 무관의 평상복으로 착용되었다.
그간 출토된 16~17세기 무관의 철릭은 소매가 탈부착되는 형태가 많은데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무예도보통지』(1790) 4권에도 소매 한쪽에 탈부착되는 홍철릭이 그려져 있다.
흔히 조선시대 군복으로 알고있는 ‘구군복’은 조선 후기에 정립된 군복이다.
에셋에 머리띠와 비갑, 목화(신발)이 포함되어 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흐르는 땀을 받쳐주기 위해 사용한 머리에 동여맨 띠로 머리띠라고 한다.
일상에서 귀족이나 양반이 이러한 띠를 두르지는 않았으며 주로 일반서민이나 무관이 사용하였다. 왕실과 귀족, 무관들의 경우에는 무복 착용 또는 전시상황에서 주로 착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갑’이라는 것으로 토시(토수) 형태이다.
비갑은 홍철릭의 넓은 소맷단을 정리하여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또한 손목에서부터 팔꿈치 아래쪽 팔을 감싸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화(靴)는 조선시대 관복에 신던 신발로 목이 긴 신발을 일컫는 것이다. 그 중 목화는 속에 나무를 덧대었기 때문에 목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무관이 융복을 갖추어 입고 신던 신발은 수화자(水靴子)이다. 나무를 덧대었기 때문에 목화에 해당하고 유사하게 생겼으나, 활동하기 편하도록 목화보다 길고 앞쪽 신발 바닥이 위로 들렸으며 앞코 끝이 뾰족하다. 『영조실록』(1724~1776)에 의하면 1726년(영조 2) 무관이 수화자를 신는 것은 활을 쏘고 걸을 때 편하게 하기 위해 효종이 명한 것인데 이제 모두 신기를 싫어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727년(영조 3) 철릭을 입으면 수자화를 신는 것을 격식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