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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문화PD가 제작한 쉽고 재미있는 문화영상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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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문화PD] 보람찼던 문화PD, 온라인으로 만나봤습니다. (문화PD 김승현)
문화PD 활동 많이 궁금하시죠? 오늘은 한번 문화PD를 줌을 통해 만나봤습니다! 어떻게 한번 같이 보실까요? [대본] 안녕하세요 문화PD 김종진입니다 마지막 영상을 맞아서 활동을 마무리 하는 의미로 어떤 영상을 제작하는게 좋을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요 어떤 것을 찍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다른 문화PD 활동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문화PD 인터뷰 코너를 한 번 마련해봤습니다 지금 저 쪽에서 PD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저랑 같이 전라2팀에 소속되어 있으신 김승현 문화PD님을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문화PD를 지원하게 되신 이유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빛솔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김승현이라고 합니다 주로 저는 영상제작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도중 문화PD를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사실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요 저는 저의 개성되는 컨텐츠로 활용을 해서 접목을 시켜서 한번 만들어볼까 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작과정 중에서 와닿는 일은 무엇이 있으셨나요? 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한 컨텐츠가 가장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만 봤던 문화에 대한 컨텐츠가 아니라 각각의 중국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또 세계의 중앙아시아 권역의 작품들을 보면은 아 이렇게 승화시켜서 기술로 접목시켜서 만들구나 하고도 느끼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만 봤던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콘텐츠를 볼 수가 있어서 되게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회차와 디지털 신기술이 있다면? 광주에서 국립광주과학관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에서는 우리가 늘 잊고 살았던 기술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잊고살았던 것들을 한번 더 보게 되었고요 그리고 광주하면 빛의 도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빛과 과학을 접목을 시켜가지고 되게 신선한 콘텐츠로 지역을 알리고 기술에 의한 것들도 접목시켜서 알리니까 되게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문화PD를 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으신가요? 네 문화PD하면서 느낀점은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지역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살리는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근데 그런 어려움들을 각각의 지역에 있는 문화PD들과 함께 의논하고 또 담당 매니저님과 함께 의논해나가면서 해결해나가니까 점점 제가 성장해나가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화PD를 지원하려는 분들에게 팁 한번만 주실 수 있나요? 문화PD를 지원하려는 분들께 TIP하나를 주자면요 자기 개성을 어필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매 회차마다 미션이 주어집니다 근데 그 미션을 어떻게 개성대로 표현해느냐가 참 중요한 관건이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것을 보고 하면은 오히려 감점이 되고요 자기 개성대로 재밌게 살려내는 것에 대해서 어필을 하면은 좀 좋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렇게 인터뷰를 한번 해봤는데요 어떻게 문화PD에 대해서 궁금하신 부분들 그리고 어떤 영상들 어떤 것들이 재밌는지 같이 보셨는데 혹시 궁금하신게 해결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자 올해에는 저는 이번 영상이 마지막으로 찾아뵙는 것인데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또 문화PD가 되어서 여러분들한테 또 좋은 정보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영상 찾아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번에 또 뵙겠습니다 이상 문화PD 김종진이었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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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문화PD] 이제서야 듣는다! - 양지환 PD의 영상 제작 이야기
6개월,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문화PD 21기가 끝나가는 때인 지금, 이제는 들어볼 수 있다!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지환PD가 느낀 점과 그의 영상 제작 과정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본] 네 안녕하세요 문화피디 21기 양지환입니다 벌써 6회차예요 저희가 마지막 회차는 이렇게 은행나무 가을의 끝자락 이런 제주대학교에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는데요 그래서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번엔 디지털 기술이 어떤 게 있었는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마무리하는 영상 그리고 제가 촬영하면서 느꼈던 점들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진짜 여러가지 정보들을 많이 얻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VR 기술이 있었구나 이런 다양한 테마관이 있었구나 그런 것들을 사실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문화피디 활동을 하면서 제가 여러 곳을 촬영도 하고 기획도 하고 이렇게 편집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좀 다양한 정보들을 얻어갔던 것 같습니다 한 달이란 기간이 생각보다 짧더라구요 이게 기획부터 촬영 그리고 편집을 해야되는데 이제 기획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기획안을 먼저 보내고 그 다음에 기획안이 컨펌이 되면 그 다음에 이제 해당 업체나 해당 기관한테 이제 협조 공문을 요청을 드려가지고 저희가 촬영 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드리는데 그 기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특히 기관이나 업체들은 이게 생각보다 기간이 짧다고 다른 날에 촬영을 원하시거나 다음에 촬영 원하시거나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주제선정은 제가 주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이제 VR 체험 AR 체험 제주 다양한 재미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AR부터 시작해서 AR 시스템이 있는데 거기에 플러스 미디어 아트까지 있다 이제 디지털 기술이 들어간 그런 테마관이 이런 곳이 또 있구나 그러면서 좀 많은 정보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도 좀 많이 검색을 했었어요 제주도 VR 제주도AR 제주도 디지털 기술 이런 걸 검색을 많이 해 봤는데 아직까지는 제주도에는 그런 기사들이 좀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아쉬웠던 아쉬웠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저는 주로 소니 에프엑스쓰리 제가 주로했던, 작년 촬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가 리포터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제가 촬영하고 그 다음에 나레이션도 녹이고 그 다음에 실제로 이렇게 체험하는 모습들도 좀 많이 담았어요 후반에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많이 담으면서 필요했던 게 짐벌 짐벌이랑 그리고 제가 또 이것을 스스로 촬영을 못 하니까 항상 같이 다니는 이제 동생 한 명 데려가고 같이 다니면서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장 재미있었던 의자는 바로 1회차요 1차 때 제가 어떤 기술을 소개드렸냐? 그중에 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스캔 핸드폰으로 스캔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편집 방향대로 편집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드론처럼 이렇게 촬영할 수도 있고 그런 기법들을 담아가지고 직접 체험하고 소개해야 되는데 그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리고 그 기술들을 아직도 저는 가끔씩 쓰고 있습니다 저는 아까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 디지털 AI 기술 근데 이게 요즘 요즘 시대에 들어서 많은 AI가 많이 등장 했잖아요 그 중에서도 촬영 촬영 AI 관련해서 정보가 많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도 촬영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도 편집도 가능한 그런 AI 기술도 있구나 그런 것들을 많이 이제 정보들을 파악하게 되면서 지금도 많이 쓰고 있고 그 기술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저에게 문화피디란 경험이었습니다 경험 왜 경험이었냐? 이런 경험들을 많이 만들어가면서 제 실력도 많이 늘었고 그 다음에 정보도 많이 늘었고 그 다음에 주변에 아는 지인이나 그런 사람들도 많이 소통을 하게 되면서 저의 영상의 삶에 있어서 경험들을 많이 쌓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제 경험치도 많이 늘어났고요 그래서 저는 제 문화 피디란? 경험이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리자
조회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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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문화PD] 올해 문화PD들의 소중한 만남, 그리고 이야기
한국정보문화원 문화PD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술들을 소개한다. [대본] 1)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광주에서 영상제작회사를 다니고있는 문화피디 21기 광주전라팀 27살 공새결입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영상쪽이다 보니 요즘 가장 수요가많은 유튜브관련 촬영 편집일을 하고 있고 문화피디를 하면서 직무향상도 많은 도움이 되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희누나를 통해서 문화pd를 알게 되었는데요 누나가해외문화피디로 활동을 하게되면서 추천을 받고 문화PD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면접을 많이 못봐서 떨어질줄 알았는데 다행이 붙어서 재밌게 촬영하면서 디지털관련 영상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2)인상적이었던 장면의 제작과정이나 에피소드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회차인 1회차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광주 디지털훈련센터라는 곳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광주 디지털훈련센터가 여러곳에 위치해 있다보니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촬영하다보니까 진짜 입에서 단내가 나면서 촬영을 했던게 생각이납니다.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무튼 힘들게 촬영을 한 만큼 우수작으로 뽑히게 되어서 가장 애착이 가는 회차이지 않나 생각도 들고 디지털로부터 소외받 어르신들을 위한 센터다보니 촬영을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도 많이나고 이런곳이 존재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촬영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촬영 마지막에 한 어르신이 이런곳이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실 때 마음이 찡한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3)1~5회차 영상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디지털 신기술 개인적으로 2회차 영상이 많이 생각나는데 영상 컨셉자체가 박물관에서 운영되는 VR가상현실과 실제관람을 체험해보고 비교해보는 영상을 제작했는데 전부터 여기에 대한 호기심이있어서 기획을 하게 되었고 나름 기획안부터 만족스럽게 짜여졌고 또 제가 가장 관심있는 VR에 관해 영상을 찍다보니 2회차를 가장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 처음에 광주, 전라지역에 디지털 관련 촬영을 할곳이 있을까?? 될까?? 걱정을 많이했는데 기획안을 쓰면서 찾아보니까 정말 많은 곳에 디지털관련 센터들,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느꼈고 많은 홍보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디지털신기술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게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니저님들이 너무 고생하신거같아서 감사하고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매니저님께 편집본 너무 늦게 제출한거같아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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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문화PD] 우리는 문화PD 21기 입니다! (문화PD 이의선)
한국문화정보원 문화 PD 21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느낀 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나에게 문화PD란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본]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PD 전라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상 제작자 이의선 입니다 제가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상황이 되게 많은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회차가 가장 인상이 깊어요 회차 주제가 예술과 그 다음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시켜 가지고 소개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요 예술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을 하다가 제가 예전의 어떤 미디어아트전시를 진행하거나 하면 어머니를 초대하곤 했었는데 어머니가 그때 저의 전시를 보고 아 나는 잘 모르겠다 이해가 안 된다 하셨던 게 생각이 나가지고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조금 더 예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좀 하다가 어머니에게 친숙한 주제인 할머니가 떠오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디지털 관련된 디지털 신기술을 찾다 보니까 메타 휴먼이라는 기술이 있었고 그 메타휴먼으로 할머니를 직접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보여들었을 때 그런 반응들이 어떨까 그리고 그런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회차를 작업했고 다행히도 어머니가 너무 편하게 잘 출연을 해주셨고 또 많은 분들이 되게 좋게 봐주셔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회차에서 회차 중에 가장 많은 디지털기술을 하다보니까 다 하나 하나 기억에 남는데 그 중에서도 회 첫 더 진행했던 메타 패션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메타패션은 어떤 앱 을 통해서 본인이 이제 본인의 아바타를 생성하고 그 아바타를 통해서 코디를 직접 해보는 그런 기술이거든요 그래서 직접 옷을 입어보지 않고도 이런 룩이 이렇게 어울리겠다 이렇게 알 수 있고 나아가서는 그 앱 자체에서 직접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인데요 관광이라는 주제로 회차를 풀어냈어야 되는데 양한 많은 분들이 관광지를 직접 가시거나 관광지에 있는 기술을 소개하는 쪽으로 영상을 많이 풀다 보니까 저는 조금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메타패션이라는 주제를 잡고 그 앱을 조사를 해서 이제 제가 알고 있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지인분을 섭외해서 메타패션을 풀어내봤는데요 그 때 촬영에 여름이었는데 그 실제로 코디를 입어보지 않고 앱을 통해서 하고 그 과정을 제가 직접 참여하다 보니까 괜찮은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메타패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문화PD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선은 저도 지역에서 어디 영상팀에 소속돼서 일을 하거나 혼자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주변에 다양한 영상 제작자분들을 만날 일이 생각보다 많이 없었어요 근데 문화피디 활동을 하면서 거의 피디분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분들의 작업물을 공유하면서 아 이런 주제를 이렇게 풀어 내셨구나 이곳에 가서 이런식으로 영상 제작을 하셨구나를 느끼면서 되게 많은 교류가 되었고 그 다음에 제가 직접 제작한 영상을 이제 멘토분들이 피드백을 해주시고 매니저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하다보니까 회차에 비해서 점점점 좋아지는 것을 저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게 느껴 가지고 너무 좋았습니다 저에게 문화PD란 루틴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문화PD가 한 달을 주기로 한편에 영상을 만들어야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첫 주에는 주제를 잡고 기획안을 쓰고 기획안을 수정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좀 타이트하게 잡혀 있어요 근데 그런 마감들이 오히려 저에게 루틴을 자리잡게 해줘 가지고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그 힘이 다른 영상 제작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어가지고 저에게 문화PD란 루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아마 별 문제가 없다면 기를 모집을 하실 텐데 저는 주변에 너무 추천을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고 만약에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이 기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저는 지원을 해서 참여해 보시는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답변하는 거, 어떠신가요? 다른 질문 있으신가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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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문화PD] 근대골목에서 문화피디를 만나다 (EP. 1 청라언덕)
안녕하세요 문화PD 21기 우정만입니다. 이곳은 푸를 청, 담쟁이 라, 청라언덕입니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주택 등 근대 건축물의 밀집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뉴진스 뮤직비디오 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문화PD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은 아 나도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열어야 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대본] 문화 PD 21기 김성은입니다 이 근대 골목은 대구의 골목을 걸으면서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곳인데요 근대 골목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인터뷰 저 김성은 PD가 먼저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화pd 21기 우정만입니다 이곳은 푸를청 담쟁이라 청라언덕입니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주택 등 근대 건축물의 밀집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뉴진스 뮤직비디오 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웨어러블 로봇을 촬영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좀 기억에 남았던 같습니다 이유는 사실 저는 로봇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있다거나 아직까지 우리 일상생활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로봇들이 환자분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장면들을 확인을 하면서 이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되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각을 조금 달리 하게 되어서 저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대구의 신기술 중에서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대구박물관의 디지털 아트존을 적극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전시 자체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좋아할 것 같다라고 저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디지털 아트존에 입장을 하고 제가 촬영하는 순간 저도 촬영을 온 것을 이제 본분을 망각하고 되게 즐기고 감상하고 감탄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대구의 신기술을 이제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문화pd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은 아 나도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열어야 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우정만 PD님 정말 감사합니다 근대 골목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인터뷰 이제는 다음 PD님을 찾아서 우정만 PD님께서 취재하러 떠나시면 되는데요 그럼 이만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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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거대한 역사의 흔적 고인돌
고인돌은 커다란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로 선사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고인돌은 흔히 거석문화의 산물로 불리는데 거석문화는 인간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축조하여 숭배의 대상물이나 무덤으로 이용한 문화를 말한다. 대체로 농경 생활에 기초한 정착사회단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에 대해 알아보고 구조의 특이함을 소개한다. ----------대본---------- 제목 : 거대한 역사의 흔적 고인돌 자막 고창군 고인돌 유적지 내레이션 10월에 찾아온 태풍이 체 피지도 못한 코스모스들을 할퀴고 지나간다. 거친 표면에도 심술궂은 태풍은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쓰지만 왠지 오래전부터, 이들에게는 늘 자신이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태풍은 결국 기억해 낸다. 태풍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 지는 공간. 전라북도 고창군 고인돌 유적지에는 긴 시간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존재한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인돌은 단순한 바윗덩이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움직여진 흔적이 분명히 발견되는 일종의 구조물이다. 대부분의 청동기는 고인돌에서 출토되는데 연구자들은 고인돌을 지석묘라고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형식으로 파악한다. 인터뷰 이영문 /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장 목포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고인돌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는 당시 사람들이 거대한 바위를 자신들의 무덤 또는 기념물로 사용하여 거석을 이용한 건조물, 암석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그것을 통해 모든 장례의식이 치러지고 이와 같은 모습은 당시 농경사회의 결집을 요구하는 하나의 의식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인돌 부장유물의 의미는 무기, 돌검이라든지 비파형 동검 또는 돌화살촉 같은 무기 성격이 강한데 무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고 당시의 사회적인 지위를 뜻하는 의미를 가지는 유물입니다. 내레이션 박물관이 아닌 자연현장에서 마주치는 유일무이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며 그 축조 시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으로 추측된다. 자막 고인돌의 축조과정 1. 고임돌 세우기, 2. 고임돌 사이 흙 채우기, 3. 덮개돌 올리기, 4. 흙 제거하기 내레이션 고인돌의 축조과정에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고임돌 세우기, 고임돌 사이에 흙 채우기, 덮개돌 올리기, 흙 제거하기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막 고인돌의 형태 탁자식 고인돌 ? 잘 다듬어진 판돌을 세워 땅위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바둑판식(기반식) 고인돌 ?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주의에 여러 개의 굄돌을 놓아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개석식 고인돌 ?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내레이션 고창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가장 조밀하게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각종 형식의 고인돌이 다양한 크기로 존재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들은 고창 외에 강화와 화순에 존재한다. 자막 강화군 부근리 고인돌 내레이션 특히,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형태로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추고 있다. SC . 덮개돌 규모 6.4미터, 너비 5.23미터, 두께 1.12미터, 무게50톤 내레이션 높이가 2.45미터나 되는 고임돌 두 개가 땅위로 솟아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위에 길이 6.4미터, 너비 5.23미터, 두께 1.12미터, 무게가 무려 50톤이나 되는 덮개돌이 얹혀 있다. 덮개돌 과 2개의 대형 고임돌이 이어진 형태가 긴 통로를 가진 구조물을 연상시킨다. 지면으로부터 높은 곳에 수평으로 놓인 덮개돌의 형태가 위태로우면서 안정적이어서 신비하기까지 하다. 시신이 안치되는 돌방이 땅 위에 노출된 형태의 탁자식 고인돌은 대부분 일찌감치 도굴당하거나 훼손되어 부장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부근리 고인돌 역시 부장품이 없다.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어느 집단을 상징하는 기념물이거나 제단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자막 화순군 고인돌 유적지 내레이션 화순 고인돌은 비교적 최근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화순군은 고인돌 발굴 당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대신리 고인돌 발굴 보호각을 만들어 현장보존에 힘쓰고 있다. 화순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규모가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는 핑매바위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길이 7.3m 폭 5m 두께 4m 무게는 무려 28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자막 핑매바위 고인돌 길이 7.3m, 폭 5m, 두께 4m, 무게 280톤 고인돌 채석장 내레이션 화순 고인돌 유적지가 최근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고인돌 주변에서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채석장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채석장 아래에는 덮개돌의 채석 흔적과 채석하다 중단한 석재 등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형태의 고인돌이 있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나 고인돌 축조에 따른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밀집도나 규모면에서 세계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고인돌 문화를 가지고 있다. 초기 공동체 사회의 힘과 결집, 협동의 산물이었던 고인돌. 단순히 거대한 바위가 아니라 고인돌은 고대인이 행했던 움직임의 흔적이며 유구한 우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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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우리의 극적인 노래, 판소리
판소리의 탄생과 역사를 알아보고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5대판소리의 우수성에 대해 알아보자. *나래이션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로 사설이 우화적인 이야기이고 재치있고 아기자기한 소리와 아니리 발림으로 짜서 해학적인 맛을 들려있는 작품이다. 최동현/교수 Q.판소리란? - 한사람의 창자 즉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한사람의 고수 북 반주를 하는 것으로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음악이면서 연극적인 부분이 있는 그러한 예술을 뜻합니다. Q. 판소리구성요소란? 판소리를 하게 되면 소리판 장소에 소리판의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이 있고, 북 장단을 치는 고수가 있고, 또 듣고 보는 청중이 있습니다. 소리꾼은 노래를 부른 것이죠, 우리가 잘알고 있는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 판소리의 조선 후기를 살펴보면 판소리 선생, 동리 신재효가 있었다. 신재효는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소리꾼들을 후원했다. 또한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다는 길을 열었다. 만년에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등 판소리의 여섯마당을 골라서 그 사설을 개작하였으며, 작품 전반에 걸쳐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게 하였다. 현재 전창되고 있는 판소리는 5마당만이 남아있다. 구수하고 구슬픈 소리는 판소리 심청가이다. 심청가는 심봉사의 딸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빠진게 된다는 이야기의 구성이며 슬픈 대목이 많아서 소리 또한 계면조로 된 슬픈 노래가 많은 것이 심청가의 특징이다.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를 단가라고 말한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 일부가 판소리화 된 것을 동리 신재효가 개작하면서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로 정착되었다. 박타령이라고도 하는 흥보가는 우스운 재담 대목이 많이 들어 있고 놀부가 박타는 대목에는 잡가가 나오기 때문에 해학적인 마당으로 꼽힌다. 청중들에게 익숙하고도 가장 오래된 문헌 판소리 춘향가이다. 춘향가는 문학성이나 소리의 음악성으로 보아 예술성이 높고 청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마당이다. 이로써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은 공감대가 형성됨으로 소리판은 완성된다. 이를 판소리라고 한다 삶의 희노애락을 음악과 어울려 표현한 전통예술 판소리 판소리는 옛 부터 오늘날까지 서민들의 한을 풀어내는 심혈을 소리로써 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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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백제의 아름다운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백제의 우수한 불교문화인 서산 마애삼존불에 대해 알아보자. ---대본--- 자막 : 백제의 아름다운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자막 : 충남서산의 가야산계곡 자막 : 이곳에는 백제불교문화의 최고걸작인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인터뷰. 구차도(서산시청 문화광광과) Q. 서산마애삼존불의 발견당시 이야기 이 지역주민들이 나무하러 왔다가 우연히 발견됐고요, 그 이전에는(서산마애삼존불의 존재를)아무도 모르고 있었죠. 홍사준 박사님(미술사학자)이 보원사지 터를 발굴 조사하러 왔다가 동네 주민들로부터(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유적지 발굴단)이 1959년도에 발표를 하고, 1962년 12월 20일날 국보 제 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자막 : 커다란 바위 위에 새겨진 3개의 불상 자막 : 이름하여백제의 미소 자막 : 중심에는 현재를 의미하는 석가여래입상 자막 : 왼쪽에는 미래를 의미하는 미륵반가사유상 자막 : 오른쪽에는 과거를 의미하는 제화갈라보살 자막 : 모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인터뷰. 신소연(국립중앙박물관) Q. 한국불교미술사에서 백제미술의 가치는? 백제는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불교문화를 받아들였고요, 이를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삼국의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특히 신라의 사찰건립과 석탑건립 등 불교의 전반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떻게 보면은 삼국 불교문화의 기반을 백제가 닦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막 : 삼국시대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우던 백제 자막 : 백제인들의 우수한 미적감각이 담겨있는 최고의 작품 자막 : 서산마애삼존불 촬영에 도움을 주신 분들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구차도님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신소연님 서산시 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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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실학을 집대성하여 부국강병을 꿈꾼 다산 정약용은 한반도 실학사상의 대부이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하고 시대의 문제점을 파악한 후 개혁 방향을 제시했던 정약용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대본---------- 제목 :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내레이션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유일하게 원본이 아닌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1975년 이후 시작된 복원 공사의 결과물인 현재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수원화성의 축조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의 기술적 정밀함 때문이다. 수원화성은 화성성역의궤의해 정밀하게 복원되었고 ‘감히 이런 복제품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고 분노하던 유네스코 심사관들도 화성성역의궤를 살펴본 후 수긍하고 등재를 허락했다고 한다. 정조의 지시로 단 2년 만에 제작된 수원화성은 당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일인 것이 분명하다. 특히, 화성성역의궤에 담긴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극한까지 이용한 것인데 중국의 것보다 무려 4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치밀하고 실용적인 계획과 기술이 적용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수원화성 축조와 거중기의 제작 그 모든 증축 계획의 중심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이 있다. 수원화성 축조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다산 정약용은 개혁과 개방, 실학적 가치를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했고,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하였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학으로 불리는 성리학을 유교적 전통으로 인식했다. 지나친 성리학 편향의 한계가 드러났을 때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실학사상을 자신의 저서에 반영했다. 인터뷰 김언중 교수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주자의 성리학이 상당히 훌륭한 학문이기는 한데 학문의 가치관도 수명이 있는 것 같아요. 500~600년 되다보니까 본 정신이 사라지고 찌꺼기 혹은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부각되는 그런 상황이 되어서 그것을 대체 하려는 움직임, 사상 이것이 대부분 실학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다산 선생은 그 당시의 사회가 너무나 썩고 부패해서 일초일목, 사람뿐만 아니라 초목까지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고 살리려면 역시 학문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 다산 선생께서 60대에 들어 돌아가실 때 까지 15년 정도는 스스로 호를 사암이라고 하셨어요. 그 사가 뭐냐면 기다릴 사 자인데 이 시대에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후세의 누군가가 내 책을 보고 이것이 현실 타계의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는 것을 알고 또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원리라는 것을 알고 이것을 수용해서 잘 발전시켜줄 것이다 이런 기대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현실에서는 자신의 것이 응용이 되어 해결이 되리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자막 다산초당 / 전남 강진군 다산 유배기간 중 10여 년간 생활(1808~1818) 내레이션 가장 큰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긴 유배 생활의 시련이 시작되었지만 오히려 정약용은 학문에 몰두하여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그는 저서 경세유표를 통해 통치, 상업, 국방중심의 도시건설과 토지개혁을 바탕으로 한 세제, 신분 등 모든 제도를 고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 개발을 해야한다는 국가 개혁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자막 경세유표(經世遺表, 1817) 목민심서(牧民心書, 1818) 여유당집(與猶堂集) 내레이션 또한 목민심서를 통해 목민관으로써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였다. 방대한 저작을 통해 최고의 실학자가 된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업적은 경집 232권 문집 267권 등 499권에 달하며 말년에 저작에 대한 정리에 온힘을 기울여 503권의 여유당집을 완성하였다. 인터뷰 김언중 교수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구상이라도 실제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고 아주 실제적으로 현실의 효과를 나타내는 현실적인 것에 착안을 해서 최선을 다 하자는 것이 다산선생의 구국방략이고 평소의 소신이었습니다. 내레이션 정약용은 개혁의지를 집대성했고 개혁의 당위성을 명백히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의 사상에는 빈곤과 착취에 시달리던 민에 대한 애정이 늘 드러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했던 양심적인 지식인 정약용. 그의 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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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한국문화100] 한국인의 이야기를 빚어낸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한국에만 있는우리 고유의도자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도자기며 예술적 미감이 뛰어나다. 내레이션 200년의 역사. 가마터가 발굴되면서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사기가 있다. 300점의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우리의 한국미가 담겨있는 세계 유일한 도자기이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분청사기의 도요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200여년 전 부터 분청사기가 발견되고 제작되고 있는 곳이다. 김옥수 선생을 만나 분청사기에 담긴 우리 한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을 갖고 있는 분청사기. 분청사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백토의 분장 기법에 있다.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분청사기만의 기법과 제작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광주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분청사기 전시장. 이곳은 일반인도 쉽게 분청사기를 접 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인이 빚어낸 가장 독창적인 도자,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세계에 내놓아 손색없는 우리의 특색 있는 문화유산이며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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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별자리로 담은 우리의 사상, 천상열차분야지도
기획의도 : 새로운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 새로 출범한 왕조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한다는 당위성을 들어내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만들어진 과정과 그 속에는 어떤 의미들을 담고 있는지 영상으로 표현 제작내용 : 만 원짜리의 뒷면의 배경을 장식하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내용과 어떤 특징이 있는지 담은 영상 내레이션 : 이곳은 우리나라 천문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입니다. 학생들이 연구원 견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천문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모습인데요. 과거 우리나라의 천문을 대표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폐 만원권을 보면 과거 천문역사에 대해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뒷면의 배경을 장식하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할까요? 중국의 순우천문도와 비슷한 모습에 천상열차분야지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다른 점을 발견 할 수 있었는데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별을 묘사할 때 별의 크기를 달리하여 밝기와 모양, 별의 위치를 더욱 자세히 표현하였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별의 표시가 현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별의 등급과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당시 우리의 천문학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서양에서는 동물과 사람으로 별자리를 표현했고 우리의 별자리는 서양의 별자리와는 달리 지상 세계의 사회구조를 하늘에 옮겨 놓은 것인데요. 천상열차분야지도 가장 중심부분에는 임금과 왕실들이 사는 궁궐을 상징하는 별자리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밖의 원은 각종 정부시설과 관료들을 상징하는 별자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대의 천문지식과 정치사상이 담겨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유산이자 세계적인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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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한국문화100] 마음을 울리는 소리 대금
대표적인 관악기 대금을 살펴보고 삼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긴 역사를 이어온 소리의 의미를 소개 ----------대본---------- 자막 아리랑 ? 연주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정승 교수 내레이션 세상의 모든 걱정을 잠재울 것만 같은, 마음을 울리는 소리 대금. 대금은 신라시대 때부터 연주되어 온 우리나라 고유의 관악기이다. 대금의 소리는 호소력 강한 흥이 나며 힘차다. 서양악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음색은 마치 우리민족의 고유한 특징을 표현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자막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 - 삼국유사(三國遺事) 내레이션 신라시대 하늘이 보낸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성난 파도가 가라앉고 적군이 물러났다는 만파식적 설화로부터 시작된 대금의 소리는 여전히 유연하면서도 장쾌하게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함께 하고 있다.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정승 교수 대금은 천년이 넘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악기입니다. 물론 거문고, 가야금, 해금과 같은 악기도 우리음악의 특징을 잘 살려내면서 발전해온 고유한 악기라고 볼 수 있지만 비슷한 유형의 악기들이 중국에 유사한 악기 군으로 있는 반면에 대금과 같은 악기의 경우는 디즈라는 중국에 비슷한 악기가 있기는 하지만 악기의 음색과 재질, 연주법과 같은 것들이 매우 독특하고 독창적이고 우리나라만의 소리와 악기 연주법을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악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자막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년(성종 24) 왕명에 따라 제작된 악전(樂典) 대금의 구체적인 모습이 담긴 가장 오래된 문헌은 조선시대 중후반의 악학궤범이라는 문헌을 들 수 있습니다. 대금은 국악기들이 거의가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히, 대금의 경우는 쌍골죽이라고 하는 매우 특별한 대나무 하나만을 가지고 구멍을 뚫어서 바람을 집어넣고 구멍들을 손가락으로 막아가면서 연주하는 악기가 되겠습니다. 불 취(吹)자를 써서 취구라고 하는데 취구와 또 손가락으로 막게 되는 이 구멍을 손가락 지(指)자를 써서 지공이라고 하는데 이 구멍사이에 천공이라는 구멍이 있습니다. 청공이라는 구멍에는 재미있게도 갈대 속에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벗겨내서 아교 칠을 한 다음 껍질을 붙여 악기를 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악기 소리를 들을 때 특히, 대금소리에서 매우 청아하고 맑은 소리가 나면서 뭔가 얇은 막이 흔들리는 독특한 소리를 감상하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청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레이션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면. 이곳에서 연주가이자 제작자로써 대금 제작에 힘쓰고 있는 명인 김주형씨를 찾아가 봤다. 그에게 대금의 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대금공방 금률 김주형 대금의 소리는 일반적으로 슬프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금소리는 슬픔, 한을 풀 수 있는 악기입니다. 대금의 소리는 연주하는 사람이 입김바람과 호흡으로 호흡은 마음으로 넣어서 듣는 사람도 슬픈 느낌을 공감하면서 자신에게 쌓여 있던 슬픈 한을 풀어내려는 소리가 대금의 소리입니다. 내레이션 악기가 만들어지는 재료의 순수한 특성과 연주자의 부는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대금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 한을 풀어내는 소리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대금공방으로 찾아가 소리가 탄생되는 과정을 알아보자. 인터뷰 대금은 쌍골죽이라는 대나무를 구해서 만드는데 어떤 것이 쌍골죽이냐면 육안으로 보았을 때 골이 파여 있습니다. 밑의 뿌리에서부터 양쪽으로 골이 파여 있는 쌍골죽 재료를 체취해서 대금을 제작하게 되는데 쌍골죽의 특징은 앞에 보시면 살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살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우리가 악기를 만들 때 일정한 세로 내경을 뚫어서 불면 대금 특유의 청아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악기로 탄생됩니다. 자막 1. 쌍골죽 불 작업 쌍골죽 나무 재료를 진을 빼면서, 진을 빼 구우면 이렇게 누렇고 붉은 색이 납니다. 한마디씩 단계적으로 작업을 하는 과정입니다. 자막 2. 자연건조 조금 전 제가 불 작업한 재료인데 이제 방의 그늘진 곳에서 자연건조를 하게 됩니다. 자막 3. 대금 내경 뚫기 이 작업은 새로운 내경을 뚫는 작업입니다. 자막 4. 지공파기 지공은 대금의 음정 위치를 정할 때 파게 됩니다. 자막 5.취구파기 이 부분이 취구인데 대금제작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취구를 잘 파려면 악기 만드는 사람이 연주자 못지않게 연주경험이 있어야 되고 마치 의사가 환자를 다루듯 악기제작자도 연주자의 다양한 취향에 맞게 취구를 팔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자막 6.줄 감기 지금 이 작업은 마지막 공정 작업인데 대나무에 줄을 감습니다. 줄을 감는 이유는 대나무가 수분을 먹었다 뱉어내는 숨 쉬는 과정에서 대나무가 갈라지는 현상이 있는데 그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서 줄로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이정도 소리의 성음이 나면 아주 훌륭하게 완성이 잘된 악기입니다. 제작가로서 가장 좋은 악기란 것은 사실, 잘 만들고 좋은 재료를 찾아서 악기를 비싼 가격에 판다면 경제적으로 도움은 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내가 만든 대금이 가장 적합한 주인을 찾아가서 그 악기로 아주 사랑받고 잘 사용되고 있을 때 그때가 가장 악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앞으로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용기도 생깁니다. 자막 대금독주 - 청성자진한잎 내레이션 오랜 세월, 우리민족의 마음을 울린 대금소리. 사람의 목소리를 닮아 정겹고 따뜻하게 속삭이듯 그 소리가 울리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의 입에 가장 가까운 악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금.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악기로 기억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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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식객 성찬이 들려주는 냉면이야기
냉면 한 그릇에는 격동의 근 현대사가 담겨있다. 한국전쟁이후, 냉면에는 실향민의 삶이 녹아들었다. 물냉면의 발상지 평안도에서는 추운 겨울에 먹었고 서울사람들은 더운 여름에 먹었다. 임금은 물론 일반 서민들도 즐겨먹었던 냉면. 시대, 기후, 상황에 따라 변한 민족의 별미 냉면에 대해 알아본다. ----------대본---------- -신선한 식품만 제공하는 성찬 식품이 왔습니다. 어머님들 나와서 구경하고 가세요!네, 성찬 식품입니다-아니, 그놈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집에서 냉면을 먹자고 그러냐고! 내 이번에는 아주 끝장을 내버리겠어!-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 식객의 주인공 성찬입니다. 친한 형님 두 분이 때문에 또 싸우시네요.-이번에는 냉면?-응, 진수씨. 형님들 크게 싸우겠어.-에이, 아무리 그래도 냉면하나 가지고 싸우겠어?-냉면은 달라. 아마 두 분이 의절하게 된다면 그 원인은 냉면 때문 일거야. -뭐라고? 말도 안 돼.-냉면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검객과 같아.-냉면이 다 똑같지 않나? 물냉면, 비빔냉면-그렇지 않아, 냉면은 종류도 조리법도 까다롭고 다양해. 자막 첫 번째 이야기 평양냉면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냉면은 우리나라 대표 여름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이것이, 물냉면으로 알려진 평양냉면이야.-물냉, 비냉. 단순하지 않은 냉면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 -조선중기 장유는 계곡집에서 냉면이란 단어를 썼어.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먹고”라는 시를 남겼지. -세계에 수많은 면 요리 중에 차가운 파스타 같은 것이 드문 것을 보면 냉면은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특이하고 귀한 음식문화야. 자막 장유(1587~1638) 계곡집(谿谷集 1643) -할아버진 냉면을 겨울에 드셨어요?-냉면은 밤참이라 겨울이 긴 이북에서 발달했지. -평안도에서는 겨울에 메밀국수를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단다.-한국전쟁이후 실향민들이 즐겨먹으면서 대중화된 거구나.-맞아. 냉면 한 그릇에는 격동의 한국사가 담겨져 있는 거야. -그럼, 본격적으로 평양냉면에 대해 알아볼까? -냉면의 핵심과 차이는 바로 면과 육수야. -툭툭 끊기는 메밀면발의 풍미가 평양냉면의 핵심이지. 그래서 평양냉면은 물냉면의 형태로발달하게 된 거야. 인터뷰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 김영환꿩이 있을 때는 꿩을 잡아서 육수를 내고 꿩이 없을 때는 닭을 삼고 돼지고기를 삶아서 육수를 내고 굉장히 부잣집에서는 소를 잡아 육수를 내기도 하고 이렇게 육수를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이 육수가 동치미와 배합되면 아주 묘한 맛을 내고 그 척박한 메밀이 가지고 있는 향까지 즐겨가면서 조선의 3대 음식으로 불릴 정도로 굉장히 이북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거지요.켄 홈이라고 누들로드라는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친, 전 세계 면의 역사를 살펴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켄 홈은 우리한국의 평양냉면을 만나고 나서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면요리라고 했습니다. 자막 켄 홈(Ken Hom) 미국의 요리연구가, 방송진행자 -우와, 냉면이 단순한 차가운 면요리가 아니었구나.-그렇지? 냉면은 쉬운 음식이 아니야. 이제 함흥냉면에 대해 알아보자. 자막 두 번째 이야기 함흥냉면 -함경도에서는 함흥냉면을 회국수 또는 농마국수로 불러. 양념에 버무린 생선살을 고명으로 올리지. 함흥냉면도 평양냉면과 마찬가지로 실향민에 의해 남한에 뿌리를 내리면서 냉면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했어. 인터뷰 신창면옥 2대 대표 맹재범함흥냉면은 함경도 지방에서 즐겨먹던 음식인데요. 날씨가 워낙 춥기 때문에 쌀보다는 질 좋은 감자가 많이 났습니다. 감자를 이용해서 면을 만들고 또 그쪽 바닷가에서 명태나 가자미가 굉장히 많이 잡혔다고 해요. 겨울에 그것을 매운 양념에 버무려서 같이 먹던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평안도는 메밀면, 함경도는 감자면, 냉면에는 지역의 특수한 문화가 담겨 있구나.-일반적으로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냉면을 구분하고 있지만 사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그 형태에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담고 있는 ...-아! 알았어, 알았어. 나는 냉면 먹으러 간다!-잠깐만, 진수씨.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 진짜가 아직 남아있다고!-자! 기대하시라! 냉면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에도 최고의 냉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막 세 번째 이야기 진주냉면 -뭐야, 여가는 경상남도 진주시잖아. 여기에 냉면이 있다는 거야?-어, 여기에 냉면이 있는데-무슨 소리야, 냉면은 이북음식이라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어, 있는데-있다니까! -없어!-진주에는 진주냉면이 있어!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진주지역의 전통음식이었어. 1930년대 중앙시장을 거점으로 대중화 되었지. -보라! 이것이 바로 진주냉면의 놀라운 비주얼이야!-진주냉면은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에서 ‘랭면 가운데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라고 소개되기도 했어. 인터뷰 하연옥 대표 하연옥진주냉면의 특징은 첫 번째 해물을 가지고 육수를 내고 14일 동안 숙성을 시켜 육수로 쓴다는 것이고요. 다음 특징은 소고기 육전이라는 것이 들어가는데요. 소고기 육전은 소 엉덩이 부분이에요. 쉽게 말하면. 기름기가 제일 적은 부분으로,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을 입혀서 조금 센 불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날 정도로 굽는 것이 좋습니다. 진주는 함양, 산청 옛날에 메밀주산지였어요. 여기가. 지금은 온도가 올라 기상변화가 있어 안하지만 메밀 주산지였기 때문에 메밀을 많이 썼고요. 특히, 진주냉면은 장밀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희는 고구마 전분 70%에 메밀가루20%, 장밀 10%를 섞어서 면을 아버지 때부터 빼요. 고구마, 감자 전분 100%처럼 많이 질기지는 않지만 드시면 면이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을 느껴요. -진주는 경산도 양반문화의 중심지잖아. 전라도에 전주가 있다면 경상도에 진주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맛이 뛰어난 지역이야. -진주냉면의 백미는 바로 해산물을 사용해 맛을 내는 육수에 있어. 인터뷰 진주는 남해안 가까이 있어요. 최고 구하기 쉬운 재료인 해산물 위주로 내게 되어 있죠. 디포리라고 하는데 육수에 필히 들어가야 해요. 왜냐하면 시원한 맛을 내기 때문에. 멸치는 고소하고 구수한 맛을 냅니다. 황태머리, 깊은 맛을 내죠. 깊은 맛을 낼뿐더러 시원한 맛. 보리새우는 향이 아주 강해요. 진주냉면은 먹어보면 독특한 향기가 날거에요. 알 수 없는. 보리새우가 그 역할을 해주죠. 새우, 바지락, 홍합이 들어가면 감칠맛이 많이 날뿐더러 시원하고. 이것이 진주냉면 완성된 육수입니다. 15일간 숙성을 시킨거에요. 숙성을 시키지 않으면 해산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어요. 15일간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맑은 밤색, 독특한 향기가 나는 진주냉면 육수가 탄생됩니다. -진수 : 으악! 도저히 못 참겠다! 성찬, 나 일단 한 그릇 먹고 올께! -진수씨도 여러분도 우리음식문화 냉면에 대해 잘 알게 되셨나요? 앞으로도 우리 냉면 맛있게 즐겨주세요. 진수씨, 나도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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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Ya~ 불고기(Bulgogi)다!
한류열풍과 함께 전세계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한식들 그중에서 대표 한식하면 단연 불고기가 떠오르는데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불고기와 다른 형태의 불고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내레이션 : 한류 열풍을 따라 전세계로 알려지고 있는 한식들. 한식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하면 단연 불고기인데요. 이젠 미국에서 불고기를 먹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인터뷰 Rylee / 미국LA: (불고기) 맛이 신선했고 향이 좋았어요. 인터뷰 Daqn / 미국LA : 맛있었고 신선했으며 향이 풍부하고, 매우 만족한 시간이였어요. 그리고 국물양념과 같이 나온 다양한 야채들도 있었던거 같은데, 불고기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자, 지금부터 문화피디 리포터 저 혜원이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음식 불고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 자막 : 김혜원 문화PD 리포터 : 지금 부터 한국의 대표고기 불고기에 대해알아보고 불고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지금부터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막 :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김경은 연구원 연구원 : 안녕하세요 리포터 :.오늘 어떤 불고기를 만드는 건가요? 연구원 : 오늘불고기는 서울식 불고기로 만들어볼 건 데요. 서울식불고기는 옆에 이용된 전골팬을 이용해서 국물이 자작하게 밴 불고기 입니다. 리포터 : 서울식 불고기는 어떻게 만드는지 재료를 알아보겠습니다. 자막 :불고기재료소개(불고기감 400g, 양파 1개, 표고버섯 3개, 팽이버섯 100g, 대파2대, 육수 2컵) 자막 :양념(진간장 4T, 설탕1T, 배즙 2T, 다진파 2T, 다진마늘 1T, 후춧가루 1/2t, 참기름 1t), 선택 당면100g, 모듬쌈 리포터 : 그러면 직접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자막:불고기 조리순서 1.모든 재료는 깨끗이 씻어 놓는다. 연구원 : 먼저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건데요 자막 : 불고기조리순서 2. 고기는 핏물을 빼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연구원 : 고기를 썰어서 잔깐얹어 놓고 이제 양념을 한번 만들게요 . 여기 있는 양념을 골고루 섞어주세요. 자막 : 불고기 조리순서 3. 준비된 양념재료를 고루 섞어 놓는다. 연구원 :양념이 준비되었으면 고기를 넣어서 잘주물러 주세요. 자막 : 불고기조리순서 4. 고기를 양념에 재워 숙성시킨다. 리포터 : 혹시그러면 다른나라에도 이렇게 양념을 재는 고기요리가 있나요? 연구원 : 불고기와 비슷한 간장양념요리는 많지만 미리 재워놓는게 없습니다. 불고기의 특징이죠. 자막 : 양념에 고기를 30~40분 정도 미리 재워 놓는 것이 우리나라 불기만의 특징. 자막: 불고기조리순서 5. 양파와 표고버슷은 채썰고, 대파는 어슷썰어 준비한다. 연구원 : 이제 30분숙성된 고기를 가지고 불고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그러면 고기가 달라붙지말라고 식용류를 뿌리겠습니다. 자막 : 불고기 조리순서 6. 불고기판을 달구고 고기와 채소, 육수를 넣고 잘 굽는다. 연구원 : 팬이 어느정도 달궈졌으면 고기를 굽겠습니다. 칙소리가 나야 고기의 육즙이 빠지지않고 고기본연의 맛이 살아납니다.이위에는 고기불판이라고 생각하고 밑에 국물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됩니다. 혜원씨가 채소를 보기좋게 담아주세요. 당면은 기호에 따라 첨가하시면됩니다. 자막 : 불고기조리순서 7. 기호에 따라 불린 당면을 첨가하기도 한다. 연구원 : 육수를 고기 위쪽으로 부어줍니다. 자막 : 육수는 고기의 육즙이 나오기 때문에 일반 물을 사용해도 되고, 양지, 파, 마늘, 후추를 넣고 푹 우려낸 육수를 사용해도 된다. 연구원 : 이제 잘끓어서 익으면 접시에 담으면 됩니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좋은부위로 먹지 않았습니다. 완벽히 익혀 먹는게 전통 방법입니다. 완성 되었습니다. 자막 : 서울식 불고기 완성 서울식 불고기 말고 다른 스타일의 불고기는 어떤것들 있을까요? 먼저 광양식 불고기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광양식 불고기는 어떤 불고기 인가요? 인터뷰 : 김만옥 / 광양불고기 대표 광양불고기는 서울식 불고기와 다르게 즉석에서 바로 양념을 합니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바로 양념을 해서 나가니까 손님 기호에 맞추어 맛있게 드실 수 있는게 특징이고, 바로(즉석에서) 양념을 하니까 육즙이 살아있어서 고기가 신선하고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인터뷰: 김현성/서울 신월동(고기에서)숯향기가 나고 부드러운게 특징인거 같아요 인터뷰 : 정혜연 / 서울 신월동 고기가 살아있어요. 인터뷰 : 김주나 / 서울 신월동 전골(서울식 불고기)은 육즙이 없어서 말이 덜하고, 광양불고기는 육즙이 베어 나오니까 훨씬 맛있는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만나볼 불고기는 언양불고기 입니다. 사장님 언양불고기는 어떤 불고기 인가요? 인터뷰 : 김성준/ 최영희 언양불고기 대표 언양(불고기)은 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언양지역이 원래 한우로 유명했었어요. 그래서 소고기 불고기가 유명했었는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인부들이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먹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어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국물없이 양념을 자박자박하게 해가지고 숯불에 구워내는게 특징이죠. 인터뷰: 이광재/ 서울 마장동 겉으로 봤을때는 떡갈비랑 이거랑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먹어보면 떡갈비보다 훨씬 부드러운거 같아요. 인터뷰 : 배윤정/ 서울 석관동 언양불고기를 먹으면 부드럽고 씹기도 편하고, (고기가) 연해서 모든 연령대가 쉽게 즐길 수 있는 맛인거 같아요. 지금까지 불고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한류열풍과 함께 불고기를 비롯한 다른 한식들까지도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날 까지 우리나라 불고기 화이팅! 제작에 도움을 주신불들 출연자 김경은 연구원(숙명여대한국음식연구원) 김혜원 문화PD 내레이션 김혜원 자료협조 LA한국문화원 양부용 문화PD, 뉴욕 한국문화원 김지애 문화PD 장소협조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 연구원, 서울양천구 신월4동 광양불고기(김만옥대표), 서울 성동구 행당1동 최영희 언양불고기(김성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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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지식국가 대한민국의 원동력 '서당'
우리의 참 배움터 서당 서당은 향촌사회의 사설 교육기관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적 정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매일 교육계의 뉴스는 체벌, 촌지, 입시 과열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인성교육을 다루는 교재조차 없는 오늘날 지식 위주의 교육 현실과는 우리 옛 서당 교육은 꽤 대조적이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스스로 수양하는 법을 가르쳤던 서당. 지금부터 현대적 서당의 모습 속에서 우리 옛 서당 교육 방식을 알아보자. *나레이션 우리의 참 배움터 곧은 문이라는 뜻의 유정문, 마루 한 칸, 방 한칸 탁 트인 세상을 볼 수 있는 낮은 지붕.. 짧은 처마 우리의 옛 서당교육문화가 숨 쉬었던 도산서당.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양지서당 이곳 양지서당은 옛 우리 서당교육문화를 계승해오며 지켜오고 있는 곳이다. 지금부터 현대적 서당의 모습 속에서 우리 옛 서당 교육 방식을 되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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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투박하고 소박하게, 막사발 이야기
투박성, 토속성, 실용성 등이 두루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16세기 일본에 건너간 이래, 국내보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도자문화인 막사발에 대한 영상. 내레이션 일본 교토시 사쿄큐. 이곳에는 일본의 국보인 ‘이도차완’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도차완은 16세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천여점의 막사발 중 남아있는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이 막사발을 ‘이도차완’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조선도공이 만드는 막사발은 보물이 되어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한일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데려간 조선도공들은 일본 도자기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막사발은 예로부터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 등 주로 서민들이 쓰던 수수한 생활그릇이었다. 대접과 같은 모양으로 벽면은 곧게 솟아 올라있고, 아가리는 넓게 바지라진 형태를 갖고 있다. 살이 두껍고 겉 표면이 부드럽지 않은 특징을 가지는 막사발은 우리 땅에서 채취된 황토로 빚어내어 밝은색의 장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긴 사치스럽지 않은 그릇이다. 경남 하동군 새미골. 사기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400여년 전 이름없는 도공들의 고향이었다. 현재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막사발의 정신을 잇는 도예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막사발의 정신을 잇고 있는 장금정 선생을 만나보자. 우수한 우리의 도자문화 막사발. 그 수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한국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우수한 막사발을 지키는 일이야 말로 한국인의 혼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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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소설가 이순원의 강릉단오제 이야기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등록된 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대본---------- 내레이션 뜬금없이 단오라니, 그건 이미 잊혀진 명절이 아닌가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옛날엔 단오가 4대 명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지요. 민족의 큰 명절인 설외에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그렇게 네 명절을 크게 쇠었던 거지요. 볍씨가 못자리로 나가 싹이 나고 푸른 모로 자라 모내기를 할 때 온산에 짓게 물든 녹음처럼 단오가 다가왔던 겁니다. 어린 시절, 단오는 나에게 꿈이었습니다. 단오는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태어난 대관령 아래의 산골마을을 벗어나 사람 많고 자동차 많은 강릉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손을 놓쳐 길이라도 잃을까봐 형제가 손을 꼭 잡고 다녀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진기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난전과 그네뛰기, 농악놀이, 씨름대회, 곡마단 등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뷰 조규돈 /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일제침략기 때의 탄압 속에서 한 해 (강릉단오제를)안 지냈더니 가뭄이 들었어요. 그러니 민심이 흉흉한 거야, 단오제 안 지냈다고. 그러니 일본군수가 할 수 없이 (강릉단오제를) 지내라고. 그래서 기우제를 지냈어요. 그런데 남대천변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전에 물에 떠내려갔어. 그 다음부터 일본군수도 막지 못했던 것이 단오제이고 내레이션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입니다. 옛날 고대 부족국가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비롯된 단오는 신을 모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본래 김유신 장군이었던 대관령 산신과 범일국사였던 대관령국사성황신 그리고 정씨처녀였던 국사여성황신 이 세분의 신이 바로 강릉단오제의 주신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이 세분의 신이 지역의 안녕을 지켜주고 질병을 막아주고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루시 관동대학교 인문학장김유신 장군은 삼국을 통일한 장군이고 범일국사는 고려 건국에 힘을 보탰던 승려거든요. 역사에서 승리한 분을 신으로 모시는 거죠. 그런가하면 여성황은 호랑이에 물려죽은 여자거든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은 가장 실패한 인생인거지요. 그런데 강릉단오제에서는 승리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처참하고 반복하면 안타까운 실패한 삶을 항상 기억한다는 것이죠. 내레이션 강릉 단오의 준비는 단오가 꼭 한 달 남은 음력 4월 5일에 관청과 백성이 함께 정성스럽게 쌀을 모아 단오신주를 빚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모아진 쌀을 헌미봉정이라고 하는데 모아진 헌미로 단오제 기간 동안 중요한 제례에 쓰일 술도 만들고 또 떡도 만들어 나중에 단오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 그대로 돌려줍니다. 술은 열흘쯤 지나면 아주 잘 익습니다. 그러면 음력 4월 15일에 신주를 정성스럽게 차려들고 대관령으로 올라갑니다. 먼저 대관령 산신당에 가서 산신제를 올리고 다시 그 옆에 있는 국사성황사에 가서 성황님을 강릉으로 모셔가는 국사성황제를 올립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산신제와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신장부가 더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면 무당들이 그 뒤를 따라갑니다. 과연 어느 나무에 신이 내렸을까 이건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 이 신목이 바로 단오기간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몸이 됩니다. 국사성황신의 혼이 깃든 신목을 앞세우고 정씨처녀의 위패가 있는 여성황사로 이동하는 것이 국사성황행차입니다. 나무에 몸을 빌려 강릉으로 내려온 국사성황신을 국사여성황신 곁에 모셔왔다가 단오가 지난다음 다시 대관령으로 모셔다 드리는 동안의 축제가 바로 강릉단오제입니다. 단오를 이틀 앞둔 음력 5월3일 국사여성황사에서는 강릉단오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영신제가 펼쳐집니다. 영신제는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을 단오터에 마련된 단오제단으로 모셔가는 의례입니다. 영신제를 마치고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은 영신행차라는 거리행차를 통해 단오제단에 모셔집니다. 영신행렬은 시민들과 만나게 되고 시민들과 하나로 어우러져 이동합니다. 단오의 아침은 시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조전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전제는 풍년과 태평의 기원을 담아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 두 신께 제사를 받드니 잘 보살펴 달라는 기원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단오제 기간 동안 단오굿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대관령에서 모셔온 국사성황님과 국사여성황님께 우리 모두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굿입니다. 사람들은 가족 잘되게 보살펴 달라고 무당에게 돈을 건네기도 하고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소원이 적힌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는 소지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단오를 제일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은 단오장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는 난전을 구경합니다.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난전이 길 옆으로 자그마치 일 킬로미터나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팔도 음식을 파는 음식 난전 역시 그만큼 길고 다양합니다. 또 단오 신주와 수리취떡을 놓아두고 단오에 이 동네를 찾아온 외지 사람들에게 이곳 음식을 맛보이기도 합니다. 창포물에 머리 감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서 윤기가 나고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여름만 되면 마귀가 돌림병을 퍼뜨린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이 여름이 시작되는 단옷날에 향긋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길 바랬던 겁니다. 단오를 정리하는 송신제를 끝으로 강릉단오제는 막을 내립니다. 인터뷰 최명희 강릉시장강릉단오는 천년동안 우리 강릉시민과 함께 내려온 삶의 현장, 문화의 현장, 소통의 현장, 만남의 광장인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는 없는 우리 시민들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단오제가 얼마 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중의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그때 함께 신청 접수된, 단오명절의 유래와 기원의 원전이 되는 중국의 단오를 누르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에 이어 세 번째로 선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의 전승통로이자 재창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기준 중의 하나인 문화다양성과 창조성이 단오제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나 행사를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이 판단했습니다. 내레이션 그 시절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고장의 단오가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자라면서 세계에서는 우리나라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만 이렇게 옛 풍습 그대로 단오를 지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무엇보다 강릉단오제는 신이 납니다. 하루 이틀의 축제가 아니라 한 달도 넘는 기간 동안의 축제입니다. 단오가 되면 백리 밖의 사람들까지 다 단오장에 모여듭니다. 왜 그런지 한번만 와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 축제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주지 않던 어른들도 단오가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조금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그 돈을 받아들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 강릉시내의 단오장을 찾아가던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립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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