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털
검색
검색어
검색
이전
정지
재생
다음
전체메뉴
전체메뉴 펼쳐보기
문화체험
집콕+집밖 문화생활
한눈에 보는 문화정보
문화릴레이티켓
문화캘린더
문화공간·단체
문화공감
문화TV
문화 디지털 영상
문화영상
유네스코 등재유산
한국문화100
기관별영상
문화인터뷰
공감마당
공감리포트
카드뉴스
문화마루
문화SNS 지도
웹진
문화지식
문화자료관
전통문양
디자인문양
형태별문양
용도별문양
활용디자인
전통문양특별전
3D프린팅콘텐츠
전통문양활용
문양의 이해
전통문양사용방법
예술지식백과
실감형 콘텐츠
문화정보분석
문화정보 데이터분석
예술,관광 지도매핑 서비스
문화알리미
문화드림
채용·자원봉사 모집
문화지원사업
정책뉴스
문화이벤트
문화포털API
공지사항
기타
이용안내
사이트소개
자주찾는질문
서비스문의
마이페이지
개인정보수정
나의게시물
이벤트
English
문화홍보등록
문화체험
집콕+집밖 문화생활
한눈에 보는 문화정보
문화릴레이티켓
문화캘린더
문화공간·단체
문화공감
문화TV
공감마당
문화SNS 지도
웹진
문화지식
문화자료관
전통문양
예술지식백과
실감형 콘텐츠
문화정보분석
문화알리미
문화드림
채용·자원봉사 모집
문화지원사업
정책뉴스
문화이벤트
문화포털API
공지사항
로그인
메뉴펼쳐보기
공감리포트
문화영상
카드뉴스
웹진
문화SNS지도
문화마루 게시판
문화정보분석
문화N티켓
티켓 예매 발권 서비스
문화후기
관람 후기 공유
홈
문화공감
문화영상 (국내외 문화영상)
문화영상 (국내외 문화영상)
sns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톡
주소복사
인쇄
국내외문화영상
문화TV
한국문화100
문화직업30
인문학강연
국내외 문화PD가 제작한 쉽고 재미있는 문화영상을 즐겨보세요.
▶
3:45
[문화PD] 문화피디 20기에 이어 21기까지 섭렵한 김규현피디를 만나다
문화피디 20기에 이은 21기까지 활동한 김규현피디의 활동 21기에는 어떤 활동을 하였나? 직접 발로뛰며 활동한 그의 활동은? 2024년의 김규현 피디의 계획은? [대본] 안녕하십니까? 숏터뷰의 지원동 피디입니다. 오늘은 김규현 피디님을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문화피디 기에 이어 문화피디 기에 참여한 김규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먼저 이번 문화피디 기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제작과정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번 문화피디 기 활동 중에는 지난번에 참여하지 못했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참여할 수 있었는데 해당 촬영이 저에겐 굉장히 감명 깊은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인천 살아서 인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인천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네. 인천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 저도 피디님의 영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미술관 이름은 배달이 있다 스페이스 작은 미술관이었는데요. 약 년 전의 여인숙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어요. 년 전의 건물을 리모델링했더니 정말 대단하네요. 년이나 된 건물이었던 것에 한 번 놀라고 미술관이 굉장히 고유하고 예뻐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나무 냄새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 갈 것 같아요. 네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영상 덕분에 작은 미술관 꼭 가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으로는 영상 제작하면서 가장 알리고 싶었던 신기술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회차에 진행했던 가상현실 스포츠 센터가 생각나요. 어떤 점 때문일까요? 이곳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시설 이용이 가능하지만 주로 장애인분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양궁사격과 같이 실외에서 체험하기 힘든 활동들을 VR과 XR 등 다양한 디지털기기들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공간이었어요. 안에서 체험하시던 분들의 얼굴이 굉장히 즐거워 보였는데 디지털 기술이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던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회차 영상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은 문화피디 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요? 문화피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경인 지역에 위치한 여러 시설이나 장소에 들러 그곳의 관계자분들 그리고 이용하시는 시민분들을 촬영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 피디가 아닌 일반 영상 제작자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일들을 문화 정보원의 이름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어요. 네 저도 개인촬영을 하면는 많은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문화피디를 하면서 김규현 피디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 네 김규현 피디님께서는 이번 문화 피디 활동을 통해 년에 혹시 계획하고 계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저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년에도 꾸준히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고요. 저희 문화 피디 활동을 도와주시는 여러 매니저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화피디 기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청해보고 싶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의 년도에도 문화피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이것으로 숏터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김규현 피디님 함께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조회수: 19
▶
3:42
[문화PD] 문화PD가 전하는 문화PD의 이야기
챕터 1. 문화피디 소개 챕터 2. 문화피디 인터뷰 이번년도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촬영지 또는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 또는 촬영 속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내년에 문화 활동을 하신다면 담고 싶은 콘텐츠 또는 촬영 컨셉이 있으신가요? [대본] 다양한 지역에서 디지털 문화 콘텐츠를 담는 문화PD 오늘은 디지털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이를 담는 문화 피디 분을 소개하려 하는데요 문화PD가 담은 베스트 촬영지부터 촬영하면서 느꼈던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들 이번 편에서는 여러분들께 촬영 속 이야기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문화PD 기에서 최연소 PD로 활동하고 있는 홍준서입니다 제가 제작한 영상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콘텐츠는 돌담 시리즈라고 하는 총 삼편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지금 현재 제작 중인 회차 영상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이 회차 영상에는 제가 직접 돌담축제 현장을 찾아가서 그것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로 온라인 전시회를 개최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돌챙이 활동을 하고 계신 분과 직접 온라인 화상 인터뷰까지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내용들을 담은 영상이라서 가장 인상적인 그런 콘텐츠인 것 같습니다 돌담시리즈를 제작하게 된 것은 지역 간담회가 열렸을 때 한국문화정보원 관계자 분들 그리고 문화PD 기 운영을 담당하시는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이렇게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주만의 특별한 문화 그런 것들을 담을 수가 있어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년에 만약 문화피디 활동을 하게 된다면 약간 좀 데이터 신기술 관련된 여러 장소 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장소들은 제주에는 한정적이다보니 좀더 제주의 문화와 관련된 뭔가 디지털로 전환하고 그런 것들을 좀 촬영 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문화PD란 성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처음 이 문화PD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공문 협조 요청 이런 것들도 작성을 해야 되고 계획서도 작성해야 되고 혼자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도 많았고 첫 영상을 지금 돌아왔을 때는 많이 부족한 점들이 있는데요 그러나 점차 회차를 거듭하면서 이제 점점 영상 편집 실력 같은 것들 점점 영상 편집실력 같은 것들도 늘리고 여러 가지 영상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 보니 문화 피디 활동이 저에게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피디 활동은 영상을 전문적으로 편집하지 않으시더라도 여러 가지 멘토들과의 피드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기 때문에 영상에 관심 있고 이런 문화디지털 신기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문화PD 기의 활동에도 지원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문화PD가 소개하는 문화PD 올해 디지털 콘텐츠 문화를 재해석하면서 겪었던 자기만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촬영을 해서 느꼈 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들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기획부터 촬영 그리고 제작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쳐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문화피디 활동은 계속되니 여러분이 도문화 피디로 기대해주세요
관리자
조회수: 97
▶
6:53
[문화PD]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후기, 문지혜 PD 인터뷰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꼭 도전해봐야할 한국문화정보원 문화PD! 영상을 이제 막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구요? 그래도 괜찮아요. 좋은 영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요. [대본] 이프랜드 관우PD님 오셨어요? 저를 인터뷰하러 오셨다 들었습니다! 문화PD가 얻그제 발대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영상 촬영 중이네요. 문화PD를 하면서 느낀 것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며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Q. 지혜 피디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문지혜입니다. 저는 전통과 문화를 좋아하고, 파이널 컷만 좀 끄적여본 일반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화피디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피디보다는 문화라는 단어를 보고 아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거다 하고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 내용에 보니 자기소개를 영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하고, 온라인 면접도 보고.. 아,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었더라고요. 영상에 대해 잘 몰라도 할 수 있도록 매니저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영상교육, 저작권 교육, 영상 기획에 대한 교육을 해주셨던 게 영상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Q. 저도 활동하면서 배워가는 것도 많다고 느꼈던 문화피디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문화피디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 제작 과정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든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에 있는 메타 망원경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현재는 볼 수 없는 옛 건축물을 메타 망원경을 통해 보여주는 기술인데요. 문화피디로서 첫 영상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전통과 문화에 대한 정보 전달 만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영상으로 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갔습니다. 첫 달에 다행히 우수작으로 뽑혔는데 그걸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3회차까지 전통문화와 연관된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과정 중에 좋았던 점은 한국 문화 정보원의 문화피디라는 이름으로 박물관 학예사님이나 회사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 내용을 영상에 넣음으로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관우 님 왜 수염을 달았어요? 어 그렇네 수염이 있네 있는 줄 몰랐어요 잘 따라오고 계시나요? 열심히 따라오고 계시네 우와 예쁜데 찾았어요 저 춤추는거 샀어요 영상으로 잘 담아주세요 어 근데 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되게 뻘쭘해보여요 박수라도 치셔야하는거 아니에요? 익숙하지 않아서 박수가..이건가 Q.지혜 피디님은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되게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어 오셨던 것 같아요 그럼 지금까지 만든 영상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디지털 신기술은 무엇인가요? 4회차 때 약자 프렌들리를 이끄는 디지털 신기술이라는 주제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기술에 대한 영상을 찍었습니다. 진짜 시각장애인분을 섭외해서 온라인 쇼핑 보조 어플을 체험해 보는 영상이었는데요. 코로나 시기에 과일이랑 신발조차도 온라인으로 사는 일이 많아졌잖아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분들은 온라인으로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하루 이상이 걸리기도 해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AI인공지능을 통해 많은 상품의 시각데이터를 텍스트로 읽은 다음에 챗GPT처럼 물어보는 질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 주거든요. 영상을 찍기 위해 저도 사용해 보니 이런 기능이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비장애인에게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샴푸를 사고 싶은데 검색했을 때 상품이 너무 많으면 누가 좀 골라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들지 않나요? 그럴 때 이 기술을 사용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기술이 약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번 영상을 끝으로 문화 피디가 끝나잖아요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계속해 왔다가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활동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매달 영상을 한 개씩 혼자 만들고 벌써 6개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고요 하지만 이제 끝났으니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하는 설렘과 걱정도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지원하고 싶어요. 같이 활동하는 문화 피디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매 회차 동일한 주제로 하는데 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았지? 어떻게 이렇게 콘텐츠를 풀어냈지?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영상들 속에서 회차가 끝나면 우수작을 뽑는데 거기에 뽑히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영상이란 어떤 걸까 생각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조회수: 87
▶
4:25
[문화PD]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마법사 태준이 궁수 종욱이를 다시 만났다
이종욱님의 문화피디 21기로써의 활동 인터뷰 영상 입니다 [대본] [태훈과 인터뷰 후 시작] 태준: 태훈이 녀석 아직도 사극놀이에 진심이구만.. 안본사이 몸이 더 좋아졌어 전사들은 원래 저렇게 몸이 좋나 그럼 나도 이 세계 최고의 호크아이였던 종욱이를 만나러 가야겠어 이동 태준: 종욱이가 항상 이쯤에서 있었는데 종욱: 여어~ 태준: 종욱아 여전히 멀리서도 잘 보는구나 우리팀 궁수 실력 죽지않았네ㅎㅎ 종욱: 나야 뭐 백발백중이던 실력을 안녹슬게 하려고 매일같이 수련하고 있어 그런데 무슨일이야? 태준: 후훗 수련을 하고있었다면 잘됐네 마왕이 다시 나타나서 대현자님의 어명이 떨어졌어. 다시 뭉쳐서 물리치고 최고의 문화피디를 뽑는다고 하더라고! 종욱: 이거 재밌겠는걸? 조금 더 들려줘봐 태준: 좋아 그전에 미션을 해야하는데 바로 시작할게 우리 문화피디를 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 종욱: 흠.. 나는 최근에 새로운 웹드라마 형태로 국립중앙박물관 영상을 촬영했는데, 그게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 박물관 덕후인 남자 주인공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개팅을 하며, 여자 주인공도 박물관에 나오는 VR과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며 박물관에 빠지게 되는 내용인데, 촬영을 하면서 너무 재밌더라고 그리고 친구 역할로 나도 출연해서 처음으로 발연기를 해보았지 태준: 오..그거 재밌었겠네ㅎㅎ 영상 기다래고 있을게 ㅎㅎ 그리고 너 영상을 보니까 항상 미모의 여성분이 나오던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주변에 미모의 여성분들이 항상 있는거야? 종욱: 그건 다 배우분을 섭외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사실 나는 제작비를 다 투자해서 영상을 찍다보니 남는게 없더라고 ㅠㅠ 원래 영상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된 배우분들인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나는 영상의 퀄리티에는 외모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미모의 여성분들을 섭외했지 결국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으니깐 그걸 생각하면서 만들게 됐어! 국립중앙박물관편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도 나오니깐 기대해달라구!! 태준: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 맞는말이네 훗,,ㅎ 그럼 다음 잘생긴 남자 배우가 나오는 영상도 기대하겠어~! 이제 마지막으로 다음에 우리가 또 같이 모이게 된다면 문화피디에서 어떤 팀작업을 해보고싶어?? 종욱: 사실 이번 문화PD에 많은 참여를 하지 못했어, 원래 하던 영상일이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참여를 하고 싶어서 참여를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컨텐츠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 팀으로 하게 되면 나는 알쓸신잡 같이 한 지역에 여행을 가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하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서로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서 토론하는게 항상 재미있더라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ㅎㅎ 태준: 역시 최고의 호크아이 종욱이 너 답다..! 이제 우리 다시 동료로서 마왕을 물리치러가자~! 지금 선희, 태훈이도 기다리고있어 종욱: 그리운 이름들이네.. ㅎ 그럼 난 마지막으로 암흑속 수호자 영석이만 데러오면 되겠네 한번 가볼까~ (한쪽으로 나감)
관리자
조회수: 92
▶
1:46
[문화PD] 버터뷰 ep1 :: 나에게 문화PD란?
문화정보원에서 하는 문화PD란 도대체 뭘까? [대본] 1. 안녕하세요 본인의 외모를 10점 만점에.. 몇 # 대학교맵 안녕하세요~ 문화PD 이유빈이라고 합니다 점수는 대략 10점 정도 생각하고 있고, 현재 PD 지망 대학생입니다~ (발랄한 느낌과 ,카메라 아이콘) 까마귀.. (아-아 방금 질문은 죄송합니다. 문화PD 하시면서 힘든 순간이 어느때 였을까요? # 헬스장 V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구요 정말 수우우우우~ 많은 고비 고비가 있었지만! 책임감 하나로 허들을 넘어냈던 것 같네요. (해당 녹음할 때 숨을 헐떡이면서 운동하는 느낌으로 문장 사이 사이 버퍼링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문화PD 영상을 만드실 때 행복 했을때는 언제였나요? 용산 나들이라는 영상을 만들고, PD님들께 악수 요청이 막 들어오고 # 컴퓨터실 V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 스테이지 V 스스로한테 좀 박한 편이라 아직도 어리둥절하긴 한데,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그러면 용산 영상을 제작할때 많이 힘드셨나요? # 남산타워 V 그럼요! 사실 만들면서 제일 힘들었던 영상이에요. 당시에 촬영 시간도 촉박했고, 인터뷰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 거절씬 다행히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들어서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 행복함 이모티콘 (문화PD 하면서 본인한테 도움된 점은 어떤걸까요? 역시 돈! 돈을 해결해주셨구요, # 부자맵 3기수에 걸쳐 쌓은 포트폴리오가 PD라는 꿈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만들어보고 싶은 영상이나 콘텐츠는 어떤걸까요? 다른 PD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저도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영화스러운 비쥬얼을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지금보다 높은 퀄리티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차기 문화PD분들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전쟁터 같은 경쟁과(강조)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시다면 고민 말고 지원하세요!
관리자
조회수: 102
전체메뉴
문화예술
문화유산
문화산업
체육
관광
생활
총
1,811
건
검색정보 입력
전체
국내
해외
지역
7거리
볼거리
탈거리
살거리
놀거리
느낄거리
먹을거리
잠잘거리
검색
▶
3:00
[한국문화100]길거리 응원으로 하나되는 대한민국
한국문화100 ? 길거리 응원편 ? 구성대본 자막 대한민국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 집에서 편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시즌에는 남녀노소 길거리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친다. 그들은 왜 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가? int 박누리 / 직장인 다 같이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응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권경의 / 주부 아이들이(손주들이) 미국에 살거든요. 월드컵이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월드컵 열기를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그다음에 한국의 긍지를 살려주기 위해서 새벽에 데리고 나왔어요. 이은진 / 학생 올해 처음 와봤는데, 정말 젊음의 열기가 많이 느껴져서 행복해요. 재밌어요. 남궁준 / 학생 제가 브라질에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현장감을 느끼면서 저희 팀(한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함께 했던 거 같습니다. 김민아 / 학생 같은 동기들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축구경기)보고 하니까 그 열기랑 여기서(길거리 응원에서) 틀어주는 음악들이 같이 어우러지니까 감동이 몇 배는 더 됐던 거 같아요. 자막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게는 한 명의 선수가 더 있다. 그라운드 밖의 하나 된 응원단 대한민국의 승리를 염원하는 12번째 선수.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응원으로 늘 함께뛴다. 이중근 / 붉은악마 서울부지부장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에 저희(붉은악마)가 동화면세점 근처에서 저희끼리 소규모로 응원하던게, 월드컵 때 원정으로 응원을 가시는 분들과 원정을 안 가고 국내에 남아있는 붉은악마들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응원하려는 의도로 (길거리 응원을) 기획하게 된 겁니다. 자막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 된 길거리 응원. 당시 서울시청 앞에는 40만명이 전국에는 700만명이 거리에 모여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길거리 응원은 거리나온 사람들에게 대표팀 응원을 통해 하나 됨을 느끼고, 함께 즐기는 문화로 사랑받고 있다. 세대가 거듭 될수록 우리나라 고유의 응원문화로 더욱 발전되길 바래본다.
관리자
조회수: 25,995
▶
7:18
[한국문화100] 조선 최고의 의학전서, 동의보감
현재까지도 인용되는 한의학의 대표서적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우리 민족의 의학서로 역사적의의가 높으며 의학지식과 치료법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유네스코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의보감의 가치를 알아보고 동의보감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 동의보감 대본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염병이 번지며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때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조대왕은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제작하게 명하였다. 선조대왕은 태의인 신하 허준을 부르시고 “의학서를 편찬하라” 이와 같이 하교하셨다. 이러한 임금의 뜻을 받들어 허준은 왕실이 가지고 있던 여러 의학서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의서를 완성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다. 인터뷰 김요한/ 산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 Q. 동의보감이랑 무엇인가? 동의보감은 의학서적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한 의학 서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인데요, 동의는 중국이 북의와 남의로 나뉘어서 큰 양대 산맥으로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동의라는 제 3의 길을 간다는 의미를 띄며, 또 보감이라는 것은 감이라는 글자가 백과사전처럼 명확하게 객관적인 진실 된 내용만 담긴 주로 역사책이나 법전에 쓰이는 단어인데요, 그렇게 해서 이 둘이 합친 것이 동의보감으로, 길게 말하면 중국과는 또 다른 한의학적 길을 가는 백과사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나래이션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동양 의학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일반인들을 위한 의학 서적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의학서적 최초, 세계 기록 유산으로 동의보감이 등재되었다.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어떻게 구성되어있을까 ? 인터뷰 김쾌정/ 허준박물관장 Q. 동의보감은 어떻게 구성 되어있나요? 동의보감은 25권 25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게 5가지로 구분되어있습니다.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1212가지 방대한 약재가 등장하고 그 가운데서 637가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중심으로 향약명이라고 해서 한글기록으로 일반서민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제작되어있습니다. 나래이션 동의보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4권으로 구성된 내경편은 인체 내부의 구조와 문제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으며 외형편은 몸의 겉에서 관찰되는 부위의 기능과 질병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잡병편에는 질병의 원인과 증상 및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며. 탕액편은 약재 채취와 약을 달이는 내용 등, 또한 백성들을 위한 처방이 담겨 있다. 약재의 효능을 기술할 때 우리 땅에서 나는 향약명을 함께 써서 백성들 또한 약초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침구편에는 침과 뜸을 만드는 법, 혈 자리 찾는 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차 2권까지 포함해 동의보감은 모두 25권 25책으로 완성된 종합 의학 서적이다.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어떻게 활용 되었을까? 동의보감은 처음 목활자로 만들었으나 전하지 않고 이후 목판본으로 출간된 것이 전하고 있다. 글을 잘 쓰는 이가 판목위에 글자본를 작성하고 전문 각수가 글자를 새기게 된다. 글자새김이 끝나면 활판에 먹물을 묻혀 글자를 찍어내는데 방대한 양으로 동의보감은 편찬을마치고도 판각과 인쇄에만 3년이 걸렸다 당시 동의보감이 전국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발달된 목판인쇄문화가 있어서 일 것이다. 나레이션 동의보감은 병이 발생하기 전 신체의 조화를 중시여기는 ‘양생’에 중심사상을 두고 있다. 동의보감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첫째,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배부르게 먹지 말것 둘째, 한달의 금기는 그믐에 술을 많이 먹지 말것 셋째, 한해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가지 말 것 이 기록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금기사항이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에는 조선시대에도 예방차원의 양생법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 사람의 몸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신형장부도이다. 신형장부도는 살아 있는 사람의 체내에서 정기신의흐름과 오장육부의 운행을 그린 일종의 개념도인 것이다. 동의보감 신형장부도는 자연과 사람의 조화, 오장육부건강을 설명하고 있다. 허준은 오장육부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예방법을 기록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했다. 얼굴은 자주 만져주면 혈압, 동맥경화 등의 치료를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귀는 신장과 관계가 깊다. 장수하기 위해서는 귀를 자주 만지는 것이 좋다. 이러한 예방법등은 인체에 저항력이 충분하다면 병이 생길 수 없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인체 내적인 조화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겼고, 간편한 민간요법으로 처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 동아시아 최고의 의학백서! 독창적이고 명료한 기록, 동의보감에 담긴 건강한 삶과 생명을 이야기는 선조들이 후대에 남겨준 귀중한 기록유산이다.
관리자
조회수: 25,476
▶
7:16
[한국문화100]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민중의 염원과 기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의가치를 재조명한다. 제목 :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내레이션 성황은 서낭당에 모신 신을 뜻하는 것으로 성황당과 서낭당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어귀나 산허리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돌무더기, 오래된 나무, 작은 당집 그리고 나무와 당집이 같이 있는 형태 등으로 서낭당은 존재했다. 서낭당에는 오방색을 뜻하는 오색띠가 매어져 있거나 금줄이 쳐져 있는데 이러한 것은 복을 부르고 사악함을 쫓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서낭당을 개인적 혹은 마을공동체 신앙의 수호신 삼아 섬겼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서낭당이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남아있는 서낭당들도 무형문화재라는 입장에서 보존되고 있는 차원인데요. 사실, 서낭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표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서낭제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음세대에 대한 마을의 전통을 교육하는 것도 일어납니다. 굉장히 순기능적인 여러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옛날 같지 않고 아파트와 같은 분할된 가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변해서 옛날에 한마을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가 되었던 모습은 찾기가 힘든데,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라는 입장 이외에도 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서낭당을 통해서 주어졌던 것인데요. 그런 부분들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고 없어졌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막 성황당 1937년 발표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 내레이션 우리의 문학과 노래에는 서낭당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만큼 우리 민중들과 가까웠던 것이 서낭당이다.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은 후미진 평안도 산골에서 숯을 구워먹고 사는 순이 부부와 그녀를 노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원초적이고 관능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특히, 성황당과 순이의 관계를 통해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했다. 자막 깊은 산중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는 모든 일을 성황님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현보를 도와 숯가마에 불을 때던 순이가 더위를 참지 못하여 옷을 벗고 개울에서 목을 할 때, 예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산림간수 긴상이 그녀의 옷을 감추고 협박을 한다. 순이는 이에 단호히 대항하고 앙심을 품은 긴상은 순이의 남편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다. 이때,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칠성이 찾아와 긴상과 칠성은 순이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벌인다. 며칠 뒤, 다시 칠성이 나타나 순이에게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같이 도망칠 것을 종용한다. 그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에 마음이 끌린 순이는 칠성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30리쯤 갔을 때 산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현보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성황님의 벌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순이는 칠성에게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순이가 “성황님 ! 성황님 !” 을 외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방안에서는 “에헴” 하는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밤 따라 접동새와 부엉새 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이 정다운 것이었다. 자막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 내레이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서낭당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하회마을 가장중앙에는 삼신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회마을이 조성될 때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나무의 수령은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신목을 서낭당 삼아 정월대보름에는 제를 올리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과 공동의 소망을 빌기도 한다. 인터뷰 손주호 / 대구광역시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 안 싸울 수는 없겠지만, 싸우더라도 서로 잘 잡으면서 이 운명 끝까지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김명숙 / 서울특별시 저를 비롯해서 제 가족과 친지, 주위의 분들,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김문배 / 서울특별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무사히 잘 태어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빌러 왔습니다. 내레이션 특히, 삼신당은 자식을 귀하게 여겨 후손이 잉태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들어주어 마을 전체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앞산의 중턱에는 또 다른 서낭당인 중당이 조성되어 있다. 서낭당과 같은 마을제당은 주민들의 종교심성을 공유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마을의 신을 중당에 모셔와 제사 지내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해설사 인터뷰 박순화 / 안동문화관광해설사 중당은 국신당을 모셨어요. 국신당은(공민왕의 모신 것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70여일을 몽진을 오셨어요.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그래서 안동에는 공민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조성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풍산류씨들이 하회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특히, 영의정 서애 유성룡 대감 같은 명재상이 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막 국신당은 신격화된 고려의 공민왕을 의미하며 특히 안동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자막 강원도 강릉시 내레이션 강원 강릉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 기간 동안 대관령산신을 모셔와 서낭제를 지낸다. 자막 학산서낭당 강릉단오제의 주신 대관령국사성황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의 서낭당으로 매년 음력 4월15일 머물러 굿과 제례를 올린다. 내레이션 강릉고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께 제사하고 험준한 대관령 산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풍작과 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한다. 제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는 만남의 공간이다. 서낭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기원의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 심적인 유대, 연대감을 강화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중이 가깝게 여기는 마을제당이자 개인제당이었던 서낭당.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야할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관리자
조회수: 26,164
▶
05:45
달밤에 떠나는 가족여행, 경복궁 야간개장
바쁜 일상으로 인해 지친 가장들,워킹맘들! 변변한 가족 여행 한 번 떠나보지 못한 가정을 위한 특별한 나들이! 경복궁 야간개장에서 누려보자. 특히, 고풍스러운 야경과 숨겨진 경복궁의 비밀을 영상 속 지은이와 함께지금 당장 만나보자! ------------------------------------------대본------------------------------------------- 내레이션: 문화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지은씨. 5월을 맞아 대대적인 빨간 날이 가득한데요. 우리 지은씨는 쉬지도 못하고 일일, 계속 일뿐이네요. 지은: 여보세요. 엄마, 못가. 지금 일 많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지은: 여보세요. 엄마, 나 바빠. 끊어! 지은: 바빠. 끊어! 지은: 이게 뭐야! 지은: 원래 코를 되찾고 싶으면 경복궁 야간개장으로 오라고? 경복궁? N.A: 가족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 코를 빼긴 저.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저와 함께 경복궁 야간개장으로 떠나볼까요? N.A: 경복궁 야간개장은 2010년부터 봄과 가을에 두 번 광화문에서부터 흥례문, 근정전 그리고 경회루를 밤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N.A: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광화문은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을 지닙니다. N.A:광화문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N.A: 가로로 긴 흥례문의 모습에서 경복궁 야경의 아름다움이 시작됩니다. N.A: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제교 관련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퀴즈: 네 마리 중 유독 표정을 짓고 있는 천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시민: 메롱 N.A: 흥례문에 들어와 금천 위로 볼 수 있는 영제교. 메롱하고 있는 천록이 인상적입니다. 시민 인터뷰: 저희 큰 아이가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일부러 예약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N.A: 근정문을 나서면 근정전이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서있는데요. 왕의 근면을 강조하고 의식을 거행하던 법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A: 이어서 두 번째, 근정전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퀴즈: 근정전 난간 12지신 조각상 중 빠진 2개를 골라라. 시민: 돼지하고 개 N.A: 문제에서처럼 12지신 중 개와 돼지는 볼 수 없습니다. 참! 용은 왕을 상징하기에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민인터뷰: 아이들에게 경복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야간개장이 참 드물어서 아주 어렵게 예약했습니다. N.A: 근엄한 모습이 돋보이는 근정전을 뒤로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문제, 경회루로 함께 가보실까요? N.A: 경회루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열던 곳입니다. 퀴즈: 경회루의 2층 마룻바닥 중 두 번째 칸이 12칸인 의미는? 시민: 12달 N.A: 경회루의 내부 구조는 주역의 원리에 따라 각각 천지인, 24절기, 12달처럼 의미를 지닙니다. 시민인터뷰: 경복궁 야간개장을 한다고 해서 마침 (지방에서) 오는 날짜랑 맞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훨씬 더 운치있다고 해야 하나.... 시민인터뷰: 야간에는 (경복궁을) 보기 힘드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시민인터뷰: 연휴 겸 해서 보러 올라왔습니다. 시민인터뷰: 시간대가 맞아서 오기도 하고 저번에 저 혼자 왔었는데 괜찮았거든요. 가족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N.A: 와! 드디어 문제를 다 풀었네요! 지은: 여보세요. 엄마 내일 뭐해? 내일 시간돼? 아니 우리 가족여행가자고~ 경복궁 야간개장한대! 우리 내일 경복궁 가는거다,
정진아
조회수: 12,630
▶
8:00
[한국문화100] 목판에 새긴 호국의 불심 팔만대장경
거듭되는 북방 오랑캐의 침략을 부처의 힘을 빌려 막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불심이 담긴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의 내용, 규모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정대불사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의미가 가진 가치를 알아본다. 제목 : 목판에 새긴 호국의 불심 팔만대장경 내레이션 1950년 발생한 우리민족의 비극 6?25전쟁. 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인민군 약 900명이 가야산 일대에 숨어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군 사령부는 가야산 해인사 공중 폭격 작전을 단행한다. 하지만 당시 편대장 김영환 대령은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일본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것은 교토가 일본 문화의 총 본산이었기 때문이다. 공비소탕을 위해 우리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다.” 라고 말하며 상공에서 기수를 선회해 비행편대에게 폭격금지 명령을 내린다. 대령의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과 의지로 지킨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은 바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보관중인 국보 제 32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다. 자막 팔만대장경 국보 제 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내레이션 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 계율 및 그것을 해설한 율장, 경을 연구해 놓은 논장을 집대성한 불교의 최대 경전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고려대장경으로도 불린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에서는 불교가 다양한 분야에서 백성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정신적인 힘이 되어 주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모두 불타버리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의 수호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이겨내고자 만들어진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이러한 팔만대장 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교열 등 교정 작업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서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2007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자막 1011년 거란의 고려침략을 계기로 제작된 초조대장경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해 소실됨 1236년 이후 16년간 팔만대장경 조성사업 진행 인터뷰 이지범 / 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처장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몇 가지 근거들을 두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고려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계보, 역사성을 두고 하는 말이고 두 번째는 한역대장경으로 세계에서 유일하니까 그 완전함에 있고 또 목판으로 현존하고 있어 희소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막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내레이션 경남 합천군에 위치한 해인사.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보 즉, 불(佛), 법(法), 승(僧) 중 ‘법’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로 통도사,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삼보사찰 중 하나이다. 자막 해인사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보, 불(佛), 법(法), 승(僧) 중 ‘법’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 추사 김정희가 쓴 팔만대장경 현판 내레이션 해인사의 장경판전에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목판이다. 가난한 학자와 선비, 일반 백성이 책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목판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부터이다. 만들어진 목판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3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말리고 지속적으로 옻칠을 하는 등 어려운 과정을 거친 나무들이 사용되었으며 경판 양쪽 끝은 마구리를 설치한 후 동판을 붙였다. 긴 세월 보존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담긴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규모와 과학성을 자랑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적 유산이다. 인터뷰 성안스님 /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팔만대장경은 경판의 수가 81,258장이거든요. 이렇게 많은 경판을 가지고 책을 만들면 6,803권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루에 1권씩 읽으면 거의 20년이나 걸리는 많은 책(분량)입니다. 많은 사람이 물어 봅니다 그걸 다 읽을 수 있을까. 팔만대장경 경판을 쌓으면 높이가 3,200미터나 됩니다. 백두산보다도 높고, 옆으로 뉘어놓으면 약 60킬로미터, 서울에서 오산까지의 거리가 되고요. 무게는 약 280톤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팔만대장경판의 내용이 뭘까 그것을 다섯 글자로 줄여보니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가 됩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한자가 마음 심(心)자입니다. 팔만대장경의 핵심은 무엇이냐면 어떻게 우리가 따뜻하고 행복하게 존재할 것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서로 아름답게 존재하는, 행복이란 것이 실제로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레이션 목판인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보관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인사 장경판전이 가진 구조적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과 더불어 국보 제 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을 보존하기 위해 적정한 온도와 습도유지, 직사광선의 차단, 원활한 통풍과 환기 등 보존을 위한 요소들을 주도면밀하게 배치한 과학적 건물이다.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생쥐 한 마리 들락거리지 않았고, 거미줄이 생긴 적도 없다고 한다. 오후 2시경에는 판전입구에서 연꽃모양의 자애로운 빛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 성안스님 /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첫째는 창틀 크기가 위아래가 다르거든요. 정면에서 봤을 때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고 뒤편에서 보면 위가 넓고 아래가 좁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대류현상과 신선한 공기의 유입을 위한 가장 완벽한 건물의 구조입니다. 또 바닥에도 우수성이 있습니다. 바닥에는 숯, 석회, 소금, 모래 같은 것을 강회다짐을 하여서 여름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을에는 습기를 방출하여 가장 이상적인 습도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자막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내레이션 팔만대장경에는 불교경전내용과 더불어 13세기 중엽의 역사 및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새겨져 있다. 이들 자료는 당대역사와 불교문화 또 출판인쇄술 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종파를 초월한 통합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팔만대장경의 판본은 조선 초기부터 몇 번 인출되어 유통되었으나 현재 전질이 남아 있는 곳은 1865년 인출되어 전해진 월정사가 유일하다. 자막 해인사 대장경 정대불사 [大藏經頂載佛事] 내레이션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정신을 이어가고자 대장경 정대불사를 해마다 행한다. 신성한 경전을 머리에 임으로써 우러나는 경건한 신심을 아울러 취하기 위해 행하여지는 대장경 정대불사는 사실 1년에 한 번씩 대장경판을 햇빛 받게 하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소중한 우리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선조들이 짊어졌던 호국의 마음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가슴에 담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관리자
조회수: 27,402
▶
4:29
[한국문화100]직지를 통해 증명된 문화강국, 대한민국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 서양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걸 증명하는 직지심체요절에 대한 소개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내용 타이틀 : 직지를 통해 증명된 문화강국, 대한민국 내레이션 주자인시(鑄字印施), 직지심체요절 하권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말이다. 주자인시는 금속활자로 제작된 책을 일컫는 말로 직지가 금속활자로 제작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2001년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었다. 현존하는 인류의 최초 금속활자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직지.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은 인류의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터뷰 이세열 소장 / 직지디제라티연구소 지난 일천 년 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는다면 금속활자 인쇄술이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우리나라에서는 직지와 독일에서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간행됩니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특권계층에 의해서 지식인들만 글이(책이) 전파될 수 있었는데요. 금속활자가 발명됨으로 인해서 대량 출판물이 발행되면서 모든사람의 지식이 확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내레이션 사실상 우리나라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처럼,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시대에 큰 파급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서양은 당시 권력자들만 소유했던 책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금속활자 인쇄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었고,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의 대 격변기를 맞는 등. 금속활자의 발명은 세계의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뷰 황정하 학예연구실장 / 고인쇄 박물관 직지가 갖는 의미는 인쇄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지금 현재 기록상으로 1200년대 초에 상정예문, 남명천화상송정도라는 책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문이 남아 있는 상황이고 그러나 그 실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직지가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1200년대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하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주는 실물 자료로써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금속활자 발명국 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되겠습니다. 황선주 소장 / 직지문화산업연구소 조선이 건국이되면서 이전의 고려 활자인쇄를 알고 있었거든요. 이전의 고려 활자 인쇄가 없었다면, (조선시대) 태조때나 태종 때 쉽사리 활자인쇄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지금으로서는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에 대해서 일부만 조금씩 알고 있지만 그것이 조선조에 와서 대대적으로 꽃을 피우고요즘에 와서는 세계적인 IT 강국이 되고, 그런 씨앗이 이미 고려조에 있지 않았나란 생각은 합니다. 내레이션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보다 78년 앞서 제작된 직지. 직지는 현재 조선 시대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의 발견을 통해 증명된 문화 강국 대한민국. 직지는 대한민국의 문화 우수성을 나타내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관리자
조회수: 25,023
▶
5:58
한국영화를 보다! 남양주종합촬영소
한국영화 1억명관객시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갑니다. 그리고 매해 많은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관객들을 찾아가기 위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작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중심지에는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한국영화 중심지로 향해 볼까요? ---------------------------------------------(대본)------------------------------------------- 나레이션) 한국영화 1억명시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갑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매해 나오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찾아가기 위해 촬영되고 있습니다. 현장음) 레디 3 3 3 나레이션 ) 액션 나레이션 ) 서울에서 한시간 아름다운 북한강을 타고오르면, 한국영화 촬영중심지인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있습니다. 자막)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감독 : 박찬욱 나레이션 ) 저 노란선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네. 박찬욱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촬영한 판문점 세트입니다. 한국영화 583만 관객이라는 흥행신기록을 세웠고, 이 작품은 세계 3대 영화제 중에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자막 ) 미갤/스페인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방문하신소감 인터뷰)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이곳(남양주종합촬영소)에 왔습니다. 이 곳에서 흥미로운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들었고, 또한 한국과 북한 사이에 조율역할을 하는 판문점의 모습도 볼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자막) 한국영화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인터뷰) 영화 사마리아 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음 스페인에서 좀 유명합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로 스페인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았을겁니다. 왜냐면 소녀가 스스로를 죽이고 이 소녀를 위해 남자의 복수가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저도 보았습니다. 자막) 영화 취화선(2002) 감독 : 임권택 자료화면)으아!! 으아 이 개자식들아!! 나레이션)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아흔여덟번째 작품인 취화선 촬영세트입니다. 취화선은 칸느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19세기말 종로거리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제 건축방식으로 재현되어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옛정취를 그대로 거닐수있습니다. 자막 )이서영/승환이 가족 경기 이천 어떤계기로 촬영소에 오게 되셨나요? 인터뷰)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영화 만드는곳이라던가 전통한옥들을 보여주기 위해 왔습니다. 인터뷰)좋아하는 한국영화 있으신가요? 한국영화 좋아하죠 요즘 수준이 높아져서, 최근에 본 영화로는 감시자들을 보았습니다. 한국영화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자막)한국영화에 바라는점 인터뷰)얼마전에 보면 드라마 나인을 보면 시나리오 탄탄하고 재밌었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재밌게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자료화면) 에헤 고맙습니다. 에헤 그것도 재주라고 넘느냐 그것도 재주라고 넘고 엽전을 바라느냐 자! 샛님네들 진짜 재주 한번 보실랍니까? 옳거니! 그럼 제대로한번 놀아봐라 나레이션) 그리고 이 곳은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남자가 촬영된 장소입니다. 토지 다모 해신 타임머신등의 티비프로그램도 촬영되는 장소입니다. 봄 가을에는 이엉갈이를 하면서 짚풀공예, 똬리만들기 등의 문화예술체험행사를 참여해볼수도 있습니다. 자막) 박정환/ 강원 춘천 어떤계기로 촬영소에 오게 되셨나요? 인터뷰) 마지막 가을을 보내기위해서 드라이브겸해서 한국영화도 좋아해서 촬영소로 구경왔습니다. 자막)좋아하는 한국영화 있으신가요? 인터뷰) 올해 본 한국영화로는 숨바꼭질, 7번방의 선물이 있습니다. 이와과 같이 스릴러영화와 가족영화를 뜻깊게 재밌게 보았습니다. 나레이션) 남양주촬영종합소는 야외세트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 스튜디오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모든것을 볼수있는 영상문화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영화의 역사부터 현대3d 영화 제작모습까지 볼수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영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춘사 나운규 선생님의 영화 아리랑 필름소실과 같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 한국영화 발전과 함께 해오신 신상옥 유현목감독님과 많은 감독님들 그리고 어느덧 1억관객시대에 온 지금 한국영화 모습까지 우리나라 영화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인터뷰 )한국영화 화이팅 대박을 위하여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과자주세요! 하하하 승환아 다시한번 하나둘셋 한국영화 화이팅!
유상원
조회수: 12,711
▶
5:17
[한국문화100] 마을의 수호신, 장승
마을의 수호신, 장승 ---대본--- 나레이션 마을 입구, 여러 형태의 장승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지역 간의 경계선 표시, 이정표의 역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이러한 역할로 문화유산 장승이 자리 잡혀 있다. 지금부터 수호신 장승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터뷰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이란? 나쁜 잡귀 잡심들을 막아준다든지 풍요를 기원하던지 거리의 이정표 역할, 마을과 마을의 경계표의 역할, 신앙대상물로써 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습을 새겨서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마을 공동체 신앙대상물입니다. #1. 최초의 기록 (자막)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한 보림사 장승의 기원에 관하여 뚜렷한 사실은 없지만 여러 가지 학설은 존재한다. 보림사에 있는 보물 158호 보조선사창성탑비의 비명에서 장승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비문에 의하면 건원(乾元) 2년에 경덕왕이 명하여 장생표주를 세우게 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 장승표주라는 것은 장생이라는 표식을 한 기둥이라는 뜻입니다. 비명에 보면 신라 경덕왕 즉 759년에 장생표주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장승의 기원은 이때부터 최초의 기록되고 있습니다. #2. 석장승 · 목장승 (자막) 소나무나 밤나무를 주로 사용하여 나무로 제작된 목장승, 그리고 돌하루방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이 또한 돌을 깎아서 제작된 장승이다. 나무재료의 특성상 목장승은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고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 한번 제작하면 퇴색되지 않는 돌을 재료로 장승을 만들기도 한다. 장승의 생김새가 다양하듯 명칭 또한 시대와 지역 그리고 그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장생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하거나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 보림사 장생표주가 있으며 각 시대별 여러 가지 명칭이 존재한다. 각 지역별로 장승은 돌하루방, 벅수, 장생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고 현재까지도 전라남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칭하기도 한다. 전남 나주 불회사 불회사에 위치한 이 장승을 보면 각각 남·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장승은 조각의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현되었고, 입 가장자리에는 송곳니가 아래로 뾰족하게 드러나 있다.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을 새겼다. 여장승은 표정이 온화하고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고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이라 이름 붙였다. 이것 이외에도 석장승의 특징으로는 왕방울눈, 매부리코, 뾰족한 송곳니가 어우러진 모습이 대표적이다. #3. 장승의 탄생기(자막) 전라남도 무안에 위치한 장승제작소 장승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깨끗한 소나무에 먹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도끼로 큰 조각을 내어 틀을 잡고 세밀하게 장승을 조각한다. 장승은 제작자 뿐 만 아니라 마을 모두가 참여해서 오랜 기간 시간과 정성이 들이며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인터뷰 정덕근/장승 조각가Q.장승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 장승은 하나 따질 것이 없이 중요하겠지만, 특히 장승의 얼굴 표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도 표정으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듯이 장승도 마찬가지로 얼굴 표정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얼굴의 특징? 특히 장승의 얼굴을 보면 나쁜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무사라든지 역사라든지 장군처럼 무섭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우리 시골 마을사람들의 마음씨가 그러듯이 장승의 얼굴을 보면 시골 할아버지의 푸근한 모습을 담고 있어 오히려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 우리의 민속 문화는 오랜 기간 문화적 전통성을 이어오면서 민족문화의 기층을 이루어왔고 기층을 구성하는 민중들의 삶의 감정과 진정성을 표현해왔다. 장승 또한 장승이 지니고 있는 얼굴은 우리네 옛 사람들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장승은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고, 아픔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신상이었다. 한 겨울 찬바람 견디며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서 수호신을 상징하는 장승 장승에는 우리문화의 기반이 되었을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한조각 구름 같은 기층문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
조회수: 25,646
▶
07:24
[한국문화100]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로 두 사람이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이다. 씨름이 진행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대본----- 제목 :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 인터뷰 이만기 / 인제대학교 교수 우리 민족에게 씨름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죠.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부터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씨름인데, 농민들이 추수나 단오나 큰 명절이 있을 때 마다 늘 우리 국민들과 백성들과 함께 한민족의 애환과 정과 사랑과 같은 문화를 담은 것이 씨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옛날에 농번기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해왔던 하나의 민속놀이 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어떤 스포츠 보다 정이 많이 가고 지역에 또는 각 마을에 서로 화합을 하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가 씨름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씨름.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로,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이다. 우리민족의 기상이 넘치는 씨름의 힘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이태현 / 용인대학교 교수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라는 도구를 잡고 무릎 위 신체의 일부를 모래에 먼저 닿게 하면 이기는 기술이(경기가) 되겠습니다. 모래 위, 청색 홍색의 샅바가 필요하고 심판이 필요합니다. 경기방식은 양선수가 출전하여 무릎을 꿇고 상대를 향해 마주 앉은 상태에서 다리샅바와 허리샅바를 잡은 다음 왼 무릎을 세워 일어서서 자세를 잡은 후 심판의 시작 신호와 함께 기술을 들어가며 먼저 넘어뜨리면 이기게 됩니다. 씨름의 기술은 대체로 허리기술 손기술 다리기술로 나눌 수 있는데, 손기술은 체구가 작고 빠른 선수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고 다리기술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선수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허리기술은 힘이 쌔고 몸이 굵은 선수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기술인데 손기술의 대표기술로는 앞무릎, 뒷무릎, 오금당기기, 옆무릎 등이 있고 허리기술의 대표기술로는 들배지기, 잡치기, 뒤집기 기술이 있습니다. 다리기술의 대표적인 기술은 밭다리, 안다리, 덧걸이, 호미걸이 등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명쾌히 승부가 나고 어려운 룰보다 사람과 사람이 맞잡고 힘과 기술의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넘어트리는 것이 씨름이 아닌가 합니다. 그 재미와 박진감이 더 배가 됩니다. 내레이션 최근 씨름은 비슷한 해외 운동들과의 교류를 통해 씨름의 세계화와 씨름인구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국선수의 국내대회 참여는 씨름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터뷰 루차카나리아(스페인씨름)연맹회장 에르난데스, 루차카나리아 선수 로베르토 씨름과 루차카나리아(스페인씨름)는 다른 점이 별로 없고 기술 역시도 흡사하다. 참여하게 된 것이 영광이 많며 배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교류를 하며 어떻게 발전될 것 같은지 한국 씨름과 계속 교류를 해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내레이션 하지만 이제 씨름의 힘찬 움직임은 남성들만의 것은 아니다. 한국최초여자씨름단 구례군청 반달곰씨름단을 찾아가 씨름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여자씨름무궁화급(80kg이하) 우승자 / 이다현 그 안에서 생각을 하는 거죠. 내가 지금 들어가서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가 이렇게 잡았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움직여야 이 사람이(상대가) 이렇게 들어왔을 때 내가 어떻게 빠져야 하고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시합을 나가면 긴장은 되는데 계속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가 준비해왔던 기술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 것을 준비해서 어떤 상황에서 잘 맞게 쓰느냐 그런 것이라서, 그런 긴장감? 그리고 상대가 어떤 것(기술)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상대도 나름 준비를 해서 올 것이고 저도 준비를 해서 가는 것이니까 그 싸움인거죠.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여자씨름대나무급(75kg이하) 우승자 / 박원미 처음에 씨름할 때 앉아서 잡거든요. 앉아서 잡고 일어날 때부터 좀 안되겠다 싶으면 제가 아주 힘들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로)정말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잡고 제가 편하게 일어나서 자세도 제 자세를 다 잡았을 때 ‘아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붙어서 더 큰 기술을 하려는 욕심을 내죠.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감독 / 김송환 씨름은 딱 보시면 특수한 상황입니다. 다른 것(운동)은 트랙에서 뛰거나 하는데 씨름은 특수하게 모래밭에서 하는 운동이라 기본적으로 하체는 발달이 되어 있어야 해요. 항상 여기서 씨름을 해야 하고 상대를 들어야 되니까 우선 친숙하게 씨름장에서 하체운동을 하고, 좋은 기술, 남자 선수들 밖에 하지 못하는 기술인데 여자선수들이 한다는 것을 선수적인 입장에서 봐주시고 응원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레이션 순박하면서도 흥겹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다른 투기와는 달리 맨살과 맨살이 직접 닿아 서로의 체온이 오가는 씨름은, 정이 서로 통하는 우리 민족의 성향과 일맥상통하는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길 기원해본다.
관리자
조회수: 25,890
▶
5:4
[한국문화100] 한국인의 일생을 닮은, 소나무
대한민국의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소나무, 한반도 산림의 가장 넓은 분포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한국인의 정서와 기질을 대변해주는 상징물임을 나타내는 내용 내레이션 흔히 말하길, 한국인은 소나무의 기질을 닮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생이 소나무의 일생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음은 물론 그 정신이 소나무의 모습과 비슷함을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역경 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지킨 우리와 절벽의 틈새에서도 성장을 하는 소나무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 탄생 예전부터 우리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았고 또한 축복의 의미로도 쓰였다. 이렇듯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소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 성장 소나무를 자연 상태로 방치해 두면 성장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해가 생겨 모양이 틀려지고 그 기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해주고 모양을 유지시키면서 성장을 조절하는 과정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 백년가약 소나무 꽃이 피는 5월쯤에 노란 송화 가루가 날리기 시작할 때 암꽃이 개화하는데, 이 때 송화가 암꽃과 만나 솔방울이 되지만 소나무의 수분은 바람에 의해 많은 부분을 우연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기와 풍향, 풍속, 습도 등이 모두 적당하지 않으면 수꽃의 꽃가루는 암꽃과 만날 수 없다. 우리의 인생 또한 자신의 인연을 만나기까지는 엄청난 확률의 우연히 필요하듯이 소나무 역시 이런 우연의 인연을 바라며, 바람에 의지한다. - 후손 소나무가 솔방울이라는 값진 열매를 얻는다 하여도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고, 이것은 후손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 죽음 죽어가는 소나무의 껍질을 보고 있으면 노인의 손등을 보는 듯 갈라진 껍질 사이로 인고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소나무와 인연을 맺고 소나무가 주자재로 사용했던 한옥에 살다 생을 마친 뒤에도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 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처럼 소나무는 인생의 출발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하여 한반도의 1,000여 종류의 나무 중 유일하게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농경사회와 현재 지식정보사회에 이르기 까지 지난 2,000년간의 한국인의 기상을 나타내는 소나무. 소나무는 빈부격차, 남녀노소를 떠나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늘 사랑 받아 오고 있다.
관리자
조회수: 24,965
▶
3:8
[한국문화100]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상,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한국인의 미래 상을 알 수 있는 상징이므로 오늘날의 반가사유상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문화재적 가치와 함께 미적 가치를 살펴보자. --대본--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나레이션 한 해 600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이곳에서 신라시대 유물 공개됬다. 그 중 하나! 천년의 머금은 미소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이다.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5mm도 되지 않는 청동의 두께..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생동감을 극치를 보여주는 얼굴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반가’,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 하여 ’사유’, 더해서 이를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역사 !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 화려한 보관과 우아한 곡선미 신비로운 고졸한 미소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상이다 인터뷰 신소연 / 국립중앙박물관 Q.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의 특징? 78호 반가사유상 같은 경우에는 화려한 보관과 몸에는 장식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보관에는 해와 달이 있기 때문에 일월식 보관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으며 차분하면서도 장식구가 있으므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보살상입니다. 자막 국보 78호와 국보 83호의 반가사유상 출토지, 발굴연도, 발굴인 알 수 없음. 한가지 정확한 사실 삼국시대의 대표적 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나레이션 같은 듯 허나 같지 아니하고 다른 듯 허나 다르지 아니한다. 반가사유상은 치유의 상징이다. 자막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관리자
조회수: 28,305
▶
6:5
[한국문화100]제주의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소재선정이유 :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조물. 제주의 장승이라고 불리는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에 어떤 역할과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모습을 표현 한국문화100 돌하르방 편- 대본 ? 자막 : 천혜의 아름다운 땅, 제주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는 세계적인 휴양 관광지로 사랑 받고 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상징물 중 하나인 돌하르방에 대해 알아보자. ? 인터뷰 : 송시후 / 경기도 부천시 질문 ; 돌하르방 얼굴보니까 어때요? 답 : 귀여워요. ? 송관철 / 경기도 부천시 돌하르방 보면 코가 커서 묵직한 느낌이 듭니다. 힘이 센 할아버지 같은 느낌! ? 문성원 / 서울특별시 아주머니들이 (돌하르방)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 김혜지 / 경기도 부천시 머리랑 몸이 일대일 비율이여서 되게 귀엽게 생긴거 같아요. ? 홍은혜 / 서울특별시 제주도에 세워져 있는 것? 특산품? 특산물?? ? 자막 :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1971년 돌하르방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 ? 자막 : 제주사의 기록이 담긴 ‘탐라기년’에 조선시대 1754년(영조 30년) 옹중석(돌하르방)이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에 의해 성 앞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음. ? 내레이션 : 제주의 돌하르방, 아이들의 입에서 할아버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1971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되면서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부르기 쉽고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돌하르방이라 명명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문헌에 나오는 원래의 명칭은 옹중석, 제주사의 기록을 담고 있는 '탐라기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영조 30년(1754년),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가 옹중석을 성 앞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 실제 민간에서 불렸던 이름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제주의 돌하르방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자막 : 돌하르방은 민간에서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리워짐. ? 인터뷰 : - 제주문화연구소 김유정 소장 돌하르방의 기능은 읍성 수호에요. 성 밖에서 성 안에 들어오는 문앞에 세웠기 때문에, 모든 밖에서 들어오는 왜구나 전염병이나 기타 안좋은 기운들을 막기위한 하나의 수호신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성 앞에 이렇게 마주 보게 삼문(동서남문)에 세웠죠. 영조 30년 1754년에 김몽규(金夢奎)목사가 (제주도에)와서 만들어 세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때 김몽규 목사는 육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제주도)에 발령 받아 와서 육지에서 본 것을 직접 석공을 불러다가 설명을 해서 (돌하르방을)만들었기 때문에 사진이 없던 시대에 말로만 들어서 만들다 보니까 3개의 지역(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돌하르방이 다 다릅니다. 제주목은 눈이 크고, 정의현은 키가 중간형이고, 대정현의 돌하르방은 너무 작아서 아주 코믹할 정도로 이것이 돌하르방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형태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 자막: 돌하르방은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과 같은 의미를 지님. ? 자막: 제주목 24기, 정의현 12기, 대정현 12기 각 지역 동서남 3곳의 성문앞에 총 48기가 배치 되어 있었음. ? 내레이션 :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 제주도의 자생적인 석상들이 만나서 세워진 돌하르방. 제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세 곳의 마을에 총 48기가 동서남문 성문 앞 입구에 세워져 성문을 지켰던 성물이었다. 마을의 성문을 드나드는 제주사람들을 늘 지켜봐주었고, 언제어디서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제주인의 삶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 인터뷰 : - 북촌돌하르방공원 김남흥 원장 돌하르방의 태생적인 배경을 뒤로 해서 가만히 살펴보면 당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서 세웠던 (돌하르방)석상이거든요. 제가 돌하르방을 조각하고 이 석상을 공원안에 전시를 하는데, 자연발상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뭐였냐면 처음 돌하르방 하나를 재연하는데 드는 소요일수를 쟤 봤어요. 혼자 힘으로 조각을 했을때, 45일 걸려요. 그럼 당시에 48기가 (동시에)작업이 되었다면 한 두사람 가지고 절대 될 일이 아니네. 돌하르방을 작업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조된 의견 아래서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러니까 돌하르방을 만드는 자체가 좋은 의미가 담겨져 있고, 그 뜻에 부합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축제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던 작업이었구나. 그러다 보니까 그들에겐 늘 희망의 대상(돌하르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 자막 : 제주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문화적 아이콘, 제주도민에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를 지켰고, 지키고 있고, 앞으로 지켜나갈 수호신이다. ? 내레이션 : 제주의 전통의 의미를 담은 문화적 아이콘, 돌하르방 과거 제주는 벼농사, 작물 수확이 어려웠던 변방지 이자 유배지 였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제주 땅을 벗어나고픈 제주도민의 불안한 심리를 위로 받고자 만들어진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은 제주도민의 희망이었고, 앞으로도 희망을 가져다 줄 아름다운 제주의 수호신이다.
관리자
조회수: 30,496
처음
이전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다음
마지막
관련기관 안내
이전
정지
재생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