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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맛(A Taste of Honey)

작가소개
셸라 딜래니 (Shelagh Delaney, 1939~ ) 1939년 <꿀맛>의 배경인 랭카셔의 살포드에서 태어났다. 17살이 되던 해 <꿀맛>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으나 곧 희곡으로 바꾼다. 1958년, 세계적인 연출가 존 리틀우드(Joan Littlewood)가 이 작품을 품위 있는 중산층의 이야기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 관한 연극으로 각색하여, 1958년 5월 런던의 이스트 앤드(East End)에서 막을 올렸으며, 이듬해 초 웨스트 앤드(West End)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비평가이자 영화감독인 린세이 앤더슨(Lindsay Anderson)은 <꿀맛>을 ‘완벽하면서도 아주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1960년에는 뉴욕에서 공연되어 연극상을 수상했다. 2년 후 영화 시나리오로 써서 아카데미 상을 받는 등 그녀는 23살의 나이로 당대 최고 인기작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괄목할만한 활동을 보이며, 1963년 단편집 <달콤하게 당나귀를 노래하리(Sweetly Sings the Donkey)>와 몇 편의 텔레비전 드라마, <성 마틴의 여름(St Martin's Summer)>(1974)을 발표한다. <찰리 버블(Charley Bubbles)과 <낯선 이와 춤을(Dance with a Stranger)>(1982), 라디오극 <나이팅게일처럼 해라(So Does the Nightingale)>(1980) 등으로 각본상을 수상한다.
내용
무기력한 창녀 헬렌과 딸 죠세핀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어떤 빈민가의 골방으로 이사를 온다. 그런데 헬렌은 최근에 사귄 친구 피터와 결혼할 결심을 하고 죠세핀은 흑인 소년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다음 장면에서 죠세핀은 임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제프리라는 미술학도가 나타나서 방안을 청소하고 애기 옷을 만드는 등 온갖 어머니 구실을 다해준다. 그러나 이런 목가적인 풍경은 헬렌의 귀가로 끝장이 난다. 또다시 결혼에 실패한 헬렌은 결국 딸하고 살기로 결정하고 그래서 제프리는 떠난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동성애적인 미술학도 사이의 관계가 사실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국내공연연보
1964년 연세극연 / 오태석 연출 1966년 탈 / 이효영 연출 1974년 실험극장 / 정진수 연출 1976년 10월 극단 민중 / 드라마센터 / 정진수 연출 1977년 2월 극단 민중 / 연극회관 쎄실극장 / 정진수 연출 1977년 10월 극단 민중 / 시민회관별관 / 정진수 연출 1981년 2월 극단 민중 / 시민회관별관 / 정진수 연출 1985년 2월 극단 민중 / 산울림소극장 / 정진수 연출 1985년 3월 30일~4월 12일 극단 민중 / 코리아나 극장 /정진수 연출 1987년 극단 부활 / 김도훈 연출 1987년 극단 뿌리 / 김도훈 연출 1989년 극단 뿌리 / 김도훈 연출 1991년 극단 동방 / 신대영 연출 1991년 극단 부활 / 박계배 연출 1991년 극단 사계 / 박계배 연출 1994년 극단 서전 / 박계배 연출 1998년 3월 극단 민중 / 명보아트홀 / 정진수 연출
예술가
오태석(吳泰錫, 1940~ ) 충남 서천 출생으로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동랑레퍼토리의 <루브> 연출로 연극계에 데뷔했다. 이후 <태>, <춘풍의 처>, <어미>, <한만선> 등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1984년에는 극단 목화를 창단해서 <아프리카>를 첫 작품으로 올렸다. 1987년에는 <부자유친>으로 서울 연극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90년에는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1991년에는 <백구야 껑충 나지마라>를 연출해서 호평을 받았다. 주요작품으로는 <태>, <춘풍의 처>, <초분>,<물보라>, <자전거>, <사추기>, <산수유>, <비닐하우스>, <백마강 달밤에> 등이 있다. 현재 목화레퍼터리컴퍼니 대표.(……) 극단 놀이패 한두레의 <뛰뛰빵빵>(놀이패 한두레 구성, 채희완 연출) 등도 보았지만 극단 뿌리의 창단 10주년기념공연 <땡큐 하나님>(닐 사이먼 작, 김도훈 연출, 4월 11일~5월 13일 엘칸토예술극장에서 재공연예정) 극단 민중의 <선인장꽃>(에이브 버로우스 作, 정진수 연출) 그리고 같은 극단의 1백 회 기념공연 <꿀맛>(셀라 딜래니 作, 정진수 演出, 3월 30일~4월 12일 코리아나극장)이 브로드웨이 희극이고,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25주년, 전용극장개관 10주년기념공연 <카사블랑카여 다시한번>(우디 앨런 작, 김성노 연출, 4월 5일~30일 실험극장전용극장)이 또한 희극이다. 이 중에서도 23년을 맞는 민중의 <꿀맛>과 실험의 <카사블랑카>는 여러 면에서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꿀맛>이 윤석화라는 스타급 여자연기자를 부각시키면서 정운봉, 이용녀, 김형영, 주용만의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면 <카사블랑카>는 강태기라는 역시 스타급의 남자연기자를 중심으로 반석진, 이승호, 김순이와 그 밖의 연기자들의 앙상블을 보여준다. 윤석화가 <선인장꽃>에서 아직 <신의 아그네스>의 연기스타일(특히 대사부분에서)을 벗지 못했던 것에 비해 <꿀맛>에서는 새로운 변신을 애쓰고 있다면, 강태기는 <에쿠우스>와는 다른 터치로 자신의 성숙을 과시하고 있다.(필자는 불행히도 <에쿠우스> 이후 처음으로 무대에서 그를 보았다.) 양쪽이 모두 안정된 조연들의 연기로 든든하게 뒷받침되고 있는데 필자에게는 <카사블랑카>의 김순이가 그 중 눈에 띄었다. 연기면에서 뿐 아니라 두 편이 모두 서두에서 말한 대로 희극, 그것도 특히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에 성공한 희극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꿀맛>의 연출가는 ‘블랙휴머’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종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삶에 대한 짜릿한 연기를 불러 일으키”려 했던 것 같고(<작품해설>에서 발췌), <카사블랑카>에서의 연출가는 “결국 연속되는 웃음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진실만이 모두에게 공감을 준다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게”(<연출의 말>에서 발췌) 만들려는 데 있었다는 일맥상통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기획의도는 공연비평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기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으나, 민중이 공연에 부대해서 개최한 심포지엄의 주제인 “장년층 관객개발방안이 은연중 두 공연의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이 될 수도 있다.” 만일 필자의 추측이나 관측이 과히 빗나간 것이 아니라면, 이로써 우리는 4반세기를 헤아리는 두 극단, 아니 두 극단으로 상징되는 한국연극계가 무슨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가도 과히 힘들이지 않고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공연예술이 그렇지만 특히 연극은 구체적인 관객 없이 제대로 설 수 없다. 관객 특히 극단과 함께 성장하는 관객에 대한 아쉬움을 이 두 공연이 소리없이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필자의 속단일까? ‘부담 없는 문화적 소일거리-희극 <꿀맛>, <카사블랑카여…>’, 김문환, <한국연극>, 1985년 4월호이즈음 들어서 주목을 끌고 있는 민중극장이 지난 가을에 딜래니 작 <꿀맛>을 정진수 연출로 드라마센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이 작품이 전후의 문제작이라는 사실을 넘어서 매우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연극의 본질을 잘 아는 정진수의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신인 박봉서의 연기는 이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민중극장에서 발탁된 신진 박봉서는 그 이후의 <대한(大恨)>이라든가 <방화범> 등에서도 매우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기대를 걸어 볼만한 배우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공연은 의외로 관객이 없었다.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썰렁한 관객의 찬바람에 놀라는 한편 연극환경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대처 못하는 극장시설, 얍삽한 선전에 좌우되는 연극관객 등등.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관객도 연극에 못지않을 정도로 환경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여하간 민중극장의 <꿀맛>은 즐거움과 함께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좋은 연극이라 확신한다. ‘즐거움과 함께 많은 의미를 주는 공연’, 유민영, 공연팸플릿, 1976년 10월 어쩌다 끊어진 전선끼리가 부딪치면서 내는 섬광을 본 기억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순간에 번쩍이는 그 불빛. 강하고 뜨겁기는 그저 찰나에 명멸하는 그 불꽃. 산업도시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욕구를 멀리서 바라보면 꼭 그 불꽃같으리라고 느껴진다. 문명이나 이윤, 심지어는 생활. 그러한 것들의 찌꺼기가 바람에 불려서는 쓰레기와 함께 멎어 있는 도시의 뒷골목-이 작품의 무대 같은- 안이면 그 같은 느낌은 한결 절실하다. 찌꺼기와 먼지에 촉발되어서 명멸하는 욕구의 불꽃들. 그것을 이 연극의 모녀는 보여주고 있다. 영 허물어져 버렸다기보다,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을 그냥 삶의 충동으로 삼아 살고 있는 듯한(어머니 아닌) 에미. 너무나 빨리 동경과 욕구를 뒤섞어 버린 딸. 뒤죽박죽이라기에는 모자이크 무늬 같은 데가 있는 모녀의 삶. 그러나 필경은 그늘진 뒤안길에 피었다가 사라진 먼지바람의 춤에 불과한 인생. 하지만 그 바람이 우리들 속을 허허하게가 아니고 갯바람처럼 짭짤하게 불고 그리고 우리들의 피 가운데 결코 만만하지 않은 회오리를 일으키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먼지바람의 춤에 불과한 인생…’, 김열규, 공연팸플릿, 1976년 10월
연계정보
-민중극장
-실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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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민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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