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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희(白星姬)

개요
1943년 빅타가극단의 <봉선화>(함세덕 작·연출)에 출연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은 백성희는 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도 한 번 하지 않고 무대만을 지켜온 연극계의 ‘천연기념물’이다. 1943년 극단 현대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947년 극단 극협의 창단 멤버를 거쳐 1950년 국립극단(신협) 창단과 함께 극협이 전속극단으로 들어올 때 입단하여 현재까지 활동하면서 국립극단 무대를 떠나본 적이 없다. 국립극단 창단과 함께 입단하여 50년 동안 한번도 소속을 바꾸지 않은 단원은 백성희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국립극단 무대지기’, ‘국립극단의 터줏대감’, ‘연극을 예술로 지켜온 파수꾼’ 등과 같은 다양한 별명이 늘 따라다닌다. 국립극단 단원이 된 후, 창립공연으로 <원술랑>을 마치고, 제2회 공연인 <뇌우>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6·25가 발발했고, 1·4후퇴 때에는 대구에서 활동했다. <뇌우>에서는 당시 연극계 대선배이자 스타였던 유계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1953년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마의 태자>, <줄리어스 시저>, <자명고>,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특히 유치진 작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서는 다른 배우들이 ‘추한 인물’로 여겨서 꺼려하던 나타샤 김 역을 맡아 오히려 아름답고 순수하기까지 한 인물로 표현하여 찬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꾸준히 국립극단 무대를 지켜온 백성희는 1972년 국립극단 단장으로 선임된다. 배우 출신의 젊은 여성이 국립극단 단장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화제를 끌기에 충분했다. 마침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완공되자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데에도 큰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이처럼 극단 살림하랴, 작품에 출연하랴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1989년에는 자신이 직접 기획한 <여자의 역할>이라는 공연을 외부출연으로 하였는데, 당시 오천원이던 관람료를 만원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연극의 입장료를 현실화하려는 의도였다. 1991년, 백성희는 다시 국립극장 단장이 되었고, 신작 유치와 단원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하여 성과를 이루어냈다. 또한 작품활동도 일년에 서너 편씩 거뜬히 해오고 있다. 이렇게 60년 넘게 무대에 서오는 동안 그녀가 출연한 작품은 500편을 헤아릴 정도다. 아이 역부터 거리의 창녀 역, 노파 역까지 거치지 않은 배역이 없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바로 백성희다. 연극인생 60년을 맞이한 2004년 4월에는 자전극 <길>(이윤택 작, 김혜련 연출)을 공연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의 나타샤 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의 마가렛 역,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역, <무녀도>의 모화 역을 비롯하여, <만선>, <산불>, <베니스의 상인>,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등이다.
생애와 약력
1942년 서울 동덕여자고등학교 졸업 1943년~1947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 <봉선화>(함세덕 작·연출)로 데뷔 1947년~1949년 극단 극협 단원 1950년~현재 국립극단 단원 1972년~1974년 국립극단 단장 1975년~1990년 국립극단 지도위원 1991년~1993년 국립극단 단장 1992년~1994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1994년~1997년 국립극단 지도위원 1997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졸업(연극학) 1998년~현재 국립극단 원로단원 2002년~현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2002년~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상훈
1962년 5월문예상 1964년 한국연극상(현 백상예술대상) 1966년 동아연극상 1969년 3·1연극상 1970년 문공부장관상 1974년 문공장관 표창장 1975년 한국명예위원회 공로상 1977년 3·1문화상 1979년 일본 동경 호에이주식회사 감사장 1980년 대통령표창 / 서울시문화상 1981년 LA총영사 감사패 1982년 국방장관 감사패 1983년 보관문화훈장 / 서울시 모범시민 표창장 1984년 백상예술대상 1985년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1988년 동랑연극상 1990년 예술문화 공로상 1993년 한국연극인상 199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6년 제6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상 / 96 특별공로예술인 1997년 제6회 행원문화상(행원문화재단) / 제11회 춘강상(예술부문, 동덕여학단) 1998년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연극부문) 1999년 한국연극배우협회 올해의 배우상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 대한민국예술원상 2002년 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상(본상)
작품활동
1943년 <봉선화>(함세덕 작·연출) 1944년 <낙화암>(함세덕 각색·연출) / <목격자>(맥스웰 앤더슨 작, 함세덕 연출) 1945년 <백야>(함세덕 각색·연출) 1946년 <조국>(유치진 작) / <마인>(김래성 작, 김시권 연출) 1947년 <산적>(쉴러 작, 유치진 연출) / <평강공주>(박노흥 작·연출) 1948년 <높은 암산>(맥스웰 앤더슨 작, 김규대 연출) / <항우와 미인>(박노흥 작, 김규대 연출) 1949년 <견우직녀>(서항석 각색) / <간디>(이해랑 연출) 1950년 <원술랑>(유치진 작·연출) / <뇌우>(조우 작, 유치진 연출) 1951년 <바다>(신인 작, 이광래 연출) 1952년 <무영탑>(이광래 각색·연출) 1953년 <녹스는 파편>(오상원 작) / <제2의 생명>(이원경 작·연출) 1954년 <자명고>(유치진 작·연출) / <나도 인간이 되련다>(유치진 작·연출) / <자유부인>(정비석 원작, 이해랑 연출) 1955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 <박쥐>(오화섭 역, 이해랑 연출) / <다이알 M을 돌려라>(이해랑 연출) 1956년 <오델로>(셰익스피어 작, 유치진 연출) /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유진 오닐 작, 유치진 연출) 1957년 <신앙과 고향>(카발 쉐인헤 작, 홍해성 연출) / <태풍경보>(고프먼 하이드 작, 이진순 연출) /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하유상 작, 박진 연출) 1958년 <씨라노 드 벨쥬락>(에드몽 로스탕 작, 이진순 연출) / <릴리옴>(훼렌츠 본나르 작, 이원경 연출) /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박동화 작, 박진 연출) 1959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테네시 윌리엄스 작, 이해랑 연출) 1960년 <여인천하>(박종화 작, 이진순 연출) / <빌헬름 텔>(쉴러 작, 이해랑 연출) / <죄와 벌>(도스토예프스키 작, 이해랑 연출) 1961년 <여당원>(찰오 작, 서항석 연출) / <미풍>(하유상 작, 이해랑 연출) / <태양을 향하여>(차범석 작, 이진순 연출) 1962년 <젊음의 찬가>(이용찬 작, 박진 연출) / <침종>(하우프트만 작, 서항석 연출) / <산불>(차범석 작, 이진순 연출) 1963년 <결혼중매>(손튼 와일더 작, 이기하 연출) / <해풍>(박만규 작, 이진순 연출) / <푸른 명맥>(이응찬 작, 박진 연출) 1964년 <욕망>(이근삼 작, 최현민 연출) / <베니스의 상인>(셰익스피어 작, 이진순 연출) / <만선>(천승세 작, 최현민 연출) / <순교자>(김은국 작, 허규 연출) 1965년 <여성만세>(하유상 작, 박진 연출) / <울어도 부끄럽지 않다>(제임스 리 작, 오사량 연출) / <바꼬지>(이재현 작, 이진순 연출) / <수선화>(이원경 작, 박진 연출) 1966년 <열대어>(차범석 작, 표제순 연출) / <갈매기>(안톤 체홉 작, 이진순 연출) / <이 길고 지루한 여름>(김병원 작, 박진 연출) 1967년 <세자매>(안톤 체홉 작, 이해랑 연출) / <밤과 같이 놓은 벽>(전진호 작, 허규 연출) / <사계절의 사나이>(로버트 볼트 작, 이기하 연출) /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윤조병 작, 서항석 연출) 1968년 <북간도>(안수길 작, 이해랑 연출) / <엄마의 모습>(이원경 연출) / <수전노>(몰리에르 작, 이진순 연출) 1969년 <이민선>(김자림 작, 전세권 연출) / <헨리8세의 여인들>(몰리에르 작, 임영웅 연출) 1970년 <금삼의 피>(박종화 각색, 박진 연출) /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원작, 이진순 연출) 1971년 <꽃상여>(하유상 작, 이진순 연출) / <달집>(노경식 작, 임영웅 연출) / <손달 씨의 하루>(전진호 작, 허규 연출) 1972년 <환절기>(오태석 작, 임영웅 연출) / <환상여행>(차범석 작, 이기하 연출) 1973년 <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허규 연출) 1974년 <활화산>(차범석 작, 이해랑 연출) 1975년 <징비록>(노경식 작, 이해랑 연출) / <고랑포의 신화>(윤조병 작, 이진순 연출) 1976년 <함성>(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 / <손탁호텔>(차범석 작, 이해랑 연출) / <페르귄트>(헨릭 입센 작, 이진순 연출) 1977년 <인생차압>(오영진 작, 이승규 연출) / <파우스트>(괴테 작, 이해랑 연출) / <크리스토퍼의 죽음>(시드니 하워드 작, 이진순 연출) 1978년 <에밀레종>(하유상 각색, 임영웅 연출) / <천사여, 고향을 보라>(토마스 울프 작, 이해랑 연출) / <물보라>(오태석 작·연출) 1979년 <봉선화 피는 언덕>(나오이 깅야 작, 이노우에 연출) / <베케트>(장 아누이 작, 임영웅 연출) / <무녀도>(김동리 작, 허규 연출) 1980년 <북간도>(안수길 작, 이해랑 연출) / <산수유>(오태석 작, 이해랑 연출) 1981년 <세종대왕>(이재현 작, 허규 연출) / <귀향>(이근삼 작, 정호영 연출) 1982년 <장화 신은 고양이>(루드비히 티이크 작, 오태석 연출) / <삭풍의 계절>(김의경 작, 이해랑 연출) 1983년 <바리데기>(김진희 작, 손진책 연출) / <나래섬>(오태석 작, 허규 연출) 1984년 <불타는 여울>(노경식 작, 이진순 연출) / <파우스트>(괴테 작, 이해랑 연출) 1985년 <옛날 옛적에 훠어이 휘이>(최인훈 작, 김정옥 연출) / <하늘만큼 먼 나라>(노경식 작, 임영웅 연출) /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근삼 작, 허규 연출) 1986년 <인종자의 손>(전진호 작, 이해랑 연출) / <비옹사옹>(이강백 작, 이승규 연출) 1987년 <황금연못>(어네스트 톰프슨 작, 이해랑 연출) / <들오리>(헨릭 입센 작, 이해랑 연출) 1988년 <뇌우>(조우 작, 이해랑 연출) 1989년 <여자의 역할>(다리오 포 작, 김효경 연출) / <간계와 사랑>(쉴러 작, F. 아놀드 연출) 1990년 <남한산성>(김의경 작, 정일성 연출) / <외로운 도시>(윤조병 작, 오태석 연출) 1991년 <넋씨>(이현화 작, 강영걸 연출) / <물거품>(이강백 작, 이병훈 연출) / <검찰관>(고골 작, 김철리 연출) 1992년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김상열 연출) / <법에는 법으로>(셰익스피어 작, 김창화 연출) 1993년 <홍동지는 살어있다>(김광림 작, 이윤택 연출) / <앙드로마끄>(라신느 작, D. 아미아스 연출) / <여관집 여주인>(골도니 작, 베로나디 연출) / <피고지고 피고지고>(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 1994년 <이성계의 부동산>(이근삼 작, 김도훈 연출) 1995년 <반도와 영웅>(김의경 작, 장진호 연출) / <리차드 3세>(셰익스피어 작, 김철리 연출) / <혼자 사는 세 여자>(백성희 연극50주년 기념공연, 이반 멘첼 작, 정일성 연출) 1996년 <춘향아, 춘향아>(이근삼 작, 김광림 연출) /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오스카 와일드 작, 정진수 연출) / <혼 없는 여자>(A. 아스트롭스키 작, B.마로조프 연출) / <십이야>(셰익스피어 작, 박원경 연출) 1998년 <목포의 눈물>(기국서 연출) 1999년 <아Q정전>(노신 작, 김효경 연출) / <무의도 기행>(함세덕 작, 김석만 연출) / <운상각>(오태석 작·연출) 2000년 <솔베이지의 노래>(입센 작, 임경식 연출) / <광대들의 비나리>(구히서 작, 박은희 연출) / <마르고 닳도록>(이강백 작, 이상우 연출) 2001년 <나 어릴 적에>(김정숙 작·연출) 2002년 <강 건너 저편에>(2002년 한일국민교류의 해 기념 한일합동공연) 일본 신국립극장 공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공연 2003년 <문제적 인간 연산>(이윤택 작·연출) 2004년 백성희 무대 60주년 기념공연 배우 백성희 자전극 <길> 공연 / <바냐아저씨>(안톤 체홉 작, 전훈 연출)
대표작품
<뇌우> <나도 인간이 되련다> <산불> <만선> <물보라> <무녀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달집> <여자의 역할> <길>
저서
<예술가의 삶-무대 밖에서>, 백성희, 혜화당, 1994
리뷰
(……) 국립극장 개관 공연 때 함께 출연했던 이해랑(연출), 김동원, 백성희 등이 새롭게 만나 이루어진 무대였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감회 깊은 회한의 무대라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열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놓음으로써 무대가 격정으로 가득찬 느낌을 주기도 했다. 70대의 원로 연출가와 노배우가 인생을 되돌아보는 작품을 택한 것부터가 자신의 지나온 삶뿐만 아니라 연극생활을 총정리하는 의미로 비쳐져서 관객도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가 있었다. 희랍 비극 <페드라>와 입센의 비극 <유령>을 합친 듯한 이 작품은 인간의 업보를 농도 짙게 다룬 점에서 매우 고전적이었다. 그런데 흥미있었던 것은 <뇌우> 공연이 이해랑 자신의 연극관에 입각해서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해랑은 언제나 진정한 연극은 무대 뒤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공연을 보더라도 중요한 사건은 모두가 보이지 않는 커튼 뒤에서 일어났다. 가령 주인공들의 죽음이 그 좋은 본보기이다. (……) -‘국립극단의 <뇌우>’, 유민영, <80년대 연극평론 자료집Ⅱ>,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 무대 지킴이 60년을 온 몸으로 증언하는 백성희 님은 그러한 우려를 뒤로하며 장충동 언덕길을 헤치고 대학로로 모처럼의 봄나들이를 하셨습니다. 그네를 사랑하는 주변의 충동과 격려가 실린 공연 <길>(이윤택 극본, 김혜련 연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본인의 삶 자체이기도 한 한국연극의 험난한 길을 반추코자 말입니다. 그건 연극배우의 궁극적인 자세를 기다림으로 정리하며, 설득과 용서를 최선의 가치로 귀띔해주러 나선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건 또한 사생활의 은밀한 상처마저 드러내는 부담을 지닌 아직 끝나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님은 무대 깊이를 최대한 활용한 백스테이지 저 멀리로부터 다가왔습니다. 무대중앙을 가로지른 곡선의 긴 경사길을 따라 나오면서 시각적으로 삶과 연극여정의 굴곡을 은유하면서 말입니다. 느리고 조심스런 걸음이었으나 거기엔 세월을 배반하는 단아한 자태가 있었으며, 그건 그녀가 평생 지켜온 배우의 절제와 격조의 암시였습니다. 중도에 멈춰 선 님은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걷던 그녀는 정중한 인사로서 관객에게 연극적 환상을 잠시 거두라고 일러줍니다. 마침내 길 왼편의 벤치에 앉은 그녀는 그곳에서 결혼과 함께 배우의 꿈을 접었으나 무대를 향한 새로운 욕망으로 번민하는 젊은 여성(김소희)을 만나게 됩니다. 호들갑스럽게 절망을 표출하는 그녀를 침묵으로 일관하던 님은 이런 말을 해줍니다. “나는 이 길을 걸어 왔어. 다른 어떤 길도 아닌 배우의 길을.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이 길을 죽을 때까지 가는 거야…….” <길>은 고스란히 님의 스토리였으며, 그건 연극과 분리될 수 없는 얘기였습니다. 그것이 설득력 있는 무대공연으로서 재탄생될 수 있도록 작가는 형식을 구축하고 거기다가 선별된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대본에 큰 획을 그어대며 거침없는 연극언어를 덧씌우면서 말입니다. 그건 연극을 연극답게 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실 연극을 연극으로 푸는 거라는 판단에 근거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메타연극’이라고 친절히 일러주면서 말입니다. 무대를 장악하는 예의 작가의 힘은 기대했던 바 연출적 표현을 리드하며 자신의 미학적 팻말을 굳게 박아놓더군요. (……) 자전극의 결함을 피하려는 미학적 선택들이 충돌하고 또 화합하는 무대였습니다. 탁월한 지적 감성과 철성의 소리로 긴 세월 무대를 지켜온 님의 공연은 당신의 출현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자리였습니다. 헌정과 괴리될 수 없는 님의 극은 굴곡이 있었으나 아름답고 행복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이었고, 우린 그 앞에서 겸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 ‘아직 끝나지 않은 행복한 굴곡의 길목에서’, 허순자, <한국연극>, 2004년 5월
창작노트
(……) 내가 연극공부를 하면서 맨 먼저 절실히 받아들인 것은 ‘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 점은 선배들의 연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상하거나 지성 있는 인물도 평소에 보는 그 배우만큼밖에 무대에서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연기를 통해 그 배우의 인격마저도 볼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십 년 동안 사람의 격을 공부한 셈이었다고나 할까. 중간에 돌이켜보니, 어찌된 셈인지 아름답거나 지적이거나, 착한 부류의 여인들만이 내게 맡겨진다. 배우가 어찌 같은 유형의 인물만 표현하며 평생을 무대에 선단 말인가. 그것은 하는 쪽이나 보는 쪽 모두가 얼마 못 가 싫증이 날 듯 싶었다. 무언가 새로운 욕구가 내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서 나는 대담한 연기를 시도했다. ‘나타샤 김’은 살이 찌고 못생겼으며, 지독한 사투리에 권력을 휘두르고 남의 사랑하는 사람을 가로채려는 여자로 어느 한 구석도 볼품 없는 인물이다. 여배우 누구라도 그런 역할을 기피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한국의 피가 섞인 소련 2세이다. 치를 떨며 미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1. 미울 수밖에 없는 그 여자를 동정이 가는 여자로 만들어 보자. 2. 그녀가 ‘복희’의 애인 ‘백석봉’을 좋아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남자 외에 다른 남자와 접촉이 없는 점이 그렇다. 그러기에 그 여자에게 순수성을 부여하자. 관능적이고 탐욕스럽게 이 남자 저 남자를 마음대로 갖고 노는 여자가 아니고 마음에 드는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여자로 만들자. 3. 그렇게 가도 작가의 의도에는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심리적(내면적)인 작업을 해놓고 그녀의 장기인 사투리, 춤, 노래 등 물리적인 체현을 극성으로 익혔다. 노래와 춤은 가까워졌다. - <예술가의 삶-무대 밖에서>, 백성희, 혜화당, 1994
관련도서
‘무대위의 얼굴’, <한국연극>, 구히서, 1987년 2월 ‘만남-백성희’, <한국연극>, 박정영, 1991년 2월 ‘커버스토리 백성희’, <한국연극>, 1995년 7월 ‘표지이야기 배우 백성희’, <한국연극>, 이선우, 1999년 11월
연계정보
-원술랑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산불
-환절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홍동지는 살어있다
-마르고 닳도록
-무의도기행
-만선
-이끼낀 고향에 돌아오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이성계의 부동산
-신극협의회
-국립극단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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