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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개요
1917년 1월부터 6월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총 126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이광수의 장편소설. 1918년 광익서관(廣益書館)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로서 근대 문단 초기 이광수의 개척자적 공적을 인정받게 한 대표작이다. 구가족 제도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박영채와 자유연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형식, 김선형의 삼각관계 설정은 당대 사회의 풍속적 갈등을 포착하고 낡은 가치와 새 가치 제도 사이의 균열을 드러낸다. 인물, 구성, 주제, 문체 등 다각도에서 근대소설의 체질개선을 이룬 작품으로, 연애문제, 새로운 결혼관 등을 통하여 당대 최고의 시대적 선(善)으로 받아들여진 문명개화를 표방한 작품이다.
내용
경성학교의 영어교사인 이형식은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김장로의 딸 선형의 영어를 개인지도하면서 차츰 선형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한편 형식의 어린 시절 동무이자 옛 은사 박진사의 딸로서 어릴 때 형식과 정혼한 영채는 투옥된 애국지사 부친의 구출을 위해 평양 기생으로 있으면서 형식을 잊지 못하고 정조를 지켜왔다. 영채가 형식을 찾아오고 형식은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형식을 찾아 상경한 영채는 경성학교 배학감에게 순결을 빼앗기자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 다시 사라진다. 자살을 결심한 영채는 우연히 음악을 공부하는 동경유학생인 신여성 병욱을 만나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을 얻어간다. 영채에게 자책감을 느낀 형식은 영채를 찾아나서지만, 영채에게 흑심을 품었던 김현수의 모략에 빠져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곤란에 빠진 형식은 김장로의 도움으로 그의 딸 선형과 약혼하고 함께 미국유학길에 나선다. 봉건적 관념에서 벗어난 영채 역시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유학을 결심한다. 유학길에 나선 형식과 영채 일행은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재회하는데, 기차가 수해 현장에 연착하자 한마음이 되어 자선음악회와 봉사활동에 임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민족의 미래를 담당할 주체임을 깨달으며 각기 학업을 마치고 조선의 역군이 되려는 희망에 부푼다.
저자
이광수(李光洙)
생애(1892~1950)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 고주(孤舟), 장백산인(長白山人), 외배, 올보리. 평북 정주 출생. 11세에 부모를 여의고 먼 친척집에 맡겨졌으며 어렵게 기식하면서 고대소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03년 동학에 입도해 동학당 대령 박찬명의 집에 머무르며 전령 구실을 하다가 1905년 일진회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건너갔다. 다이조(大成) 중학교를 거쳐 메이지(明治) 학원에서 수학했다. 이 시기 홍명희, 최남선 등과 교유하여 잡지 <소년>을 중심으로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10년 학교를 졸업한 뒤 정주 오산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13년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나 상하이(上海)에 머물렀다. 이듬해 러시아에 들러 교포신문을 주간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행이 중단되자 귀국하여 다시 오산학교 교원으로 일했다. 1915년 김성수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재학 중 <매일신보>에 <무정>(1917)을 연재하고 이후 <자녀중심론> 등의 계몽적 논설을 발표하였다. 1918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탈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였으며, 안창호의 준비론에 공감하여 흥사단에 참여하다가 1921년 귀국, 흥사단 이념의 실천을 위한 ‘수양동맹회’를 발기했다. 1923년 동아일보사 객원이 되어 언론에 관계하기 시작하였으며, 1924년 <조선문단>의 창간을 주재하였고, 수양동맹회를 ‘동우회’로 확대개편한 후 1926년 기관지 <동광>을 창간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1934년 사임할 때까지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5개월 동안 영어생활을 한 후, 1940년 카야마 미츠로(香山光郞)로 개명하고 학병권유 연설 등 친일활동을 벌였다. 1949년 반민특위법으로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석방되었고, 1950년 납북되어 그해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이광수의 작품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1910년대로 주로 <소년>, <청춘>, <학지광>, <매일신보>를 무대로 문필활동을 했던 시기이다. 처녀장편이자 대표작인 <무정>(1917)을 비롯하여 장편 <개척자>(1918), 단편 <무정>(1910)·<윤광호>(1918), 시 <옥중호걸>(1910), 논설 <위선 수가 되고 연후에 인이 되라>(1917)·<자녀중심론>(1918) 등이 주요 저작들이며, 특히 장편 <무정>은 한국소설사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광수는 기존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비판자로 등장하여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역설하였으며, 그러한 주장은 철저히 진화론적인 사고에 토대를 두고 있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상하이에서 귀국하여 문필활동을 재개한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 이광수의 글은 현저히 윤리중심주의적 색채를 띠게 된다. 상하이 시절, 도산 안창호로부터 받아들인 ‘준비론’의 이념도 이러한 경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편소설 <재생>(1925)·<마의태자>(1926~1927)·<단종애사>(1928)·<흙>(1933), 논설 <민족개조론>(1922)·<소년에게>(1922) 등이 이 시기의 주요 저작이다. 장편 <재생>에서는 <무정>에서 나타났던 근대주의적 사고가 반성되고 있으며, 특히 <민족개조론>은 민족의 부활을 위한 처방으로 도덕적 개조를 주창하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1930년대 중반 이후로, 이때부터 불교적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어, 윤리중심주의적 경향이 더욱 극단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불교관은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대승적 경향의 것으로 특히 장편 <세종대왕>(1940)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의 주요작품으로는 장편 <이차돈의 사>(1935)·<사랑>(1938)·<원효대사>(1942), 단편 <무명>(1939) 등이 있다. 광복 이후의 주요저작으로는 전기 <도산 안창호>(1947), <나의 고백>(1948), 수필집 <돌베개>(1948)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 전까지 <태양신문>에 연재하던 미완의 장편 <서울>이 마지막 작품이다. (……) <무정>은 1910년대 드높았던 문명 개화열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계몽적 이상주의 형태로 나타난 <무정>의 이데올로기는 지배 이념 체계의 혼란을 광범위하게 드러내며 격동하던 당대 지식청년을 열광시켰다. 그 이데올로기는 당대 지식 청년 일반의 지향성과 일치했다. 그러나 <무정>의 계몽적 이상주의는 추상적이어서 등장인물은 문명 개화 열망으로 뜨겁게 고양되지만 누구도 구체적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무정>의 추상성은 작가의 현실탐구가 지극히 피상적 수준에 놓였음을 뜻한다. 이광수가 파악한 당대 현실은 ‘비문명’이란 추상어 하나로 요약되어 <무정>은 비문명/문명의 단순명료한 이원구조로 이루어졌다. <무정>을 이끄는 계몽적 이상주의는 한 점의 회의·반성적 사고의 편린도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한 낙관주의 면모를 드러낸다. 또 중심인물인 이형식과 박영채가 고아(뿌리없는 존재)로 설정되었고 김병욱, 김선형 등 이형식의 압도적 계몽을 추종하는 인물 모두 어떠한 이념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 정신적 적자(赤子) 상태에서 이형식과 관계 맺고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이광수는 비문명/문명의 이원 구조 위에 선 소명의식으로 민족 스승이 되고자 하는 길을 외길로 내달려갔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를 기다린 건 친일 선동의 욕된 자리였다. (……) - <우리문학 100년>, 김윤식 외, 현암사, 2001(……) 그의 최초의 소설은 <사랑인가>(1909)라는 일본어로 된 단편이며, 한글로 된 것은 단편 <무정>(1910)이다. 그런데 보통 이광수의 초기의 대표작으로 치는 <무정>(1917)은 장편이며, <매일신보>에 연재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장편은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개화기 서울이 배경인 이 소설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은 경성학교 영어 교사이고, 미혼 청년으로 과도기 신청년의 성격을 대표하는 이형식, 김 장로의 딸로 과도기의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김선형, 어릴 때 이형식과 약혼한 바 있는 구도덕을 대표하는 여인인 영채 등이다. (……) 보통 이 작가를 계몽적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초기 사상은 구사상으로서의 도덕과 유교를 공격하여 민족개조론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무정>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계몽주의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며, 특히 끝부분의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무정>의 문학사적 위치는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 형식이라는 점에 있다. 이 소설적 골격이 가능했던 것은 정삼각형 연애소설이라는 점에서 연유된다. 이광수 소설의 기본 구조가 이런 것이다. <흙>에서 이 점이 되풀이된다. 둘째로, 서툴지라도 사상을 주축으로 하였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장편을 가능케 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언문일치에 대한 노력이다. 물론 <무정>에는 아직도 He나 She에 해당되는 대명사가 모두 ‘그’로만 되어 있고(이 점도 이광수의 노력이다) ‘더라’투가 남아 있으나 상당히 세련된 문체를 개척하였다. 끝으로, 이광수의 개인적 특성으로는 고아의식(孤兒意識)을 들 수 있다. 또한 정거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우연성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 모두는 고아로 자란 이광수의 사랑에 대한 기갈증 콤플렉스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한국현대문학명작사전>, 김윤식, 일지사, 1979(……) 191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공고해가는 식민지 현실 아래 계몽의 방식으로 현실에 대응코자 한 것이 이광수의 <무정>이다. <무정>은 이전 소설에서 나타났던 여러 양상들을 교묘하게 착종시키고 있지만 역시 작품 전반을 관류하는 기본 성향은 계몽주의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결국 계몽기 신소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무정>은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 및 고민을 진전된 성격 묘사의 방식으로 실감나게 형상화한다. 특히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성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현실성과 근대성을 획득한다. (……) <무정>은 당대 어느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자유연애 문제를 둘러싼 그 시대 사람들의 인정기미들을 실감나게 형상화하고 있어 일정한 리얼리즘적 성취를 얻어낸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자유연애만이 아닌 근대적 자강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비록 그것이 탈정치적이고 제약된 성격을 띤 것일지라도, <무정>에서 주장된 이러한 생각들은 이 작품을 부르주아 계몽주의소설의 정점에 놓이게 한다. 그러나 이미 엄혹한 식민지 현실 앞에서 이러한 계몽적 의식 내지 방식은 무력하고 초라한 것이니, <무정>의 결말에서 보이는 시혜적 입장에 선 계몽적 화자의 자의적이고 기만적인 낙관은 이미 예측된 결과다. 특히 <무정>은 현실개량 방식의 하나로,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성실한 선각자적 지식인을 통한 도덕개량을 주장한다. 그러나 도덕개량은 인식대상이 되는 대상의 사회적 성격을 해체하여 모든 것을 도덕성 내지 인간성의 문제로 환원하게 된다. 따라서 이로부터 무슨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나 구체적 전망을 얻어낼 수 없게 된다. 즉 이러한 현실 개량의 근본적 한계는 모든 사회관계와 역사발전을 개인의 주관적 의도나 결단, 혹은 선각자적 일군의 개인들이 갖는 바람, 규범 등으로 설명하려는 역사적 관념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정>에서는 소설미학상 취재(取才)의 현실성, 심리 및 성격묘사의 새로운 점이 나타나고 있어 근대소설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형식 등의 지식인 주인공들은 주관화되어 있고, 따라서 그들이 구체적인 사회현실 형태 안에서 비판적인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형상화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좀더 적극적 의미의 근대소설은 <무정> 이후를 기대해야 했다. (……) - <한국 근대소설과 현실인식의 역사>, 양문규, 소명출판, 2002
작가의 말
각 신문·잡지의 신년호에는 예술평론이 한 필수 종목이 되어 있다. 금년에도 그러하였다. 이것은 무릇 조선만의 일이 아니다. 전세계 모든 문화사회가 다 그러하다. 예술은 인생생활의 한 필수조건(必須條件)이다. 그런데 조선 내 각 지상의 예술평-대개는 문예평을 보면 이른바 이데올로기 본위평이 대부분을 점한 듯하다. 작중의 인물의 이데올로기가 모주의(某主義)에 합(合)하고 아니하는 것으로- 바꿔 말하면 어떤 작품의 모 이데올로기 선전가치(宣傳價値) 여하(如何)로 그 작품의 가치를 평하는 그런 종류의 평이 많다. 이런 종류의 평은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문외인(門外人)의 비위평(脾胃評)이다. 예술적 작품을 일종의 선전 삐라로 보는 평이다. 예술에 대한 수학(修學)도 식견(識見)도 없는 이는 이런 평 이상의 평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간(無間)한 친구 간에 만담(漫談)으로나 할 것이지 이것이 평(評)입시오 하고 활자에 박아서 내어놓을 것은 못된다. 예술이란 본래 재주란 말이요, 솜씨란 말이다. 회화(繪畵)나 음악(音樂)이나 시문(詩文)이나 또는 조소(彫塑)나 건축(建築)이나를 막론하고 우리가 그 속에서 구하려는 것은 결코 어떤 이데올로기의 설명은 아니다. 이데올로기도 예술의 재료는 될 수 있지마는 다만 재료가 될 뿐이지 예술의 목적은 아니다. 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예술보다도 더욱 직절간명(直截簡明)한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논문·풍자화 등등. 우리가 예술품에서 구하는 것은 숭엄(崇嚴)이라든가, 장엄(莊嚴)이라든가, 우미(優美)라든가, 숭엄·장엄·우미화한 슬픔·기쁨이라든가 우리 일반민중이 평소의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높은, 깊은, 넓은 감격(感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예술평은 어떤 작품이 이러한 효과(效果)를 가졌나 못 가졌나, 가졌다 하면 그 구성 요인이 무엇인가. 못 가졌다면 어디가 부족인가. 문장(文章)엔가, 묘사(描寫)엔가, 취재(取材)엔가, 기타의 기술(技術)엔가, 작자의 정신의 고저(高低)엔가를 설명한 비평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평은 그렇게 만문만담적(漫文漫談的)으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1934년 1월 7일) - ‘예술과 예술평’, 이광수, <이광수전집9>, 삼중당, 1971
관련도서
<이광수문학사전>, 한승옥, 고려대출판부, 2002 <이광수를 위한 변명>, 이중오, 중앙M&B, 2000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윤석, 솔, 1999 <이광수>, 한승옥, 건국대출판부, 1995 <춘원 이광수 문학 연구>, 연세대학교국학연구원 편, 국학자료원, 1994 <이광수 소설의 비판과 옹호>, 한용환, 새미, 1994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김열규 외, 새문사, 1986 <이광수 연구>, 한국문학연구소, 태학사, 198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현대문학명작사전>, 김윤식, 일지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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