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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개요
나혜석의 <경희>는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의 작품이자 봉건적 인습에 묶여 있던 여성의 자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애국계몽기 남녀평등과 여성교육론의 초기 여성해방 의식이 드러나는 소설로서 <학지광>에 실린 나혜석의 논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참정권운동이 주축을 이룬 여권론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나혜석은 동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논설, 소설 등 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여자계>의 편집 등 동경여자유학생회의 주요멤버로서도 활약하였는데, <경희>를 보면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통해 1910년대 일본 여자유학생의 갈등과 고뇌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 소재적인 가치도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여자도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를 봉건적 여성의 삶의 모순을 통해 보여준다. 문제제기와 갈등 해결의 현실성과 인물 묘사의 생생함에서 1910년대 단편소설 중 가장 우수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 알려진 이 작품으로 인해 나혜석은 1910년대 근대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내용
일본 유학생 ‘경희’는 잠시 집에 다니러 와 있다.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경희는 오래간만에 만난 오라버니댁과 시월이와 함께 바느질을 하며 일본 이야기에 한창이다. 어머니를 만나러 온 사돈마님이 아니나다를까 경희를 불러 고된 공부 고만하고 시집가야 않겠냐며 걱정이다. 경희는 만나는 이마다 일치된 이 걱정을 들으며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라 속으로 다짐한다. 아들의 설득에 넘어가 경희를 유학보낸 어머니 김 부인도 같은 걱정이지만, 한편으론 경희가 배울수록 의사가 나는 것이 기특하고 과연 여자도 남자와 같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이철원 역시 반듯한 경희의 사고와 행실을 기특해 하나 과년한 나이에 좋은 혼처를 놓치기 싫어 이번에는 꼭 시집을 보내리라 결심한다. 아버지의 강권에 경희는 선택을 두고 깊은 회의에 빠진다. 부잣집 며느리로 탄탄대로를 밟을 것인가, 험하고 천대받는 어려운 길을 택할 것인가… 제가 배운 것이라봐야 아직 아무 것도 아닌데, 의지가 강고한 자가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실력과 희생이 함께 따르는 길인 것이다. 고민 끝에, “그리로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묻는 아버지에게 ‘먹고만 살다 죽으면 사람이 아니라 금수’일 뿐,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먹는 것이 사람’이며 ‘조상이 벌어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는 것은 우리집 개나 일반’이라 한 제 답이 옳았음을 확신하며, 경희는 있는 힘을 다해 일하며 살겠다는 기도를 올린다.
저자
나혜석(羅蕙錫)
생애(1896~1946)
1896년 4월 경기도 수원 출생.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를 졸업했다. 도쿄 유학 중인 1915년 잡지 <여자계(女子界)>의 발간에 앞장섰으며, 이 잡지에 단편소설 <정순>, <경희> 등을 발표하였다. 1920년 문학동인지 <폐허>의 창간에 참여하여 이듬해 시 <냇물>, <사(砂)>를 발표하였고, 이후 몇 편의 시와 <규원>(1921), <현숙>(1936) 등의 단편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을 발표하였다. 주로 인습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과 그 극복의 문제를 그렸다. 한편, 1921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회부터 5회까지 입선하는 등 서양화의 개척자로서 활약하였고, 1923년 고려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구한 말부터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다 제도적 억압과 주위의 질시 속에 희생된 과도기의 한국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여자계>에 발표한 <경희>(1918)는 1910년대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자전적 소설로서 신여성이 구여성을 설득하며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후에도 여성들이 겪고 있는 질곡을 다룬 단편들을 주로 발표했다. <폐허>에 발표한 <사>(1921)는 시의 짜임새나 시상의 전개방식 면에서는 완결성이 떨어지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허무주의적 경향과 암울한 분위기에서 스스로에게 부르짖는 처절한 삶의 호소를 볼 수 있다. 1921년 <매일신보>에 발표된 시 <인형의 집>은 인간적인 의지와 자유를 인습의 굴레에 의해 빼앗기고 있는 여성의 위치를 ‘인형-위안물’이라는 말로 표상하고 있으며, 작자의 개인적인 정서와 시대적 상황과의 상관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1926년과 1936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규원>, <현숙> 등의 소설은 작중인물의 성격변화나 행위 등에 대해 일체의 도덕적, 사회윤리적 평가를 유보한 채,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외에 여러 편의 수필을 발표했다. 최근엔 근대문학을 연 발군의 페미니즘 작가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리뷰
(……) 여성작가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평가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러나 뒤늦게 알려진 소설 <경희(瓊姬)>(1918)만으로도 나혜석은 1910년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계속 새로운 작품들이 발굴됨으로써 근대문학 최초의 여성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기고 있는 산문들은 여성의 경험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택한 ‘여성적 글쓰기’로서도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 일본 유학생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신여성의 이상을 조선적 현실에 구현하는 구체적 방법을 모색한 <경희>는 부르주아 계몽문학으로서 동시대 남성들의 소설보다도 사실성이나 구성력, 인물의 성격화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1910년대 소설 중 교육받은 지식인 여성이 현실에 고뇌하면서 주인공 급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조역으로라도 등장할 경우는 대개 허영에 젖어 있어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지만 성적 방종, 허위 의식, 사이비 근대의식 같은 부정적 측면만 부각되어 있을 뿐 그 여성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의 갈등, 좌절, 그리고 진지한 자아 실현의 모색 과정을 묘사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나혜석은 일찌감치 신여성에 대한 이런 비난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자각한 신여성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경희>에서 진지하게 모색했다.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시각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드러나는 지점이다. 소설은 경희라는 신여성이 봉건적인 인습과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경쾌하게 묘사했다. 봉건적인 인습, 여성의 적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완고한 남성뿐만 아니라 봉건적 관념에 찌들은 여성들 속에도 있다. 그리고 소설은 섣불리 남성들에게 비난과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여성에 대한 적대감과 오해, 의식에서 앞서가는 여성이 자칫 범하기 쉬운 관념적 선진성을 비판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결혼문제를 놓고 경희가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장면이다. 경희의 아버지는 “계집애라는 것이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하며 결혼할 것을 요구한다. 거기에 대해 경희는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라고 거부한다. (……) 다시 아버지는 “그리로 시집 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하면서 문벌 좋고 재산 있는 집안과의 결혼을 강요한다. 거기에 대해 경희는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 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집 개나 일반이지요” 하였다. 자각한 신여성의 결혼관이다. 그런데 이런 외부로 향한 당당한 선언 뒤에 다시 진지한 내면의 갈등과 현실적 조건에 대한 회의가 뒤따름으로 해서 이 선언이 무게를 가지게 된다. “편하게 전과 같이 살다가 죽읍시다”라는 안일한 생활에의 유혹과 “남들이 다하는 것쯤의 학문으로 나 같은 것이 무엇하나”라는 자기 성찰, “그리 많이 해 무엇 하니, 사내니 고을을 간단 말이냐, 군주사라도 한단 말이냐? 지금 세상에 사내도 배워가지고 쓸 데가 없어서 쩔쩔 매는데”라는 말에 구체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런 것은 경희의 불안이자 작가 나혜석과 동시대 여자 유학생 모두의 불안이다. 이들이 시대의 선각자일 뿐 아니라 특히 여성이기에 더 심각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성에게 휠씬 더 적대적인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깊은 회의 뒤에 경희가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며,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라고 깨닫는 것은 경희의 전체 삶의 무게가 실린 발언이 된다. 이 작품을 거의 동시기에 쓰여진 남성 작가-이광수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여성 문학으로서의 <경희>의 진가가 드러난다. 특히 새로운 세대의 결혼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이광수의 <무정>(1917)에서 (……) 김장로는 외관은 개화했지만 자의로 사윗감을 구해서 딸에게 들이민다. 김선형은 최고 학부를 마쳤다는 신여성인데, 이형식을 사랑하느냐고,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느냐고 묻는 말에 아버지가 정해준 곳에 시집가라면 가는 것인데 왜 새삼스럽게, 별 소용도 없이 그런 말을 묻는 것일까 하고 한없이 부끄럽게만 생각한다. (……) 그에 비하면 <경희>에서의 경희와 아버지의 관계는 매우 고루한 것처럼 보이나 그 내면에는 근대의 기운이 싹터 있다. 딸의 의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아무리 아버지가 엄한 척하여도 기본적으로 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일찍이 아들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딸을 일본 유학 보내는 데 동의한 인물이었다. (……) 경희는 결혼이 자신의 선택임을 분명히 하고 그 선택에 따르는 곤란도 자기 몫임을 잘 인식한다. (……) 물론 <경희>는 단편소설이기에 이런 단호한 결말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희의 회의가 만만찮은 것이기에 그가 다다른 결론도 가벼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 - ‘나혜석-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여성’, 이상경,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작가의 말
(……) 남자는 부(夫)요, 부(父)라. 양부현부(良夫賢父)의 교육법은 아직도 듣지 못하였으니, 다만 여자에 한하여 부속물된 교육주의라. 정신수양상으로 언(言)하더라도 실로 재미없는 말이라. 또 부인의 온양유순(溫良柔順)으로만 이상이라 함도 필취(必取)할 바가 아닌가 하노니, 운(云)하면 여자를 노예 만들기 위하여 차(此) 주의로 부덕의 장려가 필요하였었도다. 연(然)한 중 금일의 부인은 장장 시간에 남자를 위하여만 진무(盡務)케 하는 주의로 양성한 결과 온양유순에 과도하여 그 이상은 태(殆)히 이비(理非)의 식별까지 부지(不知)하는 경우에 지(至)함이라. 연하면 여하히 하여야 각자 적(適)한 여자가 될까? 무론 지식 지예(枝藝)가 필요타 하겠도다. 하사(何事)에 당하든지 상식으로 좌우를 처리할 실력이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도다. 일정한 목적으로 유의의(有意義)하게 자기 개성을 발휘코자 하는 자각을 가진 부인으로서 현대를 이해한 사상, 지식상 및 품성(品性)에 대하여, 그 시대의 선각자가 되어 실력과 권력으로, 사교우(又)는 신비상 내적(內的) 광명의 이상적 부인이 되지 아니하면 불가한 줄로 생각하는 바라. 연하면 현재의 우리는 점차로 지능을 확충하며, 자기의 노력으로 책임을 진(盡)하여 본분을 완수하며, 경(更)히 사(事)에 당하여 물(物)에 촉하여 연구하고 수양하며, 양심의 발전으로 이상에 근접케 하면 그일 그일(其日其日)은 결코 공연히 소과(消過)함이 아니요, 연후에는 명일(明日)에 종신(終身)을 한다 하여도 금일 현시(現時)까지는 이상의 일생이 될까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현재에 자기 일신상의 극렬한 욕망으로 영자(影子)도 보이지 아니하는 어떠한 길을 향하여 무한한 고통과 싸우며 지시한 예술에 노력코저 하노라. (<학지광(學之光)>, 1914년 12월) - ‘이상적 부인’, 나혜석,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관련도서
<나혜석 전집>, 이상경 편, 태학사, 2000 <나혜석 평전>, 정규웅, 중앙 M&B, 2003 <인간으로 살고 싶다: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이상경, 한길사, 2000 <라혜석: 날아간 청조>, 김종욱 편, 솔뫼, 1981 ‘나혜석의 여성해방론’, 이상경,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소명, 2002 ‘위악적 자기 방어기제로서의 에로티즘―나혜석론’, 이호숙, <페미니즘과 소설비평: 근대편>, 한길사, 1995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연계정보
-불꽃의 여자,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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