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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개요
홍명희의 대하장편 역사소설. 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중 민중사를 중심으로 하여 과거를 현재의 전사(前史)로서 충실하게 묘사하고자 한 사실주의적 역사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수차의 중단을 겪으면서 10여 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으며, 조선일보 폐간 후 1940년 <조광>으로 지면을 옮겨 한 차례 게재되었으나 말미의 일부가 미완성인 채 중단되었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을 우두머리로 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실제로 활약했던 화적패의 활동을 다룬 작품으로, 임꺽정의 화적패가 결성되기 이전 시기의 정치적 혼란상과 백정출신의 장사 임꺽정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는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임꺽정과 휘하의 두령들이 봉건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양민의 삶을 포기하고 화적패에 가담하게 되는 경위를 그리고 있는 ‘의형제편’, 임꺽정 일당의 본격적 활약상을 묘사한 부분으로 관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밀려 궤멸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중단된 ‘화적편’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역사소설이 주로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과 애정갈등을 다루고 있음에 비해, 이 작품은 봉건제도의 모순 아래 고통받는 하층민중들의 일상적인 삶과 투쟁을 그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의 풍속, 제도, 언어 등을 충실히 재현하여 민족문학적 특색을 잘 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신분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각기 개성있게 형상화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장면들을 중심으로 극도로 정밀한 세부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민중사 중심의 사실주의적 역사소설로서 일제강점기 역사소설의 최고봉이자 한국 근대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광복 이후의 역사소설들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내용
① 봉단(鳳丹)편 죽을 운명에 놓인 이장곤은 거제도 유배지에서 함흥으로 탈출한다. 한 처녀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는 처녀를 뒤쫓아가 결국 사위로 눌러앉는다. 이장곤은 하인으로 본색을 숨겨 지내다가 중종 반정으로 신분이 밝혀져 동부승지로 승직되고 부인 봉단이는 숙부인이 된다. 양주팔도 이장곤의 청으로 상경하지만 서울이 갑갑하여 명산대천 구경을 떠난다. 그는 묘향산에서 도인을 만나 음양술수를 전수받고 서울에 돌아와 재취하여 사는데, 그후엔 갖바치 일을 하였다. 함흥에서 뒤늦게 상경한 돌이는 양주 본바닥 백정 피선의 데릴사위로 간다. ② 피장(皮匠)편 갖바치 양주팔은 미천한 신분이지만 문식이 높아 조광조 등 당대의 양반들이 드나든다. 임돌에겐 이쁜이와 꺽정이 남매가 있다. 갖바치는 꺽정이를 대장감으로 알아보고 가르치기로 하는데, 그의 밑에서 같이 공부하게 된 꺽정이, 봉학이, 유복이는 의형제를 맺는다. 꺽정이는 한 늙은이를 만나 검술을 배우게 되고 뛰어난 검객이 되어 1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팔도강산 유람을 떠나는 갖바치를 따라 각처를 다니던 꺽정이는 백두산에 사는 운총과 천왕동이 남매를 만나 운총과 혼인하고, 갖바치는 병해대사가 되어 칠장사에서 지내게 된다. ③ 양반편 중종 이후 양반사회는 외척의 횡포와 전쟁으로 혼미를 거듭한다. 중 보우는 불도를 숭상하는 대왕대비의 신임을 받아 권세를 얻는데, 병해대사는 그런 보우를 혼내주기 위해 양주 회암사 불사에서 그의 위신을 실추시킨다. 그런 가운데 왜변이 일어나고, 이봉학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임꺽정은 출전하려 한다. 그러나 꺽정은 백정 신분 때문에 군에 뽑히지 못하고, 혼자 전장에 나가 위기에 처한 이봉학을 구출한다. ④ 의형제편 농민의 유복자로 태어난 박유복은 부친의 원수 노첨지를 죽이고 도주하다가 도둑 오가의 수양딸을 얻어 청석골에 살게 된다. 인근에 사는 머슴 곽오주는 장꾼들을 털던 오가를 때려눕히는데, 이를 보복하러 온 유복과 의형제가 되고, 아내와 아이가 죽자 청석골 화적패가 된다. 소금장수 길막봉은 곽오주를 관가에 넘기려 하나, 꺽정이가 화해시킨다. 천왕동이는 장기의 명수 백이방의 사위가 되고, 배돌석이는 돌팔매질을 잘 하여 호랑이를 잡고 역졸이 되었는데, 부정한 아내를 살해하고 도망치다 체포된다. 때마침 천왕동이에게 와 있던 유복이가 돌석을 구해주고, 이 일로 천왕동이는 제주도로 귀양을 간다. 이봉학은 왜선 퇴치의 공로로 현감이 되어 제주도에 부임하나 곡절 끝에 좌천된다. 아전 서림은 진상품을 빼돌리다 들켜 도주하던 중 청석골 화적패를 만나 진상봉물의 탈취계책을 가르쳐주고 청석골의 두령이 된다. 임꺽정의 집에 탈취한 봉물을 숨긴 것이 탄로나 가족들은 투옥되고, 꺽정은 청석골 두령들과 함께 그들을 구한 뒤 화적패로 들어간다. 봉학과 천왕동이도 가담하고 그들은 칠장사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⑤ 화적편 화적패의 대장이 된 꺽정은 상경해 기생 소홍과 정을 맺고 빚에 몰린 양반의 딸 박씨를 구해 첩으로 삼는다. 청석골 두령들은 납치당한 천왕동이의 아내를 구해내다 살인을 저질러 관군의 쫓김을 받지만, 서림의 계책과 꺽정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임꺽정 일당은 가짜 금부도사 행세를 하기도 하고 신임군수 도임행차를 습격하는 등 지방 관원들을 괴롭힌다. 상경하여 소홍의 집에 머무르던 꺽정은 포교의 습격을 물리치고 서울을 탈출한다. 청석골 두령들은 신임 봉산군수를 살해하려 모의하나 서림의 자백으로 습격을 받고 접전 끝에 무사히 청석골로 돌아온다. 수세에 몰려 구월산에 들어간 임꺽정 일당은 계속 관군에 저항하다가 결국 오가와 졸개들만 남기고 해주 재령으로 도피하나, 거처가 옹색하여 다시 자모산성에 근거지를 만든다. 청석골에 남은 오가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적막하게 지내고 남은 졸개들도 하나둘 청석골을 떠나버린다.(이야기는 여기서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남음)
저자
홍명희(洪命熹)
생애(1888~1968)
호는 벽초(碧初)·가인(假人, 可人), 자는 순유(舜兪). 충북 괴산 출생.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서울 중교의숙(中橋義塾)을 거쳐 도쿄에 유학, 타이세이중학(大成中學)을 졸업했다. 1910년 귀국 후 <소년>에 A. 니에모예프스키의 산문시 <사랑>을 번역 소개하는 등, 최남선, 이광수 등과 함께 신문학건설에 공헌하였다. 1912년 출국하여 상하이에서 독립운동단체 ‘동제사(同濟社)’에 참여하였으며, 싱가폴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18년 귀국했다. 3·1운동 당시 괴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후, 192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25년 시대일보 사장, 1926년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는 한편, 신사상연구회, 화요회, 정우회, 조선사정조사연구회 등 사상운동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7년 창립된 ‘신간회(新幹會)’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조직부 총무간사 등을 역임했으며 1929년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재차 투옥되었다.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임꺽정>을 연재하여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으며, 광복 후 조선문학동맹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1947년 민족독립당 당수, 민족자주연맹 부의장으로서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중 1948년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참가차 평양에 갔다가 북한에 남았다. 북한에서 내각 부수상, 과학원 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26년 <문예운동>에 프로문학의 역사적 필연성을 역설하고 문예운동과 사회주의 운동과의 결합을 촉구한 평론 <신흥문예의 운동>을 발표하는 등 초기 카프와 관련을 맺었다. <동아일보>에 동서고금의 이색적인 지식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한 후 이를 모아 <학창산화(學窓散話)>(1926)를 간행하기도 했다. 홍명희는 소설을 단 한 편 썼는데, 그것이 당대 최대의 장편으로 거듭 논의되는 <임꺽정>이다. 명종조 해서 지방의 화적으로서 실록 등에 그 행적이 가끔 기술되기도 한 임꺽정의 이야기를 허구화하면서 방대하게 그려낸 이 역사소설은 천민 계층의 반봉건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삶의 안전을 잃은 천민들의 생활양식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단행본으로만 10권에 달하는 거작으로, 식민지시대 대표적인 역사소설이자 한국 근대소설사상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무엇이 조선문학이냐?>(1928), <대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1935), <문학청년들의 갈 길>(1937) 등의 평론을 남겼다.(……) 조선중기의 의적 임꺽정의 활약을 그린 홍명희의 대하장편역사소설 <임꺽정>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 민중성과 리얼리즘의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지배층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궁중비화나 권력투쟁을 다룸으로써 통속적인 흥미를 자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전기 형식을 취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를 민중이 아닌 위대한 개인으로 보는 영웅사관을 답습하고 있다. 이와 달리 <임꺽정>은 주인공 임꺽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신분의 하층민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민중생활을 폭넓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임꺽정의 전기 형식을 피하고, 청석골의 여러 두령들도 그에 못지않게 큰 비중을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와 아울러 주목할 것은 주인공을 결코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 점이다. 휘하의 두령들과 마찬가지로 임꺽정은 남다른 능력과 함께 인간적인 약점도 지닌 인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서구의 리얼리즘 소설에 비해볼 때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일상적인 삶과 생활환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등한한다고 지적된다. 그런데 <임꺽정>은 식민지시기는 물론 오늘날의 역사소설들에 비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세부 묘사가 정밀하고, 조선시대의 풍속을 탁월하게 재현하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등장하여 밥 먹고, 옷 입고, 뒤 보고, 배탈 나고, 장기 두고, 아기자기한 부부의 정을 나누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묘사가 매우 풍부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둘째로 <임꺽정>은 ‘조선 정조(情調)’를 적극 표현함으로써 민족문학적 개성을 탁월하게 성취한 작품이다. (……) 임꺽정은 서구 리얼리즘 소설의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흡수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투의 문체를 취하여 구수한 옛날 이야기의 한 대목을 듣는 듯한 친숙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전래의 민담이나 전설 등이 적재적소에 삽입되어 흥미를 돋우고 있으며, 관혼상제, 세시풍속, 무속 등 조선시대의 풍속들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깨끗한 조선말 어휘의 노다지가 쏟아지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고 한 이극로의 말대로, 한문투 아닌 우리 고유의 인명이나 지명, 토속적인 고어와 속담들이 풍부하게 활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꺽정>의 등장인물들은 결코 현대인들처럼 그려져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순박하고 인정이 넘치며 밑바닥 삶의 고난을 해학으로 넘기는 민중적 지혜를 지닌 인물들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박종화가 <임꺽정>에는 조선사람이라면 잊어버릴 수 없는 ‘구수한 조선 냄새’가 배어있다고 한 것은 정곡을 얻은 말이라 하겠다. 셋째로 <임꺽정>은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대립을 지양한 작품으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임꺽정> 연재가 시작되던 무렵 우리 문단에서는 좌·우 양 진영의 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 바로 이 시기에 홍명희는 신간회운동을 통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했듯이, <임꺽정>을 통해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대립을 넘어선 진정한 민족문학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그는 계급모순에 저항하는 임꺽정의 반역자적인 면모에 강한 매력을 느껴 창작에 임한 것이라는 점에서 <임꺽정>은 계급의식의 표현을 중시하던 당시의 프로문학과 다분히 친화성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을 의도한 결과, 이 작품은 하층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이를 포함한 민족공동체의 아름다운 전통을 적극 재현함으로써, 민족문학적 색채가 농후한 역사소설이 된 것이다. (……) 넷째로 <임꺽정>은 동양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아울러 서양 근대문학의 성과를 충분히 섭취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 <수호지>나 <홍길동전>과 같은 의적소설의 계보에 속하며, 독립된 이야기들이 모여 한 편의 대하장편소설을 이루는 구성방식이 <수호지>와 유사하고, 야담과 야사에서 소재를 취했으며, 이야기투의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다 보면 <임꺽정>이 성취한 근대적인 장편소설로서의 예술성을 간과하기 쉽다. 등장인물을 각 계층의 전형으로서 형상화하고, 서술적 설명이 아니라 장면 중심의 객관적 묘사에 치중하며, 극도로 치밀한 세부 묘사를 추구한 점 등은 우리 고전소설의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로서, 서구 리얼리즘 소설의 성과를 섭취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홍명희는 일찍이 일본 유학시절부터 도스또예프스키·똘스또이 등의 러시아 소설들을 탐독했으며, 나쯔메 소오세끼나 일본 자연주의 작가들의 소설도 많이 읽었다. (……) 또한 1930년대에 홍명희는 당시 부르주아 리얼리즘 소설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던 발자끄 전집도 독파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임꺽정>이 식민지시기의 어떤 소설보다도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원리에 충실한 작품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 <임꺽정>에 대해 우리 고전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측면만을 들어 그 가치를 운위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임꺽정>은 동양 고전문학의 전통과 서양 근대문학의 성과를 훌륭하게 통합한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결론: 홍명희의 인간·사상·문학’,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9조선일보의 <임꺽정전(林巨正傳)>에 대하여 신문사에서 선전하여 주는 모양으로 알렉산더 뒤마의 <암굴왕(岩窟王)>같이 나의 소설이 파문 곡절이 많고 또 기발하여 만인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생각할 때에 조선일보의 이러한 선전이 도리어 몸괴롭기도 합니다마는 좌우간 내가 임꺽정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흥미를 느껴온 지는 이미 오래었습니다. 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던 백정계급의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가슴에 차넘치는 계급적 해방의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 더구나 그는 싸우는 방법을 잘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가 진두에 나선 것이 아니고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정의 단합을 먼저 꾀하였던 것입니다. 원래 특수 민중이란 저희들끼리 단결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외다. 백정도 그러하거니와 독립협회 때 활약하던 보부상이라거나 모두 보면 저희들끼리 손을 맞잡고 의식적으로 외계에 대하여 대항하여 오는 것입니다. 이 필연적 심리를 잘 이용하여 백정들의 단합을 꾀한 뒤 자기가 앞장서서 통쾌하게 의적 모양으로 활약한 것이 임꺽정이었습니다. 그러이러한 인물은 현대에 재현시켜도 능히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다만 그분의 사적(史蹟)이 그렇게 소상하게 남아 있지 아니하여 상상으로 스토리를 이어나아가야 될 경우가 많습니다마는 역사적 사실인 바에는 그 연대에 치중하여 거의 연대순에 가깝게 사건전개에 지금까지 노력하여왔습니다. 그래서 우선 120회까지는 임꺽정을 싸고 도는 그때 사회의 분위기를 전하기에 소비하였는데 이제부터는 정말 임꺽정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7형제가 도적질하러 가는 장면이 가장 긴장하게 되어질줄 압니다. 물론 이 소설을 구상하고 표현할 때에는 광범한 각층의 인물을 독자로 하는 신문소설이니만큼 용어 등에도 각별히 주의하여 대중이 읽도록 쓰느라고 하였으나 얼마나 성공하였을는지 스스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소설은 400회 가까이 가야,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끝을 맺을 것 같습니다. (<삼천리> 1호, 1929년 6월)<임꺽정전>을 쓰면서 그동안 감옥 등지로 돌아다니느라고 처음에 생각하였던 <임꺽정전>의 플롯을 거개(擧皆) 잊어버렸기에 이번 조선일보에 속편을 쓸 때에는 또다시 구상을 하느라고 애썼습니다. <임꺽정전>은 생각건대 여러 번 중단되어서 독자제씨에게 미안하였습니다. 처음은 내가 옥에 가느라고, 그 다음은 신문사가 휴간이 되느라고. 그러나 이제부터는 또 다시 그러한 중단이 되는 일이 없이 끝까지 마쳐질 줄 아옵니다. 지금까지 쓴 것이 160여 회인 바 앞으로 반년 즉 180회 가량만 더 쓰면 다 될줄 아옵니다. 나는 <임꺽정전>을 6편에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가령 첫 편은 그 유년시대, 그 다음은 그때의 사회의 분위기를 전하기에, 이러한 뜻으로 계선(界線)을 그은 것인 바 지금 쓰는 것이 제4편으로 이제부터야 정말 활동의 본무대에 들어섰다 할 수 있어서, 임꺽정의 칠형제가 도적질하러 가는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 임꺽정의 사기는 극히 단편단편으로 떨어져 있는 것밖에 없어서 대개는 나의 복안으로 사건을 꾸미어가지고 나갑니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에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지요. 그것은 조선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支那)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洋臭)가 있는 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벌 빌어 입지 않고 순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정조(朝鮮情調)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삼천리> 9호, 1933년 9월) - <임꺽정>, 홍명희, 사계절, 1991
관련도서
<임꺽정[교정본]>, 홍명희, 사계절, 1991 <임꺽정>, 홍명희, 사계절, 1988 <벽초 홍명희 연구>, 강영주, 창작과비평사, 1999 <‘임거정’의 서사와 패로디>, 한창엽, 국학자료원, 1997 <홍명희: 어느 민족주의자의 생애>, 홍기삼, 건국대출판부, 1996 <홍명희의 ‘임꺽정’ 연구>, 채진홍, 새미, 1996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 강영주 외, 사계절, 1996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 벽초 홍명희 소설>, 민충환 편, 집문당, 1995 <벽초 홍명희 ‘임꺽정’의 재조명>, 임형택·강영주 편, 사계절, 1988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한국문학명작사전>, 임헌영·김재용, 한길사, 1994
연계정보
-창극 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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