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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파티

출연/스태프
* 출연 스탠리/신구 외 * 스태프 미술/양정현 조명/이진섭 의상/김시원 소품/하대경
내용
1막 스탠리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인 피터와 아내 메그는 아침식사를 하며 오후에 늦게 찾아 오기로 한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탠리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늦게 내려와 음식투정을 한다. 피터는 출근하고, 메그는 시장 보러 간 사이에 룰루가 들르나 스탠리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룰루가 돌아가고 난 후, 두 명의 낯선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들은 맥켄과 골드버그로 오기로 예약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스탠리는 칸막이 문을 통해 그들을 유심히 살핀다. 맥켄은 골드버그에 비해 약간 초조해 보이고 그들은 어떤 특정한 목적으로 그 집에 찾아온 듯한 대화를 나눈다. 이때 시장에 갔던 메그가 돌아와 그들을 맞이하고 이들에게 1년 전부터 머물러 있었던 스탠리에 대해 말한다. 그날이 스탠리의 생일이라고 메그가 말하자 골드버그와 메그가 함께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로 한다. 2막 그날 저녁이 되어 맥켄과 스탠리, 골드버그와 스탠리가 차례로 인사를 하게 된다. 함께 있던 피터가 이웃 집에 체스를 하러 나가자 맥켄과 골드버그, 스탠리만 남는다. 스탠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떤 종교조직에 있었으나 무슨 이유인가로 빠져 나와 지금은 약간의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골드머그와 맥켄은 이런 스탠리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유숙객처럼 가장하여, 스탠리의 행적에 대해 압박하며 추궁한다. 계속하여 스탠리를 인간 쓰레기, 배신자 취급을 하며 닥달하다가 생일 파티를 위해 드레스로 갈아입은 메그가 내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룰루가 도착하자 드디어 생일 파티가 시작된다. 룰루의 제안으로 장님놀이를 하게 되는데, 스탠리가 술래가 되어 눈을 가리고는 갑자기 그들을 향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맥켄과 골드버그는 스탠리에게 달려든다. 3막 다음 날 아침 메그는 전날의 파티로 몸이 지쳐 있으나 아침부터 스탠리를 찾는다. 늦게까지 스탠리는 내려오지 않고 메그가 시장에 나간 사이, 피터가 어젯밤 파티에서 심한 충격을 입은 것 같은 스탠리의 안부를 골드버그에게 묻는다. 골드버그는 간단한 신경쇠약일 뿐이라고 말한다. 잠시 후, 골드버그와 맥켄은 스탠리를 전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데리고 떠난다. 피터는 떠나는 스탠리에게 매우 불안한 마음을 갖는다.
예술가
해롤드 핀터 (1930~ ) 런던 출생. 배우로 활동하다가 1956년 여배우 V.머천트와 결혼하였다. 1957년 단막극 <방>을 처음으로 집필했고 브리스톨 대학에서 공연되었다. 1958년에 집필한 장막극 <생일파티>는 신문지상에서 대단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단 1주일간 공연되었다. 그 후 텔레비전에 방영되었고, 무대에서는 재상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1959년 시사 풍자극 <Cast to go>와 <The Black and White> 등 극작 뿐만 아니라 많은 라디오극과 TV 극도 집필하였다. 2002년 11월 6일 영문학에 이바지한 공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명예훈위를 수여받았다. 대표작품 <생일파티> <관리인> <귀향> <풍경> <침묵> <티 타임의 정사> <덤 웨이터> 유덕형 (1938~ ) 1938년 서울 출생. 1967년 미국 트리니티대학 대학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65년 캐나다, 멕시코 등 중남미 각국의 연극계를 시찰하였고 1972년 7월 필리핀 교육연극협회(PETA)로부터 연출 의뢰를 받아 김창활의 방송극 <명상>을 직접 각색하여 연출하였다. 필리핀 극단과 함께 이 작품을 소련, 체코, 폴란드, 동독 등 공산권 국가를 비롯해 12개국에서 순회공연을 했으며, 이로써 공산권 국가에 진출한 한국최초의 연극인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극단 드라마센터 소속 연출가로 활동을 했으며,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극단 드라마센터를 ‘극단 드라마센터 서울연극학교 레퍼터리극장’으로, 1974년 다시 동랑레퍼터리로 개칭하고 대표직을 맡았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한국문화대상 등 다수의 연출상을 받았다. 대표작품 <나도 인간이 되련다> <생일파티> <봄이오면 산에들에> <갈색머리카락> <마의 태자> <초분>
리뷰
초연 연출가인 김기주에 따르면, 헤롤드 핀터의 <생일파티>는 고려대학교 극예술연구회에서 초연한 것으로, 당시 서울연극학교 학생들이 부조리연극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연극을 해보자는 의견을 모아 김기주가 연출을 맡아 졸업 공연으로 올렸다. 이후 <생일파티>를 극단의 레퍼터리로 결정하여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 1970년 유덕형 연출의 <생일파티>이다.
수상현황
- 1971년 동아 연극상 연출상(유덕형) 수상 - 1971년 한국일보 연극상 연출상(유덕형) 수상
재공연
- 1971년 2월 18일~3월 4일 드라마센터, 유덕형 연출, 극단 드라마센터 - 1971일 4월 8일~17일 드라마센터, 유덕형 연출, 극단 드라마센터 - 1974년 5월 17일~6월 30일 드라마센터, 유덕형 연출 동랑레퍼터리극단 - 1976년 6월 15일~6월 30일 극단 세대 연극실험실 로터리극장, 박영희 연출, 극단 세대 - 1982년 극단 산하
평론
1970년대를 열었던 유덕형의 첫 장막극 <생일파티>는 연출의 기능과 가치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특히 번역극을 상연하면서 연출가가 자기의 해석을 명쾌하게 내걸고 의식적인 작업을 시도했다는 사실과 연출과 배우의 상호적인 창조작업에 있어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당연히 사용되었던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무대 장치까지 연출의 방향과 기능을 살려 고안되었다는 점들을 평가 받았다. (연극평론, 1970년 겨울호) 또 하나 첨가하고 싶은 것은 지금 연출의 아이디어나 재치를 꽤 높이 사고 있지만, 이것보다 지금 세 사람의 연기자가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분주한 연기를 하고 있는데 이점은 우리나라 연출에 있어서 젖어 들어가고 있는 기풍에 대한 하나의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지난번 <생일파티>에서 비교적 계산을 많이 하고 치밀하게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번역극에서 있어온 폐단인 “연출부재” 현상의 한 모퉁이를 깨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드라마센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무대조건과 관계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 연극을 위한 하나의 플러스라 보고 있습니다. 그냥 레퍼터리만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연극평론> 1971년 봄호, 여석기 한상철 안병섭)
관련도서
<해롤드 핀터 전집 1> 해롤드 핀터, 이후지 역, 평민사, 2002. 한은주, <동랑레퍼터리극단 연구 – 1970년대 활동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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