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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전

내용
<놀부전>은 최인훈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전승돼 오는 <흥부가>의 사설을 되도록 살리면서 흥부와 놀부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작품은 놀부를 근면한 사람의 전형으로 흥부를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둘의 갈등을 첨예화시키고 있다.
허 규 (1934 ~ 2000)
1934년 경기도 고양 출생. 서울대 농대 임학과를 거쳐 경희대 국문과를 1970년에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연극회에서 연극연출을 수업하고 제작극회 연구동인, 실험극장 창립동인, 청주여사대 강사를 거처 1973년 극단 민예의 대표가 되었다. 1960년 <껍질이 깨지는 아픔없이는>으로 연출가로 데뷔하였으며,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연극제에서 실험극장의 <리어왕> 연출의 성공으로, 같은 해 국립극단 공연 <순교자> 연출을 맡았다. 1960년대의 그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 영향을 받아 비사실주의 경향의 연출수법을 시도했으며, 1960년대 말부터 한국 고유의 연극술을 도입하는 등 현대연극에 우리의 전통극을 수용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민예극장을 창단하면서 그는 단원들에게 탈춤, 판소리, 무속예능, 시조 등의 실기를 훈련시켜 우리의 고유하고 독창적 연극을 창안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1977년 <물도리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1979년 <다시라기>로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연극 외에도 KBS, MBC, TBC에서 PD겸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대표작품 <수업>, <돈키호테>, <허생전>,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고려인 떡쇠>, <사힐린스크의 하늘과 땅>
최인훈 (1936~ )
1936년 함북 회령 출생. 서울대 법학대학을 중퇴했으며 대학교 재학 당시 고향 회령을 배경으로 한 <두만강>을 초고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에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투고하여 등단하였다. 1960년 새벽에 <광장>을 발표했으며, 5.16군사정변 이후 절망을 그린 <회색인>, 박태원 소설 제목을 그대로 인용해 1960년대 후반기 양심적인 예술가상을 제시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냉정 이데올로기의 근원지를 찾아다니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탐구하는 자전적 장편 소설인 <화두> 등을 집필하였다. 서울예술대학에서 1977년부터 2001년 5월 정년퇴임까지 교수로 역임을 했으면 현재, 서울예술대학에서 소설론 특강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1979년 <최인훈 전집>을 출간했으며, 19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와 1989년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이 있다. 동인문학상과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광장>,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평론
이 작품이 종래의 판소리 내용에 비해서 달라진 점은 첫째로 놀부를 근면한 사람의 전형으로 흥부를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갈등을 첨예화시키고 있으며, 둘째로 흥부가 치부하게 되는 것은 보은의 박씨 때문이 아니라 산에서 우연히 얻은 금은보화 때문이며, 셋째로 놀부는 전라감사의 재물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끝내 장살을 당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판소리는 창과 사가 결부된 서사문학인데 작가와 각색자는 이 작품에서 <흥부전>이 갖는 판소리의 서사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아울러 판소리가 갖는 판놀음적 성격(이것이 판소리의 연극적 측면이다)을 충분히 무대화시키기 위해 전통 연극의 극술을 도입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a) 공연장소가 그대로 다양한 극중 장소로 사용된다.(놀부집, 흥부집, 산속, 관가) (b) 배우가 해설자를 겸하고, 동시에 함께 구경하자고 하면서 관중의 입장에 서기도 한다(관중의 개입). (c) 놀부가 자신을 악덕한 인물로 만든 것은 광대글쟁이라고 성토하기도 한다(이 경우 작중인물은 광대와 대등한 실존인물이다). (d) 놀부는 흥부가 치부한 이야기를 풍류놀음이라고 비꼰다(이 경우 작중인물이 판소리의 내용을 비판하는 평자로 등장한다). (e) 해설자를 겸하는 배우가 나와서 작품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관중에서 개입). (f) 판소리 사설을 대사형식으로 엮은 이외에, 시조를 넣어서 갈등을 첨예화시키고 있다. (g) 인물의 성격을 살리기 위한 가면을 착용한다. (h) 해설을 소리(도창)로 불러서 장면전환을 흥취있게 유도한다. (i) 장단을 다양화하여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을 활용함으로써 표현의 운율화와 역동화에 기여한다. <놀부전>에서 보면 이상과 같은 민속극과 판소리의 극술들이 별다른 무리 없이 내용과 잘 조화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연극의 창조에 적지않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근래에 만들어진 전통연극 계통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도 이상과 같은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는 듯하다. 앞서도 잠시 지적하였거니와 좋은 작품이란 그 형식에 우선하여 작품의 의도가 분명하고도 새로운 것이어야 하며, 그 이념에 알맞은 형식이 창조되어야 함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놀부전>에서 욕심을 더 부린다면, 이 작품이 보다 더 목격되는 사건으로 무대화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판소리 사설이 갖는 서사성을 연극적으로 행동화시키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보다는 <들려주는 이야기>형식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소설(서사성)이 갖는 언어적 설득력과 흐름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놓으려는 무리한 작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판소리의 서사성은 최대로 살리되 그것이 보다 행동화된 갈등으로 표현되도록 세분, 압축, 생략되어야 할 것이다. 무리하게 긴 사설, 중복되는 불필요한 사설, 같은 리듬으로만 반복되는 사설(때로는 판소리 가락처럼 대사의 기본리듬이 변해도 좋다)이 대폭적으로 정리되면서 <보여주는 갈등>으로 재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대적 삶과 연극>, 서연호, 열음사, 1988) 이번의 <놀부뎐> 역시 이 작가(최인훈)의 재해석 작업의 하나라 하겠는데 1966년에 발표되었으니 그가 한국 고전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을 가하기 시작한 초기의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그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이제까지의 <흥부뎐>을 <놀부뎐>으로 바꿔서 패러디화 하여 종래의 잘못 이해된 놀부로 하여금 흥부를 신랄하게 공격하고 세상의 악과 거짓을 풍자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착한 것만으로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그래서 어리석기도 한 교훈을 그대로 믿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이며, 생을 조금이나마 깊이 이해하는 자에게는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고,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생을 허위로서 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라는 작가의 냉혹한 눈이 거기 번뜩이고 있다. 그는 그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도 바보인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복락을 누렸다거나 심청이 효도하여 심봉사 눈뜨게 하고 자신은 왕후가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이야기인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인생을 보는 눈은 언제나 패러독스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으며 <놀부뎐> 또한 그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흥부는 일확천금에 눈이 어두워 탕진하고 놀부는 세상 이치 깨달아 치부했거늘 광대 글쟁이 이를 시샘하고 성현말씀 잘못들어 놀부 타박하고 흥부 치켜올려 복제비까지 주었으니 이 어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그래서 흥부는 밤이슬 맞아 도둑질로 고대광실 짓게 되었고 그 죄로 전라감영 영어의 몸 되고 끝내는 탐관오리에게 재물 빼앗기고 목숨마저 빼앗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최인훈의 <놀부뎐>의 골자이다. 그는 세상일 하도 험악하여 성현말씀 나왔고 성현말씀 나올만큼 세상일 험악하다는 역설의 역설을 거듭하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보기를 권하며 끝을 맺는다. 그는 이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민족 전체의 운명과도 연관지었으니 "어느 세상에 가난한 놈 박씨 물어다 주는 복제비 있다던가. 왜제비 양제비가 너희를 살리더냐. 청제비 노제비가 너희를 살리더냐, 제비 좋아하냐. 제비를 기다리다 밭갈기를 잊었으며 씨뿌리기를 잊었구나"가 그것이다. <놀부뎐>을 쓴 최인훈의 또 하나의 목적은 판소리를 빌려 판소리 대본에 문학으로서도 독립된 생명을 갖도록 해보자는 것이었다. 원래 판소리는 辭說(내러티브)과 창으로 엮어지는 판놀음의 하나다. 그것은 문학과 음악과 연극이 하나로 뭉쳐진 독특한 양식을 지닌 예술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판소리의 레파토리는 고정되어 있고 그 내용이야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판소리 감상회를 가나 우리의 관심과 흥미는 唱者가 얼마나 잘 노래를 부르는가, 그의 노래와 동작이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하는 데만 쏠린다. 다시 말해 판소리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는 차에 과거 <흥보가>의 중요한 내용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대본을 보게 된 것은 판소리 대본의 새로운 창작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작가는 판소리 대본이 문학으로서 홀로 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았다고 말할 만큼 인물들에게 매우 대조적이고 강한 성격을 부여하고, 작품의 의미를 보다 심화시켜 생의 진실을-과거의 흥보전이 창작되어야 했던 逆理까지 포함하여-파헤쳐보려 했던 것은 판소리 대본으로서 상당한 발전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간>, 한상철, 1979년 3월호)
관련도서
<동시대적 삶과 연극>, 서연호, 열음사, 1988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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