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경기도도당굿

흐름
경기도 도당굿은 경기도 지역의 마을들에서 행해지는 굿을 말하며, 한강 이북의 도당굿과 힌강 이남의 도당굿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한강 이북의 도당굿에서는 강신무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전과정에서 강신무가 제차를 주관하고 전문적인 남무(화랭이)가 굿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강 이남에서 전승되는 도당굿은 세습무인 화랭이들이 주도적으로 굿을 이끌어 간다는 점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화랭이들이 주도하는 한강 이남의 도당굿은 음악과 장단에서 판소리기법을 따르고 있는 등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 도당굿은 고대 사회의 제천(祭天)의례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제법 활발하게 전승되었으나 전쟁 때문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급격히 소멸하였다. 현재 경기도 도당굿은 유일하게 부천의 장말 도당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도당굿의 일반적인 순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이 되고 있는 도당굿은 마을 단위의 굿으로서 해마다 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해를 건너서 2년, 혹은 3년마다 한 번씩 하는 곳도 있다. 또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징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인 도당굿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당주굿 : 당주가 도당굿 을 하기 전날 밤에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굿을 하는 것을 당주굿이라고 한다. 당주굿은 보통 일반 가정에서 집안의 안녕을 축원하는 안택굿과 같은 형태로 진행이 되지만 산바래기와 서낭은 하지 않고 부정, 시루고사, 제석, 손굿, 군웅, 안당, 계면, 터주굿, 뒷전으로 진행이 된다. ② 부정청배 : 굿상 앞에서 창부가 장단을 치면서 부정청배 무가를 부른다. 일부에서는 서서 진행하는 선부정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기도의 도당굿에서는 앉은 부정을 한다. 앉은부정은 한양굿처럼 무녀에 의해서 진행이 되는 것이 아니고 경기도에서는 산이라고 부르는 남자 화랭이나 악사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③ 부정굿 : 무격이 평복 차림으로 굿상 앞에 서서 부채와 방울을 들고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서 무가를 부른다. 부정굿이 끝나면 무격은 공수를 주고 마친다. ④ 당맞이 : 도당굿을 지내는 날 아침이 되면 당주와 무격, 악사들과 마을의 풍장패가 함께 당으로 올라간다. 맨 앞에는 서낭기(혹은 당대라고도 한다)가 서고 제물을 진 채비들이 뒤를 따르며 마을의 풍장 패와 악사들이 길군악을 연주하며 그 뒤를 따르고 무격과 마을의 주민들이 따라 올라간다. 당에 오르면 제물을 진 설 하기 전에 서낭대, 악사, 잽이, 무격과 창부들이 당 주위를 세 바퀴를 돌 고 제물을 차린 후에 서낭을 받는다. ⑤ 돌돌이 : 부정을 친 굿패들이 본 굿을 하기 전에 마을에 있는 장승이나 마을 경계를 도는 것을〈돌돌이〉라고 한다. 마을에 장승이 있으며 장승제를 함께 지내기 때문에 제물을 준비하고 뒤따른다. 제물의 뒤에는 활옷을 입고 갓을 쓰고 부채를 든 당할머니가 따르고 창부, 악사, 무격, 마을 주민들이 따라 간다. 이 때는 길군악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며 따라 가는데 장승이 없는 마을은 마을의 경계와 공동 우물 등을 찾아 다니면서 고사(告祀)소리를 한다. ⑥ 장문잡기 : 굿패들이 굿상이 차려진 곳에 도착하면 창부와 잽이들이 당할머니 앞에 늘어서 징을 두 번 울린 후에 악사들이 취타를 연주한다. ⑦ 시루고사 : 시루말이라고도 하는 시루고사는 천지창조의 신화를 무가로 엮어서 부르는 것이다. 화랭이가 앉은반으로 긴 사설을 엮어 나가는데, 시루 고사에서 불려지는 무가중에 나타나는 사설에는 칠성신이 지하궁에 내려와 매화부인과 만나 인연을 맺고 해와 달, 소한국과 대한국을 맡아 다스렸다는 내용이 칠성풀이 무가와 연결되는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⑧ 터벌림 : 시루고사가 끝나면 바로 제석으로 넘어가는 지역이 있는 반면 터벌림을 먼저 하는 경우도 있다. 화랭이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손에는 꽹과리를 들고 반설음 장단을 치면서 터벌림 춤을 춘다. 이때 악사들은 징, 꽹과리, 장구만으로 반주를 한다. 터벌림은 마을에 따라서 터잽이, 공새면, 터불림, 그루백이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굿청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굿터가 좁아졌기 때문에 터를 넓히기 위해서 행해지는 의식이라고 하며, 이 거리에서 화랭이들은 자신들의 기예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⑨ 제석청배, 제석굿 : 집굿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창부가 굿상 앞에 장구를 놓고 청배무가를 부른 후에 무격이 굿상 앞에서 부정놀이 춤을 추고 나서 공수답과 만수받이를 한다. 원래 경기도당굿의 제석굿에서는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서 무속신화의 일종인〈당금아기타령〉을 불렀으나 지금은 서울지역의 굿과 섞여서 만수받이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⑩ 손굿 : 도당굿에서의 손굿은 집굿의 마마굿과는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 창부가 먼저 반 설음 춤을 삼진삼퇴하면서 추다가 조임채로 조여, 넘김채로 넘기고 겹마치 덩덕궁이로 장단에 맞추어서 돌아간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오방신장을 모시는 신장굿과 함께 나타나고 있어서 손굿도 서울굿과 혼합된 형태를 보인다. ⑪ 군웅, 쌍군웅굿 : 무격이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서 육자배기토리로 무가를 부르며, 징을 들고 부정놀이 춤을 추다가 마친 후에는 징을 놓고 창부와 함께 쌍군웅을 선다. ⑫ 당할머니(할아버지굿) : 당할머니(할아버지)굿은 집굿의 안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당할머니 상을 따로 차려 놓고 무격이 덩덕궁이 춤을 춘 뒤 수부를 치고 마친다. ⑬ 뒷전 : 창부가 뒷전꾼(의딩이 혹은 여든이라고도 함)과 깨끼춤으로 꾸미고 뒷전을 한다. 뒷전은 굿판에는 신명만 오는 것이 아니고 많은 허주(虛主)도 오기 때문에 허주들을 대우해서 보내는 과정이다. 이 때는 화랭이가 활을 쏘고 수부를 막고 마친다.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은 200여 년간 전해 내려오는 굿으로 경기도 수원 팔달문 근처의 영동시장 내에 신당이 있다. 1790년경으로 수원성 건립과 함께 시장이 생길 때부터 터주가리 형태의 당이 있었다고 한다. 영동 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축조된 이유는 화성 건립을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상인들을 주축으로 상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도당이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의 명칭이 거북산당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이 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또 인근의 구천동과 가깝고 주위에 물이 많은 곳이며 풍수지리적으로 불을 제압 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동 거북산당은 예전에는 세습무에 의해 굿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처음에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만든 터주가리 당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계동에 거주하던 이씨 만신이 관청의 도움을 받고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거북산당을 축조하였고 그 안에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그리고 대왕님(염라대왕)의 탱화를 모신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1994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수원시청의 지원으로 당을 수리하고 단청을 새로 입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은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열리며,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 상인의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지내고 있다. 1990년 초에 이르러서는 영동시장 번영회에서 별도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는 오수복과 일부 무녀들에 의해서 시장 상인들의 개별 치성 형태로 전승된다.
수원 평동 벌말 도당굿
평동 벌말의 도당굿에서는 신라 경순왕인 김부대왕과 안씨 부인을 모신다. 시흥시 군자동 구준물 마을에서 매년 음력 2월이 되면 서낭님을 군자봉에서 내려 모시고 주변 마을을 도는데 이 때 평동 벌말까지 온 구준물 서낭님이 이 곳에서 쉬고 갔다고 하여 마을에서 당을 짓고 김부대왕을 모시고 구준물의 작은 서낭이라고 불렀다. 당 안에는 말을 탄 김부대왕(마을에서는 김지대왕이라고 부른다)과 부인을 그린 탱화가 벽면에 걸려 있다. 벌말 도당굿은 원래 정월 초에 길일을 받아서 굿을 하였으나 현재의 주무(主巫)인 조광현이 굿을 맡으면서 음력 정월 11일로 날짜를 정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굿을 하고 있다. 음력 정월 11일에 마을에 있는 당주집에서 당주굿을 한 후 서낭모시기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돌돌이를 하고 당 안으로 들어가서 도당굿을 한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모두 나와 풍장을 잡히고 서낭을 모셨지만 몇 년 전부터는 남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고 부녀자들만 참석하며, 풍장을 치면서 서낭을 모셔 들였다. 당에 도착한 주민들은 당 안에 굿상을 진설하고 주당물림을 울린 후에 선부정으로 도당굿을 시작한다.
부천 장말 도당굿
부천 장말 도당굿은 덕수 장씨들의 집성지인 장말에서 전해 내려온 마을 공동체적 축제형식의 굿이다. 장말의 도당굿은 덕수 장씨들이 평택에서 임란을 전후하여 이 곳으로 이주해 와 농경을 주업으로 생활하면서 음력 10월 10일을 맞아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조상을 섬기고 음덕을 기리는 행사로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장말 도당굿은 270여 년을 전승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도당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장씨 문중에서 도당신의 선택을 받은 인물과 무녀, 화랭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른 지역의 도당굿과 다르다. 장말 도당굿에서 모시는 신은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돌팡구지라고 부르는 암석과 당나무인 서낭이다. 그러나 장말에서는 이 모든 신보다도 덕수 장씨의 조상신을 우선적으로 섬긴다고 할 수 있다. 장말 도당굿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조상신의 현신인데, 도당할아버지 자신이 바로 조상신이 된다. 도당할아버지는 당에 모셔져 있는 도당신의 신복인 두루마기를 입고 굿을 진행하며, 그 옷을 입는 순간 조상신과 접신하여 본인 스스로가 조상으로 현신하게 되는 것이다. 장말 도당굿은 본굿을 하기 전날 저녁에 마을에서 정해진 당주네 집에서 행해지는 당주굿으로 시작하여 부정굿→도당모셔오기→돌돌이→장문잡기→시루돋음→시루말→제석굿→터벌림→손굿→군웅굿→중굿→도당할아버지 굿→도당 모셔들이기→뒷전의 본굿으로 진행된다.
시흥시 군자동도당굿
매년 음력 10월 초 3일에 마을에 있는 군자산의 정상에서 서낭신을 맞이한 후 산 아래에 있는 당에서 김부대왕을 비롯한 신격들을 위해 하는 굿으로 고려 초기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56대 경순왕이 경주를 떠나 충북 제원군을 거쳐서 강원도 원성군 고자암에 미륵불상을 조성한 후 현 시흥시 군자동 구준물 마을에 이르러 안씨 부인과 생활하며 아들 덕지를 낳았다. 그 후 경순왕이 죽자 부인이 마을 뒷산인 군자봉에 올라가 매일 치성을 드렸는데, 얼마 후 송나라 사신으로 출행하게 된 내의시랑 서희가 안씨 부인 영혼의 도움을 받고 그 은공을 기려 군자봉 정상에 당을 마련하고 경순왕의 영정과 안씨 부인의 소원당(所願堂)을 지었다고 한다. 이에 인근의 주민들이 해마다 음력 2월에 성황신인 경순왕과 안씨 부인, 장모 홍씨의 영정을 모시고 마을로 내려와서 제를 지낸 후 현재의 안산과 시흥, 수원 일대를 모두 돌다가 삼월 삼짇날이 되면 다시 모셔 올렸으며, 10월 3일에는 군자봉 정상에 있는 성황당에서 신곡맞이 행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내왔다고 한다. 군자봉 도당굿은 수원을 중심으로 한 내륙의 일반적인 도당굿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산제(山祭)→부정청배→산거리→제석거리→승전맞이→신장대감→창부서낭→뒷전의 전체 굿 순서에 승전맞이가 들어가는 점이 다르다.
남한산성 도당굿
남한산성의 도당에는 이회장군과 장군의 성역을 돕다가 남편의 참형소식에 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한 송씨 부인, 소당(小堂=첩실) 유씨부인, 벽암대사(碧岩大師), 백마신장(白馬神將), 오방신장(五方神將), 대신(大神)할머니(이 대신할머니는 이회장군의 당을 지키던 나씨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당에 영정을 그려 모셨다고 한다), 남한산성 군웅장군, 별상장군 등 남한산성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과 무속신을 함께 모시고 있다. 남한산성 도당굿은 송씨 부인과 첩실 유씨 부인이 물에 빠져 죽은 정월 초이튿날에 청량당의 앞에 있는 향나무에서 만신들에 의해 행해지던 것으로 약 350여년 전부터 지내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남한산성 대동굿 보존회에 의해 재현되어 매년 8월 28일을 기해 청량당에서 제를 지내고 서낭을 아래로 내려 모신 후 대동굿을 펼치고 있다.
용인 할미성 도당굿
용인 석성산에는 할미산성이 있었는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성을 반씩 맡아 누가 먼저 쌓는가 내기를 했는데 할아버지는 돌을 잘 다듬어서 제대로 성을 쌓았고 할미는 치마자락에 잔돌을 주워담아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성을 쌓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내기에서 졌다고 전한다. 할미성 도당굿은 기능 세습무들이 주무(主巫)를 맡아 도당굿을 진행하였다고 전해지며 후에 용인에 거주하는 무당에 의해 전승되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옛 대동굿을 본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발굴 및 재현되어 매년 한 차례씩 굿을 하고 있다. 굿의 순서는 ①주당물림 및 부정청배 ②산신거리(산도당 할미 모시는 굿) ③상제 및 승전맞이굿 ④장군거리 ⑤대방위 굿(신장거리) ⑥천궁맞이(불사, 칠성거리) ⑦호구거리 ⑧대신거리, 대감놀이 ⑨작두별성거리 ⑩성주거리 ⑪창부거리 ⑫내전 및 뒷풀이의 순이다.
안산 잿머리 도당굿
안산시 성곡동 해봉산 기슭에 있는 잿머리 성황사(城隍祠)는 고려 성종 때부터 전해지는데, 지난 천 여년동안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매년 음력 10월, 길일을 택해 정성을 다해서 굿을 하였다고 한다. 잿머리 도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 제6대 성종 때 서희라는 사람이 10여 년간 외교가 중단되었던 송나라로 수교를 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현 잿머리 해안(현재 당집이 있는 해봉산 아래)에서 배를 타려고 하자 잠잠하던 바다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희가 장도를 비는 제사를 올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소복을 한 두 여인이 나타나서 '우리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비 홍씨와 장모 안씨인데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모녀가 안주치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으니 거처라도 마련해 달라'고 하였다. 다음 날 서희가 그 곳에 사당을 짓고 화공을 불러 꿈에 본대로 영정을 그려 모시고 제를 올렸더니 곧 바다가 잠잠해져서 무사히 다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설화는 인근의 여러 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현 경기도 도당굿 기능보유자 오수복의 증언에 의하면 구준물 도당이 원도당이고, 잿머리 도당이 처가도당이며, 평동 벌말 도당이 작은집 도당이라고 한다. 잿머리 도당에서 모시는 주신(主神)은 경순왕과 경순왕의 비 홍씨 부인, 장모 안씨 부인이며, 그 외에 칠성(七星), 대신할머니, 관운장 등 무속신을 함께 모시고 있다. 잿머리 성황굿은 마을에 거주하는 무녀 중에서 당주(堂主)를 지정하고 그 당주에 의해서 길일을 택하여 치성을 드렸는데, 마을 안에 살고 있는 무당을 당주로 지정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당주 노릇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당주가 몇 십년씩 당주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조한춘(趙漢春, 1919~1995)
화랭이 조한춘은 한양 조씨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대포리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가 부천의 무당 김종환과 재혼하였는데, 조한춘은 그에게 도당굿을 배웠다고 한다. 21세 때에 무가 출신의 이연순과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무업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조한춘은 도당굿판에서 선굿꾼 노릇도 하고, 악사로서 장구, 피리, 해금 등을 연주하여 음악에 일가를 이루었다. 1980년에 마당 세실에서 기획한 경기도 도당굿을 통해서 그때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수원의 이용우 노인과 경기도 도당굿 재현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1990년에 무녀인 오수복과 함께 경기도 도당굿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오수복(吳壽福, 1924~ )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18세에 경주 김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29세 되던 해에 남편이 사망하자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31세 되던 해에 친정 6촌 언니가 “개만도 못한 네 팔자, 왜 그런지 알아보자”고 권유하여 광화문 이학사 할아버지에게 점을 치러 갔다. 점괘에 “입술 안에 점이 들었으니 입으로 벌어먹을 팔자요, 부채살이 끼었으니 무당이 될 팔자”라는 궤가 나왔으나 오수복은 무당이 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시어머니와 올케인 이갑오 만신에 의해 무당이 되었다. 이갑오 만신은 당시 폐병 4기였던 오수복의 상태를 보고 “눈에 신발이 들었다”고 하면서 내림굿을 받아야 살 수 있으니 행주치마라도 뜯어서 준비하라고 하여 이튿날 내림굿을 받은 뒤 무녀의 길로 들어섰다. 오수복은 경기도 도당굿의 이용우에게 굿의 차서와 어정 및 법도를 배워 오늘날의 재주와 기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연계정보
· 재구성 <경기도 도당굿_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19>, 문화재연구소, 1999 <기도 도당굿> 김수남 사진/황루시, 이보형 공저, 열화당, 1983 <경기민속지 신앙편>, 경기도박물관, 1999
관련도서
<경기도 도당굿_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19>, 문화재연구소, 1999 <경기도 도당굿>, 황루시, 이보형 공저, 열화당, 1983 <경기민속지 신앙편>, 경기도박물관, 1999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관련사이트
경기도 도당굿 보존회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28건)
이미지 28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