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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

출연/스태프
* 출연 성간난노파/백성희 창보/김성원 원식/민승원 원식의 아내/손숙 만길/강계식 이장영감/신구 마을노파/정애란 동리사람/장민호, 변기종, 이기홍 괴뢰군관/최불암 빨치산/고설봉, 이치우, 김금지 군인/나성균 소년/김영일 * 스태프 미술/장종선 조명/이우영 음악/박용기 효과/공성원
내용
제1막 : 1951년 음력 정월 대보름의 이틀전, 지리산에 가까운 산촌의 장날 저녁, 70고개의 성간난 노파가 작은 아들 창보(큰 아들은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가서 사망)와 손자며느리 모자(순덕과 소년)를 데리고 살아간다. 창보는 그의 아내가 연전에 호열자로 죽어서 홀아비 몸. 간난 노파에게는 두 가지의 보람이 있다. 하나는 군대에 나갔던 큰손자 원석(순덕의 남편)이 허리만 조금 다쳤는데 이제는 의병제대가 되서 곧 돌아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멋모르고 빨치산이 된 작은 손자 만식의 무사 귀가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런데 동네 이장이 한 사실을 창보한테 귀띔한다. 빨치산 만식이가 간밤에 이웃 마을에 나타났더라고… 제2막 제1장 : 대보름의 초저녁. 간난노파가 두 손자 자식들의 건승을 축수하고 있다. 그러나 창보는 이미 빨치산 만식의 주검을 확인하고도 이를 간난에게는 숨기기로 작정한다. 뒤이어 빨치산의 습격, 황소와 돼지 등 가산을 약탈당하고, 순덕이와 창보는 납치돼 간다. 제2막 제2장 : 이튿날 저녁. 창보와 순덕이 집에 돌아왔다. 이미 순덕이는 욕을 당한 뒤의 일. 간난노파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 단호히 그녀의 가출을 명한다. 그러나 창보가 이를 완강히 반대하고 나선다. 간난과 창보간의 큰 싸움. 마침내 창보는 참다 못해 그만 그 어머니의 치부를 폭로하고 만다. 3.1만세 사건 때의 간난 노파의 수모, 그리고 자기 아내의 죽음이 호열자가 아닌 음독자실이라는 점. - 노파는 가문을 생각해서 병사로 조작했었다- 등등. 그리고 창보는 집을 뛰쳐나간다. 제3막 : 약 3시간쯤 뒤, 원석이 의병제대로 돌아왔다. 허리를 다친 것이 아니고 봉사가 돼서. 그리고 이튿날 아침 순덕이 또한 당산나무가지에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간난 노파는 요지부동이다. 곧 새봄이 오면 서둘려야 할 농사일을 먼저 채근하고는, 그날 따라 늦잠에 든 증손자인 철부지 소년을 턱없이 꾸짖어댈 뿐.
예술가
노경식 (1938~ ) 1938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1962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한 후 1965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며 겨울 워크숍 작품으로 <철새>를 집필한 후 손질하여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1985년 <알>이 호암아트홀 개관기념 현상모집에서 우수작으로 당선되었고 1971년 <달집>으로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1983년 <소작지>로 제1회 전국지방연극제 대상 등 10차례 걸쳐 각종 연극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달집> <불타는 여울> <하늘만큼 먼나라> <소작지> <알> <천년의 바람> 임영웅 (1936~ ) 1948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65년 동인극장에서 <전쟁이 끝났을 떄>의 연출을 처음으로 맡았고 그 이후에는 예그린 가무단의 연출을 맡았다. 1966년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했으며, 1968년 <환절기> 연출을 시작으로 국립극단 작품도 다수 연출하였다. 1969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을 연출하였고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립하였다. 1969년 한국연극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2001년 문화관광부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필두로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한민국문화연출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환절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목소리>
수상현황
- 1971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희곡상(노경식) 수상
재공연
- 1975년 여인극장 - 1983년 극단 뿌리
평론
토착적인 한국 인간상의 부각에 애써, 농촌의 평범한 인물의 전형화에 성공하였고, 전라도 사투리 대사가 작중 인물의 생활과 의지에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문제작으로 꼽힌다. 한국적 여인상을 3대에 걸쳐 배치시킨 착상, 노파의 완고한 보수성을 한국여인의 생명의 원천으로 파악한 작가의 의도를 높이 살만하다. … 간난노파의 고난이 한국인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 극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노파가 살아온 역사는 일제치하,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점령 치하 그리고 6·25 공산당 치하에서 한국인이 겪었던 시련, 특히 한국의 부녀자가 겪어야만 했던 시련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은 이 극의 주인공인 간난노파로 하여금 생에 대해서 그 나름의 태도와 방식을 가지게끔 했으며 그것은 한마디로 전통적 보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본능적이라 할 만큼 흙에 집착해 살면서 우매하리만큼 자기 고집을 내세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이 노파야말로 한국 사회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전형적인 토착적 인간상으로서, 바로 이러한 전형적인 인간상을 부각시켜 놓는 데 성공한 <달집>은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적 한국 신극 전통의 하나를 매듭짓는 것으로 기억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0년대연극평론자료집Ⅰ>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1989, 한상철) 이야기의 무리없는 전개와 등장 인물들의 성공적인 성격창조, 그 중에서도 특히 성간난 노파의 성격창조의 성공 등이 이 작품에 박수를 칠만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잊고 싶고,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구질구질한 옛기억들이 깔린 한 가정의 비극을 좋은 연극으로 창조해낸 것은 성간난 노파에게 소박하지만 타협할 줄 모르는 인생관과 도덕관을 갖도록 한 점과 수선스러울 정도로 장중하게 내뱉는 리드미컬한 대사를 구사한 점이다. … 백성희는 기를 쓰고 살아가는 성간난 노파의 성격에 어울리는 세찬 정열로 역을 소화해서 정열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 사실적인 무대장치, 상당히 세밀한 조명 등이 이야기 전개의 순조로운 바탕이 되고 있다. (일간스포츠 1971년 9월 16일, 구히서) 신인의 첫 장막이 국립극단에 의해 공연되는 행운도 드문 일이지만 주인공 간난노파로 백성희씨가 뛰어난 연기를 보임으로써 작품도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고 작가도 더욱 주목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연극계는 오랜만에 훌륭한 전통 리얼리즘연극 한편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 형식적인 면에서도 <달집>은 상당한 발전을 보여준다.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의 정보를 극중 대화로서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능력, 1막에서 큰 손자가 제대해서 돌아오고 작은 손자도 아직 살아있어 쉬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주는 서스펜스를 3막까지 지속시켜가는 수완과 3막이 거의 다 끝날 무렵 그 모든 것을 반전시킨 구성과 주제의 일관성, 정월 대보름과 달집 등의 풍속 묘사를 통한 토속성의 부각 등이 그러하다. (<한국현역극작가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1987, 한상철)
관련도서
<한국대표희곡선 (1999)>, 노경식 외, 한국연극협회, 1999.
관련사이트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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