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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출연/스태프
* 출연 장민호, 황정순, 백성희, 정애란, 나옥주, 박암, 강계식, 조항
내용
1950년대 연애와 결혼 풍습을 희극 형식에 담은 이 작품에는 세 딸의 혼인 문제를 둘러싼 부모와 자식간 세대 차이, 남녀간 애정 윤리,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젊은이의 감각과 의식 변화 등이 풍속도를 그려나가듯이 시사적이고 감각적인 대화체로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동경 유학 때 연애 결혼한 의학박사 부부가 맏딸의 결혼 실패를 본 후, 둘째 딸과 셋째 딸의 연애 결혼 문제를 놓고 온가족이 갈등하는 내용이다. 첫날밤에 헤어진 맏사위가 마지막 장면에 맏딸에게 다시 돌아오고, 절망에 부딪혔던 둘째딸의 결혼이 고집으로 관철되며, 둘째 딸에게 중매하려던 두 남성이 셋째 딸에게 소개되어 서로 갈등하다가 결국 셋째 딸도 결혼하게 되는 등 행복한 결말의 멜로 드라마이다. 참고: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예술가
하유상 (1928~ ) 충남 논산 출생의 극작가. 본명은 동렬. 1955년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영화사 연출부 등을 거쳐 월간 <민족문화> 취재부장(1957~58), 월간 <시나리오문예> 편집인 및 주간(1958~61), 극단 산하 운영위원장(1964년), 학교극연구회 회장(1970~74), 한국극작가협회 이사(1971~1978), 서라벌예대 강사, 극단 희극 대표 등을 역임했다. 장막극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1957년)가 국립극장 장막희곡 제1회 모집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의 폭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에서 상징적인 작품까지 다채롭다. 대표작품 <야화>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학 외다리로 서다> <꽃상여> <무녀도> 박진 (1905~1974) 서울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일본대학 예술과 중퇴 이후 연극에 투신, 토월회에 가입했으며 간부로서 연출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어 산유화회, 화조회를 조직(1928년)했으며, 동양극장에서 안종화, 홍해성 등과 더불어 연출가로서 활동했다. 광복 후 문교부 주최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서 <혈맥>(1946년)을 연출하여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국립극단 단장(1959년), 예술원 회원(1960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1962년), 국립극장 운영위원장(1973년) 등을 역임하였다. 연출작품으론 <향토심>(1927년) <화란을 당한 자>(1928년) <꽃피는 나무>(1943년) 등 수백편에 달한다. 극작가로서는 장막극<소낙비>(1927년)가 데뷔작으로 <명기 황진이>(1936년) <공작선생>(1951년) 등이 있다. 대표작품 <혈맥> <야화>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리뷰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멜로 드라마를 작가는 1950년대적인 풍속과 언어, 일반인의 소망과 윤리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시대 감각에 알맞은 일정한 품격을 갖춘 대중극으로 만들었다.
수상현황
- 1957년 국립극장 제1회 희곡 공모 당선 작품
관련도서
<학교극 청소년극> 하유상, 교문사, 2001. <희곡론과 작법> 하유상, 을유문화사, 2000. <하유상 장막극선> 하유상, 성문각, 1994.
관련사이트
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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