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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

작품명
설야
저자
최하림(崔夏林)
구분
1970년대
저자
최하림(崔夏林, 1939~) 1939년 3월 7일 전남 목포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빈약한 올훼의 초상>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1976), <작은 마을에서>(1982), <겨울꽃>(1985), <겨울 깊은 물소리>(1987), <침묵의 빛>(1988),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1991),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1998) 등과 시론집 <시와 부정(不定)의 정신>을 간행하였으며, <산문시대>,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 이래 한국 사회를 조여왔던 권위적 체제하에서 격렬한 어조로 자유를 향한 의지를 노래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부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 노력하는 외롭고 그리운 유랑의 발길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시는 진실된 삶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나가는 이의 모습을 담는데, 떠나는 행위는 결의를 품은 저항의지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그의 시의 주된 배경은 겨울이며, 시속의 주인공은 결연한 의지를 품은 자세로 미지의 진정한 삶이 있는 곳을 향해 나그네의 길을 걷는다. 그 와중에서 한 시대의 부조리한 상황과 모순의 굴레에 갇힌 의지적 자아의 강인한 육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도록 운명지어졌으나 각성된 의식을 지닌 모든 이의 고뇌를 대변하는 행위이며, 정신의 진실이 언어적 흡인력을 획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적 현실에서의 탈출과 자아 확인을 담은 정신적 각성의 극화가 그의 시가 지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리뷰
최하림은 초기 시에서 미지의 진실된 삶을 찾아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담아내곤 하는데, 그 주요 배경은 겨울의 눈 덮인 산야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의 상황은 억압과 고문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암담한 정치 현실에 대한 은유다. ‘떠나는 이’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강한 부정 정신과 저항 의지를 품고 길을 가는 지사를 떠올리게 한다. 비극적 현실에 갇힌 자아의 고뇌, 상황적 폭압에 저항하는 정신적 각성과 자아 확인의 극화가 초기 최하림 시의 특징이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작가의 말
저자가 노신이었든지 누구였든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젊은이가 유학을 간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당시의 인기직업인 의사나 법관이 되라고 논밭을 팔아 유학을 보냈는데, 몇 년 뒤 돌아왔을 때 보니 그는 법관이나 의사가 아닌 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된 것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일을 하였다. 그들과 며칠씩 어울려 지내는 때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감에 따라 그는 마을에서 위험한 사람으로 지목되게 되고 마침내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잘사는 사람들과 싸우게 되는 국면에까지 이르렀다. 젊은이와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패배하였다. 그들은 밤을 틈타서 고향을 떠났다. 길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행렬은 꾸불꾸불 산길을 타고 나아갔다. 그들의 집과 들판이 멀어져 갔다. 그 지점에서 젊은이는 괴로워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떠남’이 자기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그는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올바름의 기준은 어떻게 마련되는가, 올바름은 생각 속에만 있고 현실 속에는 부재한 것이 아닌가, 현실이란 올바름과 그릇됨이 혼재한 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향으로부터 떠나게 한다는 회오에 싸이게 되었다. 젊은이는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젊은이의 시체는 다음날 아침 행렬에게 발견되었으나 아무도 슬프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고 기쁘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말없이 행렬은 젊은이의 시체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들은 그 시체를 그냥 지나쳐 갔을까. 왜 그들은 시체를 매장해 주지 않았을까. 아니 이렇게 말하지 말기로 하자. 누가 행렬의 사람들에게 도덕적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며, 젊은이의 이념적 행동을 섣불리 비판할 수 있겠는가. 전진하는 행렬의 비정성이 역사이며 젊은이의 괴로움이 개인의 몫이 아니겠는가. 이 말은 역사는 비정하다든지 개인은 도덕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역사는 개인의 집합체이며 개인은 역사의 분자이다. 개인은 역사 속에서 성장하고 행동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하나 개인의 주체적 시각이 설정되지 않은 역사는 진정한 뜻에서 역사가 아니다. 전진과 죽음이 한 세계 안에 동시적으로 있음으로써 세계는 의미를 창조하게 되고 그 세계의 산이나 나무바람구름, 심지어는 길바닥에 구르는 돌멩이까지도 거기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지니고 있게 된다. 역사가 개인에게 의식화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그렇게 역사를 사는 개인의 고통을 통해서이고 그 의식은 성서의 밀알처럼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거쳐서 변증법적 삶을 얻게 된다. 그와 같은 경우를 우리들은 한 시대의 초입에서 경험하였다. 그때 우리들은 산이나 강이 갑자기 한 상징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들은 바람숲꽃놀어둠들과 어울려 절망의 풍경이 되는가 하면 치유할 수 없는 환자의 모습으로도 보이고 민족사의 영원한 지로를 확연하게 불밝혀 주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것은 흡사 앙토넹 앙토가 그의 연극론에서 말한, 현대극은 석유라는 상황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어떤 말이고 그 상황에 가 닿기만 하면 그것은 상황과의 관련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의 촉매작용이 서서히 뒤로 모습을 감추자 언어는 언어만으로 남게 되었고, 언어는 갑자기 서먹서먹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상황에 쉽사리 대응하지 못한 언어의 콤플렉스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그 밖에도 역사적 이상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새로이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쓸함이 작용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꽃을 보았다. 쓸쓸함 속에서 핀 꽃이었고 쓸쓸함 속에서 본 꽃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꽃이었다. 현실로부터 떨어져 그렇게 나는 나를 자위하려 했을 것이고, 허무에 주저앉고자 했을 것이고, 또한 그 허무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허무와의 싸움이 미미하게나마 비롯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그 허무를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늘 의미를 크고 빛난 것으로만 보려고 하는데 실제로 한 인간에게 있어서(역사도 마찬가지다) 의미는 작고 은근한 것이 훨씬 더 소중한 역할을 한다. 태평로보다도 우이동의 뒷골목이 사랑스러우며 이순신이나 세종대왕보다도 우리 할머니나 아주머니가 정다운 것이다. 작은 것이 정다운 것이다. 나는 이 자리를 곧장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전진하는 행렬을 보고 죽음을 보고, 그 전진과 죽음이 승리와 패배가 아니라 역사를 다이나믹하게 이끌어 가고, 그 다이나믹한 역사에 도덕적 순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똑똑히 보려고 한다. 젊은이는 죽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나 똑똑히 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에 의해서 그 죽음은 영속성을 얻게 되고 역사 속에서 괴로워하는 개인의 자리를 튼튼히 설정해 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이 개별적인 상상력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이 시집에 수록된 1,2부의 시들이다. 3,4부의 시들은 <우리들을 위하여>와 <작은 마을에서>에서 1,2부의 시들과 어울리는 것들을 추려 뽑았다. 선시집이라기도 어렵고 새 시집이라기도 어려운 미완결 상태의 이 시집을 낼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준 풀빛출판사에 머리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후기: 역사와 슬픈 꿈’, 최하림, <겨울꽃>, 풀빛, 1985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시인들의 풍경>, 김윤배, 문학과지성사, 2000 <한국대표시인선 50>, 중앙일보사, 1995 <겨울꽃>, 최하림, 풀빛, 1985 <우리들을 위하여>, 최하림, 창작과비평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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