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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이

작품명
한국의 아이
저자
황명걸(黃明杰)
구분
1960년대
저자
황명걸(黃明杰, 1935~) 1935년 12월 23일 평남 출생.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에서 수학했다. 1962년 <자유문학> 제6회 신인작품 모집에 시 <이 봄의 미아>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한국의 아이>(1965), <그리고 그는>(1970), <서울 1975년 5월>(1975) 등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한국의 아이>(1976), <내 마음의 솔밭>(1996) 등이 있다. <현실> 동인으로 참가했다. 그는 초기부터 도시 소시민의 무기력한 삶에 대한 회한 및 현실의 어두운 면이나 부조리한 면에 대한 인식을 강렬한 항거정신을 갖고 평이하게 표현하였다. 대표작 <한국의 아이>에 잘 나타나 있는 이런 경향은, 후기로 오면서 사회와 민족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각성을 시화하는 데로 나아갔다.
리뷰
이 시집의 편저자가 내게 이 발문을 부탁하면서 과학적인 평가라기보다 우정의 글이 되도록 써달라고 말하였다. 과연 황명걸과 나는 친구이다. 또 시인 황명걸과 그의 시에 과학적인 평가를 부여하려 하더라도 그 방법으로써는 다시 우정을 통한 접근이 가장 적절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황명걸은 인간 그 자체로서 짙은 맛을 지닌 친구이다. 그의 행색은 언제나 자유인을 느끼게 한다. 어떤 때는 텁수룩하게 히피풍이고 어떤 때는 말쑥한 왜놈풍이며, 심지어는 건강과 안색에서마저 때때로 변화를 보여준다. 황명걸의 이 일상시 거동은 실상 그가 늘 긴장하고 괴로워하며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명걸에게 한 고비의 전기를 가져다 준 것이 있었다면 1970년대 전반기의 시국 형세와 특히 동아일보 기자 해직파동이다. 이 파동의 일환으로 직장을 잃은 그는 같은 입장이 된 동류들과 결속해 지내는 일에 매우 충실하였다. 이때 황명걸은 지난날 그가 좀 게으르기도 하고 배회하기도 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시에도 잘 나타나게 되었다. 이번 시집의 1부에 들어있는 작품들이 대체로 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돌아온 친구>, <보리알의 긍지>, <서울의 의인>, <시몬과 베로니카>, <억새풀>, <지조(志操)> 등은 불의한 시대에의 저항과 자기반성과 긍지와 지조를 읊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숙연해지게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게도 한다. 이것은 실로 ‘돌아온 친구’ 황명걸의 모습으로서 가까운 벗들이 반가워하게 되었으며, 그 자신도 자기를 돌아온 탕자에 비유하였다. 비록 오늘의 일이라도 그것이 역사의 혼으로 작용하여 창조적 정신 작업자에게 받아들여질 때 이처럼 엄숙한 변모가 발생하는 데서 우리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날에도 황명걸의 작업의 주된 흐름이 그렇지 못했다 뿐이지 원래 그의 시에는 민족현실의 아픔과 소망을 통찰하고 절규하는 데 역량을 보이는 일이 때때로 있어 왔다. 그것이 60년대 중엽에 쓴 <한국의 아이>이며 73년의 남북회담 무렵에 쓴 <그날>, <새 주소(住所)> 등이었다. <한국의 아이>를 나는 황명걸의 대표작으로 여기거니와, 이 작품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가난과 슬픔과 역사와 미래가 응축되어 있다. 꾸밈새 없이 말을 다루면서도 충분히 진실을 표현했고 또 냉정과 의기마저 갖춘 이 작품은 황명걸의 인간적 성실과 시적 역량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날>과 <새 주소>는 국토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이다. 우리 시단에서 막상 이 주제는 겨우 두세 명의 시인에 의해 추구되었을 뿐 부당하게도 너무 잊혀져 왔다. 그 중에서 더러는 분단에 대한 저항이 관념화에 머물렀다. 그러나 황명걸은 마침 어릴 적 평양 대동강가 고향을 알고 있는 만큼으로 가슴이 땡기는 실제에서 이 주제의 시를 발상하여 완성하였다. 이점도 하나의 귀중한 수확이다. 이 밖에 3부에 실린 <타관의 고향>에서처럼 “뒤뚱대는 탁자, 삐걱이는 의자, 이 빠진 술잔, 짝 틀리는 젓가락” 등이 천하고 어리숙하게 제 푼수에 맞아 어딜 가나 제집 같다는 시정적 애정이 빚어낸 다양한 제재의 시들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만큼 황명걸은 소탈하고 애정이 많으며 정직한 시인이다. 이 시집의 끝 4부에서는 소탈이 지나쳐 버린 몇 작품도 보인다. “도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회의와 또는 지루함에서 역심을 품어 몇 군데에서 외설 비슷한 발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노출한다 해서 미덕이 될 것도 아니고 은근히 덮어 둔다 해서 위선이 될 것도 아니리라. 그러나 황명걸은 이 시집의 1부에서 보인 업적과 품격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계속 힘차고 아름다운 정신을 창조해 나가리라 믿는다. ‘발문’, 구중서, <한국의 아이>, 황명걸, 창작과비평사, 1976
작가의 말
나이 마흔을 넘어 첫 시집을 내게 되니 감회가 없지 않다. 하지만 시인에게 시 말고 다른 너절한 말이 필요 없겠기에 약하기로 한다. 단지 내 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를 밝혀둔다. 첫째, 여기 수록된 작품이 내 시작의 거의 전부라는 것이다. 나대로는, 되지도 않은 작품의 남발을 피하다 보니 과작이 되고 말았다고 변명하고 싶으나, 정선주의자인 말라르메도 수월찮은 작품을 남겼던 점을 상기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너무 게을렀고 공부를 안 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이 시집의 작품들은 처음 잡지·신문에 발표했을 때의 것과는 달라진 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도 부정확한 부분이 많아 고쳤기 때문이다. 앞으론 더 이상 고치지 않을 작정이다. 셋째, 기왕에 발표했던 작품을 뜯어 고쳐야 되는 무책임을 지양하기 위해 이후론 작품 발표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당분간 나는 동면에 빠져들게 될 듯싶은데 잠정적이기를 스스로 바라고 있다. 넷째, 부(部)의 구분을 작품경향으로 나누었으며, 그 순서는 작품연대의 역순으로 잡았다. 그러다 보니 작품경향과 연대가 맞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각 부의 시기는 대충 다음과 같다. 1부 최근, 2부 동아일보 시절, 3부 퇴사 후, 4부 데뷔시절 전후가 된다. ‘후기’, 황명걸, <한국의 아이>, 창작과비평사, 1976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응백 외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한국의 아이>, 황명걸, 창작과비평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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