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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작품명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저자
신동문(辛東門)
구분
1960년대
저자
신동문(辛東門, 1928~1993) 1928년 7월 20일 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를 중퇴했다. <충북일보>, <사회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했고, <새벽> 편집장을 지냈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선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수정화병에 꽂힌 현대시>(1957), <조건사>(1957), <의자철학>(1958) 등의 시를 발표하는 한편 동인지 <현실>을 주재하기도 했다. 1956년 시집 <풍선과 제삼포복>을 간행했으며, 제2회 충북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조건사초>(1958), <바둑과 홍경래>(1965) 등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당대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현실 참여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 절필한 뒤 충북 단양으로 낙향, 1993년 사망했다.
리뷰
신동문은 우리 현대 문학사에게 가장 이채로운 음역(音域)을 선보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에 등단하여 전후의 현실을 직정(直情)의 언어로 증언하였고, 불모와 폐허의 상황에 맞서 저항하는 순결하고도 뜨거운 시적 발화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서정 단시 위주의 미학주의에 빠져 있었던 우리 문학사의 프리즘에 그의 이 같은 시적 개성이 선명하게 포착되기는 지극히 어려웠다. 그만큼 신동문은 일종의 반시적 시풍으로 우리 문학사에 뚜렷이 각인되고 있는 반문학사적 시인이라 할 수 있다. (……) 사실 문학에서의 순수·참여 문제는 문학의 속성이 갖는 이원성에서 필연적으로 기인한다. 이때 이원성이란 상상적 기능과 인식적 기능을 말하며,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역점을 두는가에 따라 순수·참여의 논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므로, 원론상으로는 어느 쪽도 정당하고 동시에 어느 쪽도 부당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문학과 정치의 날카로운 긴장 관계에 대한 원론적 탐색이라는 의의를 띨 뿐, 문학에서의 순수·참여 문제는 이미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문학사의 ‘참여’를 거론할 때 그것은 분명 미학적·보편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당대적 관행에 의한 시대적·역사적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동문의 시적 특성 역시 이 같은 전후 사회의 ‘참여’적 자장 안에서 검출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신동문의 시적 권역을 특징짓는 첫 번째 주제 의식은 확연한 반전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 신동문의 시가 보여주는 두 번째 주제는, 전후 현실에 부적응하는 시적 주체의 비극적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신동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적 권역은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강렬한 현실 비판의 참여 시학이다. 신동문을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킨 작품을 하나 들라 하면 우리는 단연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을 떠올릴 수 있다. ‘4·19의 한낮에’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른바 현장시의 대표격이다. 해방 직후 유진오의 <누구를 위하는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를 연상시키는 이 거친 목소리는 당대성과 현장성에 충실한 참여 시학의 첨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기본 모티브는 구약의 <사무엘>에 나오는 목동 다윗과 블레셋 거인 골리앗의 대결이다. 여기서는 다윗을 집단 개념으로 지칭한 ‘다비데군(群)’이라는 용어가 시종 쓰이고 있다. ‘신화(神話)’의 주인공들은 익명의 민중들이었던 셈이다. ‘신화(神話)’의 속성을 띠는데, 이 시에서 4·19의 정치사적 의미는 특히 ‘신성성’으로 집중되고 있다. 우리 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군집묘사(群集描寫)’가 인상적으로 성취된 이 작품은 따라서 당시 산출된 많은 혁명 기념시 가운데서도 가장 역동적인 인상을 남긴 시편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동문은 자유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념이 역동적으로 성취되는 장면의 벅찬 감격을 격정적 어조로 노래하였다. 이러한 격정의 언어가 그로 하여금 세련된 미학주의나 리리시즘으로부터 일탈케 한 근원적 힘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신동문의 이색적인 음색을 적극 평가해야 할 것이다. (……) 당대의 현실 추수적 담론에 대하여 동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비판적·풍자적으로 응시하고 의식의 치열성과 정직한 자기성찰을 유지했던 신동문의 시적 열정은 그를 전후의 가장 문제적 시인 가운데 하나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동시대의 박종우나 신동엽이 일종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성찰했던데 비해, 신동문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당대의 지향을 시적으로 구현하려 했고 자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당대의 폭력성에 대해 풍자적으로 노래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사적 가치는 단연 돋보인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서정시를 사회와 절연된 것, 철저하게 개체적 정서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동문은 서정시가 이미 사회적인 것이며 사회적 상황에 대한 항의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동문의 전후 참여시에는 냉철한 현실 분석이나 전망 탐색보다는 낭만주의적 비가(悲歌)의 성격이 짙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참여 의식에는 행동적 정열과 이성적 분석의 두 가지 발원 지점이 있는데, 신동문의 시는 현저하게 행동적 정열로 경사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체험의 직접성이 일종의 시대적 보편성으로 고양될 계기를 많이 놓친 것이 사실이고, 정치적·도덕적 논리가 시적 형상을 압도하여 일종의 난해한 자기 독백으로 흐를 개연성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유보 조항에도 불구하고, 신동문의 시는 높은 도덕적 기품과 시적 진정성에 바탕을 둔 부정과 참여의 반시적 페이소스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부정과 참여의 반시적(反詩的) 페이소스’, 유성호, <내 노동으로>, 솔출판사, 200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내 노동으로>, 신동문, 솔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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