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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전

작품명
장끼전
저자
미상
장르
국문소설
작품소개
<장끼전>은 창극의 각본으로 쓰여 오다가 영·정조대에 와서 소설화된 것이다.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며 1책의 국문필사본이다. 장끼·까투리 등 조류(鳥類)를 의인화한 우화적 작품이며 <장끼젼>·<웅치전(雄雉傳)>·<화충전(華蟲傳)>·<화충가(華蟲歌)>·<화충선생전>·<자치가(雌雉歌)> 등으로도 불린다.
내용
어느 겨울날 아들 아홉과 딸 열둘을 거느린 장끼와 까투리 부부가 먹이를 구하려 산기슭으로 갔다. 장끼는 앞에 먹음직스런 콩알 하나가 있어 좋아한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까투리가 수상쩍다고 한사코 먹기를 말린다. 장끼가 말을 듣지 않자 어젯밤 꾼 여러 가지 불길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린다. 그러나 경망스런 장끼는 여자의 말이라고 무시한다. 신중한 까투리가 옛날 현인들의 지혜까지 동원하여 말려도 장끼는 막무가내다. 장끼가 하는 말이 “콩 먹고 다 죽으랴. 옛글을 읽어보면 콩 태자 든 사람은 모두가 귀한 자라. 태고적 천황씨는 일만 팔천 살을 살았고, 태호 복희씨는 풍성히 승하여 십오 대를 전했으며, 한태조 당태종은 중원의 창업지주가 되었고, 강태공은 달팔십을 살았으며, 시중천자 이태백은 월궁 항아와 놀았으며, 북천의 태을성은 별 가운데 으뜸이니, 나도 콩알 달게 먹고 태을선관(太乙仙官) 되리라”고 한다. 장끼가 끝끝내 고집을 버리지 아니하니 까투리가 포기한다. 장끼가 콩알을 먹고 퍼득거리며 죽고 만다. 장끼는 죽어가면서 부디 개가하지 말고 정절부인이 되라고 까투리에게 유언을 한다. 덫의 임자가 와서 장끼를 빼어내 들고 가니, 까투리는 장끼의 깃털 하나를 주어다가 장례를 치른다. 장끼가 죽어 까투리의 초상집에 여러 잡새들이 조문을 와서 수작을 한다. 까투리의 과부 타령이 심금을 울린다. “상부(喪夫: 지아비를 여읨)도 자주 한다. 첫째 낭군 얻었다가 보라매에 채여가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가고, 셋째 낭군 얻었다가 포수총에 맞아 죽고, 이번 낭군 얻어서는 콩알이 원수로다. 이내 팔자 험악하다.” 결국 까투리는 조문 온 갈까마귀, 부엉이, 물오리 등이 청혼을 하나 모두 거절하고, 동류인 홀아비 장끼에게 개가하여 다음해 아들 딸 다 시집 장가보내고 명산대천 구경하며 다니다가 큰 물에 들어가 치위합(稚爲蛤)이라는 조개가 되었다.
<장끼전>의 기원과 전승
<장끼전>은 처음에 판소리의 한 마당으로 불려지다가 뒤에 소설화된 작품이다. 현재는 불리지 않으나 이유원(李裕元)의 <관극시(觀劇詩)>와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판소리 <장끼타령>을 듣고 읊은 내용의 글이 나타나며,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판소리 12마당 중에 <장끼타령>을 포함시키고 있다. 현재 전하는 소설의 문체가 율문체로 되어 있는 데서도 그와 같은 사실이 잘 나타난다. 결국, 처음에 판소리 <장끼타령>으로 불리다가 그 전승이 끊어지면서 대본인 가사만이 남아 소설화된 것이다. 판소리 12마당이 6마당으로, 다시 5마당으로 축소 정리되면서 판소리 <장끼타령>은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장끼타령>은 헌종·고종 때의 경기 태생인 한송학(韓松鶴)에 의하여 그 창법이 계승되다가, 후계자가 없어 전승이 끊겼다는 설도 있다. 한편, 민요에 <까투리타령>이 있으나 <장끼전>과는 내용이 다르다. 구전동요 중 <꿩요>가 많이 전하는데, 특히 제주도 성산지방의 <꿩요>는 그 내용이 <장끼전>의 내용과 흡사하여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밖의 <꿩요>들도 <장끼전>의 내용을 압축한 것이거나 내용의 일부를 동요화한 것이 많다. 작자와 창작연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만 이 남부지방의 꿩 사냥지였던 추풍령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방의 인물이나 혹은 경기도인으로서 서울 부근에 살았던 인물 등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장끼전>의 여러 이본에 등장하는 지명의 빈도수가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의 군 단위 읍명이 많은 점으로 보아 본 작품의 창작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어떤 이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장끼전>의 근원설화로는 ‘야서혼설화(野鼠婚說話)’를 들 수 있는데, 같은 종류의 결혼설화로 인도의 ‘반잔단드라’, ‘히도바데사’, ‘마하빠라다’ 등에 나오는 쥐 이야기도 모두 우리나라의 ‘야서혼설화’와 기원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에도 유사한 종류의 설화가 있다. 창작 연대에 대해서는 원문에 장끼가 하는 말 중 “대명이 중흥할 제 구원병을 청하거든 이내 몸이 대장이 되어 머리 위에 투구 쓰고 압록강을 건너가서 중원을 평정하고 승전대장되는 꿈이로다(세창본(世昌本) 6면)”에서 명이 망할 때인 인조 22년 1644년으로 추측하기 쉬우나, 작품의 주제와 사상, 그리고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에 장끼전의 상연을 보고 지은 한시 등으로 보아 실학사상 이후, 즉 영·정조 대에 전래된 설화를 소설로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본으로는 우선 활자본인 덕흥서림본(1923), 영화출판사본(1951년), 세창서관본(1952년), 영창·한흥·진흥본(1952년), 삼문사본(1953년), 최상수본(1955년) 등이 있으며 필사본은 홍재휴 소장본, 서울대 소장본, 나손 김동욱 소장본 등이 있다.
<장끼전>의 주제와 특징
<장끼전>은 여자의 말이라고 까투리의 말을 무시하다가 죽은 장끼와, 장끼가 죽은 뒤 장례가 끝나자 곧바로 개가한 까투리를 통하여 서민적 입장에서 남존여비와 개가금지라는 당시의 완고한 유교도덕을 비판 풍자한, 조선 후기 서민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특히 이본에 따라 여자의 개가 금지에 대한 반대의 입장은 찬·반의 편차가 나타나는 반면, 남존여비 사상에 대한 풍자는 각 이본들 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 두드러진다. 콩을 먹으러 가는 장끼에게 까투리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만류하나, 도리어 욕설을 퍼붓고 끝내는 덫에 치여 죽게 되는 모습은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하여 빚어진 부부생활의 모순을 해학과 위트로써 신랄히 풍자한 것이다. 또 한 가지 공통되는 주제는 신분 계급의식, 즉 동류의식이 각 이본 사이에 두루 나타난다는 점이다. 과부가 된 까투리에게 무수한 새들이 청혼했을 때에는 거절하다가도 홀아비 장끼가 청혼했을 때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같은 동류끼리의 어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장끼전>은 조선후기 양반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고, 여권의 신장을 도모하여, 인간의 본능적 정욕을 중시하는 시대의식이 표출된 교훈적·풍자적 주제를 지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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