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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작품명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저자
임제(林悌)
장르
한문소설
작품소개
조선 중기 임제(林悌)가 지은 한문소설. 필사본. 일명 ‘원자허전(元子虛傳)’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임제의 <화사(花史)>와 합철된 단권 필사본 외에 <조야첨재(朝野僉載)> 권8에 수록된 본문, <육신전(六臣傳)>에 수록된 국역본 등이 현존하는 필사본이다. 그 밖에 인간본(印刊本)으로는 <장릉지(莊陵誌)>, 남효온(南孝溫)의 <남추강집(南秋江集)>, 원호(元昊)의 <관란유고(觀瀾遺稿)>, 임제(林悌)의 <백호문집(白湖文集)> 등에 수록된 것들이 전한다. 작자를 김시습(金時習)이나 원호로 주장하는 이설이 있었으나 황여일(黃汝一)의 <해월문집(海月文集)>의 기록에 의하여 임제로 확인되었다. 작품의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 말미의 연기(年記)로 보아 1568년(선조 1)으로 추정된다.
임제(林悌, 1549~1587)
본관 나주. 자 자순(子順). 호 백호(白湖)·겸재(謙齋).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인. 1576년(선조 9)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에 급제, 1577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했다. 예조정랑(禮曹正郞)과 지제교(知製敎)를 지내다가 동서(東西)의 당파 싸움을 개탄,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보냈다. 당대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시풍(詩風)이 호방하고 명쾌했다.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와 기생 한우(寒雨)와 화답한 시조 <한우가(寒雨歌)> 등은 유명하다. 저서에 <화사(花史)>, <수성지(愁城誌)>, <임백호집(林白湖集)>, <부벽루상영록(浮碧樓觴詠錄)>이 있다.
내용
주인공 원자허(元子虛)는 강개한 선비인데, 야(野)에 묻혀 살아가던 어느 날 밤,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계로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복건자(幅巾者: 南孝溫)의 마중을 받아 왕(단종)과 신하들(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최덕지(崔德之) 등)이 있는 정자로 가서 이들과 어울려 고금의 흥망사를 의론한다. 마음이 격하여 있던 복건자는 요(堯)·순(舜)·탕(湯)·무(武)의 네 성군을 적시(賊視)하는 발언을 한다. 이들은 선양(禪讓)을 빙자해서 찬탈의 선례를 역사에 남겼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이를 빙자하는 자가 나쁠 뿐이지, 결코 성군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동은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시로 읊어 회한을 토로한다. 왕의 노래를 시작으로 신하들이 차례로 음영하고 마지막으로 자허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며 시 한수를 읊으니 일동이 듣고 비감에 젖게 된다. 이때 씩씩한 장부(유응부)가 자리로 뛰어 들어와 왕에게 인사하고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를 이룰 수가 없다며 칼을 뽑아 춤추며 큰 소리로 노래한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치고 우레가 한 번 울리자 자허는 꿈에서 깨어난다.
해설
이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비분강개한 성격의 주인공이 꿈에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과 사육신의 원혼 및 남효온(南孝溫)의 고혼들과 만나 울분을 나누며 시회를 벌이다가 갑자기 깨고 보니 한밤중의 꿈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서사구조 면에서는 <금오신화>의 ‘남염부주지’ 등에서 차용된 몽유담의 형식을 잇고 있는데,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처럼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환상 세계 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 <금오신화>의 경우와 차이가 난다. 내용 면에서는 세조의 찬탈을 중국의 사적에 빗대어 비판한 김시습의 시편 <관사유감(觀史有感)>이나 <조의제문> 그리고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의 비판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세조가 내걸었던 선위(禪位)의 명분론이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허구성과 그의 왕권이 지니는 폭력적 실체를 역설적인 반어를 통해 신랄하게 폭로·비판하고 있다. 작중 인물 복건자에 대해서는 통설과는 달리 최덕지(崔德之)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많은 문헌에서 남효온으로 인정되고 있다. 왕통과 함께 왕조의 정통성 여부가 달려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시비는 당시로서는 국형(國刑)에 처해질 만큼 엄중한 금기의 대상이었는데, 소설적 허구를 빈 이러한 비판은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을 허용하지 않았던 역대 왕권과 <육신전>을 금서로 탄압하며 전제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당시 왕권(선조)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종국적 주제는 세조의 찬탈이라는 전형적 사건의 표상을 통해 봉건 정치 이념과 현실 간의 모순을 문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모순을 야기한 장본인으로 자기 왕조의 전제 군주를 지목하여 그를 직접 규탄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열한 비판정신이 주목된다. 꿈을 꾼 주인공이 암흑 속의 현실로 되돌아와 고뇌 속에 남게 되는 결말 처리와 함께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환상 세계 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서사구조는 후대 작품에 습용(襲用)되어 현실비판적인 몽유록 작품의 남상(濫觴)으로서 소설사적 의의가 크다. 당시의 금기를 깬 이 작품은 온전하게 전해지기 어려웠으니, 필사된 형태로 문집에 실리지 못한 채 전해왔다. 그러나 독자층은 일반사대부 외에도 국역본의 존재에서 보듯 부녀자층까지 확산되어 있었다. 이는 금기시된 내용이기는 하나 불의를 미워하고 약자를 동정하는 인지상정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숙종은 이 작품을 친히 읽고 복건자의 발언 중 ‘적(賊)’자만을 고쳐 세상에 읽히는 것을 묵인하였다. 이 작품에 이르러 한국소설사상 몽유록 계통의 소설이 비로소 역사적·사회적 주제를 띤 본격 소설로 성격화되었으며, 더 높은 차원의 몽자소설(夢字小說)의 전개가 촉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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