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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작품명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저자
충담사
장르
향가
작품소개
<삼국유사> 권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수록되어 있는 10구체 향가이다. 같은 조에 당대 사람들이 충담사의 <찬기파랑가>를 평하여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한 구절에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찬기파랑사뇌가(讚耆婆郞詞腦歌)>라고도 한다.
저자
충담사(忠談師, 생몰년 미상) 경덕왕대의 사람이다. 경덕왕이 백성들을 다스릴 노래를 지어줄 것을 부탁하자 향가 <안민가>를 지어주었다. 아마도 이로 인하여 충담(忠談)이라는 이름을 얻은 듯하다.
양주동 해독
열어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것 아니야? 새파란 내(川)에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 냇가 조약에 낭의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자 아으 잣가지 드높아 서리를 모르실 화랑의 장(長)이여
김완진 해독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 逸烏내 자갈 벌에서 郞이 지나시던 마음의 갓을 좇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참고) <고가연구>, 양주동, 일조각, 1980 <향가해독법연구>, 김완진, 서울대출판부, 1980
배경설화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 삼산의 신들이 때때로 육신을 나타내어 대궐 뜰에서 왕을 모셨다. 3월 3일에 왕은 귀정문의 누각 위에 나가서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누가 길에 나가서 영복승(榮服僧) 한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있겠느냐?” 이때 마침 한 고승이 있어 위의(威儀)가 깨끗하고 이리저리 거닐면서 지나갔다. 측근의 신하가 바라보고 그를 데리고 오니, 왕이 보고서는 “내가 말하는 영복승(榮服僧)이 아니다”고 말하고는 그를 물렸다. 다시 승려 한 사람이 장삼을 입고 앵통(櫻筒)을 걸머지고-혹은 삼태기를 걸머졌다고 함- 남쪽에서 왔다. 왕은 기뻐하면서 그를 보더니 누각 위로 맞아들였다. 그 통 속을 보니 다구(茶具)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스님이 “충담”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어디서 오느냐고 하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제가 매양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차를 다려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드립니다. 오늘도 이미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과인에게도 차 한 사발 주겠소?”하자 중은 곧 차를 다려서 바쳤는데 차의 향기와 맛이 이상하고 사발 안에는 이상한 향기가 돌았다. 왕은 말했다. “짐이 일찍이 대사의 찬기파랑사뇌가가 그 뜻이 매우 높다 하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러하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할 노래(理安民歌)를 지어주오” 중은 칙명을 받는 즉시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은 그것을 가상하게 여겨 왕사로 봉하였다. 충담사는 두 번 절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안민가(또는 리안민가)는 이렇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지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이다 꾸물거리며 사는 물생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를 갈 것이냐 하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이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살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이다’ 기파랑을 찬미한 노래는 이렇다. ‘열어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것 아니야? 새파란 내(川)에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 냇가 조약에 낭의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자 아으 잣가지 드높아 서리를 모르실 화랑의 장(長)이여’ -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景德王) 충담사(忠談師) 표훈대덕(表訓大德)
해설
<찬기파랑가>에 대한 문학적 고찰의 출발점은 해당 조목에서 보이는 <찬기파랑가>에 대한 당대인들의 평가인 ‘기의심고(其意甚高)’라는 구절에서 출발된다. 신라인들도 인정하였던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오히려 현재에 와서는 그 해독조차 어렵고 배경설화도 극히 제한되어 있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찬(讚)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파랑의 정체에 대한 견해가 있다. <찬기파랑가>가 불교적인 노래라는 입장에서는 기파랑이 실존했던 인물이라기보다는 기파(耆婆)가 불가의 미륵보살의 환신이며, 그를 찬(讚)하여 미륵보살과 같은 인물이 되도록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노래가 바로 <찬기파랑가>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기파랑의 정체는 화랑일 수밖에 없으며 시대적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쇠퇴하고 있던 화랑단을 일으켜 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찬기파랑가>가 지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덕왕대에 시중(侍中)으로 있던 김기(金耆)를 기파랑으로 추측한 견해도 있다. 관련 기록의 부족으로 인하여 기파랑의 정체를 단정 짓기는 어렵겠으나, 랑(郞)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실을 근거로 기파랑의 정체가 화랑과 관계가 있다는 정도는 추측하여 볼 수 있다. 작품 내적으로 살펴볼 때 기파랑은 세속적이기보다는 고고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흰 구름을 열고 고요히 흘러가는 달과 소리 내며 세상을 흘러가는 냇물, 그 사이에서 달과 내와 같이 흘러가고 있는 기파랑의 모습에서 세상일에 초탈한 모습이 느껴진다. 하늘의 달빛을 받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기파랑의 모습을 그린 4~5행에서 기파랑에 대한 찬양은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보인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지적되었듯이 <찬기파랑가>가 단순히 기파랑을 찬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6~8행에서 노래가 되듯이 그의 마음을 좇고자 하는 충담사의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찬기파랑가>의 성격이 단순한 찬가(讚歌)이기보다는 교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면도 보여준다고 하겠다.
연계정보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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