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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희(田淑禧)

예술가명
전숙희(田淑禧)
전공
수필
개요
1939년 10월 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를 <여성>지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수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한때 영화에도 관심을 두어 <어화>의 조연출을 맡기도 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수필 창작에 전념하였다. 1954년 첫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간한 이래, <이국의 정서>, <삶은 즐거워라>, <나직한 말소리로>, <영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 <가진 것은 없어도> 등의 수필집을 냈다. 전숙희 수필의 특징은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여성의 심리를 군더더기 없는 조촐한 필치로 그려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수필가로서뿐만 아니라 문예지 창간, 문학관 설립,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및 국제펜클럽 부회장 활동 등 그간의 업적을 통해 ‘한국문단의 평생 대모’로서 한국문학의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함남 원산에서 출생한 전숙희는 1938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수학했다. 1936년 단편 <시골로 가는 노파>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후, 1954년 첫 수필집 <탕자의 변>을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수필 창작에 전념했다. 1976년에는 여류문학인회 회장, 1977년에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위원장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1992년까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했고, 1991년 이래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으로 문학의 국제적인 교류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1970년 <동서문화>(현 <동서문학>)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쳤으며, 한국 최초의 문학박물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약력
1919년 함남 원산 출생 1934년 <여성>·<사상계> 등의 잡지에 <시골로 가는 노파> 등의 단편 추천 1945년 포항·해운대에 주둔한 군정청에서 비서 겸 통역관으로 근무 1947년 손소희와 공동으로 문예지 <혜성> 창간 1954년 경향신문사 문화부 기자 1955년 아세아재단 파견으로 미국 문화계 시찰 / 콜럼비아대학 비교문학과 수학 1957년 제29차 도쿄 국제펜대회 참석 1958년 대만 정부 초청 문화교류단 1970년 월간잡지 <동서문화> 창간 1975년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 한국 대표로 미국·유럽·이란의 세계 여성 생활 취재 1979년 계원예술고등학교 설립 198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에 피선 / 유네스코 한국본부 문화분과위원에 위촉 1987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연임 1988년 제52차 서울 국제펜대회 개최 1989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연임 / 예술원 정회원으로 선임 / 방송심의위원 / 한국적십자 서울지부 상임위원으로 선임 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명예회장으로 추대 / 국제펜클럽 본부 종신 부회장 선임 1993년 계원조형예술전문대학 설립 1997년 동서문학관 개관
상훈
1975년 문화교육부 문화훈장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1994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5년 독일연방공화국 문화훈장 수필집 <탕자의 변>(1954) <이국의 정서>(1954) <여수상 인디라 간디>(1966) <밀실의 문을 열고>(1969) <삶은 즐거워라>(1972) <나직한 말소리로>(1973) <청춘이 방황하는 길목에서>(1978) <영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1981) <가진 것은 없어도>(1982) <우리의 시간이 타는 동안>(1985)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1987) <어둠이 가면 빛이 오듯이>(1988) <아직도 가슴 속엔 볼가강이 흐른다>(1990) <그리고 지나간 것은 모두 다 즐겁게 생각되리니>(1991) <해는 날마다 새롭다>(1994) <예술가의 삶>(1995)
작가의 말
좌절하지 않는 삶, 나는 그 길을 가고 싶다. 이 잡지(<동서문학>) 일을 계속하면서 그래도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루에 한두 장의 글이라도 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오늘 살아 있다는 실존을 느끼게 된다. 숱한 회의와 혼돈의 사념 속에서 나는 그래도 항상 펜을 들고 있다. 나의 글을 누구에겐가 읽히기 위해 독자를 의식하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내가 살아 있다는 보람을, 나는 몇 줄의 글에서 얻고 있다. 쓴다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고뇌이기도 하다. 삶이란 분명 기쁜 것이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고통이 숙명처럼 뒤따른다. 그리고 그 고통은 작가로 하여금 뭔가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쓴다는 말이 반드시 어떤 작품을 쓴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백지 위에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부치지 못할 편지라도 좋고, 고백이라도 좋고, 부끄러운 참회라도 좋다. 내 마음의 도면, 내 삶의 발자국은 바로 그 백지 위에 새겨져 있다. 내 삶의 보람은 바로 그 펜과 종이였다. 내 삶의 기쁨은 바로 그렇게 펜을 잡고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내가 문학 잡지를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도, 또 삼십 년 세월 동안 국제 펜의 임무를 맡고 있는 것도 그러한 나의 심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문학의 열정에 들떠 보낸 세월이다보니 나는 자식으로서,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도로서 실패자였고 후회할 부분도 많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을 위해 일하며 문학인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지상을 떠나간 후에도 내 명부는 문학이라는 울타리 속에 남으리라는 것, 이것만은 후회 없는 나의 긍지요 희망이다. 나에게 문학만이 삶의 가치요, 어둠 속의 등불이다. -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전숙희문학전집 1 : 문학, 그 고뇌와 기쁨>, 동서문학사, 1999
평론
수필문학은 문학 중에도 가장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문장이 구슬을 꿰어놓은 듯 고읍고도 명랑해야 하고 진리를 모색하고 깊숙한 사유를 가져야 하고 이 값비싼 사색의 결정이 능히 독자의 인생으로의 품격을 높여주어야 하는 동시에 수필 작가에게 독자는 소설가 이상의 존애감을 느끼게 해야만 한다. 이 점으로 보아서 수필은 시문학 이상의 고상과 고답과 배태의 고난이 섞여 있는 것이요, 또한 전문으로의 창조성을 개척하는 철학자이어야 한다. 수필 쓰는 이가 우리 문단에 수로는 많았으나 진정한 수필문학을 대성시킨 이가 몇 분이나 되는가? 대개는 시를 쓰는 방계로, 소설을 쓰는 여기로 수필의 수박 겉만지기를 했을 뿐, 수필을 진정으로 쓰는 이는 청천 김진섭 형과 여류 수필가로 전숙희 여사 두 분이 있을 뿐이다. 지금 청천이 없어서 우리 수필문학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이 판국에 벌써 한 권의 단행책을 내었어야만 할 전숙희 여사의 수필집이 그분의 겸손한 미덕으로 인하여 이제야 상재된다는 것은 여사의 수필로 하여금 더한층 조촐하고 품위 있는 그 빛을 아늑하게 우리의 심혼 속에 지니게 한다. 인생은 짧다하나 조촐한 영혼을 고이 고이 한 평생 지녀서 그 예술적 훈향을 인류 위에 풍겨주기란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 ‘탕자의 변-서(序)’, 박종화, <내가 본 전숙희: 전숙희 문학전집 별책>, 동서문학사, 1999전 여사의 문체는 매우 간결하다. 수식을 위한 언어의 남용을 일체 삼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옛날 함경도 어느 산 구석의 자연 풍경과 신혼 생활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간결성과 함께 우리는 감정의 정제라는 문체의 특성을 보게 된다. 과거 회상적인 글일수록 센티멘틀리즘에 빠지기 쉬운 유혹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 아니 밑바닥에 깔아버리고 감추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체에 교양이 있다는 말은 이런 데서 두드러진다. 지나간 세월 속에서 만난 많은 그리운 사람들이 그런 감정적 절제 속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전 여사의 글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이것은 돌아가실 때까지 용돈 한번 준 일 없고 다정한 말 한마디 한 일 없고 그저 개척교회 세우며 하나님께 대한 봉사밖에는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어머니께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운 부모에 대한 회상인데도 감정의 배설을 최대로 억제해나가며 그들의 모습을 재생시켜나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속으로는 울고 있으면서도 울음을 삼키고 눈물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물론 수필 문학이 지녀야 할 고매한 향기의 기본 조건이지만, 아울러서 이것은 아마도 정자나무가 지녀야 할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늘 편안한 마음으로 쉬고 가고 놀고 갈 수 있는 자리라야 정자 나무 구실이 가능하니까. 전 여사는 자신의 고매한 수필 문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항상 많은 문인들이 그 곁에 와서 머물고 가는 정자나무 같은 역할을 했다. - ‘늘 푸르른 정자나무’, 김우종, <내가 본 전숙희: 전숙희 문학전집 별책>, 동서문학사, 1999
관련도서
<전숙희 문학전집>, 전숙희, 동서문학사, 1999
관련사이트
한국현대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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