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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吳永壽)

예술가명
오영수(吳永壽)
전공
소설
개요
오영수는, 한 모성이 아들 내외에게서 받은 슬픔을 간결한 필치로 그린 <화산댁>, 시골 느티나무 밑에서의 두 노인의 우정을 그린 <두 노우>, 갯마을 청상과부의 원색적인 사랑을 통해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보여준 <갯마을>, 환도 후의 피난 교사의 비참한 생활상과 인정을 그린 <응혈>, 형무소 감방이라는 어두운 현실의 단면을 따뜻한 인정의 세계로 승화시킨 <명암>, 담담한 에세이풍으로 감미로운 분위기를 그려보인 <수련>, 동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계의 모럴을 암시한 <개개비>, 6·25사변 때 피난길에서 어린아이를 추풍령에 가매장해 두고 두 내외가 내려가서 다시 산역하는 이야기인 <추풍령>, 여성의 본래적인 숙명을 상징적으로 그린 <실걸이꽃> 등의 가작을 계속 발표해 중진의 지위를 굳혔다. 총 150여 편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가 단편소설이라는 점은 그의 문학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준다. 전형적 단편작가로서 작풍은 주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이나 서정의 세계에 기조를 두었다. 작중 인물들은 온정과 선의의 인간들이며, 도시보다는 향촌을, 기계문명보다는 자연을, 현대적 세련미보다는 고유한 소박성을 각각 그리워하며 예찬하는 경향을 보였다. <머루>, <남이와 엿장수>에 보인 소박한 인정적 서정세계가 <박학도>, <종차> 등에 와서는 유형적 인간의 추구와 성격창조까지 심화되었으며, <후조>나 <명암> 등에 이르러서는 그 속에 부여된 의미를 제시하거나 주장했으며, 이러한 전개는 다시 <내일의 삽화>에 오면서 담담한 인간긍정의 사상이 인간옹호의 사상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휴머니즘이나 전통옹호의 특성 때문에 역사나 사회에 대한 작가적 책무의 문제가 취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성에 대한 긍정, 향토성의 옹호, 반문명적·반도시적 성격은 1950년대 이후 급격히 성행한 외래문화 수용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 참고 :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생애
경남 울주에서 출생한 오영수는 언양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932년 일본 대한 나니와중학 속성과를 수료하였다. 그 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동시를 발표하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국민예술원을 졸업하였다. 광복 후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1949년 단편소설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제)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 이 작품을 <신천지>에 발표하고, 이듬해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상경 후에는 <현대문학> 창간 멤버로 참가했고, 현대문학사에서 퇴임한 후에는 동지의 편집위원, 추천심사위원으로 후진을 육성했다.
약력
1911년 경남 울주 출생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나니와중학 속성과 수료 1935년 <조선일보>·<동아일보>에 동시 발표 193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국민예술원 입학 1938년 국민예술원 졸업 · 귀국 1945년 부산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국어를 가르침 1948년 <백민>에 <산골 아가> 발표 194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모집에 단편 <남이와 엿장수> 입선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머루> 당선 / 청마 유치환과 함께 동부전선 종군 1951년 부산중학교로 전임 1955년 <현대문학> 창간호 편집 1966년 위궤양으로 현대문학사 실무를 떠남 1970년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위원장 피선
상훈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상 1959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7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 문화훈장 단편소설집 <머루>(1954) <갯마을>(1956) <명암>(1958) <메아리>(1960) <수련>(1965) <황혼>(1977) <잃어버린 도원>(1978)
평론
(……)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을 무대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다 한국적인 습관과 풍경을 그들의 작품 속에 그릴 것이다. 그러나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풍경을 간결하고 시정적(詩情的)인 필치로 원형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리는 데 있어서 오영수보다 탁월한 재능을 보인 작가도 드물다. 그는 그의 고향을 무대로 한 듯한 토착적인 전원풍경을 그리는 데 있어서 탁월한 리얼리즘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밑에는 언제나 밀도 짙은 리리시즘을 깔고 있다. 이 때문에 살벌하거나 거칠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그것들은 시정에 넘치는 수채화와도 같다. 리리시즘은 동시를 쓴 그의 감수성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지나침이 없이 맑고 투명해서 탁월하게 승화된 미학적인 감동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주고 있다. 그의 리리시즘은 심산이나 갯마을과 같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풍경을 묘사할 때와 향토색 짙은 방언으로 옛 얘기와 같은 그의 특유의 논술을 전개할 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의 리리시즘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 감정은 물론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가 ‘리리시즘이 무시된 예술’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주제가 자연과 그것이 투영된 선량한 인간성의 탐구 및 묘사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시 말하면, 그의 문학은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인간만이 지닌 ‘선의의 자연스러움’을 들여다보는 렌즈 노릇을 한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어느 한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세계의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 지금까지 많은 비평가들이 오영수 소설을 두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이 배제된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세계를 추구한 작가로만 평가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 물론 오영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쳐흘렀던 1960년대 한국의 잔영을 시정에 넘치는 토속적인 언어로 수채화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사회성이나 역사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 작고한 시인 천상병이 그의 작품을 두고 서민의 아름다운 속성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그의 작품이 적지 않은 사회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말이다. 오영수는 전환기 시대의 서민들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탐색했으나,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외부적인 힘을 해부하거나 탐색하는 지점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앞에서 논의한 여러 편의 수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수난의 계절이었던 해방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에 걸쳐 외세나 외부적인 힘에 의해 소외되고 희생된 민족적 상황을 좁은 소설 공간 속에 압축해낸 작가이다. 이 점에서 우리 문학사에서 오영수는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단편작가로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희생된 자들의 애환과 인정의 세계’, 이태동, <갯마을 외>, 동아출판사, 1995
관련도서
<오영수 전집>, 오영수, 현대서적, 1968 <오영수 대표작 선집>, 동림출판사, 1974 <오영수 문학 연구>, 이재인, 문예출판사, 2000 <1950년대 서정소설 연구: 황순원, 오영수, 이범선을 중심으로>, 문화라, 이화여대 박사논문, 2002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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