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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간다

작품명
봄은 간다
저자
김억(金億)
구분
신문학의 등장~1910년대
저자
김억(金億)
생애(1896~?)
호는 안서(岸曙), 호적명은 희권(熙權). 1896년 평북 곽산에서 출생. 오산중학을 거쳐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했다. 그후 오산중학 및 평양 숭덕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으며, 동아일보·매일신보 기자, 경성 중앙방송국 차장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출판사 수선사(首善社) 주간을 역임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북한에서는 출판사 교정원으로 일하다가 신병으로 요양소에 입소했으며, 다시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에 임명되었으나, 평북 철산지방으로 강제 이주된 뒤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김억은 서구시 및 시론의 번역 소개와 시 창작을 병행함으로써 한국 초기 시단을 끌어간 대표적 시인이다. 특히 개성적 리듬과 자유율 및 아어체(雅語體) 시어를 통하여 개인 정감을 노래함으로써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열어준 창시자로 평가된다. 최초의 역시집인 <오뇌의 무도>(1921),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 등 광복 전까지 20여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창조>와 <폐허>의 동인으로, 또 <개벽>, <동광> 등에 관여하며 문단 저널리즘의 정착에 기여하였다. <태서문예신보>에 발표된 김억의 첫 작품이다. <태서문예신보>에 발표된 시의 일반적 수준은 육당의 신시나 창가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나, 이 시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있다. 개인의 정감의 소리가 나타나고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의식이 뚜렷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기존의 신체시에서 지적되는 계몽성을 탈피하여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상징적 수법을 통해 보여주는 이 작품은 어느 늦은 봄날 밤에,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느낀 상실의 슬픔을 여성적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시에 흐르는 애상과 비애를 바탕으로 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밤’은 당시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절적 배경인 ‘봄’은 오는 ‘봄’이 아닌, ‘가는 봄’으로서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상실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봄밤’은 모든 것을 상실한 고뇌의 현실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치열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 수동적인 자세로 탄식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시행 배열의 규칙성, 대구법의 남발, 의도적인 각운법, 불필요한 이미지의 반복,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 등으로 작품의 전체 구조가 약화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에다 시인의 감정을 의탁한 감정 이입의 수법과 ‘종소리 빗긴다’에 나타난 공감각적 이미지는 동시대 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양승준·양승국, 태학사, 1996 (······) 한국의 근대시가 3·1운동을 전후하여 자유시라는 새로운 시 형식을 확립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화계몽시대에 최남선이 보여준 시적 형식의 실험은 근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초기 단계의 형식적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 전후 <태서문예신보>에서부터 시작 활동을 전개한 김억, 황석우, 백대진 등은 시적 형식과 율격의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지니면서 자유시의 성립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 힘썼다. (······) 김억은 백대진, 황석우 등과 함께 <태서문예신보>의 창간과 때를 같이하여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 신문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의 시를 주로 번역 수록하였으며 자신의 창작시로 <봄>, <봄은 간다>, <악군(樂群)> 등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억이 보여준 시적 탐구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시적 형식과 시적 리듬에 대한 자각이다. 김억은 시에 있어서 그 형식과 리듬이 미의식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최남선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전통적인 시가의 리듬을 보다 새롭게 변형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최남선은 가사나 시조와 같은 기존의 시가 양식에 근거하여 시적 작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김억의 경우는 일본 유학 과정에서 체득한 서구 근대시의 형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적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김억의 초기 시들은 시조나 가사와 같은 고정적인 형식의 잔재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가 즐겨쓰던 방식대로, 시상의 전개 과정에 따라 두 개의 행을 합쳐 하나의 연으로 구성하는 방법이라든지, 각 연의 마지막 음절에 유사한 음성적 자질을 지닌 음절을 배열하여 압운법의 효과를 노린 것 등은 시적 형식과 리듬에 대한 관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은 서구 근대시의 번역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번역해놓고 있는 서구의 시들을 보면, 서구 시의 형식적인 특성과 그 리듬 의식을 한국어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 흔적이 많이 나타나 있다. 시행의 길이와 그 호흡, 강약의 리듬과 시적 여운을 살릴 수 있는 압운의 실현 같은 것에 지나치리만큼 집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억이 지니고 있던 시적 형식과 리듬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잘 보여주는 평문으로 <시형(詩形)의 음률(音律)과 호흡(呼吸)>(1919)이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예술의 보편적인 특성에서부터 시라는 문학의 개별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본격적인 문학론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글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의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은 문학을 가치의 영역으로부터 정서의 영역으로 옮겨놓고자 했던 이광수의 태도와도 상통한다. 그는 시를 “찰나의 생명을 찰나에 느끼게 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더 이상 가치와 이념의 표현이 아니다. 시의 정서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라는 문제를 놓고 본다면, 김억은 바로 시적 정서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체득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 -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민음사, 2002
작가의 말
(……) 시라는 것은 찰나(刹那)의 생명(生命)을 찰나에 느끼게 하는 예술이라 하겠습니다. 하기 때문에 그 찰나에 느끼는 충동이 서로 사람마다 다를 줄은 짐작합니다마는 광의(廣義)로의 한 민족의 공통되는 충동은 같은 것이어요. 웨웨트가 Poetry is Breath라고 하였습니다. 대단히 좋은 말이어요. 호흡(呼吸)이지요. 시인의 호흡을 찰나에 표현한 것은 시가(詩歌)지요. 일반적으로 호흡과 충동이 잘 조화(調和)되면 누구나 다 좋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무의미(無意味)의 시가는 표현할 수가 없고, 그 호흡과 고동을 느끼는 그 시인에게만 시미(詩味)를 이해할 수 있는 침묵의 시 밖에는 없을 줄 압니다. 언어, 또는 문자의 형식을 알게 되면 시미의 반분(半分)은 없어진 것이요, 언어와 문자는 충돌을 끌어내일 수 없지요. 사람마다 다 같지 아니한 문체(文體)의 어체(語體)를 가지게 된 것도 이것인 줄 압니다. 또한 그것이 단점이라고 하는 것보다 장점되며 특색되는 것이라 생각하여요. 호흡의 장점에는 생리적 기능에도 관계되는 것이지요마는 다시 말하면, 즉 맘이 육체의 조화인 이상에는 그 문장도 그 조화를 구체화된 것인 것을 말씀하여야 하겠습니다. 인습에 기인되기 때문에 불문시(佛文詩)와 영문시(英文詩)가 다른 것이요, 조선 사람에게도 조선 사람다운 시체(詩體)가 생길 것은 무론(毋論)이외다. 내부와 외부의 생활이 다른 것만큼 호흡과 고동도 달라지지요. 심하게 말하면 혈액 돌아가는 힘과 심장의 고동에 말미암아서도 시의 음률(音律)을 좌우하게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여러 말할 것 없이 말하면 인격(人格)은 육체의 힘의 조화고요, 그 육체의 한 힘, 즉 호흡은 시의 음률을 형성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에 단순한 시가보다 더 시미를 주는 것이요, 음악적되는 것도 또한 할 수 없는 하나하나의 호흡을 잘 언어 또는 문자로 조화시킨 까닭이겠지요. 시에 음악이 들어오게 된 것을 말하면 여러 가지 되겠지요. 음악은 경이의 예술의 극치라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한데 조선 사람으로는 어떠한 음률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겠나요. 조선말로의 어떠한 시형(詩形)이 적당한 것을 먼저 살려야 합니다. 일반으로 공통되는 호흡과 고동은 어떠한 시형을 잡게 할까요. 아직까지 어떠한 시형이 적합한 것을 발견치 못한 조선 시문(詩文)에는 작자(作者) 개인의 주관(主觀)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로 작가 개인이 표현하는 음률은 불가침입(不可侵入)의 경역(境域)이지요. 얼마동안은 새로운 호흡적 음률이 생기기까지는. (……) 한데 또한 현재 조선 시단에 있어서는 시를 이해하는 독자가 얼마나 되며, 또는 시다운 시를 짓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할 필요도 있겠으나 새 시풍(詩風)을 수립하기 위하여 작자 그 사람의 음률을 존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兄)의 말씀과 같이 시는 시인 자기의 주관에 맡길 때 비로소 시가의 미와 음률이 생기지요. 다시 말하면 시인의 호흡과 고동에 근저를 잡은 음률이 시인의 정신과 심령의 산물인 절대가치를 가진 시(詩)될 것이오, 시형으로의 음률과 호흡이 이에 문제가 되는 듯합니다. (……) - ‘시형의 음률과 호흡’, 김억,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1974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민음사, 2002 <근현대문학의 사적 전개와 미적 양상 1, 2>, 반교어문학회 편, 보고사, 2000 <한국현대시문학의 이해와 감상>, 영남어문학회, 학문사, 1993 <한국현대시사 연구>, 오세영 외, 일지사, 1987 <한국근대시사>, 김용직, 학연사, 1986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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