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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누정건축의 개요

작품명
전통누정건축의 개요
장르구분
누정건축
누정건축의 개요
우리는 전통 생활을 유지하면서 특히 가부장 제도 아래 삼강오륜을 생활 방식으로 이어왔다. 따라서 가정 교육의 생활 철학이 유학에 바탕을 두고 개인의 인격 형성을 이루었고 현대에도 그 맥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청렴함과 검소함,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됨됨이를 항시 자연과 비교했고 자연과 함께 존재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건축된 공간도 자연에 집착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누정이다. 누정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이라는 뜻이며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평창의 청심대(淸心臺)는 그곳의 대 자체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건립된 누정까지를 가리킨다. 누각에 비하여 정자는 작은 건물로서, 역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우는데 정각(亭閣) 또는 정사(亭擄)라고도 한다. 사(擄) 또한 높은 언덕, 혹은 대 위에 건립한 집으로 정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누정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공간으로 가옥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이 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건립한 것이 특색이다. 누정 중에는 한두 칸 정도의 방이 있는 경우도 있다. 광주(光州)의 환벽당(環碧堂)과 같이 ‘―당’이라고 하는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누정의 기능이 다양화되면서 강학소(講學所)나 재실(齋室)의 기능을 하는 방을 둔 누정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방보다는 마루를 위주로 한 구조로서 누정의 특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정이라 하면 이와 같은 건물까지도 일컫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누정건축의 용도
누정은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그 모양이나 쓰임도 다양하여 여러가지 형태로 건립되었다. 따라서, 구조평면도 단칸의 정방형으로부터 장방형·육각형·팔각형·십자형·부채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를 비롯하여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삼척의 죽서루, 청풍의 한벽루 등 누마루집은 평면이 단순한 장방형이 대부분이나, 궁궐 내에 건립된 누정은 치장이나 구조가 매우 화려하며, 육각형이나 팔각형 등 복잡한 평면을 가진 것이 많다. 창덕궁 내의 존덕정(尊德亭)이나 창경궁의 상량정, 경복궁의 향원정(香遠亭) 등은 육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경복궁의 부용정은 평면이 십자형을 이루는 건물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밖에도 창덕궁의 관람정(觀纜亭)은 평면이 합죽선의 부채모양을 이루고 있어 평면을 이루기 위하여 기둥 사이의 자재를 휘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과는 다르게 모정(茅亭)은 아주 질박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평면이 대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나, 구례 운조루(雲鳥樓) 앞의 모정만은 예외적으로 팔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한편, 구조적으로 볼 때 평면이 정방형인 누정은 그 가구(架構)에 있어서 대들보를 쓰지 않으므로, 귀접이천장을 하거나 또는 네 귀의 추녀가 정상에 모이도록 하는 구조법을 사용한다. 누정은 원래 오두막집이나 그와 비슷한 건축물에서 발전한 것이어서 비록 기와를 이은 지붕이기는 하지만, 새나 이엉을 이었을 때의 지붕처럼 네 귀를 날카롭게 하지 않고 둥글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달성의 하목정(霞鶩亭)이나 청도의 득월정(得月亭) 등에 그와 같은 방구매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천장 구조에 있어서 누정은 우물반자를 하지 않고 대개 연등천장으로 하고 있다. 지붕의 구조도 특별한 치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모정·육모정·팔각정 등에서는 가운데 모아지는 부분에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물의 장식은 대부분은 단청을 하지만, 향리의 누정은 백골로 두거나 긋기 정도를 하는 것으로 그치고, 기둥에는 주련을 붙이고 편액에 누정의 명칭을 써서 걸어놓고 있다. 누정의 건립은 치적의 공적으로 평가되어 옛날에는 부사나 현감 또는 군수 등 현관(縣官)과 선비들이 이의 건립을 추진하고, 직접 누정을 유람하며 누정제영을 남기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누정문화 활동의 주역은 현관보다 퇴관한 선비나 처사로 지내던 지식인들이다. 누각에 남긴 문화적 흔적으로 보면 현관이 기여한 바도 적지 않지만, 누정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자에 남긴 발자취로 보면 자연에 소요자적하거나 또는 이에 은둔하던 지식인들의 공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누정은 전근대적 사회에 있어 교양인들이 지적 활동을 폈던 곳이다. 이 시대의 교양인은 상류의 문화계층에 속한 사람들로서, 이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며 시정을 나누고, 당면한 정론을 펴며 경세문제(經世問題)를 술회하기도 하고, 학문을 닦고 향리의 자제들을 가르치던 곳이 이 누각과 정자이다. 따라서 누각과 정자를 무대로 하여 펼쳐졌던 누정문화의 형성과 전개, 또는 그 상황을 밝혀 보면 우리 나라 전통사회의 사적 발전이나 상층문화권의 사회구조, 지역문화의 바탕과 그 특색 등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지식인들은 각박한 현실을 피하여 산수가 아름다운 자연을 좋아하였다. 거기서 정신적 즐거움을 찾고 위대한 자연을 배우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였다. 공동주거지의 마을로부터 떨어져 울타리도 없이 누정 그 자체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여겼으니, 우리 문화에서 보는 삶의 멋과 여유, 그리고 자연 순리의 사고는 바로 이러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선비문화나 산수문화는 모두 누각과 정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누정문화와도 직접 관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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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해운정남원 광한루삼척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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