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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忠孝堂)

작품명
충효당(忠孝堂)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지정종목
보물 제414호
장르구분
주거건축
개요
창수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정담장군 정려각과 인량초등학교 자리를 지나면 충효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의 종택이다. 선생이 삼칸 초옥(草屋)인 농환재(弄丸齎)에서 별세한 후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을 받아 장손인 졸재 원지(元之)공이 처음 창건하였고, 그의 아들 의하(宜河)공이 확장 중수한 조선 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충효당 전서체(篆書體)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인 우정 미수 허목(眉受 許穆)의 친필이다. 충효당 기문은 1706년(숙종 32)에 식산 이만부(息山 李萬敷)가 지은 것을 282년 뒤인 1988년에 임창순(任昌淳)의 글씨로 게판했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서애 선생의 증손자인 익찬 벼슬을 역임한 우눌재 류의하(愚訥齋 柳宜河)대에 이만부에게 청해 완성되었다. 모두 52칸이 남아 있으며, 종택에는 가장 신선한 공간인 불천위 사당과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일명 만지송이 장관이며 종택 행랑채 앞마당에는 다소 원형이 손상된 불탑이 복원되어 있는데, 이탑은 원래 서애선생의 재사인 상로재(霜露齋) 뒷편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하회 남촌을 대표하는 이 집은 조산인 원지산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서향으로 앉혔다. 집 앞에 행랑채가 길게 가로 놓여 있고 그 뒤편 조금 떨어져 'ᄆ'자형 안채와 이 안채 앞쪽 우측에 연접되어 돌출한 '一'자형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 오른쪽인 사랑채 뒤쪽에는 별동을 이룬 사당이 있고 그 우측편 대지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서애 유물 등을 진열 보관하고 있는 전시관(영모각)이 있다. 행랑채는 모두 12칸으로 사랑채의 중심선과 거의 일치하는 곳에 솟을대문의 대문칸을 내었다. 사랑채는 4칸 크기의 사랑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는 사랑방과 침방을 앞뒤에 배설하고 우측에는 작은 마루와 방을 앞뒤로 두었다. 작은 마루를 우측에만 개방하고 앞쪽과 좌측은 각기 골판문과 굽널띠살문을 달아 막았다. 이는 서향인 집에 여름날 오후 따가운 햇볕이 드는 것을 막고 겨울에 불어 닥치는 북서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지혜로움을 읽게 한다. 사랑대청 배면 좌측칸에 머름 없이 키 큰 굽널띠살문을 내어 안채와 뒤뜰을 드나들 수 있게 한 것도 흔치 않은 예로 충효당의 특징이다. 사랑채 좌측편 내외담에 나있는 협문을 통하여 안채 중문간을 들어서면 높은 기단 위에 가로놓인 안방과 안대청이 안마당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좌·우측에 좌·우익사가 한단 낮게 자리잡고 있다. 안방 앞에 전퇴를 들여 동선의 연결을 꾀하고, 안방 부엌에 접한 좌익사와 우익사 통로 부엌 부분을 2층 구조로 하여 그 상부에 수납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안방 상부에도 다락을 두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사당은 앞쪽에 삼문을 내고 서향인 본채와 달리 남향으로 앉혔다. 일반적으로 주택의 사당 삼문은 삼정승 육판서와 같은 인물을 모신 공경대부의 집이 아니면 세우지 못한다. 사랑채는 대부분 원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고, 안채는 전면만 원기둥을 세우고 그 상부를 정성 들여 초각한 무익공으로 하고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네모꼴의 화반을 두었는데, 이는 주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이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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