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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대웅전(梵魚寺 大雄殿)

작품명
범어사 대웅전(梵魚寺 大雄殿)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지정종목
보물 제434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경남 3대 사찰 중의 하나인 범어사는 부산의 계명봉과 금정산(金井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범어사창건사적기(梵魚寺創建史蹟記) 에 의하면 이 사찰은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중의 하나로 비보사찰(裨補寺刹)로 군사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는 의상이 입적(入寂)한 뒤라 신빙성이 없다. 그 후 고려 때의 기록은 없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02년(선조 35) 관선사(觀禪師)가 중수하였으나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 묘전화상(妙全和尙)이 다시 중창의 역사를 시작하여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한 6법당과 원심방(圓心房)을 비롯한 7요사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후 1713년(숙종 39)에 흥보화상(興寶和尙)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당우들을 대규모로 중수하였다 한다. 따라서 사찰건축의 현황은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배치는 계곡과 나란히 배치되어 동향을 하고 있다. 일주문과 대웅전을 축으로 대웅전 앞의 중정을 중심으로 좌우로 당우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산세의 경사면을 따라 3개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한 전각으로 대웅이란 말의 뜻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이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컫는 데서 유래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큰 힘이 있어 마군의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부처님이 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범어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평면은 정방형에 가깝고, 구조는 2고주에 7량의 도리를 얹고 있으며 뒤로 대들보를 덧대어 툇간을 만들고 있다. 기단은 가구식 기단으로 면석에 동백 잎을 조각하였다. 몸채는 전면에 교자살의 분합문을, 후면에는 격자살창의 이분합문을 달고 있다. 좌우 측면에는 1짝의 격자살창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창이 많아 내부를 밝게 채광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전면 우주에 1.5m정도의 장초석을 세워 놓은 것인데,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사진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서 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주간(柱間)에 2구씩 배열된 공포는 맞배지붕인 까닭에 전 후면에만 배치되어 있으며 외3출목 내4출목의 도리를 받고 있다. 연봉(蓮峰)과 봉두(鳳頭)가 없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초각의 솜씨는 매우 우수해 강직해보이면서도 섬세하고 수려한 솜씨를 보이고 있어 조선시대의 다포계 건물로서 화려한 포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범어사 대웅전은 내부의 불단과 닫집 등에서 보이는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유명하며, 이로 인해 조선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받는 건축 문화재이다.
일주문(一柱門)의 구조 및 특징
일주문은 사찰의 경내로 진입하는 가장 첫 번째의 문으로써, 속세와 불계를 구분 짓는 경계 구실을 한다. 기둥만을 일직선상에 세우고 벽체에 의한 공간이 없이 단지 위로 공포를 짜 지붕을 받고 있는 독특한 형식의 문이다. 범어사 일주문은 기둥이 2개 있는 일반적인 1칸짜리 일주문이 아니라 4개의 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3칸의 일주문이다. 범어사 일주문은 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높은 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것이 특이하며 모든 나무재료들은 단청을 하였다. 범어사 일주문은 그 기둥이 지름 1미터가 넘는 돌기둥이라는 점에서 횡력에 대응하는 시각적, 공학적 안정감을 획득한다. 이 돌기둥은 높이도 높거니와 흘림까지 두어 기둥의 형상을 갖추었기에 초석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돌기둥 위에 짧은 목재기둥을 박아 세운 것은 상부구조를 결구하기 위함이다. 목재기둥들은 주심창방으로 서로 연결하여 일체화시키는 동시에 상부하중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기둥 위의 상부구조는 지붕처마가 길게 뻗어 나가는 캔틸레버 구조가 되기 때문에 주심창방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짧은 보 형태의 부재를 직각방향으로 기둥에 끼워 배치하고, 그것에 의지하여 출목형태의 창방을 앞뒤로 배치함으로써 처짐을 방지하였다. 그러나 앞 뒤 캔틸레버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쪽으로 쏠려 넘어지기 마련이다. 돌기둥에 홈을 파서 박은 보아지 형태의 낙양각은 내외 창방과 연결되어 마치 삼각형 형태의 가새처럼 이러한 쏠림을 방지한 것이다.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평방 위에서부터는 일반적인 다포계 형식을 따라 포작을 구성하였다. 이 포작은 마치 역삼각형의 부재처럼 깊이 돌출된 지붕처마의 무게를 전달하고 있다. 마치 역삼각형의 부재처럼 깊이 돌출된 지붕처마의 무게를 전달하는 것이다. 여타의 일주문이 작은 부재로 흉내만 내면서 마치 모형처럼 닫집과 같은 포작을 만드는데 비해, 범어사 일주문은 실제 건물 크기의 포작을 만들어 구조적 솔직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범어사 일주문은 구조적 합리성과 시각적 안정감, 그리고 미학적 규범을 도시에 구현한 일주문 중의 걸작이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경남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한국의 건축문화재, 경남편>, 강영환, 기문당, 1999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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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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