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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吳之湖)

예술가명
오지호(吳之湖)
구분
서양화가
생애
본관 동복. 본명 점수(占壽). 전남 화순 출생. 1931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직후, 서울에서 김주경 등이 주동이 된 녹향회(綠鄕會) 동인전에 참가,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의 유화를 발표하였다. 그 후 1935년부터 10년간 개성 송도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밝고 투명한 색채와 가득한 빛살, 경쾌한 붓놀림의 인상주의 화법으로 한국의 자연미와 풍정미 표현에 주력하였다. 특히 1938년에 출판한 원색화집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을 제작하면서 어두운 화폭에 갇혔던 민족의 빛과 영혼을 밝은 빛으로 채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인상주의를 토착화시켰다는 의미를 넘어, 근대 화단에 민족의 혼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1948년 광주에 내려와 정착하여 ‘광주미술 연구회’를 조직하는 한편 조선대학교 미술과 창설에 힘썼고, 1960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면서 호남 지역의 서양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1968년부터 다년간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73년 국민훈장모란장 수상, 1976년 국전 운영위원에 추대되고, 1977년에는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사과밭>, <나부>, <선운사 설경> 등이 있으며 화집으로는 <오지호 화집>(1978)이 있다. 저서로는 미술평론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미학원론으로 <미와 회화의 과학>, 시론집(試論集) <알파벳 문명의 종언> 등이 있다. 그의 두 아들과 손자들도 미술을 전공하여 그의 집안은 화가 집안이 되었으며, 아들 승윤은 지금도 아버지가 살던 초가집을 지키면서 화업을 잇고 있다.
약력
1905년 전남 화순 출생 1926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28년 녹향회 창립전 1929년 제1회 미협전 1930년 제9회 조선미전, 경복궁미술관 1931년 제2회 녹향회 공모전, 천주교기념관 1935년~1944년 개성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 1946년 3인전: 오지호·이인성·남관, 신세계화랑 1948년~1960년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54년 불화제작(광주 원효사) 1965년 전남도전 창설, 제1회~11회 전남도전 심사위원 1973년 한국현역작가100인전, 국립현대미술관 1973년 제8회 대한민국문화훈장모란장 / 개인전, 현대화랑 1976년 국전 운영위원 1977년 제2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2002년 금관문화훈장
예술활동
한국 양화의 큰 획을 그어놓았고 한국어문교육의 일대 전기를 마련해 놓은 오지호는 1905년에 화순군 동복에서 출생, 일본 유학시절부터 신미술운동을 전개하였다. 동경유학시절은 실험적 모색기로, 침울한 색감을 주조로 한 초기작품을 이 시기에 볼 수 있다. 도쿄미술학교 유학 시절부터 민족미술의 수립을 위해 신미술운동을 전개한 활동을 이어 귀국 후에는 한국 최초의 순수 서양화단체인 ‘녹향회(綠鄕會)’를 발족, 1929년 4월에 그 창립전을 열기도 했다. 또한 개성고보에 재직하며 인상주의의 피상적인 모방을 넘어 한국의 명쾌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정착시켰고, 이 시기에 <남향집>과 같은 오지호 화백의 대표작들이 제작되었다. 1949년부터는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호남지역 양화계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작품에서 구체적인 자연 대상물이 사라지면서 자연 대상물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이를 작가의 내적 조형의지로 재구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자연을 창조하고자 한 경향을 보여주었는데, 대표작으로는 <추광> 등이 있다. 후기는 오지호 화백이 1974년 부인 지양진 여사와 함께 처음 유럽여행을 떠나 유럽 풍경을 소재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한 시기로 대표작으로는 <피카디리 풍경>, <베니스 풍경> 등이 있다. 작가는 한국적인 빛과 색채의 표현을 통하여 새로운 인상주의 화풍을 탄생시켰으며, 이로써 한국의 자연 풍경과 정서에 맞는 인상주의가 정립되었다. 서구의 인상주의를 단순히 기법적으로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자연을 밝고 명쾌한 독자적 화풍으로 해석,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품
<남향집>(1939) <처의 상>(1936) <항구>(1967) <피카디리 풍경>(1974)
평론
(……) 우리의 근대는 문화적 충격 속에서 우리 나름의 시각과 미학을 토대로 새로운 미술에 대해 접근하기보다는 일본의 미술과 일본을 경유한 유럽의 미술과 직면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미술에서, 특히 유화에 있어서 우리의 자연과 현실에 바탕을 둔 미술로서보다는 서구나 일본의 새로운 미술사조와 형식을 차용하는 형태로 발전해온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지호의 당시 민족회화의 구현을 위한 나름의 인상주의적 화법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한국의 회화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과제를 가지고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조형화를 시도한 오지호를 우리는 정통 인상파를 도입한 인물로, 최초로 한국의 자연을 조형화한 작가로 평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즉 오지호의 회화는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얻어진 한국의 자연이자 한국의 정신세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인상주의 화론은 밝고 맑은 한국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회화적 수단이라고 믿었던 오지호는 자신과 자연을 결부시켜 자연 속으로 빨려드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때때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자연이 나고 내가 곧 자연이다’는 착각에 빠질 만큼 자연에 몰입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의 풍광을 토대로 한 민족회화를 창조하기 위해 매진한 오지호는 나름의 회화론을 완성하고 그의 실현에 전력을 다했던 화가이다. (……)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 개성이 지닌 고도의 풍모와 독특한 자연풍광은 오지호를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오지호가 후에 개성시절만큼 평화롭고 그림에 몰두한 시기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개성시절은 그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 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활한 대자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고 옛 동양인들의 허무주의적 상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원시의 자연 그대로인 만주는 초자연의 세계로 그에게 다가왔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인상주의 화풍을 완성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만주여행 후 위궤양으로 크게 고생을 하였으나 초인적인 단식을 통해 극복하면서 그의 대표작이자 인상주의적 화풍의 완성작인 <남향집>을 완성한다. 개성시대의 꽃처럼 그의 민족회화로서의 인상주의적 화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작품은 그가 살던 개성 집을 그린 것이다. 태양이 빛을 발하는 오후의 일상을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둘째 딸 오금희와 한가롭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졸고 있어 행복했던 작가의 개성시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가히 그의 회화의 압권인 귀한 작품이다. 그의 회화가 만개한 개성시대 개성시대는 그의 회화가 만개한 시기이자 이러한 작품의 성과가 한국에서는 최초의 원색화집으로 엮어진 시기이다. 당시 일본에서조차도 꿈꿀 수 없었던 원색화집은 그의 회화에 대한 자신감과 어렵게 완성한 민족회화를 화집을 통해 널리 알리는 동시에 일본화단에 조선회화의 완성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김주경과 함께 이인화집으로 발간한 이 화집은 발간되자마자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출간 당시 6원(당시 쌀 한 가마가 5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불티난 듯 팔려나갔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반인들에게 회화를 알기 쉽게 설명한 회화 일반에 관한 오지호의 논문 <순수회화론>이 실려 더욱 의미를 더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정점으로 치달으며 개성의 평화도 사라지면서 전쟁에 휘말려가는 약소국가의 비애를 처절하게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본격적인 예술론을 집필하도록 하였다. 그의 첫 번째 예술론인 <피카소와 현대회화론>이 동아일보를 통해 발표되자 그 파장은 매우 컸다. 오지호는 자연을 이탈한 회화란 존재할 수 없다는 논지로 “회화의 역사가 자연의 형태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만큼, 작품 속에서 자연성이 파괴된 작품은 그림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피카소의 그림은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회화라 할 수 없다고 설파하였다. 이후 그는 화집에 실렸던 <순수회화론>과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등의 예술론을 동아일보을 통해 계속하여 발표하였다. 이렇듯 이론과 조형능력을 동시에 지닌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또한 나름의 예술론을 통해 한국유화의 이론적 틀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다시금 한국 현대 회화사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 - ‘한국의 빛과 색의 화가 모후산인 오지호’,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관련도서
<韓國近代繪畵選集 洋畵3 ‘吳之湖’ >, 李龜烈, 金星出版社, 1990 <吳之湖作品集>, 遺族, 1988 <吳之湖作品集>, 全南每日新聞社, 1978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오지호>, 금성출판사, 1977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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