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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합창단

단체명
국립합창단
구분
재단법인
개요
국립합창단은 우리나라 합창 음악의 전문성과 예술성 추구를 위해 1973년 5월에 창단되었고, 2000년 3월 재단법인 국립합창단으로 모습을 바꾸어 국립극장 전속 단체에서 모름지기 한국 최고의 프로합창단으로, 세계 최고의 전문합창단으로 독립 및 재발족되었다 연 4회 정기연주회와 15회의 지역순회연주회 그리고 국립오페라단 정기공연 합창 출연과 특별연주회, 해외연주, 국제음악제 등 지금까지 수많은 연주회를 무대에 올렸다. 르네상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합창의 정수인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국립합창단은 세계 유명 합창곡을 모두 무대에 올림으로써 합창음악의 모든 장르를 폭넓게 소화해 내고 있다. 창작품 발굴에 있어서는 칸타타 작곡 위촉과 합창을 위한 창작품 위촉 및 공모를 실시하여 우수한 창작곡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직한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다. 특히 국립합창단이 배출한 합창 전문가들은 이 나라 합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만드는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국립합창단에 몸담았던 성악가들은 오늘날 오페라 무대에 주역과 각종 음악회 독창자로 활약하고 있고, 또한 다수는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국립합창단은 합창의 대중화와 합창음악의 예술적 수준을 향상시킴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 음악 특히 성악발전에 공헌한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고, 현재의 연주역량은 세계 유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최고의 수준에 이르고 있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세계의 무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창단사
국립합창단은 지난 1973년 장충동 국립극장의 개관에 맞추어 국립가무단·국립발레단과 함께 창단되었다. 그때 당시 이미 북한에서는 <피바다>, <꽃파는 아가씨> 등의 공연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그에 대응할 만한 성격의 공연 단체들이 있어야겠다는 정치적·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국립극장에 여러 예술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그 중 하나가 국립합창단이다. 초창기에는 국민 가요, 민요 같은 것을 순수하게 4성부로 편곡한 곡들이 무대에 올려졌다. 10년 정도는 그런 흐름이었고, 그 후 10년 동안에는 외국 작품들을 많이 연주하는 경향이 이어졌다. 현재는 창작 작품 위주의 연주로, 다양하고 폭넓은 레퍼토리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립합창단의 발족은 지방 시립합창단들의 창단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직업 합창단의 시대를 맞았다. 또한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작품을 발굴·보급하는 데 앞장선 합창단의 노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4년 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국립극장에서 예술의전당으로 그 거처를 옮긴 국립합창단은 지난해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문화적 정신 매개체로서의 사명-국립합창단’, 양인용, <콰이어&오르간>, 2004년 4월호
예술가
지휘자 김명엽 연세대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연세대 교육대학원 졸업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 수학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 상임지휘자, 추계예술대 교수 역임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이사장 역임 현재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 교회음악아카데미 대표
리뷰
오늘날 합창음악의 발전은 기독교 교회에서 발전하여 왔다. 로마의 가톨릭교회와 동방의 정교회도 합창음악 발전의 온상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이런 교회에서는 대부분 합창단은 성직자 역할을 겸하는 중요한 예배의식을 담당하였다. 심지어는 소년합창단까지도 성직자 계열에 속한 것이다. 세계에서 이름난 빈소년합창단까지도 교회가 길러낸 산물이었다. 유럽에서 교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합창음악의 영향이 확산되면서 근대 오페라의 발전과 함께 세속적인 음악에 합창이 가미되었다. 그래서 왕실에 속했던 오페라가 근대 국가의 지원 대상이 되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 오페라극장을 국가에서 설립하고 그곳에 직업적 성격의 합창단을 두게 되었다. 이것이 직업합창단의 효시이다. 한국은 일찍이 1970년대에 국립합창단을 창단했다. 그리고 이를 국립극장의 전속단체로 만들었고, 3년 전에는 재단법인으로 독립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직업합창단이 되었다. 1980년대 대우합창단이 창단되어 민간기업이 직업합창단을 키우는 선례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세계에서 극히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음악교육을 받은 인구의 팽창으로 각 지자체에서 직업 합창단, 시립 도립합창단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러한 제도는 공산국가를 제외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민간의 자율적인 힘으로 합창단을 발족시키고 이것을 전문 직업합창단으로 발전시킨 것은 하나의 창의적 발상이다. “교회음악인들의 교육자” 합창지휘자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김명엽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언어체계에 대한 논문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합창소리를 잘 요리할 수 있고 성악적인 음악이 어떤 것인가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장르의 합창단을 지휘해 음악 만들기 경험도 갖고 있다. 1989년까지 그는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했다. 음악을 위해서 산 것이다. 1년 동안의 준비기도 끝에 그는 교회음악만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음악이 하나님께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그는 교회음악아카데미를 설립(1990)했고, 서울바하합창단을 창단(1990)해 지휘하고 있다. 아카데미를 통해서는 교회음악인 양성을 하고 있고, 합창단을 통해서는 교회음악 시리즈 연주회를 갖고 있다. 2000년에 교회음악시리즈 100회를 연주했다. (……) -우리나라 합창계가 국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곡만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것으로 할 때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죠. 합창단과 지휘자들은 이제 우리 것 만들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아울러 작곡가들과 공동작업도 해서 세계성 있는 작품도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교회음악인들의 교육자’, <명합창지휘자와의 대화>, 김규현, 예솔, 2005 INTRODUCTION (……) 국립합창단은 합창의 대중화와 합창음악의 예술적 수준을 향상시킴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음악 특히 성악발전에 공헌한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창단 27주년을 맞는 국립합창단의 또 하나의 업적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창작계의 합창음악창작 의욕을 고취시킨 것으로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대학생 창작합창곡 발표회를 개최, 연주회를 마련함으로써 신인작곡가를 배출하였고 그간 150여 곡에 달하는 신작합창곡을 태어나게 하여 합창인구의 저변확대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근래에 들어 고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자 합창, 무용, 연극 등을 종합화한 음악극 형태의 창작가극을 실험적으로 공연하여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전문합창단의 모범이 되고자 애쓰고 있으며, 창작 칸타타 작곡 위촉과 합창을 위한 창작품 공모를 실시하여 우수한 창작곡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다. 음반 <국립합창단>, CCM
관련 음반 및 도서
<세계명성가 전집>, 국립합창단
연계정보
-서울바하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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