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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갑(鄭回甲)

예술가명
정회갑(鄭回甲)
분야
작곡가
생애
우석(又石)이란 아호를 가진 작곡가 정회갑은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한국 양악계의 선구자들이 타고난 음악적 열정으로 음악을 택한 것처럼 정회갑 역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의 길로 들어서 외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삶의 전부를 오직 음악 속에 쏟음으로써 자신의 창작작업은 물론이요, 이 나라 음악계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회갑은 1937년 전주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음악의 비중이 어느 학교보다 많은 전주사범학교에 진학하여, 밴드부에 들어 트럼펫을 배웠고, 5년간 피아노를 독학으로 깨우쳤으며, 졸업 후 군산소화공립보통학교 교사를 했다. 광복 후 작곡가로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직을 버리고 1948년 경성음악전문학교에 1회로 입학했다. 경성음악전문학교는 곧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으로 편입되어 1951년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다. 전주남중학교, 수도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렀고, 1989년 정년 퇴임했다. 1946년과 1947년 각각 고려교향악단과 서울교향악단에서 호른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초기에 가곡 <진달래꽃>(1947), 현악4중주(1948), 교향곡 제1번(1957), 영화음악 <피아골>(1955) 등을 거쳐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표작으로는 <가야고와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1961), <피아노를 위한 한국무곡>(1967)을 발표했다. 1976년에는 ‘미래악회’를 결성하여 활동했으며, 1970년대 대표작으로는 <인성과 5개의 악기를 위한 시나위-아라리요>, <더블베이스와 다섯 주자를 위한 산책>(1978), 실내악곡 <살아난 소리-가장행렬>(1976) 등이 있다. 1962년 서울시문화상, 1980년 교육공로상, 198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약력
1942년 전주사범학교 졸업 1951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1961년~198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수학 1985년~1987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9년~1994년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1989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상훈
1962년 서울시 문화상 198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6년 보관문화훈장
주요작품
* 관현악곡 <가야고와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1960) 관현악 조곡 <한국무곡>(1970) 관악합주를 위한 <소음시>(1970)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조곡>(1976) 교향곡 1번(1957) * 실내악 및 독주곡 현악4중주 1번(1948) <바이올린 소곡>(1953) 피아노 조곡 <한국무곡>(1970) 실내악곡 <시나위-아라리요>(1974)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스케치>(1976) 실내악곡 <소리 가장행렬>(1976) 더블베이스와 다섯 주자를 위한 <산책>(1978) 실내악곡 <기담>(1981) 실내악곡 <살아난 녹두장군>(1992) * 영화음악 <피아골>(1955) <격퇴>(1956) <생명>(1958) <젊은 아내>(1959) <두고 온 산하>(1961) * 성악곡 <진달래꽃>(1947) <음3월>(1952) <먼 후일>(1953) <입맞춤>(1960) 합창곡 <구원의 4월>(1961) <네 눈망울에서는>(1971) <민들레꽃>(1972) <백련>(1982) <그리움>(1985)
작곡집
<한국무곡>, 수문당, 1982
저서및역서
<현대음악분석>, 정회갑, 수문당, 1975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켈러(Keller), 정회갑 역, 음악춘추사, 1978
리뷰
(……) 1961년 한국에서 최초로 전통 악기인 <가얏고와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을 발표, 전통 악기와 서양 음악의 접목을 시도한 정회갑의 작업은 앞서가는 현대적 기법과 더불어 창작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그러한 그의 열정은 그의 문하에 많은 후학들이 몰려들어 강석희, 백병동 등 창작계의 거목들이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언제나 편안한 웃음 속에 텁텁한 채취를 풍기고 있는 정회갑은 소박하고도 신실한 마음으로 제자들과도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도 목에 힘주는 일이 없이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해 매해 정월 초하루가 되면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찾아 다른 제자들을 접대하느라 쉴 틈이 없다. (……)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꿈틀거리는 힘은 언제나 강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는 양악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에 대한 집념이 대단해 녹음기를 둘러메고는 전라도와 경기도를 샅샅이 뒤져, 가는 곳마다 노인들을 붙들고 민요를 채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북 농악 채보집>과 <경기 농악 채보집>을 출간했다. 이미 1957년에 작곡 그룹 창악회의 창립 발기인으로 활동해 온 그이지만, 창작음악이 세계의 창작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를 가져야 하고, 동인들이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현실화하기 위해 1976년에는 다시 미래악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제1회 미래악회 작품 발표회에서 소리 가장행렬을 발표, 큰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 ‘한국적 해학을 추구한 창작계의 스승’, 한상우,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1998
관련도서
<정회갑의 작품세계 연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1998 <양악창작 40년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1998 <기억하고 싶은 선구자>, 한상우, 지식산업사, 2003
연계정보
-피아노 모음곡 ‘한국무곡’-정회갑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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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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