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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金順愛)

예술가명
김순애(金順愛)
분야
작곡가
생애
김순애는 아버지인 김성노 목사의 딸로 1920년 12월 22일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자였으나, 김순애의 형제는 3남 3녀로 이들 모두를 전문학교까지 보냈고 특히, 딸 3형제에 대한 교육열도 대단해 김순애도 음악공부를 할 수 있었다. 김순애는 태어난 안악에서 5세까지 있었고, 아버지가 길주교회로 옮기는 바람에 그 후에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길주에서 소학교를 마치는 동안 교회의 찬송가라든가 오르간은 그가 음악에 접근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노래도 잘 불러 독창을 도맡아 하는가 하면 운동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길주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기독교계의 학교로 진학, 서인 보신여학교와 함흥 영생여고를 거쳐 서울 배화여고로 편입학하는 동안 영어를 배우는 한편 선교사로부터 피아노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배화여고에서 보다 성숙되어 음악가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배화여고를 졸업한 김순애는 1937년 이화여전 피아노과에 입학,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본과 2학년까지 피아노에 매달렸던 그는 미국에서 귀국하여 이화여전에서 교편을 잡은 작곡가 김세형의 화성학 시간에 매혹되면서 작곡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세형의 권유로 작곡과로 전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 작곡에 대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스승 김세형의 자상한 지도로 무난히 작곡가로서의 길을 갈 수 있었고 스승에 대한 남다른 고마움과 존경심은 평생을 통해 그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1939년 부민관에서 열린 이화음악회에서 김순애는 첫 작품 발표를 하게 되고, 1941년 이화여전 졸업연주회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표하는 등 일제 하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광복을 맞이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정열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1946년 6월 18일 경기여고 강당에서 제1회 작곡발표회를 갖기에 이르렀다. 이 때 김순애의 독창자로 나선 김형로의 만남은 결혼으로 이어져 1946년 9월 2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당시 이들의 결혼에 대해 매스컴에서도 떠들썩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김형로가 납북되면서 4년 만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이때부터 김순애는 세 자매 초은, 초영, 초진과 함께 어머니로서, 가장으로서 적잖은 고통의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1951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제2회 작곡발표회를 가짐으로써 예술가로서의 또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1954년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순애는 잃어버린 피아노를 우연히 다시 찾으면서 예술가로서의 길을 가리라 확신한다. 1955년 세 딸을 집에 둔 채 미국으로 건너가 1957년 이스트만 음악학교(Eastman School of Music)를 졸업하고, 줄곧 이화여대에서 교직을 맡아왔다. 그는 1955년 첫 번째 유학 이래 모두 4회의 외국 유학을 결행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이 때 그는 당시 공산권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을 시찰하면서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했는데, 현대작곡가 달라피콜라, 슈토크하우젠 등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의 창작발표회가 모두 10회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교수로서, 작곡가로서의 일관된 생활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음을 알게 해준다.
약력
194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졸업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57년 미국 이스트만음대 대학원 졸업 1962년 서독 DAAD 초빙교수 1962년 네덜란드 문교부 초빙교수 1966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음대대학원 DMA과정 수료 1981년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 198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박사
상훈
1964년 서울시 문화상 1964년 보관문화훈장 1974년 제1회 한국작곡상 1984년 황해도 영예도민상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6년 국민훈장 목단장 1990년 MBC제정 제9회 가곡 공로상 1993년 3·1문화상 1992년 미국 이스트만음악대학교 공로 동창상
공연
1946년 제1회 작곡발표회 1951년 제2회 작곡발표회 1971년 제3회 작곡발표회 1972년 제4회 작곡발표회 1986년 제5회 작곡발표회
주요작품
* 관현악곡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은 소나타>(1961) <관현악을 위한 ‘주명곡>(1981) * 실내악 및 독주곡 피아노곡 <황혼> 피아노곡 <환상> 피아노곡 <변주곡>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사중주>(1946) * 오페라 <직녀, 직녀여!> * 교성곡 <당신은 새벽에 나의 목소리를> * 성악곡 <네잎클로버>(1938) <동경> <환상> <밤>(1946) <해당> <날라리> <눈> <또하나 다른 태양> <물레> <파초> <가는 길> <모란이 피기까지는> <송별> <낙화>(조지훈 시) <출정사> <바람의 노래> <사랑의 영혼> <진달래꽃> <찢어진 피리>(1951) <4월의 노래>(박목월 시, 1953) <황혼이 짙어갈 때>(1956) <파랑새>(1957) <사랑>(피천득 시, 1959) <이슬>(피천득 시, 1959) <바람의 노래(조지훈 시) <분꽃이 필 때면> <그대 있음에>(김남조 시, 1964) <달무리 지면> <진달래> <이슬> <산야> <생각> <후회> <신록> <단풍> <낙엽> <사랑>
작품집
<김순애 가곡집 I>, 김순애, 국민음악연구회, 1953 <김순애 동요곡집>, 김순애, 민주교육사, 1957 <그대 있음에>, 김순애, 이화여대, 1968 <12월의 노래>, 김순애, 월간음악출판부, 1973 <관현악을 위한 ‘주명곡’>, 김순애, 재순악보출판사, 1981 <교향곡>, 김순애, 재순악보출판사, 1981
저서
에세이 <성애꽃 너머로 그 노래소리가>, 1973 <역사에 비친 음악가들>, 김순애, 박영출판사, 1976 <한국의 민요와 민속악기>(영문판)
리뷰
한국적 내음과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예술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1981년 출판된 교향곡을 비롯해서 많은 기악곡, 교성곡 등에서도 우리는 그런 의도를 느낄 수가 있다. 1953년 첫 가곡집을 출간한 이래 1969년 두 번째 가곡집 <그대 있음에>, 그리고 그 사이 1957년에는 동요곡집을 펴냈고 1973년에는 에세이집으로 <성의 꽃 너머로 그 노래 소리가>를 펴냈다. 특히 이 책 속에는 남편 김형오에 대한 글이 상세히 실려 있어 비록 짧은 세월이었지만 그 감동이 일생 동안 신앙과 예술에서 한길을 걸었음을 잘 입증하고 있다. 1971년과 1972년에 걸쳐 발표한 한국적 성탄 캐롤은 우리다운 독특한 성탄음악의 길을 열어주었고,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장학금을 마련, 아버지 김목사의 이름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온 것도 그의 생활 신조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그는 오랫동안 봉직했던 이화여대를 은퇴한 후, 제자에게 그 교수직을 맡기고 오직 창작생활에만 열중하였다. 자신의 가곡이 성악가에 의해 연주될 때는 반주를 직접 맡아주는가 하면, 오케스트라 반주일 때는 직접 오케스트라 악보를 만들어 주는 등 예술적 정열을 끝없이 펼쳤다. 그는 이름만 한국 최초 여성작곡가가 아니라 모름지기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감동을 안겨줄 예술가임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다. 그가 정년으로 현직에서 물러날 때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일찍이 교가를 작곡해 준 감사의 뜻으로 그를 초청, 특별 사열식을 거행해 또 하나의 감격적인 순간을 맛보게 했다. 1974년 제1회 한국작곡상, 1977년 한국아동음악상,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비롯,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을 거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되었다. - ‘한국 최초의 여성 작곡가’, 한상우,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1998
관련도서
<역사에 비친 음악가들>, 박영출판사, 1976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대한민국예술원, 1998
연계정보
-오보에를 위한 한국적 음률-김순애
-4월의 노래-김순애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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