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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덕(黃炳德)

예술가명
황병덕(黃炳德)
분야
성악가
생애
황병덕은 192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3남 1녀 중 장남인 그는 선친이 당시 건축설계를 전공한 설계사로 그도 선친의 뒤를 따라야 할 것 같았으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가졌던 황병덕은 음악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선은 평양에 있는 공업학교에 입학해서 부친의 요구에 순응했으나, 그 후 일본에 건너가서도 음악공부를 하다가 결국은 부모 몰래 동양음악학교 성악과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일본 마이니찌 신문사와 NHK주최의 콩쿠르 등에 계속 입상하면서 집안을 설득하였고, 동양음악학교(현 동경음대의 전신)을 졸업, 이어서 하라노부꼬오페라연구소에서 오페라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라노부꼬의 각별한 관심과 그의 추천으로 황병덕은 후지하라오페라단에 입단, 본격적인 오페라 무대 생활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사회가 더욱 불안해지자, 평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귀국한 그는 안주공립중학교 음악교사로 취임, 안주에서 광복을 맞게 되었다. 이후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와 평양고보 음악교사로 취임했으나, 당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했고 이때부터 해방된 조국에서 연주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음악하는 친우들 4명과 함께 평남예술공작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평양을 순회하면서 연주회를 개최해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순수음악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어가는 그들을 공산세력이 긴장하며 급기야는 해산 명령을 내려 황병덕은 북한 탈출을 결심, 1947년 드디어 월남하게 된다. 서울에 온 황병덕은 우연히 한규동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성신여자고등학교에 음악선생으로 취직하고, 1948년 테너 이인선이 만든 국제오페라사가 한국 최초로 무대에 올린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에 출연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이인범, 오화섭, 김기령과 함께 한국오페라단을 창단, 첫 작품으로 <토스카>를 공연하면서 오페라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 공연 때는 이아고 역을 맡은 황병덕의 열연을 보고 감격한 미국인 음악가 제임스 웨이드가 1970년 오페라 <순교자>를 작곡하면서 주인공 신목사 역을 황병덕으로 정하고 그의 음역에 맞추어 오페라를 완성함으로써 열연하게 된다. 1955년 연세대학교에 종교음악과가 개설되면서 연세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 기독교에 귀의했고, 1985년 정년으로 물러날 때까지 음대 학장직을 거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약력
1942년 동경음악대학ry 졸업 1943년 원신자(原信子)오페라연구소 수업 1943년 전 일본 음악콩쿠르 입선 1950년 해군정훈음악대(海軍政訓音樂隊) 성악 및 합창대장 1952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1955년 연세대학교 교수 1958년 한국오페라단 단장 1970년 베를린국립음악대학 수학 1981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장 1983년 국립극장 종신회원(음악부문) 1985년 연세대학교 정년퇴임 1985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년 청운성악회(淸雲聲樂會) 이사장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 음악분과 회장 2000년 미드웨스트 컬리지 명예박사
상훈
197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0년 올해의 음악가상 1991년 한국예술문화대상 1994년 국민훈장 모란장, 서울특별시 문화상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8년 보관문화훈장
공연
1964년 국립극장 독창회 1965년 동경문화회관 NHK방송 독창회 1971년 독일 베를린음대 독창회 / 미국 시카고 레이크뷰 오디토리엄 독창회 / 서울시민회관 독창회 1979년 뉴욕카네기홀 독창회 / 발티모어 독창회 / 로스앤젤레스 독창회 / 캐나다 토론토 성로렌스홀 독창회 / 악단생활 40주년 기념독창회 1981년 국립극장 독창회 / 미국 시카고센터이스트오디토리엄 독창회 1985년 정년기념 독창회 1987년 미국 호놀룰루피스트장로교회 독주회 1989년 KBS교향악단 협연 1990년 수원시민회관 독창회 1991년 <아름다운 물레방아간 아가씨> 1992년 <겨울나그네> 1999년 음악생활 60년 기념독창회
오페라
1948년 <춘희> 1949년 <파우스트> 1953년 <왕자호동> 1954년 <일 트로바토레> 1958년 <토스카>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1959년 <카르멘> 1960년 <오텔로> 1962년 <돈죠반니> 1963년 <가면무도회> 1965년 <아이다> 1966년 <리골레토> 1970년 <순교자> 1972년 <라 트라비아타> 1974년 <루치아> 1984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리뷰
11월 12일 호암아트홀에서 가진 황병덕 교수의 정년기념 독창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뜻깊은 무대였다. (……) 아들인 황성엽 교수의 피아노 반주로 시작된 이날 연주회에서 그는 홍난파의 <봉선화>를 시작으로 지난 40년간의 즐겨부르던 우리 가곡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여 불러주었고, 1부의 마지막 순서인 <가고파>를 부를 때는 지나간 과거를 회상이라도 하듯 감회가 교차하는 따스함을 경험케 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윤기가 있으며, 목소리의 질감도 맑고 깨끗해 정년 후에도 성악가로서의 무대활동이 계속될 것으로 믿어졌다. 후반에는 김연준의 <청산에 살리라>로 시작했는데 특히 이번 독창회를 위해 이영조 교수가 작곡한 <윤동주 시에 의한 네 개의 노래>를 초연할 때는 현대기법에 의한 난해한 곡임에도 무리없이 소화함으로써 학구적인 노력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무대인 바리톤과 합창을 위한 교회 칸타타에서 제자들로 조직된 합창단이 출연, 스승과 함께 호흡을 맞출 때는 예술의 세계가 아니고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후회없는 삶을 통해 꿋꿋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황병덕 교수와 같은 선배들이 있어 이 나라 음악계가 이처럼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선생의 앙코르를 경청했다. - <황병덕 정년 기념독창회 평문>, 한상우, 1985년 세월이 없는 청춘 -황병덕 교수 음악생활 60년 기념음악회를 축하하며- 인생 80년, 음악세월 60년, 황병덕 교수는 아직도 젊으시다 노래가 젊고, 사람이 젊고, 영혼이 젊고, 인생이 젊고, 생존이 청춘이시다 그 목소리는 온 천지를 맑게 진동시키고 그 영혼은 온 청중의 심혼을 크게 흔들어 신선한 생명으로 가득히 맑게 서로 사는 기쁨을 황홀케 하신다 사람은 태양에서 나와서 태양으로 돌아가는 짤막한 여정을 사는데 불과하다고 했던가 그 짤막한 여정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사람다운 인생을 산다고 했던가 여기 황병덕 교수는 실로 뚜렷한 자기 인생흔적을 남긴 사람. 그 충만한 인생을 사신 분 참으로 장하고, 높고, 아름다워라 이 장하고, 높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인생 80. 세월이 없는 청춘, 하늘의 축복, 땅의 축복, 가득히 세월이 없이 영원하시길. - 조병화(시인)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대한민국예술원, 1998 <기억하고 싶은 선구자>, 한상우, 지식산업사, 2003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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