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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작오페라의 전문화시기

작품명
한국창작오페라의 전문화시기
(1) 오페라 전문극장의 개관
1993년 예술의전당에 오페라 전문극장이 개관되면서 오페라계는 한 단계 더욱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명동의 시공관 건물이나 세종로 시민회관, 장충동 국립극장,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은 모두가 다목적극장이어서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공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으로 현대화된 무대장치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수준높은 공연의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개관공연으로는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홍연택의 <시집가는 날>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 작품은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에서 초연되었던 것인데, 그것을 다시 개작해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지휘는 나영수, 연출은 오현명이 맡아 공연하였다. 그밖에도 개관공연으로 오페라 상설무대가 제작한 베르디의 <포스카리가의 두 사람>이 한국 초연으로 공연되었으며, 김자경오페라단이 제작한 비제의 <카르멘> 공연이 이어졌다. 예술의전당은 오페라 전문극장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정례적으로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오페라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1995년 10월에는 ‘한국창작오페라축제’를 개최하여 창작오페라 공연의 신장에 기여하였다. 창작오페라축제에는 총 3개의 민간오페라단이 참여했는데, 국제오페라단에서 제작한 현제명의 <춘향전>과 오페라 상설무대에서 제작한 김동진의 <심청>, 글로리아오페라단에서 제작한 장일남의 <원효대사>가 무대에 올려졌다. 또한 2003년도에는 대구에도 오페라 전문극장이 설립되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개관공연 이후로 수준높은 오페라 공연을 유치함과 동시에 국제오페라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지방의 오페라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오페라 전문극장의 개관과 더불어 오페라 전문인력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연출의 측면에서 두드러지는데, 과거에는 주로 연극 연출가나 성악가들이 오페라 연출을 담당했으나, 이 시기에 오페라 연출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오페라계는 더욱 활기를 더하고 있다. 그밖에도 오페라 전문지휘자, 오페라 전문오케스트라, 오페라 전문합창단들도 비록 소수이지만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 오페라 전문대본가, 오페라 전문무대장치가를 비롯한 오페라 전문인력들이 더욱 많이 유입된다면 한국오페라계는 비약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2) 1993년 이후의 창작오페라
이 시기에 초연된 창작오페라로는 1993년 서울아카데미심포니오케스트라 주관으로 대구시민회관에서 공연된 장일남의 <견우직녀>가 있다. 1994년에는 윤이상의 오페라 <꿈>이 한국 초연으로 무대에 올랐으며, 이연국의 <오따아 줄리아의 순교>도 공연되었다. 1995년에는 고려오페라단이 제작한 오페라 <안중근>이 초연되었는데, 이 작품은 한중 합작으로 제작된 것으로 중국인 왕홍빈이 대본을, 역시 중국인 류진구가 작곡을 담당하였다. 1993년 하얼빈에서 공연한 이후 한국에서는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개작·공연되었는데 전국적으로 총 33회의 공연을 가졌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은 공연이었다. 같은 해에 이종구의 <구드래>가 충남성곡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창작활성화기금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음악적 구성 면에서 우리의 전통 양식을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 1997년에는 삶과꿈 싱어즈에 의해서 실내오페라인 강석희의 <초월>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나카무라 사카에의 대본에 곡을 붙인 한·일합작오페라로서 1995년 동경 실내가극장에서 초연된 것을 다시 한국 무대에 올린 것이다. 난해한 현대 어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에 국립극장 창작공모 오페라부문에서 당선된 최병철의 <아라리 공주>가 공연되었으며, 김동진의 두 번째 신창악 작품인 <춘향전>이 김자경오페라단에 의해서 공연되었다. 1998년에는 충남성곡오페라단 위촉으로 유콜라노 니콜로(Iucolano Nicolo)가 작곡한 <이순신>이 공연되었다. <이순신>은 우리 오페라를 세계화하겠다는 야심찬 의도 아래 단장 백기현이 직접 대본을 써서 이탈리아 작곡가에게 작곡을 위촉한 독특한 형식으로 작품이 완성되었다. 작곡가가 한국인이 쓴 대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해 문화적 괴리가 생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전국적으로 총 12개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작품이 2000년도에 재공연될 때는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을 거쳐 완전히 개작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공연을 거듭할 때마다 개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유럽의 오페라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좋은 예를 남기게 되었다. 개작된 작품은 2000년 12월에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1999년부터는 한국문예진흥원의 창작활성화기금에 힘입어 창작오페라들이 새롭게 제작되어 공연되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999년에 초연된 오페라로 정회갑의 <산불>, 이영조의 <황진이>, 조장남의 <녹두장군 전봉준>, 이동훈의 <백범 김구 상해임시정부>, 백병동의 <사랑의 빛>, 김선철의 <무등둥둥>이 있다. 2000년에는 박재훈의 <유관순>이 고려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고려말 금속활자 직지가 간행되는 전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박범훈의 오페라 <직지>가 초연되었다. 또한 2001년도에는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이병욱의 <솔뫼>가 공연되었고, 소극장 오페라로 이건용의 <봄봄봄>과 김경중의 <사랑의 변주곡>이 공연되었다. 2002년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를 담은 백병동의 <눈물 많은 초인>이 뉴서울오페라단 주최로 공연되었다. 또한 삶과꿈 싱어즈 창립 10주년 기념 작품으로 위촉·제작한 강석희의 <보리스를 위한 파티>의 공연이 있었으며, 국립오페라단에서도 박영근의 <동명성왕>을 제작하여 초연하였다. 그밖에 사도세자의 비극적 삶을 다룬 나인용의 <부자유친>과 제주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김정길의 <백록담>이 공연되었으며, 종교오페라로 조문양의 <순교자>와 워커(Walker)의 <꿈꾸는 사람 요셉>이 공연되었다. 2003년도에는 세계여성작곡가페스티벌 폐막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진 이찬해의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를 필두로 하여 이철우의 <동녘>, 이호준의 <산돌 손양원>, <메밀꽃 필 무렵>, 이승선의 <태형> 등 많은 작품들이 초연되었다. 또한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으로 공연된 오페라 <목화>도 초연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3) 창작오페라의 활성화 시도
창작계의 전반적인 저조현상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분야에서는 우리 작곡가들이 창작한 오페라 작품이 자주 무대에 올려진다. 초연이 곧 종연(終演)이 되고 마는 다른 창작곡과는 달리 오페라 무대의 정례적인 레퍼토리로 자리를 굳힌 작품들도 상당수 있다. 현제명의 <춘향전>이나 장일남의 <춘향전> 등은 현재까지도 자주 무대에 올려진다. 물론 아직도 작곡만 되고 무대에 올려지지 못한 창작오페라들이 상당수 남아있고, 각 오페라단은 관객 동원을 위해 서양의 유명 오페라 작품을 선호하고 있지만, 타 장르에 비하면 그래도 오페라 장르에서 한국 작곡가의 창작물에 대한 초연과 재연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결과를 있게 하는 데는 지방자치단체가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자치제 이후 지방의 각 자치단체들이 문화사업으로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창작오페라를 위촉하여 정례 무대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 때문에 타 부문에 비해서 한국작곡가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으며, 한국작곡가의 작품은 초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수정을 거듭하며 무대에 올려져 점차 완성된 무대를 만들고 있다. 이는 우리 오페라계의 발전을 위해서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이러한 예로 제주시에서 위촉·제작한 김정길의 <백록담>이 있다. 이와 더불어 창작오페라를 대중과 접목시킴으로써 오페라를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성에 초점을 맞추어 창작된 오페라 중에서 뮤지컬과 오페라의 결합을 시도한 것을 특히 ‘뮤페라’라고 부른다. 또한 팝과 오페라가 결합되었을 때는 ‘팝페라’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뮤페라 가수, 팝페라 가수를 표방하여 유명세를 얻고 있는 가수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가수들이 이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아예 뮤페라단을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도 있는데, 코리아뮤페라컴퍼니의 <화이트 러브>와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뮤페라 공연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공연물이다. 뮤페라를 표방하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2002년도에 공연된 이종구의 오페라 <사랑을 위한 협주곡>은 뮤지컬과 오페라를 접목시켜 무대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대미술과 영상예술의 결합을 시도하였으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무대전환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에 반해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개관 기념으로 무대에 올려진 김대성의 <신 실크로드>는 창작 당시부터 뮤페라를 표방했던 작품이다. 오페라의 정통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뮤지컬의 대중적 측면을 가미하여 작곡이 이루어졌으며, 출연진 자체도 뮤지컬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크로스 가수를 기용해 뮤페라의 특성을 살렸다. 이러한 오페라의 대중화 경향은 오페라의 예술성과 뮤지컬의 대중성을 함께 찾으려는 현대 대중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더욱 팽창될 것으로 보인다. 1948년 우리 음악인들의 손으로 오페라가 처음 제작되었고, 1950년 우리의 첫 창작오페라가 무대화되었으니, 우리의 창작오페라사도 50년을 훨씬 넘었다. 그 사이 오페라 공연의 전문화로 공연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월드컵 경기장 등을 이용한 거대 오페라도 심심찮게 제작되고 있다. 또한 매년 우리 작곡가들의 창작오페라도 상당수 공연되고 있어 창작오페라계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우리 오페라계가 확고히 자리잡기 위해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오페라의 상설공연이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단 2~3회의 공연으로 마감을 하는 것은 경제적 측면으로도 손실이 많고, 오페라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50년이란 긴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오페라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오페라계가 지속적 발전을 하였듯이,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많은 난제들을 극복해 가며 우리 오페라계는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전정임(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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