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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음악사의 대들보

예술가명
근현대음악사의 대들보
분야
성악가
개요
차례의 독창회를 개최하였다. 1959년부터 40여 년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대학 성악교육의 틀을 만드는 등 교육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벨칸토 창법 연구>가 있으며, 수많은 한국가곡 음반을 출반하는 등 한국가곡의 보급과 발전에도 이바지하였다. 이상춘은, 1950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는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에 이도령 역으로 출연함으로써 오페라 가수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다. 이후 테너 가수로서 활동을 하면서 벨칸토 창법을 토대로 우리 민요를 소화할 수 있는 독특한 창법을 창안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가곡의 새로운 창법을 만드는 등 오페라와 함께 가곡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생명력이 짧은 테너임에도 불구하고 60세가 넘어서까지도 왕성한 무대 활동을 하여 많은 성악가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서 우리나라 성악계의 주역들을 상당수 배출해냈다. 김자경은, 한국오페라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우리나라 오페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무대인 <라 트라비아타>에서 프리마돈나로 출연하여 ‘한국인의 영원한 프리마돈나’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1950년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한국인 최초로 독창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하여 민간오페라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성악 인재를 양성하였다. 성악가로서도 해외에서만 100여 차례의 독창회를 개최하여 국위를 선양하였고, 국내에서도 수많은 연주회를 개최하였으며, 특히 70세가 넘어서도 끊임없이 독창회를 개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오페라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훈모는, 한국 성악의 예술성과 아카데미즘을 확립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1930년부터 소프라노로서 활동을 하였는데, 종래의 애창곡 수준의 레퍼토리에서 탈피하여 예술성이 높은 외국의 예술가곡을 본격적으로 소개를 하여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광복 이전에는 성악가로서 연주활동에 전념을 하였으며, 슈베르트, 슈만, 볼프, 슈트라우스 등 수많은 독일 가곡을 국내 초연하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성악 교육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그 후에 활동한 대부분의 여성 성악가들이 정훈모 선생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성악 인재들을 배출했다.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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