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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목발노래(益山목발노래)

작품/자료명
익산목발노래(益山목발노래)
전승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
지정여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구분
민속악
개요
<익산목발노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로, 지게를 진 나무꾼들이 작대기로 지게의 다리인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이다. 농요(農謠)의 하나로 이것은 일꾼들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흥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목발노래’란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 등 여섯 곡을 하나로 묶은 노래의 명칭이다.
내용
익산시는 동부 산간지역에서 벗어나 서부 평야지역이 펼쳐지는 곳이어서 민요 또한 그러한 특성을 잘 드러낸다. 논농사와 관련된 남성들의 노래와 육자배기 창법이 뚜렷이 나타나고 ‘논농사노래’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메나리조의 창법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점 또한 분명하다. 지게는 한국의 농민들이 짐을 질 때 사용하는 기구로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손에서 떼지 못하는 기구다. 나무로 된 두 개의 긴 다리가 있는데 이것을 ‘목발’이라고 한다. 지게는 농민들에게 곡식이나 풀, 나뭇단 등을 지어다 나를 때 반드시 필요한 운반 도구다. <익산목발노래>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나무꾼들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로, 주로 초동들이 산에 올라가 벌초할 때 묘판 둘레에서 춤을 동반해서 불렀으며 겨울과 이른 봄에 행해졌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질 때, 가벼운 짐을 질 때, 빈 지게로 나갈 때 등 때에 따라 노래가 달라지므로 여러 가지 곡조와 장단이 나타난다.①산타령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벨 때 부르는 노래. 인생사의 회포를 느린 육자배기가락으로 부른다. 느린진양조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이 독창으로 길게 메기고,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짧게 “구나헤~”하며 6박 한 장단으로 받는다. 경기와 서도의 <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네 곡으로 되어 있고 남도의 <산타령>은 <육자배기>, <흥타령>, <개구리타령> 등이 있다. 따라서 이름을 <산타령>이라 하고 육자배기를 부르는 것이 이와 같은 이유이다. ②등짐소리 <산타령>이 끝나면 농악을 쳐서 다음 곡인 <등짐소리>로 넘어간다. 지게 위에 나무를 잔뜩 하여 짊어지고 내려오면서 부르는 노래로 느린중모리장단이다. 전체적으로는 남도특유의 ‘시나위조’이지만 약간 다르게 이채감이 느껴지는 선율이다. ③지게목발노래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 혹은 나뭇짐을 지고 신바람이 나 있을 때는 지게의 목발을 작대기로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른다. 장단은 특이하게 엇모리장단에 맞추며 율동적인 가락으로 익살스럽게 주고받는다. 선율은 시나위조와는 전혀 다른 동요조로 부른다. ④작대기타령 이어서 특이하게도 서울지방의 <창부타령>을 부르는데 이것이 <작대기타령>이다. 메기는 이가 독창으로 일절만 부르는데 이것은 전체적으로 흥을 돋우기 위하여 부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굿거리장단을 작대기로 목발을 치면서 불러 <작대기타령>이라고 한다. ⑤둥당기타령 <작대기타령>과 마찬가지로 굿거리장단으로 부르는데 시나위조로 메기고 받으면서 흥겹게 부른다. ⑥상사소리 중중모리 장단으로 부른다. 익산목발노래는 놀이와 함께 행해졌는데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 등의 사이사이에는 <지게풍장(농악)>이 이어진다. 꽹과리와 앞소리가 메기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지게를 지고 작대기 두 개를 가지고 받는 소리나 취임새로 응하면서 즐겁게 춤추고 노는 ‘집단가무’로 이루어지는 것이 <익산목발노래>다. <지게풍장>의 가락은 삼채장단이며 대열이 원을 만들어 안과 밖으로 행진하면서 작대기를 치며 노는데, 이것은 농악의 ‘삼채가락’을 작대기로 치면서 노래의 마무리를 흥겹게 장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익산목발노래>는 농경문화의 꽃으로 비유되어 온 농요(農謠)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귀중한 음악이며 박갑근 씨가 예능보유자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승자 정보
박갑근(1923.3.7)은 1923년 박해명(朴海明)씨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청년기에 ‘풍장’을 맡게 되면서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시조와 창을 익혔다. 그는 여러 곳의 각종 모임에 불려 다니면서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유지하게 되어 원숙한 농요잔치의 한 마당을 이루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삼기, 금마, 함열, 낭산 등의 28명이나 되는 풍장꾼들을 모아 ‘위계(偉契)’를 조직, 운영하면서 생활민요 등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농역(農役)의 피로를 풀고 흥취를 돋우어 이른바 농경문화의 꽃으로 비유되어 온 귀중한 농요(農謠)들이 자꾸만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농요의 보전과 전승을 위하여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에 출연했던 50여 명의 동료를 규합 익산민속예술농요회(益山民俗藝術農謠會)를 조직, 운영하였다. 그가 사는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를 중심으로 흩어져 묻혀 있는 인근의 농요와 생활민요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 보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24명의 인원으로 익산목발노래보존회도 구성하였다. 그가 이끌어낸 <익산목발노래>는 1972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77년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익산삼기농요>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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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정보
· 관련도서 <전북국악사>, 황미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MBC민요대전>, MBC문화방송, 1995 · 관련사이트· 관련가치정보
연계정보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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